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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92화 (92/442)

92화 뜻밖의 제의

잠시 생각에 잠겼던 조운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오만, 목운요가 어떻게 생각할지……. 황상으로부터 상을 받은 데다, 하운방과 불선루 또한 황상의 편액을 내걸고 성업 중이오. 우리가 갑자기 의녀로 삼고 싶다고 하면 오해하는 건 아닐지…….”

“운요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그 아이는 여태껏 진심으로 절 위해 줬습니다. 배 속의 아이만 하더라도 운요가 없었다면 지키지 못했을 겁니다.”

금 부인의 비통한 표정에 조운년은 재빨리 위로의 말을 건넸다.

“부인께서 그리 생각한다면 나도 당연히 찬성이오. 며칠 전 부인의 맥을 짚은 의원이 배 속에 든 아이가 사내아이인 것 같다고 했는데, 목운요를 의녀로 삼으면 아들과 딸이 동시에 생기겠구려, 허허.”

“후후, 내일 소택에 가서 소청과 의논한 뒤에 운요의 의견을 물어야겠네요. 의녀라고 하지만 친딸처럼 챙길 겁니다. 좋은 사람을 골라 출가시키고, 혼수도 잔뜩 챙겨 보내렵니다.”

“알았소. 모두 부인 뜻대로 하시구려.”

* * *

오늘도 의자에 드러누워 쉬고 있는데, 평소 어머니를 모시는 사금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목 소저를 뵙습니다. 금 부인이 오셔서 부인과 말씀 중이십니다. 부인께서 소저를 불러오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눈이 내려서 길도 미끄러울 텐데 무슨 일이시지?”

목운요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금란이 토끼 가죽을 덧댄 피풍의를 가져왔다. 옷을 걸친 목운요는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금 부인은 함박웃음을 지은 채 소청과 이야기 중이었다. 목운요가 왔다는 말에 두 사람의 시선이 방문을 향했다.

휘장을 거두고 목운요가 안으로 사뿐히 걸어 들어왔다. 환하게 웃는 아이의 모습에 곁에 있던 사람들의 입가에도 덩달아 미소가 피어났다.

“금 부인, 어머니를 뵙습니다.”

“어서 일어나거라.”

금 부인은 앞으로 오라고 눈짓한 뒤 차가운 손을 꼭 쥐었다. 그러곤 손에 쥐고 있던 난로를 건네주고 나서야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얼굴이 그새 좋아진 것 같아 다행이구나.”

“부인께서 보내 주신 보약을 어머니께서 날마다 달여 주신 덕분에 살이 찔까 봐 걱정인걸요.”

“후후, 그렇구나. 오늘 온 건 네 어머니와 네게 상의할 일이 있어서란다.”

“혹 세의에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네가 정성껏 준비한 세의에 문제가 있을 턱이 없지.”

다정히 웃은 금 부인이 소청을 향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소 부인, 우리 둘이 안 지 벌써 반년입니다. 그동안 나와 지내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 테니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예, 부인.”

“그동안 운요한테서 큰 도움을 여러 번 받았지요. 처음 운요가 지어 준 옷을 입고 나비가 꼬여 든 일부터, 내게 큰돈을 안겨다 준 면약의 제조법을 넘겨준 일, 후사를 잇지 못한 내 숙원을 풀어 준 일, 자수법을 전수한 일, 그리고 최근에 밤낮없이 세의를 준비하는 일까지……. 정말이지 요아에게 크게 감사하고 있어요.”

분에 넘치는 칭찬에 소청이 초조한 표정으로 황급히 입을 열려고 하자, 금 부인이 괜찮다는 듯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계속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소 부인을 알게 된 것도 내게는 큰 복이에요. 지난 몇 달 동안 부인이 정성껏 돌봐 주지 않았다면 나와 배 속의 아이 모두 어떻게 됐을지……. 두 모녀에게서 받은 진심을 내 항상 기억하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선물을 보내고 싶어도 내 마음을 십분의 일만큼도 전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동안 고민이 많았죠. 그래서 생각한 게, 운요를 의녀로 삼고 싶습니다. 그리하면 우리 역시 친자매처럼 서로를 챙겨 줄 수 있을 테니까요.”

“부인, 요아를 의녀로 삼고 싶으시다는 건가요?”

“맞아요. 그 일을 의논하러 왔어요. 괜찮을까요?”

“요아를 아껴 주시겠다는데, 제가 왜 거절하겠습니까!”

“후후후, 다행이에요. 부인이 귀한 따님을 내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래서 요아야, 네 생각은 어떠니?”

소청이 고개를 끄덕이자, 목운요는 의심을 완전히 접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금 부인 앞으로 걸어가더니, 무릎을 꿇고선 찻잔을 올렸다.

“운요, 의모님을 뵙습니다.”

금 부인이 재빨리 찻잔을 받쳐 들고는 한 모금 마신 뒤 한껏 미소를 지었다.

“어서 일어나거라.”

자리에서 일어난 목운요에게 금 부인은 손목에 차고 있던 옥 팔찌를 빼서 채워 주더니, 제 머리에 꽂혀 있던 금비녀까지 목운요의 머리에 꽂아 주었다.

“감사합니다, 의모님.”

그런 목운요의 손을 잡아끄는 금 부인의 눈가가 활짝 휘어졌다.

“아들이 생긴 것도 모자라 오늘 귀한 딸을 얻었구나!”

목운요는 둥그렇게 부푼 금 부인의 배를 쳐다보더니, 이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예전에 부인께서 아이를 낳으면 제게 두둑한 선물을 주신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걸 받기는커녕 이제 태어날 동생에게 제가 외려 축하 선물을 줘야 할 것 같네요.”

“걱정하지 말렴. 약속한 선물은 줄 테니. 네 동생이 자라거든 맘껏 잔심부름도 시키고 부려 먹으려무나.”

“정말요? 그러면 세상에 태어났다고 축하하는 뜻에서 더 두둑한 봉투를 마련해야겠어요!”

두 사람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소청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이렇게 됐으니 조 대인에게도 인사를 드려야겠네요. 괜찮으시다면 조촐하게나마 내일 불선루에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소청의 제안에 금 부인이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요아를 친딸처럼 대할 생각인데 대충 넘어갈 순 없지요! 그보다 요아가 날 의모님으로 불러 주기로 했으니 동생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물론이지요.”

“후후, 고맙네. 조만간 길일을 택해 경릉성 가문들에 초대장을 보낼 생각이야. 정식으로 예식을 치르고 연회를 열어야지.”

“하,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요란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을지…….”

“어디가 요란하다는 거야? 더 크게 자리를 마련하지 못해서 오히려 요아에게 미안한데. 요아는 내 의녀이니 이 정도 대접이야 당연해.”

금 부인의 말에 가슴 한편이 따뜻해졌다. 목운요는 눈앞의 여인을 진심으로 자신의 의모님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의모님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래, 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잘 챙겨 줄 테니!”

목운요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금 부인과 소청의 손을 맞잡았다.

“지금부터 옷을 준비해야 할까요? 의모님께 부끄럽지 않게 잘 차려입어야 할 텐데…….”

“우리 요아야 뭘 입어도 예쁜걸!”

“그럼, 그럼.”

“두 분이서 지금 절 놀리시는 거예요? 전 주방에나 가 볼래요. 오늘은 제가 어머니들을 위해서 간만에 실력을 발휘할게요!”

“후후, 네 덕분에 호강하겠구나.”

그렇게 평소보다 한결 왁자지껄한 식사 시간이 지나갔다.

목운요는 금 부인을 배웅하며, 마차 안에 여우 가죽과 작은 화로를 넣은 뒤 은홍에게 조심히 가라고 당부했다.

* * *

금수원의 진 총관은 조 대인 내외가 목운요와 결의를 맺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하곤 입을 삐죽거렸다.

“쳇, 복도 많지…….”

생강차가 담겨 있는 찻잔을 깨끗하게 비운 우의는 만족스럽게 배를 두드리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 말씀이십니까?”

“누구긴 누구야. 조운년이지. 금 부인을 업고서 출셋길을 달린 것도 모자라, 앞으론 왕야의 존대를 받게 됐으니 하는 말일세!”

“조운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기껏해야 관리인데, 어찌 왕야께서 존대하신단 말입니까?”

“금 부인이 목 소저를 의녀로 삼으셨으니 조운년은 이제 의부가 아닌가! 아직도 모르겠나!”

“의녀? 의부? 목 소저와 왕야? 점점 이해할 수 없는 말만 하시니…….”

그 모습에 진 총관은 근처에 있던 장부를 집어 던졌다.

“으이구, 저 둔탱이! 당장 꺼져! 보기만 해도 속 터지게 하지 말고!”

자신에게 날아온 장부를 반사적으로 받아 낸 우의가 책장에 적혀 있는 숫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총관님, 돈을 이렇게 많이 버시는데 새해에는 수당 좀 두둑이 챙겨 주시면 안 됩니까? 요새 월서와 경릉성을 오가느라 발에 굳은살이 다 박혔는데…….”

“계속 그렇게 떠들면 수당이 아니라 네 볼기를 두둑이 만들어 주마!”

“나이도 적지 않으신데 어째 그 불같은 성질은 점점 더 심해지신답니까!”

도망치듯 문밖으로 달아나는 우의를 향해 진 총관이 주먹을 휘둘렀다.

* * *

금 부인은 음력 섣달 초파일을 길일로 잡고, 그동안 모아 놓은 돈으로 경릉성의 만백성에게 죽을 나눠 주기로 했다. 소식을 접한 목운요도 죽에 들어갈 쌀값 팔천 냥을 선뜻 내놨다.

쌀도 사고 초대장도 돌리자, 금 부인이 목운요와 결의를 맺으려 한다는 소식이 눈 깜짝할 사이에 경릉성 전체에 퍼졌다.

대부분의 사람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금 부인과 목운요 사이의 친분이 워낙 두터웠던 터라 결연을 맺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소식을 접한 다른 귀부인들은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축하 선물을 고르는 일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출셋길에서 승승장구하는 조운년, 서릉 금씨 가문의 금지옥엽 금 부인, 여기에 황상의 묵보를 받은 목운요가 한 식구가 된다면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될 것이다. 마음에 드는 선물을 보낸다면 또 다른 기회가 생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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