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119화 (119/442)

119화 해묵은 원한

* * *

오부 안, 상석에 앉은 오민지를 중심으로 조 씨(曺氏), 위 씨(魏氏)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오민지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 형, 위 형. 내 오늘 두 분을 모신 이유를 두 분께서도 어느 정도 짐작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황상께서 소금세를 심사하라고 보낸 이가 양강총독 이원일이라고 들었습니다. 이원일이 누굽니까? 대황자의 외숙이자 대황자 일파입니다. 앞으로 강남이 크게 요동칠 테니 지금 줄을 잘못 서면 다음에 문을 닫게 될 건 우리일지도 모릅니다.”

“오 형의 말씀이 맞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주십시오.”

“두 분은 제명에 대해 어찌 생각하십니까?”

요 며칠 제명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던 터라 두 사람 모두 제명을 알고 있었다.

“제명이 보낸 모란꽃 화분은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닙니다. 인맥은 물론, 수완이나 재력 모두 범상치는 않은 것 같습니다.”

“습보헌을 여는 데 들어간 돈만 수십만 냥은 족히 될 것입니다. 한데 그렇게 대단한 자의 이름을 아무도 몰랐다는 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립니다. 대단한 가문이 뒤에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에 오민지는 미간을 구겼다.

“저도 좀처럼 의심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가 나타난 시기가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절묘해서……. 소금세를 심사하러 오는 이가 이원일이라는 소식을 접한 뒤 제명이 나타났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뒷배에 대단한 인물이 있는 게 분명합니다.”

“오 형의 말씀을 들으니 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습니다. 설마 그 제명이라는 자를 그분께서 보내신 걸까요?”

딱 꼬집어서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세 사람은 그분이 서릉에 있는 대황자 능왕(崚王)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입을 잠시 굳게 다물었던 오민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쨌든 신중히 상대해야 할 겁니다. 그분께서 보낸 자라면 나중에 저희가 의탁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대일 테니까요.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도 조심해서 나쁠 거야 없겠죠.”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 알려 주십시오.”

“제명을 신중히 살피면서 그와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 외에 소금세에 관한 일을 사람을 보내 적당히 흘려 두는 겁니다. 저희가 얽혀 들지 않을 정도로 말입니다. 그래야 훗날 변고가 생기더라도 증거 부족으로 빠져나올 수 있을 테니까요.”

“예, 당장 그리하라 이르겠습니다.”

“이번 겨울에 폭설이 내린 데다, 일전에 소금값까지 요동치는 바람에 적지 않은 소금을 쌓아 두지 않았습니까. 소금세가 덜 걷혀서 나라 곳간에 적자가 생겼는데, 그걸 메울 생각을 하니 손이 벌벌 떨립니다. 이원일이 말이 통하는 자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으니 일단 그자에 대해 파악하고, 우리 수중에 있는 소금을 숨겨 두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자칫하다가는 골치가 아파져요.”

그들은 큰돈이 될 대량의 소금을 내다 팔지 않고 손에 꽉 쥐고 있었다. 게다가 그동안 소금세도 제대로 내지 않았는데, 이원일이 그 사실을 밝혀내면 자신들이 부족한 세금을 채워 넣어야 할 것이 분명했다.

머리를 모으고 고민한 끝에 마침내 좋은 방법이 떠올랐다. 바로 관아의 명의로 대량의 소금을 구입한 뒤, 운송하는 도중에 배를 침몰시켜 소금을 잃은 척 위장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손실은 자연히 관염을 구매하다 생긴 것으로 기록될 것이다.

실상이 어떻든 누가 강물에 들어가서 낱낱이 파헤치겠는가?

* * *

습보헌이 문을 연 뒤로 제명의 위치는 점차 올라가기 시작했다. 여러 차례 확인 끝에 소금 상인들의 움직임이 확인되자, 그는 소식을 경릉성에 전해 왔다.

목운요는 제명이 보내온 서신을 월왕 앞에 내놓았다.

“사야, 어떻게 생각하세요?”

월왕은 서신을 확인한 뒤 손가락을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이 일은 예삿일이 아니다.”

“네, 지금처럼 중요한 순간에 대량의 소금을 산 걸 보면 무슨 연유가 있는 게 분명해요.”

“지금 소금을 사려면 거액을 들여야 하지. 이제 곧 소금세를 심사할 텐데, 거액의 돈이 나간 게 장부상 보기에 좋지 않아. 일단 이 일이 황상에게 올라가기라도 하면 추궁을 받게 될 수도 있어. 그런데도 그 큰 위험을 기꺼이 감수했다는 건, 아마도 문제가 있다는 뜻이겠지.”

지난 며칠 동안 소금 상인에 관한 많은 정보를 모으면서 소금 상인이 소금세를 건드린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됐다.

누락된 소금세가 원체 커서 한꺼번에 부족한 돈을 채워 넣을 수 없게 되자 이런 방법을 쓴 게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재작년 소금값이 폭락하자, 소금 상인들이 불만을 품고 소금을 운송하는 도중에 일부러 강물에 다 던져 넣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어요. 소금이 순식간에 부족해지자, 백성들이 사재기를 하면서 소금값이 단기간에 몇 배는 뛰었다고…….”

“네 말은 그자들이 이번에도 그 수법을 또 꺼내 들었다는 거냐?”

“그저 추측일 뿐, 저도 확실하진 않아요.”

목운요가 딱 잘라 이야기하지 않자, 월왕은 미간을 찌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최대한 빨리 알아보도록 하지.”

“예, 알겠습니다.”

* * *

집으로 돌아온 목운요는 이원일에 관한 자료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때, 명음이 방문해 왔다.

“어서 들어오세요.”

지난번 명음의 몸에 난 상처는 거의 다 아물어 있었다.

자신을 향해 절을 올리는 명음을 보며 목운요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명음 소저, 그동안 잘 지냈나요? 자, 이리 와서 앉으세요.”

불안한 표정의 명음은 자리에 앉은 뒤로도 손가락으로 치맛자락을 꼬면서 시도 때도 없이 목운요를 곁눈질했다.

“제가 소저를 만나고 싶다고 한 이유를 진 총관님한테서 이미 들었겠죠?”

“예, 알고 있습니다.”

“이번 일은 소저에게도 어려운 일일 거예요. 도저히 무리라고 생각되면 솔직히 말해 주세요. 총관님과 상의해서 다른 사람을 찾아볼게요.”

“아뇨!”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명음이 다급한 목소리를 냈다.

“이 일은 제가 꼭 하고 싶어요. 제발 제게 기회를 주세요.”

그 모습을 찬찬히 살피던 목운요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진 총관을 통해 이번 일엔 명음이 제격이라는 이야기를 미리 들었다. 명음의 가족이 전부 이원일의 손에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입을 굳게 다문 목운요의 모습에 명음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진 총관님께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저희 부모님은 이원일의 손에 억울한 죽음을 당하셨어요!”

목운요가 자리에서 일어나 명음을 일으켜 세웠다.

“이원일한테 원한을 품고 있다는 이야기는 총관님을 통해 들었어요.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는데, 괜찮다면 자세히 이야기해 줄 수 있나요? 제가 도울 일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도와줄게요.”

명음은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채로 허겁지겁 입을 열었다.

“십 년 전, 아버지는 임강성(臨江城)의 지부셨고, 당시 이원일은 임강 순무였어요. 임강성에 큰 홍수가 나자, 조정에서는 양식을 내주었죠. 한데 아버지께서 곳간을 검사하던 중에 포대 자루에 든 게 구휼미가 아니라 모래라는 걸 발견하셨어요. 조사를 통해 이원일이 구휼미를 빼돌려 은자를 챙겼다는 걸 알아내셨죠.”

“이전에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어요. 명음 소저 아버님의 존함이 육암(陸岩)일 줄이야……. 육 대인께서 진실을 알아내셨는데 이원일의 죄를 밝힐 방법이 없었던 건가요?”

예전 일을 떠올리자, 명음은 원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희 아버지는 조사 결과를 조정에 올리려고 하셨어요. 하지만 당시 이씨 가문의 권세가 원체 대단한 데다, 이경주가 승상 자리에 앉아 있던 탓에, 이원일이 증거를 날조해 제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웠죠. 지금까지 아버지 이름만 들어도 임강성 사람들은 온갖 욕설을 쏟아 낼 만큼요…….”

“그랬군요. 이원일이 이씨 가문의 방계라곤 하지만, 가문의 명예에 먹칠하는 일을 결코 좌시하지 않았을 테니.”

“흐흑, 하인들 덕분에 어린 저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오래전 일이라 지금은 증거를 찾으려야 찾을 수도 없어요…….”

“이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애도를 표합니다.”

“목 소저, 이원일에게 접근하는 기회를 제게 주세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소저께서 분부하신 일이라면 반드시 해내겠어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회는 줄 수 있어요. 하지만 증오심을 숨길 자신이 있나요?”

임강성에서 일어난 일이 사실이라면 명음에게 이원일은 불구대천의 원수였다. 그런 자를 눈앞에 두고도 과연 참아 낼 수 있을까?

“소저, 걱정하지 마세요. 그때 그 일은 이원일 혼자서 저지를 수 없는 일이었어요. 분명 이씨 가문에서 손을 썼겠죠……. 그러니 저도 무턱대고 달려들진 않을 거예요. 열심히 증거를 모아서 그때 아버지를 모함했던 자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고,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 드리고 말 거예요!”

“좋아요.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면 명음 소저를 믿어 볼게요. 절 실망시키지 말아 주세요.”

“흐흑, 목 소저……. 정말 감사합니다!”

목운요는 명음을 다독여 준 뒤, 이원일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이원일에 대해선 명음 소저도 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자는 미색을 밝힌다고 하죠. 그래서 명음 소저도 미인계를 써서 이원일에게 접근해야 할 거예요. 물론 소저를 욕보이게 하진 않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예, 진 총관님께 이야기 들었어요.”

자신의 이야기에도 명음의 눈빛이 흔들리지 않자, 목운요는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좋아요. 그럼 이제 새로운 다도술을 가르쳐 줄게요.”

“다도라고요?”

사내를 유혹하는 기술을 배울 줄 알았는데, 난데없이 다도라니?

그 생각을 눈치채기라도 한 듯 목운요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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