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노부인을 의심하다
* * *
소씨 가문에 도착하자, 물건을 들고 동원으로 향하던 하인들이 목운요에게 인사를 올렸다.
“이것들은 다 무엇이지?”
“이부인께서 큰 아가씨께 보내라고 명하신 물건입니다.”
목운요는 그중에 작은 병풍 하나가 있는 것을 보고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서 우의 언니께 전해 드려야겠구나.”
“네, 아가씨.”
제월각에 돌아온 후, 금란은 목운요의 환복을 도우며 작게 물었다.
“아까 하인들이 들고 있던 병풍에 시선을 두시던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아까 그 병풍은 창가나 탁자 근처에 두는 것인데, 받침이 약을 이용해 산지목처럼 보이게 조작한 것이었어요. 햇볕을 쬐면 약 기운이 발산되죠. 크게 사람을 해치는 건 아니지만, 사람을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들어요.”
금란이 얼빠진 얼굴을 했다.
“이부인께서 어찌 갑자기 이런 일을 하시는 걸까요?”
“누군가 우 언니에게 손을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좀 달라지시는 게 당연하죠.”
“그럼 이번 일을 벌인 게 대부인이란 말씀인가요?”
목운요는 고개를 갸웃했다. 혼란의 실타래가 얽히고설켜 한 덩이 의문투성이가 된 것 같았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우 언니는 여자라서 눈에 크게 거슬릴 것도 없는데. 굳이 우 언니를 견제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러니까요. 소인도 그 이유가 무척 궁금합니다.”
“천천히 지켜보도록 하죠. 작은외숙모께서 따로 조사하셨을지도 모르니까.”
이부인이 소씨 가문에서 지낸 지도 어언 이십 년이 넘었다. 당연히 목운요보다 집안에 관해 잘 알았고 인맥도 넓었다. 그러니 조사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 터였다.
* * *
순식간에 이틀이 지나갔다.
목운요는 소우를 자세히 진맥하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약의 독기는 거의 사라졌고 아주 일부분만 남았어요.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천천히 다 사라질 거예요.”
이틀 동안 소우는 무척 힘든 시간을 보냈다. 수시로 침을 맞고 안마를 받고, 독과 열을 빼는 약까지 먹으니 소우는 황천길로 가는 줄로만 알았다.
목운요가 은침을 빼내고 미소를 지었다.
“언니, 좀 어때요?”
“음…….”
소우는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여전히 기력은 없었지만, 온몸을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진 듯 몸이 훨씬 가벼웠다.
“한결 괜찮아졌어요. 여태까지 이렇게 괜찮았던 적이 없어요.”
옆에서 초조하게 지켜보던 이부인은 참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였다.
“잘됐구나, 정말 잘됐어! 운요야, 네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앞으로 어떻게 몸조리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언니 몸에 독이 너무 깊게 침투해 있었기 때문에 또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그땐 정말 위험할 수 있어요.”
“그래, 다시는 그런 추악한 손길을 뻗지 못하도록 내 주의하도록 하마.”
“그럼 언니는 푹 쉬세요. 전 처방전을 적으러 가 볼게요.”
목운요는 소우에게 이불을 덮어 준 후, 이부인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이부인은 손을 휘둘러 시녀들을 물린 후 입을 열었다.
“운요야, 요 며칠간 내가 조사해 보니 암암리에 우에게 손을 댄 자는…….”
이부인의 시선은 노부인 손 씨가 거처하는 영화원 쪽을 향해 있었다.
“숙모, 그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돼요. 혹시 조사에 착오가 있으셨던 건 아닌가요?”
이부인이 씁쓸하게 웃음을 지었다.
“나도 내가 잘못 조사했기를 바랐다. 여태껏 그분이 우리 우를 얼마나 예뻐하셨는데……. 집에 진귀한 약재가 선물로 오면 가장 먼저 서원 몫을 챙겨 주시던 분이었어. 그러니 어찌 상상이나 했겠느냐?”
목운요는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속내는 독사 같았던 거지.”
어두운 표정의 이부인이 천천히 뒷말을 뱉었다.
“사실 예전에 어머니께서 소씨 가문의 사람과 결혼하는 걸 강력히 반대하셨단다. 그런데 내가 네 작은외숙부와 눈이 맞는 바람에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여기로 시집을 오고 말았지…….”
이부인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당시는 소씨 가문이 완전히 중용되기 전이라 노부인께서 내게 무척 잘해 주셨단다. 편애하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 그런데 시집온 지 몇 년이 지나도 임신이 되질 않았다. 임신하고 나서도 연거푸 유산이 되었고. 이런 일이 몇 번이나 일어나니 난 밤새 불당에 가서 무릎을 꿇고 평생 내 죄를 참회하곤 했단다. 다행히 훗날 우를 얻어서 겨우 버틸 수 있었지…….”
“외숙모…….”
목운요가 손수건을 건네며 걱정스럽게 이부인을 바라보았다.
“괜찮다. 예전엔 이런 끔찍한 술수가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해서 그저 내 팔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배후가 있지 않고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었지. 무슨 연유로 그러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소씨 가문에서 이렇게 대담한 술수를 부릴 사람은 노부인밖에 없어.”
이부인이 눈물을 닦아 냈다.
“그동안 매일 그 독사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했던 것만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해져 견디기가 힘들구나. 오랫동안 우를 간호해 왔지만, 약에 문제가 있었을 줄이야…….”
목운요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어떤 말을 건네든 이부인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우가 약 먹기를 싫어해서 짜증을 내면 내가 달래고 달래서 한 입씩 억지로 마시게 했지. 생각해 보면 내가 우에게 먹인 게 생명을 구하는 보약이 아니라 생명을 빼앗는 독약이었던 거야……. 죽고 싶을 정도로 내가 원망스러워.”
이부인은 스스로 자책했고 그보다도 더 노부인을 증오했다.
자신이 눈에 거슬렸다면 응당 자신을 괴롭혔어야지, 딸을 건드려선 안 되었다. 우는 손 씨의 친손녀가 아닌가. 정말 그 아이에게 일말의 정도 없단 말인가?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최악의 상황은 아니에요.”
이부인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눈물을 애써 참았다.
“그래, 다행히 너를 만나서 아직 늦지 않았어. 내 진심으로 맹세하마. 소우의 건강을 완전히 회복시켜 달라곤 부탁하지 않겠어. 다만 최선만 다해다오. 그럼 앞으로 네가 시키는 일은 뭐든 다 하겠다!”
목운요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부인의 손을 꼭 잡았다.
“작은외숙모께서 자식을 간절히 아끼는 마음에 제가 다 감동했는걸요. 반드시 언니가 무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너도 조심하거라. 네가 우를 진찰하고 있다는 소식이 언제 노부인 귀에 들어갈지 모른다. 만약 남몰래 너나 시누에게 손을 쓴다면 막을 방법이 없어.”
“귀띔해 주셔서 감사해요. 더욱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 * *
제월각으로 돌아와 보니 대부인이 마련한 은표 팔만 냥이 도착해 있었다. 이것 때문에 대부인이 혼수로 가져온 땅을 팔았을 걸 생각하니 마음이 개운했다.
“제명에게 하루 이틀 내에 준비를 모두 마치라고 전해 줘요.”
“네, 소저.”
이내 목운요가 대문을 나서는데, 문 앞에 다른 마차가 하나 더 서 있는 게 보였다.
금란이 속삭였다.
“소저, 이건 대부인의 마차 같습니다.”
‘설마 소우의가 저리 다쳤는데 사냥터로 보내려는 건가?’
고개를 돌리자 대부인이 어두운 안색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 뒤로는 소아한 등 서녀 세 명이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따라오는 중이었다.
머리를 조금 굴려 보니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노부인 손 씨의 계획이 분명했다.
“큰외숙모와 사촌 언니들을 뵙습니다.”
대부인은 경직된 얼굴로 목운요를 보다가 마차를 향해 걸어갔다.
목운요는 미소를 지었다.
“저희도 가죠.”
이번 가을 사냥은 장공주도 참여하니만큼 매우 성대하게 치러질 예정이었다. 군사 또한 사만 명이나 배정되어 만전을 기했다.
이내 천천히 마차가 멈추어 서고 목운요가 내리려는 순간, 갑자기 말이 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마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다행히 사서가 재빨리 붙잡아 주어서 밖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다만 손등이 마차 문에 세게 부딪혀서 빨갛게 부어올랐다.
목운요의 눈에 살기가 번득였다. 순간 회귀 전 마차에서 데굴데굴 굴러 나와 월왕의 면전에 떨어졌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 말이 울부짖는 소리가 다시금 들렸다. 재차 마차가 요동치더니 짙은 피비린내가 풍겼다.
사람들은 분분히 마차를 멀찍이 몰았다. 순식간에 목운요의 마차만 덩그러니 중앙에 놓였다.
소란을 눈치챈 금위군이 신속히 와서 주변을 둘러쌌다. 이황자 유왕도 말을 타고 와서 상황을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무슨 일이냐?”
그에 청년 한 명이 나와 유왕에게 절을 올렸다.
“맹씨 가문의 마차가 한 마차와 부딪히는 바람에 말이 놀라고 말았습니다. 놀란 말이 귀인들을 들이받으려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말을 참살해야 했습니다. 전하를 놀라게 한 죄,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너는…… 맹한동(孟翰东)이 아니냐?”
“네, 맞습니다.”
유왕은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며 핏자국이 선명한 마차를 바라보았다.
“이건 누구의 마차냐?”
목운요는 사서에게 눈짓하여 창의 휘장을 걷도록 했다. 밖을 보니 말은 이미 바닥에 고꾸라져 있었다. 피가 도처에 흥건해서 피바다 가운데 갇힌 것 같았다.
목운요는 마차 난간에 서서 유왕을 담담히 바라보았다.
“목운요가 유왕 전하를 뵙습니다.”
“목 소저, 더는 그 마차를 타고 가기 힘들겠구려. 소씨 가문에서 다른 이들도 온 것 같던데, 같이 타고 가야겠소.”
“유왕 전하, 감사하지만 제게 생각해 둔 바가 있습니다. 맹 공자님, 이렇게 많은 귀인들 앞에서 검을 들어 말을 죽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보기 드문 용기이십니다.”
목운요는 맹씨 가문의 손자 맹한동을 조용히 응시했다. 월왕이 맹씨 가문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일러 준 적이 있었다. 한데 황궁에 도착하기도 전에 맹한동이 성가시게 할 줄이야.
맹한동은 목운요를 흘긋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마차에 탄 사람이 운요 동생일 줄은 몰랐습니다. 말이 너무 놀라서 사고를 낼까 봐 말을 죽인 제 탓입니다.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마십시오. 말이 아무리 귀한들 여기 있는 사람들보다 귀할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목운요는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 마차 안에 있던 자신의 신분이 주위 사람들의 신분보다 고귀하지 않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말한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