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7화 쑥덕이는 소문
심병괴는 고개를 끄덕인 뒤 몸을 돌려 소문원을 따라 동원을 나섰다.
노부인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난장판이 된 정원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냉랭한 목소리로 대부인에게 말했다.
“아직 사건이 해결된 건 아니지만, 소씨 가문의 일을 네게 맡기지 못할 것 같다. 오늘부터 가문을 관리하는 일은 이부인 척 씨에게 넘길 생각이다. 너는 당분간 동원에서 불경을 읽으며 기도를 하도록 해라. 내 명 없이는 동원에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
대부인의 얼굴이 구겨졌다. 순식간에 가문의 통솔권을 잃어버렸고, 외출 금지령까지 받았다. 체면을 잃을 대로 잃어버려서 더는 잃을 체면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어머님.”
노부인은 뒤돌아 소청과 목운요에게 부드럽고 상냥하게, 하지만 살얼음이 낀 것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너희는 제월각으로 돌아가라. 곧 제월각으로 의원을 보낼 테니 상처를 진료받고, 운춘, 금란 등의 시녀들도 함께 진료받게 해라. 주인을 섬기는 충심이 아주 대단하더구나. 그런 시녀들을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감사해요, 외할머니. 다만, 팔만 냥은…… 만약 큰외숙모께서 정말 형편이 어려우시다면 나중에 돌려받아도 괜찮습니다. 하오나 하운방과 불선루가 들어설 좋은 자리를 이미 찾은 상태입니다. 돈만 지불하면 바로 재건축과 개업을 진행할 상황이라…….”
대부인은 시릴 정도로 차가운 눈으로 목운요를 째려봤다.
“정도껏 해라. 이십만 냥이 어찌 되었는지는 나보다 네가 더 잘 알 텐데?”
목운요는 크게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외할머니, 큰외숙모께서…….”
그에 노부인은 얼굴을 굳히고 차가운 눈으로 목운요를 훑더니 대부인 맹 씨를 질책했다.
“운요에게 팔만 냥을 갚아라. 애초에 네 것이 아닌 돈을 쥐고 있으면 부정을 탈지도 모른다. 집안이 이렇게 시끄럽고 혼잡하다니, 정말이지 어이가 없구나. 냉큼 사람을 불러 정리해라! 난 다시 두통이 도져서 먼저 돌아가야겠다.”
“살펴 가세요, 외할머니.”
손 씨가 떠나자 대부인은 원망이 가득한 얼굴을 쳐들었다.
“목운요, 어깨가 한껏 올라갔더구나!”
목운요를 상대하는 건 식은 죽 먹기일 줄 알았다. 자신의 계획에 한 치의 착오도 없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대부인 자신만 막심한 피해를 보았다. 집안의 통솔권을 잃고 외출 금지를 당한 것도 모자라, 팔만 냥까지 배상해야 했다.
목운요는 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살살 쓰다듬었다.
“뺨에 시퍼런 멍이 들어 사라지지 않을지 걱정되네요. 대체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저는 황상의 부름을 받고 가을 사냥에 나가게 됩니다. 황상께서 제 뺨을 보고 추궁하실 거라곤 생각 못 하셨나요?”
대부인은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차올라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목운요가 가을 사냥에 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분노하는 대부인을 보며 목운요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큰외숙모께 감사해야겠네요. 오늘 일을 크게 벌여 주셔서 덕분에 저와 어머니는 드디어 소씨 가문에서 두 발 뻗고 마음 편히 살 수 있게 됐습니다.”
“이, 이…… 빌어먹을 것!”
대부인은 목운요를 갈기갈기 찢을 기세로 화를 냈다.
목운요의 말대로 오늘부터 소씨 가문에서 소청과 목운요를 무시하거나 괴롭히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 소씨 가문을 관리한 대부인의 처지도 손바닥 뒤집듯 바뀌었는데, 어느 누가 목운요에게 덤비려고 하겠는가.
목운요는 다시 한번 가볍게 웃었다.
“어찌 그렇게 저속한 말을 입에 담으십니까? 우의 언니가 보고 배울 게 두렵지 않으세요? 아, 그러고 보니 황상께선 모든 가문의 소저들도 가을 사냥에 참가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언니는 팔이 부러져 버렸으니 참석할 수가 없겠네요.”
대부인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조여 왔다. 그녀는 목운요를 노려보며 부들부들 떨다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소청오는 쓰러지는 대부인을 재빠르게 안고,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목운요에게 시선을 보냈다.
소청오의 눈총을 받은 목운요는 미소 지으며 물었다.
“오라버니, 저를 왜 그런 눈빛으로 보시죠?”
“운요, 둘 다 죽어야 싸움을 끝낼 생각이오?”
“큰외숙모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죽지 않을 겁니다. 큰외숙모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촌구석에서 태어난 비천한 출신입니다. 하지만 제 명은 꽤 질기죠. 제게 온갖 수작을 부려도 절대로 저를 무너뜨리지 못할 겁니다.”
목운요의 눈빛은 차가웠다. 흑백이 또렷한 눈동자엔 비장함이 감돌았다. 보이지 않는 살기가 용솟음치자 소청오는 한기를 느꼈다.
처음 보는 그녀의 모습에 말문이 막힌 소청오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을 이어 갔다.
“우린 한 가문의 사람이오. 소씨 가문이 무너지면 운요 동생에게도 좋을 것이 없을 거요.”
목운요는 차갑게 웃었다. 어찌 좋을 것이 없겠는가? 소씨 가문에 불운이 닥치면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기뻐할 것이다.
“시간이 늦었네요. 어머니, 이만 돌아가요.”
소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청 또한 계속 동원에 머물 생각이 없었다. 친척? 혈육? 다 웃기는 소리였다. 소씨 가문에 직접 몸담지 않는 이상,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냉정하고 잔혹한지 아무도 몰랐다.
* * *
제월각으로 돌아오니 금란과 금교의 부축을 받고 있던 운춘이 몸을 바로 일으켰다.
“소저를 뵙습니다.”
목운요는 빙긋 웃으며 운춘을 살펴보았다.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었군요.”
“소저를 도울 수만 있다면 이 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운춘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겉에 보이는 상처들은 대부분 위장한 것이었다. 남들이 알아챌 수 있기에 일부는 진짜였지만, 그래도 예전에 훈련할 때 다치던 것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상처였다.
“아주 좋은 외상약이 있으니 잘 치료해 줄게요. 절대 흉터는 남지 않을 거예요.”
운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까짓 작은 상처는 이틀 정도 놔두면 저절로 낫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리고 금란과 금교도 어서 와 봐요. 진맥해 줄 테니까. 자기 몸을 소중하게 생각해야죠. 이번에는 부득이하게 위험에 노출되었지만, 나중에는 이런 일 없을 거예요.”
“소저, 저희는 괜찮습니다. 오늘 정말 통쾌했는걸요! 이제는 대부인이 저희를 위협할 일이 없으니까요.”
목운요는 세 시녀를 차례대로 진맥했다. 세 사람의 상처가 그리 위중하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아직 반만 성공한 거예요. 나머지 일이 가장 중요하죠. 소씨 가문에 죄를 뒤집어씌우는 것까진 해냈지만, 일을 확실히 마무리할 수 있을지는 다음 계획의 성사 여부에 달렸어요.”
세 시녀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소인들이 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분부해 주세요.”
목운요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하운방과 불선루를 속히 열어야겠어요. 그래야 언제든 소씨 가문을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요. 이제 서릉 전체가 소씨 가문에 대한 소문으로 떠들썩할 거예요. 소씨 가문도 결백함을 증명할 방법을 생각할 테니 암암리에 여론을 장악해야 해요. 소씨 가문이 쉽게 혐의에서 벗어나게 놔둬선 안 돼요.”
“네, 소저.”
“참, 맹씨 가문과 소씨 가문의 사업에 대한 조사는 어떻게 됐죠?”
사금이 다가와 대답했다.
“육냥이 사람을 보내 전해 온 소식으로는, 조사가 거의 끝나 간다고 합니다. 두 가문 모두 관직에 있어서 수중의 사업은 대부분 농업, 상업, 토지 산업 같은 것들입니다. 맹씨 가문만 최근 두 해 동안 약재업에 손을 댔는데, 아직 진전이 크진 않습니다.”
“약재업이라…….”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맹씨 가문과 소씨 가문은 여태껏 상업을 천하게 취급하곤 했지. 어디, 돈줄을 끊어도 신선처럼 이슬만 먹을 수 있을지 한번 지켜보자고.”
한편 금교는 목운요의 건강이 조금 걱정되었다.
“소저, 황 의원께서 유 노파와 왕 노파 때문에 소저의 몸이 상하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정말인가요?”
그 말을 들으니 소청도 다급히 목운요를 바라보았다. 이에 목운요가 재빨리 안심시켰다.
“별일 아니니 걱정하지 말아요. 황 의원은 내가 육냥을 시켜서 매수했어요. 소씨 가문을 곤란하게 하기 위한 계획이었을 뿐, 내 몸엔 아무 문제도 없어요.”
소청은 그제야 한시름이 놓여 목운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후사를 낳는 것은 여인에게 있어 인생의 중대사였다. 만약 운요가 정말 아이를 낳지 못한다면 반평생은 의지할 곳 없이 외로울 게 뻔했다.
목운요는 미소를 지으며 소청의 손에 머리를 기댔다. 온몸에서 풍기던 서늘한 기운은 물러가고 따스한 기운만 남아 있었다.
* * *
소문원이 어두운 얼굴로 직접 문 앞까지 심병괴를 배웅하니 그새 소문이 불어나 서릉 전체가 큰 파문으로 들썩였다.
소문인즉, 소씨 가문이 시위들까지 동원해서 서릉에 온 지 얼마 안 된 목운요를 혼쭐내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순천부에 입이 가벼운 사람이 있어, 목운요가 곤장을 맞고 몸이 상해서 앞으로 후사를 낳기 힘들 거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
거기에 소씨 가문이 곤장을 친 왕 노파와 유 노파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 백성들 사이에서는 기정사실화되었다.
소씨 가문의 이야기는 서릉 사람들의 안줏거리가 되었고 다들 최신 소식을 듣고 싶어 성화였다. 소씨 가문이 여론을 제압하려 해도 영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