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176화 (176/442)

176화 장공주와의 첫 만남

“조 부인을 뵙습니다.”

목운요는 살며시 웃으며 절을 올렸다.

“예는 거둬 주세요. 강산의 좋은 기를 받고 자라면 뛰어난 인재가 된다더니, 과연 비범한 소저네요.”

목운요는 조 부인의 뒤에 있는 장완을 향해 미소를 보냈다.

“장 소저야말로 시서(詩書)에 대한 재능이 대단하다면서요? 저는 장 소저의 발끝에만 미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장완은 목운요가 자신에게 칭찬을 건넬 줄은 몰라서, 잠깐 얼떨떨해하다가 대답했다.

“목 소저도 참. 아버지께선 저보고 책밖에 모르는 바보라던데요.”

“장 소저 성격이 워낙 온화하셔서 저도 모르게 뵙자마자 너무 친근하게 군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조 부인께 우스운 모습을 보였네요.”

목운요는 조 부인을 보자 마음에 생각이 많아졌다.

대학사 장중의 본처는 외동딸 장완을 남겨 두고 세상을 떠났다. 이후 장중은 모르는 이와 재혼한다면 후처가 장완에게 해코지를 할까 봐 본처의 사촌 동생과 재혼했다.

풍문에 의하면 조 부인은 장완을 친딸처럼 여겨서 엄한 규율로 다스린다고 했다. 훗날 소청오와 파혼되자 장완은 자결하라는 강요를 받았는데, 거기에는 가혹한 예법의 탓이 컸다.

목운요는 저번에 만난 장완에게 매우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몇 마디 언질로 사람 목숨을 구할 수만 있다면야.’

온화한 성정의 장완은 뜻밖의 말을 듣고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목 소저는 서릉에 처음 오셨지만, 앞으로 자주 만나면 좋겠어요.”

소씨 가문에 시집을 간다면 자연히 목운요와 더 자주 만나게 될 거란 생각에 장완의 뺨이 붉어졌다.

목운요는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더니 눈빛이 깊어졌다.

‘소청오는 서릉에서 유명한 인재이니 장완이 연모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 하지만 고작 그런 감정 때문에 훗날 목숨을 잃을 가치는 없어.’

잠깐 대화를 나누는 사이, 사람들이 거의 다 모였다. 이번 연회에는 특히 많은 사람이 초대되어 연회장이 무척 소란스러워야 정상이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무척 고요해서 이따금 소곤대는 소리도 크게 울렸다.

목운요는 자리에 꼿꼿이 앉아 소우의를 쳐다봤다.

대부인과 소우의의 자리는 비교적 앞쪽에 배정되어 있었다. 소우의는 화려한 바탕색에 꽃과 구름이 은은하게 수놓인 비단 치마를 입어, 선녀 같은 자태를 자아냈다.

그때, 밖에서 환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상과 장공주께서 도착하셨습니다!”

“황상을 뵙습니다. 장공주를 뵙습니다.”

목운요도 사람들과 함께 절을 올렸다. 목운요의 시선이 장공주의 치마에 닿았다. 치마에 수놓아진 봉황이 마치 살아 있는 듯 생동감이 넘쳐서, 한눈에 봐도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모두 일어나시오.”

장공주가 있는 탓인지 황제의 표정이 무척 밝아 보였다. 그는 평소에 보기 드문 미소를 띠고 입을 열었다.

“오늘은 즐거운 명절인 데다가 마침 누님께서 서릉에 오신 덕분에 짐의 기분이 무척 좋소. 그러니 오늘만큼은 지나친 예절을 거두고 마음껏 즐겨 주시오.”

“황상의 은혜에 감읍할 따름입니다.”

절을 올린 뒤, 목운요는 고개를 들고 장공주를 바라보았다. 장공주에 대해선 전해 들은 바가 많았다. 황실의 여인 중 장공주를 모범으로 삼지 않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장공주의 단정하고 우아한 외모에는 옅은 세월의 흔적이 보였다. 두 눈의 빛은 온화하고 평온해 마치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장공주가 담담하게 아래를 내려다보자 연회장의 소녀들이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소녀들은 모두 단아하게 보이려고 애쓰고 있었고, 웃는 표정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계산해 냈다.

황제는 장공주가 있는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누님, 보십시오. 오늘 소저들이 많이 왔습니다. 혹시 맘에 드는 아이가 있습니까?”

장공주는 가볍게 웃었다.

“이렇게 크게 일을 벌일 걸 알았다면 절대 응하지 않았을 겁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한눈에 찾기란 어렵지요. 깐깐히 모든 방면을 따져 봐야 합니다.”

“그럼요. 누님께서 궁에 오래 머무실 수만 있다면 저야 기쁘지요. 찬찬히 살펴보십시오.”

장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릉의 거리를 지나다 보니 온갖 소식이 들리더군요. 하운방을 열어 자수법을 전수한 소저도 서릉에 왔다면서요?”

“맞습니다. 저도 며칠 전에 만났는데, 아주 흥미로운 아이더군요. 게다가 처음 그 소저를 봤을 때 누님의 어린 시절과 비슷한 분위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제는 말을 마친 후 대전을 훑어보았다.

“누님께서 한번 살펴보실 수 있도록 그 아이를 이리로 부를까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우리가 괜한 말이라도 하면 서릉에서 지내기 힘들어질 테니까요. 일단 연회를 시작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서립 총관, 연회를 시작하시오.”

목운요를 지금 불러내는 건 확실히 바람직하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후 소저들이 재능을 뽐낼 때 누님 앞으로 부르는 정도는 크게 주의를 끌지 않을 것이다.

서립은 황급히 허리를 숙이고 절을 올린 뒤, 두 발 나아가서 크게 소리쳤다.

“황궁 중추절 연회를 시작하라!”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풍악 연주가 시작되었다. 곧이어 궁녀들이 각종 음식을 줄지어 들고 와서 식탁에 음식을 놓고 신속히 물러났다.

한편 목운요는 궁궐 연회에 괜히 나설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장공주의 신분은 너무나 존귀해서 그 앞에서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그러니 오늘 연회에서 마음이 가장 편안한 사람은 다름 아닌 목운요였다.

앞에서는 무희가 경쾌하게 춤을 추었고, 귓가에는 웅장한 풍악 소리가 들렸다. 식탁에는 각종 산해진미까지 차려지니 기분이 유달리 좋았다. 다만 어머니와 함께하지 못해 무척 아쉬울 뿐이었다.

가무가 한차례 끝나자 황자들이 황제께 명절 축하 선물을 바쳤다.

목운요는 황자와 공주들이 앉은 자리를 쳐다보았다.

황제의 자식은 총 육남, 육녀로 부족함이 없었다.

그중 대황자의 이름은 영군릉(宁君崚)으로, 릉왕(崚王)이었다. 릉왕의 어머니는 승상 이경주의 딸인 이 귀비였다.

이씨 가문의 권력이 막강한 데다, 장자였기 때문에 조정의 지지 세력이 컸다. 다만 저번 소금세 사건이 폭로되어 이씨 가문과 대황자는 황제 앞에서 몸을 사리고 있었다.

이황자는 이름은 영군유(宁君瑜)로, 유왕(瑜王)이었다. 유왕의 어머니는 위국후 제여년(齐如年)의 딸 제귀비로, 성격이 시원시원했다. 유왕은 그런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성격이 호방하고 자유로웠다.

그는 전장의 군 생활을 좋아하여 몇 차례 공적을 쌓기도 했다. 실제로 군에서 명망도 높은 편이었다. 다만 궁 안의 구속을 싫어했다. 권력을 좇는 마음이 없었기에 외려 황제의 마음을 얻은 인물이었다.

삼황자는 영군진(宁君晋), 진왕(晋王)이었다. 진왕의 어머니는 선황을 수발하던 시녀로, 비록 권력이 센 친정 가문은 없었지만 황제의 총애를 받아 궁 안의 지지 세력은 가장 컸다.

백성들 사이에서의 평판도 좋았고, 성품도 온유했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장공주를 따라다니며 교양을 쌓아 황제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소금세 사건으로 대황자가 냉대받게 되었으니 지금이 한 발짝 앞서갈 기회였다.

사황자 영군월은…….

목운요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삼황자의 밑에 앉은 사람은 아직 미성년인 오황자와 육황자였다. 사황자 월왕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월왕이 황상의 총애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중추절 연회는 모두가 모이는 자리였다. 월왕이 오지 않더라도 대전 위에 자리는 남겨 놓아야 했다.

그때, 대황자가 일어나 축하 선물을 전했다. 그가 준비한 선물은 사람 키만큼 커다란 비취옥 조각이었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을 많이 썼구나.”

대황자는 흥분한 기색으로 황제 앞에 가서 공손하게 절을 했다.

“부황께서 좋아하시면 그걸로 되었습니다.”

“큰형님이 이렇게 진귀한 선물을 준비했으니 제 선물은 하나도 돋보이지 않겠군요.”

이황자 유왕이 일어나자 하인이 병풍 하나를 들고 왔다.

“부황께서 요즘 자수 병풍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 소자가 아랫사람에게 특별히 자수를 부탁했습니다.”

그에 대황자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부황께서 좋아하시는 자수는 하운방에서 만든 것이다. 그곳의 자수 솜씨를 따라올 곳이 없는데, 이 병풍은 어디서 맡긴 것이냐?”

“큰형님 말씀이 틀렸습니다. 하운방의 병풍도 좋지만, 그 안엔 제 효심이 없지요. 그러니 부황께선 제가 특별히 제작한 이 병풍을 더 좋아하실 겁니다.”

이황자는 그렇게 말하면서 병풍을 감싼 천을 벗겼다. 병풍에는 달리는 말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어떻습니까? 아주 늠름하지 않습니까?”

“병풍에 부황을 향한 효심이 들어 있다니, 그럼 아우 네가 직접 수놓은 것이냐?”

“그럼 저 옥은 큰형님이 직접 조각하셨습니까?”

이황자는 평소에도 말씨가 직설적이었다.

“부황, 큰형님 좀 보십시오. 제 선물인데 왜 형님께서 이것저것 따지시는 겁니까? 게다가 저는 기념으로 병풍에 직접 글도 썼습니다.”

황제의 미간이 살짝 꿈틀거렸다. 눈앞에서 다투는 황자들이 못마땅한 듯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장공주가 가볍게 웃었다.

“군유가 서예를 열심히 연습하더니, 이제 많이 발전했구나.”

순간 황제의 표정이 편안해지더니 입가에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누님, 그런 말 마십시오.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는 글자라도 적으면 다행이지요.”

“고모님, 저는 글만 쓰려고 하면 머리가 아프다니까요? 그러고 보니 고모께서도 어렸을 적 무예를 좋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오늘 제가 무예를 시연해 보일 테니 고모께서 한두 가지 조언을 해 주심이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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