243화 진실을 알면 어찌할 것이냐?
목운요는 작게 웃었다.
“역시 총명하시군요. 임 의녀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번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을 거예요.”
“그것들은 왜 네게 붙은 거지? 내가 온 마마와 임우함에게 얼마나 후하게 대해 주었는데! 왜 그것들이 나를 배신했지?”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르면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게 돼 있죠. 이미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예상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정말로 잘 대해 주신 게 맞나요? 온 마마는 오랫동안 노부인을 모시느라 슬하에 자녀도 없이 홀몸으로 지내며 나이가 들었습니다. 임 의녀는 어떤가요? 노부인은 임 의녀를 소씨 가문에 들이셨지만, 천민의 신분을 벗어나게 해 주진 않으셨죠. 그녀는 소씨 가문을 떠나면 아주 비통한 말로를 맞을 겁니다. 그런 두 사람에게 어찌 후하게 대하셨단 것인지요? 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노부인은 너무 화가 나 비단 이불을 꽉 쥐었다.
“종일 기러기 사냥을 하다가 기러기 주둥이에 눈을 쪼인다더니, 내가 눈을 쪼인 격이구나! 목운요, 이렇게 해서 네가 이겼다고 생각하느냐? 소씨 가문의 뿌리는 아주 깊다.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흔들릴 가문이 아니야!”
“너무 자신 있어 하시는군요. 소씨 가문은 이미 파멸의 길을 걷고 있지 않았나요? 게다가 저 말고도 가문을 뒤흔들 사람은 널리고 널렸습니다. 예컨대 장공주 전하도 계시죠.”
“네까짓 게 뭐라고 장공주 전하께서 널 도와? 전하께선 그저 널 데리고 노시는 거다. 네가 외조모를 모함하는 불충불효한 계집인 걸 알게 되시는 날에는 반드시 너를 혐오하실 거다!”
“하! 제가 외조모를 모함한다고요? 제가 외할머니라고 부르면 떳떳하게 대답하실 수나 있고요?”
목운요는 비웃음을 흘리며 노부인을 내려다봤다. 눈에선 끝없는 냉기가 흘렀다.
순간 노부인의 동공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너……. 감히 뭐라고 지껄이는 것이냐?”
“제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무슨 뜻인지 알고 계실 텐데요. 제가 노부인을 외할머니라고 부르면 떳떳하게 대답하실 수 있나요?”
“못 할 건 또 뭐냐! 난 네 외조모인 것을!”
목운요가 사람을 짓누르는 듯한 서늘한 기세를 뿜어냈다.
“제 어머니는 의덕 장공주 전하의 친딸입니다. 그러니 제 외조모는 장공주 전하이시죠. 제 외조모를 사칭하는 게 두렵지도 않으신가 보죠?”
노부인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목운요를 쳐다봤다.
“허, 헛소리하지 마라! 목운요, 설마 미쳐 버린 것이냐?! 떨어져 죽을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위로 올라가서 한자리를 차지할 생각뿐이냐?”
“아주 철저하게 계획하셨더군요. 하지만 노부인께서 잊은 사람이 있습니다. 우 언니가 제게 모든 사실을 알려 줬다고요!”
노부인은 빨간 실핏줄이 오른 두 눈으로 목운요를 노려봤다. 악귀처럼 흉악한 모습이었다.
“말도 안 돼!”
“이제야 두려우십니까? 염려 놓으세요. 노부인이 아무리 미워도 당장 목숨을 앗아 가진 않을 테니까요. 소씨 가문이 파멸하는 걸 두 눈으로 직접 지켜보시죠.”
노부인은 겁에 질려 덜덜 떠느라 제대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제 마음을 편히 먹고 영화원에서 지내세요. 저와 어머니는 곧 소씨 가문에서 나갈 겁니다. 오늘은 작별 인사를 드리러 온 것이죠.”
노부인은 무서운 기세로 손을 뻗어 목운요의 비단 치마를 잡았다. 창백해진 손이 시들어 버린 나뭇가지 같았다.
“모든 증인과 증거는 내가 없애 버렸다.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뿐이야! 네가 진짜 신분을 알았다고 한들, 뭐 어쩔 것이냐? 어차피 증명할 방법도 없지 않으냐? 장공주 전하 앞에서 그 얘기를 한다고 해도 전하께서 그걸 믿어 주실까? 황실 사람들이 네 말을 믿을까?”
목운요의 득의양양한 모습을 보자, 노부인은 분노와 원망이 극에 달했다. 목운요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싶었고, 부귀영화에는 손도 못 대도록 만들고 싶었다!
목운요는 살며시 눈을 치켜떴다.
“인정하시는 겁니까?”
“그래, 인정한다. 그게 뭐 어떻단 말이냐? 어차피 증거를 찾지 못하면 넌 영원히 황실로 돌아갈 수 없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부귀영화를 영원히 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럼 넌 점점 고통스러워지겠지! 하하하!”
미친 사람 같은 노부인의 모습에 목운요는 살짝 입꼬리를 올렸다.
“계례에 오신 손님들은 노부인께서 정신 이상자가 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얘기가 온 서릉에 퍼져서, 앞으로 노부인께서 하시는 말은 모두 미치광이의 말이 될 겁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든 믿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죠. 그리고 갑자기 다리에 장애가 생겨서 앞으로는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계속 그렇게 누워서 지내셔야 할 겁니다.”
“목운요……! 언젠가 그대로 돌려받을 것이다!”
“인과응보는 제가 아니라 노부인께서 두려워하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목운요가 뒤로 물러섰다. 비단 치마가 노부인 손 씨의 손에서 천천히 빠져나왔다.
“그러면 말년 평안하게 지내십시오. 작은외숙모가 사람을 보내 노부인을 잘 돌보실 겁니다.”
목운요는 뒤돌아 걷다가 돌연 멈춰 섰다.
“제가 정말로 신분을 증명할 증거를 찾을 수 없다면, 왜 그렇게 저와 어머니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셨던 겁니까?”
분명 어떠한 변고가 일어났으니 노부인이 가만히 있지 못했던 것이리라.
손 씨는 두 눈을 크게 뜨며 흥분하다가 침상에서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녀가 바닥에 엎어져 잔뜩 어두운 눈으로 목운요를 노려봤다.
“목운요……!”
영화원의 문을 나설 때까지 목운요의 등 뒤로 증오가 가득한 노부인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부인 척 씨는 밖으로 나온 목운요의 안색을 살피다 걱정이 묻은 목소리로 말했다.
“운요야…….”
목운요는 이부인에게 괜찮다며 작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전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와 어머니는 곧 소씨 가문을 떠날 거예요. 떠날 때 소란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 작은외숙모는 연루되지 않게 잠시 자리를 피해 계세요.”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되겠니?”
“네, 괜찮아요. 저와 소씨 가문의 사이는 이제 완전히 틀어졌어요. 작은외숙모께서 저를 도우시면 앞으로 가문을 관리하는 게 힘들어지실 거예요. 별일 없을 테니 염려하지 마세요.”
“그래.”
* * *
제월각으로 돌아온 후, 목운요는 대청에 앉아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겉으로 보기엔 평온해 보였지만, 사실 노부인에게서 진짜 신분을 확인한 순간부터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장공주의 병이 도졌을 때, 항시 침착하던 목운요는 제 생사를 불고하고 장공주를 구하는 데 힘썼다. 한 핏줄이라는 것이 신기한 영향을 끼친 모양이었다.
그보다 영화원에서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지만, 사실은 자신이 없었다. 장공주와 황제도 잃어버린 아이를 오랫동안 필사적으로 찾으려고 했으나, 작은 실마리 하나 찾지 못했다. 그들도 찾지 못한 증거를 과연 자신이 찾아낼 수 있을까?
그리고 증거를 찾는다 하더라도 문제가 남아 있었다. 어머니와 함께 황실로 들어가게 되면 온갖 아첨, 압박, 계략에 휘말릴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세워 둔 계획에 엄청난 변수가 생길 것이 뻔했다. 그것이 과연 자신이 원하던 삶일까?
더욱 중요한 것은 월왕과의 관계였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게 되면 목운요는 월왕을 외당숙이라고 불러야 했다. 그러면 두 사람은 어찌 된단 말인가?
그때, 이 층에 있던 눈여우가 목운요의 발 언저리로 뛰어내렸다. 눈여우는 품에 과일을 안고 낑낑거리며 아양을 떨었다.
정신을 차린 목운요가 눈여우를 들어 무릎 위에 올려 두는데, 위층에서 소청이 내려왔다.
“요아야, 영화원에 인사를 하러 갔다고 사서에게 전해 들었다. 노부인이 널 괴롭히시진 않았니?”
목운요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절 괴롭힐 여유나 있으시겠어요?”
“그럼 됐다. 짐은 대충 챙겼으니 어서 가자꾸나.”
“어머니.”
그녀가 몸을 일으켜 소청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순진한 말투로 물었다.
“어머니는 어떤 삶을 살고 싶으세요?”
“무슨 말이니?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
“그냥 여쭤보고 싶었어요. 우리가 소씨 가문으로 들어가면 화목한 삶을 살 줄 알았지만, 소씨 가문 사람들은 하나같이 우리를 적으로 봤잖아요? 어머니와 제가 매일 불안에 떨며 살아야 했을 정도로 우리를 못살게 굴었죠. 반면 이제 가문을 떠나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어요. 그래서 어떤 삶을 살고 싶으신지 여쭤본 거예요.”
소청은 손을 뻗어 목운요의 긴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따뜻하게 눈을 빛냈다.
“성인이 되지 않은 아이들의 두 눈은 언제나 앞을 바라보며 미래의 삶을 상상하지. 하지만 부모가 되면 두 눈은 자신의 아이에게 향한단다. 이 어미도 다를 것 없다. 난 그저 네가 행복하면 된단다. 너만 행복하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아도 상관없어.”
그 말을 들은 목운요는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어머니, 그건 너무 억울하지 않으세요?”
“바보 같긴. 너도 부모가 되면 나와 같은 마음이 될 거다. 그리고 억울할 게 뭐가 있겠니? 네가 행복한 모습을 보면 이 어미도 기쁜 것을. 자,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하자. 우리끼리 같이 산다면 매일 찬물만 마시며 살아도 마음이 편안할 거야.”
목운요는 웃으며 눈물을 깨끗하게 닦고, 확신에 찬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제가 돈을 왕창 벌어서 누구보다 넉넉한 삶을 살게 해 드릴게요.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마음껏 사시고, 하고 싶은 대로 하실 수 있도록요!”
“그래. 그럼 네가 아주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걱정하지 마세요!”
웃음기 가득한 소청의 눈을 보자 목운요의 출렁이던 마음도 서서히 안정을 찾았다.
증거를 찾든, 찾지 못하든 어머니가 행복해질 방법을 강구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