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심병괴의 방문
“참, 어머니께서 계속 전하를 걱정하셨습니다. 내일 보화사를 떠나야 한다고 말씀드리니 그 전에 꼭 사야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고집을 피우시던데……. 혹시 시간이 되시는지요?”
“물론이다.”
“그럼 내일 아침 일찍 인사를 드리러 오겠습니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목운요가 떠나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월왕은 결국 우항을 불렀다.
“소청 부인께서 혹시 내 신분을 알아챈 건 아니겠지?”
우항은 머리를 긁적였다.
“소청 부인께서 전하의 신분을 알면 더욱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월왕의 신분이 지극히 높으니, 함께 지내면 목운요가 소씨 가문을 상대하기에 더욱 용이할 것이 분명했다.
그에 월왕은 차가운 눈으로 우항을 바라보며 저놈을 그냥 월서로 돌려보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진 총관에게 서릉으로 오라는 서신을 보내라. 월왕부를 제대로 관리할 사람이 필요해.”
“네.”
* * *
서릉의 소씨 가문.
소문원은 순천부의 심병괴가 집을 방문했다는 소식을 듣고 황급히 하인을 시켜 그를 화청(花厅)으로 모시게 했다.
사실 품계에 따르면 심병괴는 소문원보다 직급이 한 단계 낮았다. 하지만 순천부는 서릉의 모든 일을 총괄하고 감독했기 때문에, 그의 지위는 지방 장관과 다를 바가 없었다. 게다가 심병괴가 워낙 강직한 성격이라 쉽게 건드릴 자가 없었다.
소문원이 안으로 들어서자 심병괴가 일어나서 인사를 올렸다.
“소 대인을 뵙습니다.”
“심 대인, 예의는 거두어 주십시오. 오늘은 어떤 연유로 방문하신 겁니까?”
“오늘 접수된 사건이 하나 있는데 소 대인의 집안과 관련이 있어서 이에 관해 여쭙고자 이렇게 왔습니다. 무례한 점이 있더라도 소 대인께서 널리 이해해 주십시오.”
“저희 가문과 관련된 사건이 있다고요?”
소문원은 재빨리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심 대인께서 친히 방문하실 정도라니, 대체 어떤 사건입니까?”
“왕주라는 자가 순천부에 신고하기를, 누군가가 자신의 어머니를 죽였을 뿐만 아니라 돈을 갈취하고 목숨을 위협했답니다.”
“저는 그런 자를 알지 못합니다. 그것이 소씨 가문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입니까?”
“그의 어머니는 소씨 가문의 하인이었습니다. 얼마 전 곤장을 맞고 소씨 가문에서 쫓겨난 뒤 급사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소문원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심 대인께서 말씀하시니 이제 생각이 나는군요. 네, 소란이 분명 있었지요. 왕주라는 자가 집 앞까지 찾아와서는 어머니의 장례를 치를 돈이 없다고 통곡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자에게 은자 백 냥을 주었지요. 그때는 화색이 돌아 돈을 챙겨 가더니, 이제 와서 우리 가문을 신고했다고요? 정말 탐욕이 끝이 없군요!”
“일백 냥이면 적은 돈이 아니지요. 일반 백성이라면 장례 몇십 번은 치르고도 남을 돈인데, 왜 그렇게 돈을 많이 주신 겁니까?”
“그때 제가 집에 있진 않았지만, 나중에 얘기를 들어 보니 조카딸이 나서서 해결했다는군요. 두 노파에게 곤장을 치도록 명하고 집에서 내쫓은 것도 그 아이였습니다. 두 노파가 갑자기 죽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안 좋아져서 후하게 백 냥씩 준 것이겠지요.”
“하나 몇몇 백성에게 물어보니, 당시 목 소저는 일단 의원을 불러 두 노파의 구체적인 사인을 조사하려 했으나 대인의 부인께서 그것을 막았다고 하던데요? 그래서 목 소저가 은자 이백 냥을 두 집에 나누어 준 거라고 했습니다.”
“소씨 가문 대문 앞은 사람들이 함부로 지나다니지 못하게 해 놓았습니다. 그러니 백성들은 멀리서 목격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이번 일도 그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심 대인께서 순천부를 오래 관장해 오셨으니 잘 아시겠지요. 길에서 전해 들은 말은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소문원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차분한 표정이었다.
“물론 그렇긴 하지요. 우선 제가 물건 하나를 가져왔는데 소 대인께서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심병괴는 옷소매에서 곧장 작은 팻말 하나를 꺼냈는데 그 위에는 ‘소가(苏家)’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소문원은 의문스러운 눈빛이었다.
“이건 저희 하인들이 쓰는 목패(木牌)입니다. 평소 밖에 나가 심부름할 일이 있는 자에게 이걸 주고, 집에 돌아오면 반납하게 합니다. 최근에 목패가 분실되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습니다만.”
“잃어버린 목패가 없는 게 확실합니까?”
소문원이 미간에 힘을 주었다.
“이따가 부인에게 한번 여쭤보지요. 만약 잃어버린 게 맞으면 꼭 심 대인께 보고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더는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소 대인께서도 뭔가 또 생각나는 게 있으시면 바로 말씀해 주십시오.”
“반드시 그러지요.”
사실 심병괴가 오늘 방문한 것은 정말로 소씨 가문이 의심스러워서가 아니었다. 애초에 왕주라는 자가 무뢰한이기 때문에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있는지 좀 더 의논해 볼 필요가 있었다.
머지않아 심병괴의 이례적인 방문에 대한 소문이 온 서릉에 퍼졌다.
많은 사람이 너 나 할 것 없이 소씨 가문 앞에 와서 그 사건에 관해 떠들기 시작했다.
당시 왕 노파와 유 노파의 아들이 각각 은자 일백 냥씩을 가지고 떠나자, 백성들은 그렇게 큰돈을 서슴없이 뿌린 소씨 가문의 대범함에 대해 혀를 내두르며 수군거렸다.
사람들이 당시의 장면을 아주 생생하게 묘사했다.
“은표를 건네준 사람이 바로 묵옥이라는 시녀였잖소? 소씨 가문에서 노부인의 시중을 들던 시녀지요. 안 그랬으면 어찌 자기 마음대로 은자 이백 냥을 건넸겠소?”
“묵옥이란 시녀가 은자를 줬다고요? 소씨 가문의 조카딸인 목 소저가 주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목 소저가 뭐라고 했는데…… 의원을 불러서 왕 노파의 사인을 정확히 알아보자고 했는데, 대부인께서 직접 제지하셨지요.”
“왜 제지한 겁니까? 소씨 가문이 아무리 무서울 것 없다고 해도 하인이 죽었는데 돈만 건네다니. 뭔가 찝찝한 게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안 그래도 심 대인께서 소씨 가문을 찾아가신 걸 보면…….”
말 한마디라도 백 명의 입을 거치면 완전히 변하는 법이었다. 게다가 목운요가 사람을 시켜 암암리에 나쁜 소문을 유도하니 서릉에는 점점 다음과 같은 낭설이 퍼졌다.
‘소씨 가문이 왕 노파와 유 노파를 죽인 후, 두 노파의 식솔들에게 은자 일백 냥씩을 줘서 입을 막았다. 그런데 왕 노파의 아들 왕주가 욕심을 내서 돈을 더 갈취하려고 하자 소씨 가문은 사람을 시켜 그를 위협했다. 이에 왕주는 목숨을 부지하고자 어쩔 수 없이 순천부에 폭로한 것이다.’
소식을 전해 들은 소문원은 얼굴빛이 새파래지더니 황급히 대부인 맹 씨를 찾아갔다.
“왕 노파와 유 노파의 식솔들이 소란을 벌였을 때 왜 은자를 내준 거요?”
대부인 맹 씨는 목운요를 어떻게 처벌하면 좋을지 궁리하느라 반응이 늦었다.
“왜 그리 화가 나셨습니까?”
“지금 서릉에 어떤 소문이 퍼지고 있는지 아시오? 소씨 가문에서 사람을 죽여 놓고 입을 막느라 은자를 주었다고 소문이 파다하오. 이대로 가다가는 황상께서도 이 일을 알게 되실 텐데, 그럼 우리 가문의 체면이 뭐가 되겠소?”
대부인은 깜짝 놀랐다.
“그땐 일이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졌습니다. 게다가 누가 밖에서 우의를 헐뜯는 말을 하고 다녀서 전 그 일을 바로잡느라 목운요에게 일 처리를 넘겨야 했고요…….”
“일을 넘기다니? 어째서 그 아이 혼자 처리하도록 한 거요?”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얼떨결에 들은 말이라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이해가 안 됩니다.”
“됐소. 너무 허무맹랑해서 심병괴가 조사해도 무섭지가 않구려. 당신은 우리 집안에 분실된 목패가 있는지나 한번 조사해 주시오.”
그에 대부인이 하인에게 분부를 내리니 잃어버린 목패는 없다는 보고가 돌아왔다.
대부인은 한시름 놓으며 말했다.
“우리 가문의 이름에 먹칠을 하려고 누군가 목패를 위조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소문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우선 집안사람들을 아래위로 철저히 조사하시오. 이상한 말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오. 난 지금 순천부로 가 보겠소.”
목패에 아무 문제가 없으니 소씨 가문은 혐의를 벗을 것이 분명했다.
대부인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주름진 미간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이 사건이 그리 간단히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던 탓이다.
그때, 별안간 제 마마가 와서 고했다.
“부인, 문 앞에 한 여자가 찾아왔습니다. 목 소저께 전해 줄 것이 있다고 합니다.”
“정확히 뭘 전하려는 건지 물어보도록 해요.”
“하운방과 불선루에서 벌어들인 은자라고 했습니다.”
순간 대부인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은자를? 얼마나요?”
“그것은……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제 마마의 얼굴은 새하얬다. 그녀는 보화사에서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죄로 소우의에게 몇 번이나 벌을 받았다. 하지만 티를 내면 쫓겨날까 두려워, 힘들어도 쉬지 못하고 계속 대부인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대부인이 위아래로 눈을 굴리더니 냉소를 흘렸다.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요. 내가 직접 만나야겠어요.”
“네.”
* * *
“대부인을 뵙습니다.”
운춘이 문 안으로 들어와 어색하게 인사를 올렸다. 그녀는 사람을 매우 편안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지극히 평범한 여인 같았다.
운춘을 본 대부인은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일개 하인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운요에게 은자를 전해 주러 왔다고 들었소.”
“네, 그렇습니다.”
“운요는 보화사에 기도를 드리러 가서 지금은 집에 없으니, 일단 내게 주시오.”
운춘은 머뭇거렸다.
“그건 좀 부적절하지 않을까요?”
“내가 이 돈을 훔치기라도 할까 걱정하는 거요?”
대부인이 차갑게 말했다. 이에 운춘은 서둘러 예를 갖추었다.
“제가 어찌 감히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소저께서 집에 안 계시다면 부인께 은자를 맡기고 가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