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163화 (163/442)

163화 황상의 치하를 받다

노부인은 손에 든 염주를 꽉 움켜쥐었다. 겉으로나마 웃던 얼굴이 굳어졌다.

“황상께서 너를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구나.”

목운요는 민망하다는 듯 살며시 고개를 숙였다.

노부인은 짜증이 났지만 오히려 아주 기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서 향로와 탁자를 준비하여라. 가족들에게도 알려서 모두 무릎을 꿇고 황상의 치하를 받아야지.”

“네.”

* * *

그 시각, 대부인은 목운요가 눈시울이 붉어진 채 궁 밖을 나왔다는 제 마마의 전언을 전해 들었다. 순간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경릉성에서 이름 좀 날렸다고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나 보지? 여기선 그렇게 나대면 웃음거리밖에 안 되는데, 스스로 똑똑한 줄 알기는!”

옆에 앉아 있던 소우의의 눈에도 유쾌한 빛이 스쳤다.

하지만 두 사람의 웃음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황상께서 목운요에게 상을 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대부인은 별안간 정신이 멍해져서, 손가락으로 의자를 꽈악 붙잡았다.

“왜, 왜 상을 내리시는 거지?”

소우의의 미소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소우의는 어머니에게 다가가 팔을 부축했다.

“어머니, 정말 황상께서 목운요를 좋게 보신 걸까요?”

그에 대부인은 천천히 옷매무새를 다듬더니 다시 미소를 지었다.

“우리도 어서 운요를 축하해 주러 가자꾸나.”

“어머니?”

달갑지 않은 그 표정에 대부인이 나무라는 눈으로 소우의를 쳐다보았다.

“네 사촌 동생이 상을 받았다는데 당연히 기뻐해야지. 그러니 밝게 웃어야 한다, 알았지?”

소우의는 우물쭈물하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어머니.”

* * *

빠르게 향로와 탁자가 설치되었다. 일찍이 도착해 있던 소청은, 노부인과 함께 목운요가 걸어오자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목운요는 소청의 옆으로 다가가서 그녀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전 괜찮아요.”

목운요의 표정이 밝자 소청은 그제야 졸아들던 마음이 다소 놓였다.

“그래, 다행이다…….”

“황명이오! 목씨 집안의 딸 목운요는 선한 마음씨로 덕을 쌓고 베푸니, 옥여의(玉如意, 옥으로 만든 장식) 하나와 비단 열 필을 하사하고…….”

하사하는 상이 거창하지 않아 성지(圣旨, 임금의 명령서)가 그리 길진 않았다. 하지만 대부인은 그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체 황상께선 뭘 보고 목운요를 저리 높이 평가하시는 거지?’

성지를 모두 읽은 환관이 목운요에게 앞으로 나오라고 눈짓했다.

“목 소저, 성지를 받으시지요.”

목운요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성지를 받아 든 뒤,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렸다.

“소인 목운요, 황상의 성은에 감복합니다.”

환관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옆에 있던 사부(吏部) 상서 소문원을 바라보았다.

“소 대인, 오늘 성지를 전하게 되어 대인께 예를 올리기엔 적당치 않으니 부디 양해 바랍니다.”

“무슨 그런 말씀을. 여봐라, 공공께서 가시니 잘 배웅해 드려라.”

황명을 전하러 온 환관이 떠나자 소문원이 성지를 든 목운요 앞으로 다가왔다.

“요 며칠간 조정에 일이 바빠 우리 조카를 만나지 못했구나. 내 잘못이 크다. 오늘은 네가 황상의 치하를 받았으니 응당 집에서 잔치를 열어야겠다. 떠들썩하게 즐겨야 하지 않겠느냐? 너와 네 모친이 소씨 가문으로 돌아온 걸 축하할 겸해서 말이다.”

대부인이 나아가 말했다.

“일찍이 두 사람을 위한 연회를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긴 여정으로 몸이 피로할까 걱정되어 일부러 서두르지는 않았지요. 오늘 예상치 못한 큰 경사가 있으니 필히 성대하게 연회를 벌여야겠습니다. 초대할 손님 명단은 모두 계획해 두었습니다. 소청 동생과 상의한 후 종이에 적어 보내겠습니다.”

소문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언제나 세심하게 일을 잘 처리하는구려. 연회는 완벽해야 하니 잘 준비해 주시오. 그보다 운요야, 여기 와서 적응하기 힘든 부분은 없느냐?”

목운요는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서릉이 다르긴 다르더군요. 이곳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그동안 참 많이 배웠답니다.”

웃고 있던 대부인의 얼굴이 살짝 경직되었다. 목운요의 말에 담긴 비꼬는 어조를 알아차려서였다.

“아직 남은 날이 많으니 천천히 적응할 수 있을 거다.”

“네, 아직 큰외숙모의 가르침이 더 필요하답니다.”

대부인은 목운요의 표정을 훑어보았다. 따뜻한 온기가 전혀 없어서 보는 내내 불편해지는 미소였다.

“우린 한 가족 아니니? 서로 돕는 것이 당연하지.”

노부인은 담소로 포장된 은근한 말싸움이 계속되자 미간을 찌푸리며 대화를 끊었다.

“연회는 대부인이 맡아 진행하도록 하고, 소청과 운요, 너희는 특별히 초대하고 싶은 손님이 있거든 부르도록 하여라.”

그때, 급히 다가온 하인이 보고를 올렸다.

“노부인과 어르신께 아룁니다. 태상사경(太常寺卿) 맹 대인과 맹 소저가, 목 소저를 뵙길 청하십니다.”

소문원은 이를 듣고 얼떨떨해했다.

“운요를?”

돌연 대부인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오라버니께서 언연이와 함께 목운요를 보러 오시다니? 혹 내가 모르는 일이 또 있는 건가?’

반면 목운요는 얼굴에 엷은 웃음을 띤 채 조용히 서 있었다. 그들의 방문은 예상한 바였다.

오늘날 맹씨 가문의 영광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었다. 맹 태사는 머리가 아주 비상했다. 아마 목운요가 궁을 나서자마자 궁 안의 소식을 전해 듣고, 서둘러 맹우를 보낸 것이 분명했다.

소문원은 목운요를 흘긋 쳐다보더니 하인에게 분부했다.

“맹 대인과 맹 소저께 들어오시라 전하여라.”

그들이 무슨 목적으로 왔든 계속 문밖에 세워 둘 순 없었다.

한편 노부인의 둘째 며느리 척 씨는 그만 물러나려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소식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지금 대부인의 안색을 보니 무언가 실책을 범한 것이 틀림없었다.

‘일의 규모가 작지 않은 것 같으니 어디 한번 까맣게 변한 안색을 봐야겠군.’

그사이 맹우는 맹언연을 데리고 들어왔다가, 마당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순간 표정이 난처해졌다. 그는 빠르게 억지웃음을 지으며 소문원 등에게 인사를 건넸다.

소문원은 곧장 맹우에게 연유를 물었다.

“형님, 어쩐 일이십니까?”

그에 맹우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맹언연을 바라보며 엄하게 꾸짖었다.

“네가 저지른 일이다. 어서 목 소저께 사과하지 않고 뭣하느냐?”

그러자 맹언연의 눈빛이 바로 목운요를 향했다. 그 속에 원망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이 생생하게 보였다. 만약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목운요를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 같았다.

맹언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맹우가 재차 꾸짖었다.

“뭘 하고 서 있는 게야? 내 말 못 들었느냐?”

맹언연은 그제야 한 발씩 걸어가 목운요 앞에 섰다. 차가운 목소리에 금방이라도 얼음이 맺힐 것 같았다.

“목 소저, 그날 일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목운요의 입가에 열은 웃음이 걸렸다. 목운요는 담담한 눈빛으로 맹언연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을 말씀하시는지요?”

맹언연은 어금니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등 뒤에서 맹우가 보고 있으니 함부로 행동할 수도 없었다.

“그날, 녹의 소전각에서 제가 일부러 찻잔을 엎질러 목 소저를 모함했습니다. 제가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하여 괜히 목 소저께 화를 풀고 말았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정말 후회했답니다. 다시 자세히 생각해 보니 그건 너무 지나친 행동이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지금 하는 말은 모두 집에서 일러 준 것이었다. 맹언연은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을 때마다 목구멍에 쇠바늘을 긋는 것 같았다. 그 분노에 피를 토할 것 같았다.

비록 그때 자신이 농간을 부리긴 했지만 결국 목운요는 뺨 한 대와 곤장 두 대를 맞았을 뿐이다. 그러나 자신은 하룻밤 내내 다리가 아팠다.

‘어째서 내가 이 천한 잡것에게 사과해야 한단 말인가?’

목운요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맹언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맹언연의 다음 행동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옆에 있던 맹우는 그런 목운요를 자세히 관찰했다. 맹우도 속으로는 불만을 품고 있었다.

오늘 부친으로부터 질책을 듣고 맹우는 그제야 딸이 사고를 친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선 사소한 일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부친께선 노발대발하시어 기어이 맹우에게 직접 딸을 데리고 가 사죄하게 하라고 시키었다. 심지어 목운요의 용서를 받지 못하면 돌아오지도 말라고 하였다.

맹우는 딸이 잘못을 인정하면 목운요가 기꺼이 사과를 받아 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과를 받아 주지도 않는다니? 절로 화가 치밀었지만 부친의 명령을 거역할 순 없었다.

“언연아!”

맹언연은 입술을 콱 깨물었다. 입 안에 피 맛이 느껴졌다.

“그날 제가 너무했다는 것은 잘 압니다. 그래서 오늘 직접 무릎을 꿇고 잘못을 시인하러 왔습니다.”

마지막 말은 치아 사이로 겨우 비집고 나온 듯했다.

말을 마친 맹언연은 어쩔 수 없이 이를 앙다문 채 무릎을 완전히 꿇어앉았다. 무릎이 바닥에 닿는 순간 가슴속 한이 요동쳐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제야 목운요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목운요는 천천히 걸어와 맹언연의 앞에 섰다.

사람들은 목운요가 허리를 숙이고 맹언연을 일으켜 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목운요는 팔을 높이 쳐들더니 맹언연의 뺨을 내리쳤다!

찰싹!

뺨을 때리는 소리에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이내 앞마당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대부인은 머리가 윙 하고 울리는 것 같았다. 이내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화가 치솟았다. 이 따귀는 맹언연만 때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얼굴을 때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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