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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206화 (206/442)

206화 노부인의 선택

그녀는 몇 번 입을 열었다 닫더니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맥빠진 목소리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네 말이 거짓일지도 모르지…….”

여전히 자신을 믿지 못하는 대부인의 반응에 목운요는 더욱 상처받은 얼굴을 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렸군요. 예전에 큰외숙모께 선물을 가져다드릴 때, 주 마마도 현장에 있었습니다. 제가 보낸 물건은 모두 그분이 직접 상자에 넣은 것이죠. 주 마마는 소씨 가문 하인 중에서도 가장 오래 부인 곁에 있던 분입니다. 그런 주 마마가 저를 도와 큰외숙모를 모함했을까요?”

대부인은 온 힘을 다해 자신은 돈을 훔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말에는 이미 신빙성이 없었다.

“나리, 심 대인. 부디 저를 믿어 주세요. 저는 정말 이십만 냥을 훔치지 않았습니다. 은표가 왜 곳간의 상자 안에 들어 있었는지 저는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

목운요는 심병괴의 손에 들린 은표와, 누명을 벗기 위해 발버둥 치는 대부인을 바라봤다. 그녀의 발버둥은 물론 헛수고였다.

목운요는 눈에 그렁그렁한 눈물을 매달았다.

“큰외숙모께서 필요하시다면 더 큰 돈이라도 어떻게든 마련해 드렸을 겁니다. 그깟 돈 몇 푼 때문에 도리를 거스르는 행동을 하고, 저희를 배신하시다니요……. 이십만 냥이 그럴 정도로 가치 있는 돈인가요?”

목석같은 심병괴도 목운요의 말을 들으니 저절로 눈과 코가 시려 왔다. 심병괴는 목운요가 정말로 심사가 고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대부인을 진짜 가족이라 생각했는데, 대부인은 그깟 돈 때문에 목운요를 죽이려고 하다니……!

심병괴는 안타까운 얼굴을 한 채 은표를 목운요에게 건넸다

“잘 간수하시오. 적은 돈이 아니올시다.”

목운요는 고개를 끄덕이며 금교에게 은표를 챙기라고 눈짓했다. 그에 금교는 받아 든 은표를 한 장씩 검사하기 시작했다.

그 행동을 본 목운요는 급하게 입을 열어 금교를 질책했다.

“세어 볼 필요 없어요. 챙겨 두기만 해요.”

“하오나 소저, 여기엔 십이만 냥뿐입니다…….”

이에 금란이 꼼꼼하게 은표를 세어 보기 시작했다.

“금교 말대로 십이만 냥뿐입니다! 팔만 냥이 모자랍니다!”

목운요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대부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큰외숙모, 제게 다시 팔만 냥을 돌려주세요.”

대부인은 피를 토해 내듯이 소리쳤다.

“난 그딴 돈에 손댄 적도 없어! 이 모든 건 목운요 네가 나를 모함하려는 수작이지 않느냐!”

목운요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침묵했다. 그 모습을 본 심병괴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소 대인, 팔만 냥은 절대로 적은 돈이 아닙니다. 이번 일이 황상의 귀에 들어간다면 대인께 좋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사라진 은표를 목 소저에게 돌려주십시오.”

안 그래도 시퍼렇게 질려 있었던 소문원의 안색은 심병괴의 말을 듣고 더욱 꼴사납게 변했다.

“그건…….”

목운요는 상처받은 기색이 역력한 채 살짝 무릎을 굽히며 예를 갖췄다.

“저와 어머니는 지금 당장 짐을 챙겨 소씨 가문을 떠나겠습니다. 팔만 냥은 별것 아니니 돌려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외조카가 두 분께 효도하고자 드리는 돈이라 생각해 주세요.”

“운요야!”

그때, 정원 문어귀에서 돌연 노부인 손 씨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초췌한 모습의 노부인은 온 마마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 들어왔다. 등허리가 굽은 것이 마치 꼽추 같았다. 얼굴에는 비통함이 가득했다.

“너희 둘은 소씨 가문을 떠나선 안 된다. 가문에 남아서 이 할미 옆을 지켜야지. 내가 요 며칠 몸이 좋지 않아 가문의 일을 신경 쓰지 못했다. 그사이에 이렇게 큰 소동이 일어났을 줄은 상상도 못 했어. 맹 씨, 아주 어리석구나!”

심병괴는 두 손을 모아 노부인에게 예를 갖췄다.

“노부인을 뵙습니다.”

“집안 망신은 남에게 들켜선 안 되는 것인데…… 심 대인에게 부끄럽습니다. 이 늙은이가 며느리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서 어리석은 모습을 보였군요.”

대부인의 동공이 커졌다. 그녀는 노부인이 자신을 저버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머님…….”

노부인은 언성을 높이며 대부인의 말을 잘랐다.

“그동안 나는 너를 특별히 믿고 아꼈다. 그런데 어찌 이렇게 도량이 좁은 짓을 저지른 것이냐! 감히 내 딸과 외손녀를 시기하고 괴롭혀? 너도 누군가의 어미가 아니더냐! 운요를 괴롭힐 때 청오와 우의 생각이 나지는 않았느냐? 네가 저지른 악행이 두 아이에게 돌아가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이냐?”

대부인은 입술만 달싹였다. 노부인이 말로 경고했다는 것을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누군가는 나서서 이 사건을 반드시 책임져야 했다. 자신이 이 죄를 짊어지지 않는다면, 그 오명은 고스란히 소씨 가문으로 돌아가리라.

노부인은 대부인이 제 뜻을 알아차린 것을 확인한 후, 손을 뻗어 소청과 목운요를 제 쪽으로 잡아당겼다.

“이번 일은 내가 직접 진상을 밝히도록 할 테니, 너희는 마음 놓고 제월각에서 지내라. 앞으로 너희를 괴롭힐 사람은 없을 거다.”

목운요는 그래도 불안한지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

“외할머니, 저와 어머니는 그냥 소씨 가문을 떠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넌 내 외손녀다. 소씨 가문 사람이 소씨 가문을 두고 어딜 간다는 것이냐? 너희가 다시 가문을 떠나서 살겠다는 건 이 늙은이더러 죽으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어.”

그에 목운요는 쉽사리 소씨 가문을 떠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노부인은 목운요의 외조모이기에 효를 다해야 했기 때문이다. 만약 어머니와 자신이 소씨 가문을 떠난다면 불효를 저질렀다는 평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목운요는 소청의 품으로 뛰어들어 어깨를 들썩였다. 흐느끼는 모양새에서 서러움이 엿보였다.

노부인은 급히 목운요의 어깨를 토닥였다.

“운요야, 내가 반드시 네 억울함을 풀어 주마. 문원, 이번 일은 네 부인이 저지른 짓이니 어찌해야 할지 잘 알고 있겠지?”

소문원은 대부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확실히 노부인의 선택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어머니, 이번엔 제 부인이 도가 지나쳤습니다. 사라진 은자는 채워 놓겠습니다. 그리고 맹 씨는…… 어머니가 벌하십시오.”

대부인은 맥이 빠졌다. 남편이 수십 년간 함께해 온 부부의 정을 등질 줄은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나리…….”

그때, 소청오가 다소 불편해 보이는 걸음으로 빠르게 걸어 들어왔다. 그는 불규칙한 숨을 내뱉으며 사람들의 앞까지 왔다.

“보화사 화재 사건의 범인을 찾았습니다. 서릉에서 유명한 건달 무리가 범인이었습니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악행을 일삼는 자들이더군요. 얼마 전 큰 노름빚을 져서 악한 마음을 품고 보화사에 있는 사람을 납치해 재물을 강탈하려 했던 겁니다. 보화사에 공주 전하가 계시던 터라 경비가 삼엄하여 강도질을 하지 못해 곁채에 불을 지른 것이겠죠.”

심병괴는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물어봤다.

“증거가 있습니까?”

“산에서 내려올 때 날이 어둡고 길이 미끄러웠는지, 놈들이 절벽 아래로 떨어져 목숨을 잃었습니다. 몸을 뒤지자 몇몇 무기와 방화 물품이 나왔습니다. 진왕부에 모든 증거가 있습니다.”

대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보화사 화재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으니 소씨 가문을 향한 백성들의 의심을 줄이는 것은 가능한 일일지도 몰랐다.

한편 목운요의 마음은 무겁게 내려앉았다.

‘진왕도 결국 수를 썼구나. 하긴, 소문원은 진왕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야. 오른팔이 부러지게 내버려 두진 않겠지. 그럼 보화사에서 육냥을 습격한 두 명의 내가권 고수도 진왕과 관계가 있는 걸까?’

그때, 대부인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머님, 나리. 저는 전력을 다해 오랫동안 소씨 집안을 관리했습니다. 하인들에게도 언제나 너그럽게 대했죠. 그런 제가 소청과 운요에게 모질게 굴었겠습니까? 오늘 일어난 모든 일의 화살이 저를 겨냥하고 있지만, 심 대인께서 진상을 밝혀 주시리라 믿습니다.”

정원의 분위기는 삽시간에 살얼음판으로 변했다. 심병괴가 침묵을 깼다.

“소 대인,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었으니 제대로 된 조사를 부탁합니다. 문제를 상세히 살펴보기도 전에 결론을 내릴 순 없지 않겠습니까?”

비록 답을 알고 있는 사건이지만, 사건을 해결할 때는 언제나 증거가 필요한 법이었다.

소문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재빨리 가문을 되살릴 방법을 생각했다. 심병괴는 강직하고 올곧은 성격이라 힘 있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런 그에게 부탁하는 것은 심히 어려운 일이니, 가문을 구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을 찾아 마음을 홀려야 했다.

“심 대인이 고생이 많으십니다. 오늘 일어난 일은 조사를 도와주셔야 할 것 같군요.”

심병괴는 낯빛 하나 바뀌지 않고 대답했다.

“저는 소 대인보다 품계가 낮은 사람입니다. 제가 이번 사건을 조사하려면 우선 황상께 아뢰고, 황상의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소문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소씨 가문이 이런저런 사건들로 꼴이 말이 아니군요. 우선 심 대인을 배웅해 드리겠습니다.”

일이 이렇게까지 커져 버렸으니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었다. 어쩌면 일 잘하는 어사들이 이미 소씨 가문과 관련된 상주서를 작성 중일지도 모르니 하루빨리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

심병괴는 두세 걸음 정도 걷다가 돌연 걸음을 멈추어 서더니 소청과 목운요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만약 제가 사건 조사를 맡게 된다면 소 부인과 목 소저의 많은 협조가 필요할 것 같군요. 목 소저의 시녀들은 모두 중요한 증인이 될 테니 시녀들을 잘 단속하십시오.”

목운요는 감동한 눈빛으로 심병괴에게 인사했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시녀들을 잘 돌보아 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게 각별히 주의하겠습니다.”

심병괴는 운춘, 금란 등의 시녀들을 증인이라고 콕 집어 말했다. 이제 그들을 해치려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사건의 범인이 증인을 없애는 격이었다.

심병괴의 말 덕분에 목운요는 얼마든지 금란과 운춘 등의 시녀들을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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