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114화 (114/442)

114화 월왕의 선물

* * *

서재 안으로 들어선 목운요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온실에서 급하게 나오느라 두꺼운 옷으로 갈아입지 못한 탓에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이가 저절로 떨려 왔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월왕은 가슴이 무섭게 뛰기 시작했다. 목운요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간 그가 자신이 걸치고 있던 피풍의를 벗어 걸쳐 주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추웠을 텐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느냐?”

목운요는 빳빳해진 몸을 간신히 가눴다. 피풍의에 남아 있던 월왕의 체온이 목운요의 전신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새하얗던 목운요의 얼굴에 조금씩 붉은 혈색이 돌아오는 걸 확인한 월왕이 조용히 한숨을 내려놨다.

“다음에는 절대 이러고 다니지 마라. 알겠느냐?”

“예. 그래도 서재 안이 따뜻해서 피풍의는 걸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피풍의를 벗으려는 목운요의 모습에 월왕이 손을 뻗어 피풍의의 끈을 단단히, 그리고 무척 섬세하게 묶었다.

“무리할 것 없다.”

목운요가 입술을 살짝 깨문 채로 뒤로 반걸음 물러서는데, 피풍의 자락이 발에 걸렸다.

그녀가 뒤로 넘어지려는 순간, 월왕이 그녀를 품 안으로 당겼다.

눈앞이 휘청한 것도 잠시, 월왕 특유의 청량한 향기가 훅 하고 코끝을 파고들더니 단단한 가슴이 손에 만져졌다. 홍시처럼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녀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죄송해요, 부디 용서해 주세요.”

손끝을 살짝 매만지는 사이, 그의 눈동자가 어둡게 가라앉았다.

“나야말로 미안하게 됐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가다듬은 목운요는 가능한 빨리 서재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별일 없으시다면 전 그만 물러…….”

“잠깐!”

월왕은 그녀를 이대로 내보낼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내가 준비한 선물이 뭔지 궁금하지 않느냐?”

목운요가 혀끝을 살짝 깨물었다. 그러자 두방망이질 치는 가슴을 재빨리 진정시킬 수 있었다.

“어떤 선물인데요?”

평소와 달리 행동하면 월왕에게 파고들 기회를 줄 수 있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굴어야 했다.

탁자 뒤로 걸어간 월왕이 작은 바구니를 꺼내 들었다.

목운요는 이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눈을 휘둥그레 뜨기 시작했다.

나무로 만든 바구니 안에는 새하얀 동물이 몸을 둥그렇게 말고 있었다.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 싫다는 듯 커다란 꼬리가 몸을 가렸다.

월왕이 바구니를 들고 가볍게 흔드니, 안에 있던 녀석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제야 목운요는 바구니 안에 든 녀석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잡티 하나 없이 눈처럼 하얀 털, 호리호리한 몸통, 커다란 꼬리, 쫑긋 세워진 귀, 벌름거리는 분홍색 코……. 보기만 해도 절로 기분이 좋아질 만큼 깜찍하고 귀여운 모습이었다.

“이건…….”

목운요가 자신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가자, 바구니 안에 있던 녀석이 앞발을 바구니 밖으로 쏙 내밀더니 불쌍한 표정을 지은 채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그에 목운요는 웃음을 터뜨리며 앞발을 만져 보려 손을 뻗었다.

순간, 월왕이 그녀의 손을 잡아당겼다.

얌전한 줄 알았던 녀석은 어느새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고 있었다. 척 봐도 무척 사나워 보였다.

“조심해라. 이건 월서의 눈여우다. 이빨과 발톱에 독성이 깃들어 있어 살짝 물리기만 해도 즉사할 수 있다고 하니 조심히 만지는 게 좋을 거다.”

월왕의 설명에도 목운요의 관심은 오직 바구니 속 눈여우에 몰려 있었다.

“귀엽긴 한데 저 못된 성질머리는 좀 고쳐야겠네요.”

“눈여우는 원래 거칠고 고집 세기로 유명하지. 하지만 한번 길들여지면 주인에게 충성을 다한다고 하더군.”

눈여우는 경계를 하는 듯 바구니 가장자리에 바짝 붙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앙증맞은 귀를 쉬지 않고 까딱거리는 모습이 퍽 총명해 보였다.

눈여우를 보니 소씨 가문의 큰 아가씨가 기르던, 파란 눈을 가진 흰 담비가 생각났다. 소청오가 산에서 잡아 온 담비를 큰 아가씨는 애지중지했다. 담비와 눈여우가 싸우면 누가 이기려나?

“얘를 어떻게 길들여야 하는 건가요?”

“눈여우는 성격이 제각각이라 길들이는 법도 천양지차야. 하지만 대개의 경우 겁을 준다고 들었어. 주인을 무서워할 줄 알아야 제 주인을 해치겠다는 생각을 버린다며. 그런 뒤에 잘 대해 주면 서서히 길들일 수 있을 거다.”

“얘는 사야가 제게 주시는 선물인 거죠?”

“그래. 마음에 들면 사람을 시켜 길들여 주마.”

“사야가 제게 주신 선물이니까 당연히 제가 길들여야죠!”

“하지만…….”

월서의 눈여우는 다른 지역의 것보다 사납고 약기로 악명 높았다. 만에 하나 다치기라도 하면…….

하지만 그의 걱정이 무색하게 목운요는 바구니를 들어 올리더니 그 자리에서 절을 올렸다.

“감사합니다. 이 녀석은 제가 데리고 갈게요. 그럼 이만.”

* * *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목운요는 바구니 안을 몇 번이고 들여다봤다. 그녀가 소청을 발견하고는 바구니를 든 채 달려갔다.

“어머니, 이거 보세요! 엄청 예쁘죠?”

하지만 소청의 시선은 목운요에게만 머물러 있었다.

“요아야, 너! 당장 날 따라와!”

목운요는 어찌 된 일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제 옷차림을 발견하고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눈여우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린 나머지 월왕의 피풍의를 그냥 걸치고 집까지 돌아온 거였다!

소청은 목운요를 안으로 이끈 뒤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네가 왜 그걸 걸치고 있니?”

목운요는 걸치고 있던 피풍의를 재빨리 벗어 놓은 뒤 순진한 미소를 지었다.

“온실이 더워서 얇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갑자기 영사야를 뵈었지 뭐예요. 그분을 따라가서 눈여우를 받아 오느라 옷을 돌려 드리는 걸 깜빡한 것뿐이에요. 제가 너무 얇게 입었다며 옷을 빌려주셨거든요.”

대수롭지 않은 목운요의 모습에 소청은 숨통이 턱 막혀 왔다.

“하여간 너도……. 평소에는 그렇게 똑똑한 애가 왜 이럴 때는 멍청하게 굴어? 이 피풍의가 함부로 빌릴 수 있는 거니?”

“하지만 이렇게 추운 날에 얇게 입고 돌아다니면 감기 걸릴지도 모르잖아요. 어쩔 수 없어서 피풍의를 빌린 것뿐인데…….”

“쯧, 하지만 영사야는…… 됐다. 이건 내가 잘 빨아서 다른 사람을 통해 돌려보낼 테니 신경 쓰지 말렴.”

소청은 영 공자가 아이를 그저 귀여운 동생 취급할 뿐, 별다른 마음은 품고 있지 않을 거라며 자신을 다독였다.

소청이 화를 가라앉힌 듯하자, 목운요는 속으로 몰래 한숨을 돌렸다. 그러곤 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어머니, 이 녀석 좀 보세요. 영사야께서 월서에서 데려온 녀석인데, 엄청 교활해서 사람들을 놀리는 걸 좋아한대요.”

그제야 소청도 바구니 속에 든 존재에 흥미가 생겼는지 만져 보려고 손을 뻗었다.

“귀엽기도 해라. 이렇게 하얀 여우는 좀처럼 보기 드문데…….”

눈여우는 아까의 실패를 만회하겠다는 듯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발을 미처 내밀기도 전에 목운요가 두 앞발을 내리눌렀다.

앞발을 눌린 눈여우가 이를 드러내자, 목운요가 재빨리 그 턱을 낚아챘다. 그러곤 꼼짝도 할 수 없을 만큼 아프게 턱을 꽈악 움켜쥐었다.

마치 실랑이하는 것 같은 둘의 모습에 소청이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조심하렴. 사람 놀리는 걸 좋아한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가 보구나.”

최고급 비단처럼 눈여우의 털은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소청은 목운요에게 붙잡힌 눈여우를 쓰다듬으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후후, 정말 착하기도 하지.”

“그렇네요. 제 생각에도 정말 착한 것 같아요.”

소청이 손을 거두자, 목운요도 재빨리 손을 뺐다.

화가 난 눈여우가 그녀를 향해 으르렁거렸지만 목운요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옆에 있던 소청은 꽤나 놀란 듯했다.

“화가 났나 보네. 마음에 들면 잘 길러 보렴. 내일 영 공자께 감사 선물을 보낼 테니.”

“네, 알겠어요.”

소청은 목운요에게 당부의 말을 몇 마디 건넨 뒤, 월왕의 피풍의를 챙겨 떠났다.

그에 목운요는 한숨을 돌렸다. 어느덧 미소가 사라진 얼굴로 그녀는 여우를 흘깃 째려본 뒤에 침대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

“낑낑…….”

바구니가 작은 탓에 안에 갇힌 눈여우는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쉬워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목운요가 못 본 척하자, 발로 바구니에 걸린 자물쇠를 벅벅 긁기 시작했다.

그 소리가 귀에 거슬렸던 목운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바구니를 열곤 여우의 뒷덜미를 잡아 들어 올렸다.

“착하게 굴면 잘 보살펴 줄게. 못되게 굴면 깔개로 만들어 버릴 거야!”

사나운 눈여우는 화가 났는지 목운요의 얼굴을 향해 날카로운 발톱을 세웠다.

목운요는 미간을 구긴 채로 눈여우의 앞발을 움켜쥔 뒤에 아까처럼 턱을 꽉 붙들었다.

소청이 없으니 인정사정 보지 않아도 됐다. 그 힘에 눌린 눈여우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 정도면 기를 죽였다는 생각에 목운요가 빙긋 미소 지었다.

“생각해 봤어? 내 말을 들으면서 맛있는 걸 먹을래? 아니면 평생 깔개 신세가 될래?”

여우가 사람의 말을 알아들었을 리 만무하지만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건지, 눈여우가 낑낑거리며 울어 댔다.

목운요는 냉소를 짓더니 손에 든 힘을 살짝 풀었다. 바로 그 순간, 눈여우가 창밖을 향해 냅다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육냥의 손에 사로잡혀 목운요에게 다시 끌려오고 말았다.

“묶어 버릴까요?”

“밖에 묶어 놔. 말 잘 들을 때까지 아무것도 주지 말고.”

“예.”

* * *

이튿날, 눈여우를 발견한 금교가 신기한 듯 소리쳤다.

“소저, 이거 여우 아니에요? 이렇게 하얀 건 처음 보는데, 엄청 희귀한 거 같아요.”

밤새 밖에 묶여 있던 눈여우는 날이 밝은 후에야 방 안으로 다시 끌려왔다.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픈 탓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는지, 자신에게 손을 뻗는 금교를 향해 눈여우가 허연 이를 드러냈다.

깜짝 놀라는 금교를 보며 목운요가 쓴웃음을 지었다.

“조심해요. 저 여우는 사람도 잡아먹는대요.”

“저 놀리시는 거죠? 여우가 어떻게 사람을 잡아먹어요?”

“사람도 사람을 잡아먹는데, 여우라고 왜 못 잡아먹겠어요?”

세수를 마친 목운요가 바구니로 걸어가 안에 있는 눈여우를 쳐다봤다.

“생각해 봤어?”

눈여우는 몸을 둥그렇게 만 뒤 가까이 오지 말라는 듯 그르렁거렸다.

“금란, 금교. 저 녀석한테는 먹을 거 주지 말아요. 물도요.”

“알겠습니다, 소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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