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승승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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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나눈 지 이틀 만에 진 총관은 여러 곳에 찻집을 차렸다. 소박한 장소에 불과했지만 사람들의 호감을 이끌어 내는 데엔 큰 도움이 됐다.
특히나 장사꾼들은 불선루의 차를 맛보곤 앞다투어 진 총관을 찾아와 찻잎을 구입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 덕에 며칠 만에 찻잎만으로 이만 냥에 가까운 돈을 벌었다.
때마침 월왕으로부터 답장이 도착했다. 이번에는 저번보다 더 짧은 ‘안심’이라는 두 글자가 전부였다.
자신이 보낸 이만 냥에 대한 답변이 달랑 두 글자라니……. 씁쓸한 마음이 들었지만 미래를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었다.
회귀 전, 성상의 옥체가 온전치 못하자 황자들 사이에선 치열한 암투가 벌어졌다.
그리고 정무를 돌보지 못할 만큼 병세가 심각해진 성상은 월왕에게 금군(禁軍)을 이끌고 황궁을 지키라는 황명을 내린다.
그런 월왕을 대부분의 세력은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다. 하나같이 그를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이야기뿐이었다.
그러나 삼 년 후, 월왕은 예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모습으로 ‘변신’한다.
지금도 그랬다. 당장 궁지에 몰렸지만, 적절한 순간에 도움을 준다면 뜻하지 않은 보답을 받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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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성 공공의 답장을 받은 진 총관은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옆에 서 있는 우의(于毅)에게 물었다.
“정말로 주인님께서 목 소저를 지키겠다고 하셨나?”
주인님도 목 소저를 마음에 두고 계신다는 뜻 아닌가?!
“제 것을 지켜야 한다는 뜻으로 말씀하셨다고 우항에게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주인님께서 말씀하신 건 하운방이 아닐까요?”
“한낱 물건을 어찌 산 사람에 비할까! 목 소저를 잘 지키라는 뜻이 분명하네!”
진 총관은 세모눈을 한 채 우의를 째려봤다. 하여간 우항이나 우의나, 눈치라고는 쥐뿔도 없는 답답이들이었다.
자신을 향한 진 총관의 눈빛이 심상치 않자, 우의는 대꾸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어색하게 화제를 바꿨다.
“크흠……. 그나저나 장사가 잘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네. 이게 다 목 소저 덕분이지. 목 소저를 처음 보는 순간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왔다고나 할까?”
목운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니 진 총관은 활짝 얼굴을 펴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목 소저가 손수 끓인 차를 마실 기회가 자네에게는 없는 것 같군. 목 소저에 비하면 위일과 운춘은 아직도 멀었어. 애초에-”
그런 진 총관의 모습에 우의는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자신이 알던 진 총관은 언제나 주인님만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그러한 그가 연신 다른 이의 칭찬을 늘어놓는 모습이 여간 낯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인님을 향한 진 총관의 충심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진 총관이 매수된 건 아닌지 진지하게 의심할 정도였다.
쉬지 않고 목운요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던 진 총관이 아쉬운 표정으로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이건 요 며칠 동안 번 은자일세. 왕야께 가져다드리게.”
진 총관이 건넨 은표를 확인한 우의의 입이 한껏 벌어졌다.
“개장한 지 한 달도 채 안 됐는데 이렇게 많이 벌었단 말입니까?”
“후후, 겨우 삼만 냥 가지고 뭘 그리 놀래?”
진 총관은 우쭐한 표정으로 우의를 힐끔 쳐다봤다.
내가 그래서 목 소저를 복덩이라고 하는 거지. 목 소저만 있으면 더 큰돈도 벌 수 있을 거야!
우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총관님, 월서에도 다관을 열면 어떨까요?”
“월서에서는 배를 채우는 것도 쉽지 않은데 누가 비싼 돈을 내고 차를 마시겠나?”
“월서가 안 된다면 다른 곳은요? 큰 성마다 다관을 차리면 주인님께서도 자금을 마련하느라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텐데요!”
“일단 불선루부터 자리를 잡은 뒤에 목 소저와 상의하는 수밖에…….”
진 총관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불선루를 곳곳에 세우고 싶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목 소저를 잘 보필하면 자신의 바람이 머지않아 이뤄질 수도 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성가 놈에게 왕야를 부지런히 재촉하라는 서신을 또 보내야겠다고 진 총관은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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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릉성에 불어닥친 ‘차 바람’에 진 총관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을 무렵, 황성으로 돌아온 서 공공 역시 줄곧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목운요가 보내 준 차를 틈날 때마다 마셨다. 향긋한 차를 마시다 보면 답답했던 가슴이 어느새 후련해지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사실 요즘 성상의 기분이 좋지 않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후궁으로 새로 들인 여인이 유산한 충격으로 저수지에 몸을 던져 죽은 뒤로,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성상이 불같이 화를 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차를 한 모금 마신 성상이 찻잔을 쾅 하고 내려놓더니 싸늘한 눈빛으로 서립을 훑었다.
“내시는 향을 피우지 못할 텐데, 네가 그것을 모른단 말이냐?”
서립이 황실에서 잔뼈가 굵었기 망정이지, 어린 내시였다면 당장 끌어내 목을 쳤을 것이다.
잽싸게 무릎을 꿇은 서립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제 어찌 황실의 법도를 어기겠습니까? 여태껏 한 번도 향을 쓴 적 없으니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그렇다면 네게서 나는 연꽃 향은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더욱 언짢아진 듯한 성상의 목소리에, 서립은 성상을 뵙기 전에 마신 차가 떠올랐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입도 대지 않는 건데, 이놈의 입이 말썽이었다.
“마, 말씀하신 연꽃 향은 소인이 마신 차에서 나는 것일 겁니다. 차를 자주 마시는 탓에 차에서 향이 묻은 것 같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차라고? 황실에서 다루는 차를 짐이 모를 것 같더냐? 연꽃 향이 나는 차가 있다는 걸 들어 본 적이 없다!”
“소, 소인이 경릉성에서 환궁하면서 목운요가 만든 차를 가져왔습니다.”
“목운요? 하운방이라는 침방을 열어 경릉성의 여인들에게 자수법을 전수했다던?”
“그렇사옵니다. 목운요라는 소저는 자수는 물론 차를 끓이는 솜씨도 뛰어났습니다. 소저가 끓여 주는 차를 운 좋게 얻어 마셨는데, 한 모금 마시기만 해도 입 안 가득 그윽한 연꽃 향기가 나면서 심신이 안정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향기가 밴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이 없도록 앞으로 철저히 단속하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이번만큼은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심신이 안정되는 것 같다고? 신선이 만든 묘약이라도 된단 말이냐?”
서립의 말에 흥미를 느낀 듯 성상의 말투에서 노기가 옅어졌다.
“그리 좋다면 짐에게도 한 잔 올려 보거라. 네 말처럼 그리 좋은지 직접 마셔 봐야겠구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성상을 보필하는 자들의 손발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찻잎을 꼼꼼히 검사해서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서립이 차를 끓여 성상에게 올렸다.
“맛을 봐 주십시오.”
다행히 황궁 안에도 연꽃과 연잎에서 모은 이슬을 상비해 놓는 덕분에 목운요가 준 찻잎을 끓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향을 맡아 보니 목운요가 직접 끓인 것만 못한 게 느껴졌다.
성상은 자신의 앞에 올려진 차의 향을 맡았다. 확실히 서립의 몸에서 나던 것과 비슷한 향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맑으면서도 그윽한 향이 풍겨 왔다.
자신도 모르게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대고 한 모금 들이켠 순간, 은은한 연꽃 향기가 전신을 휘감았다.
성상이 구겨졌던 미간을 풀며 차 맛이 제법 괜찮다고 말하자, 한숨 돌린 서립이 목운요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소인의 손재주는 목 소저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 목 소저가 직접 끓여 준 차는 찻잔 안에 꽃이 피어난 게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서립의 말에 성상은 눈앞의 찻잔을 들여다보며 궁금증을 드러냈다.
“침방을 열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왜 또 다관을 연 것이지?”
성상의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 탓에 서립은 더욱 몸을 낮추고 입을 열었다.
“다도를 널리 전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습니다. 다관에서 여러 사람에게 다도를 가르쳐 주고 있더군요. 다관의 이름인 불선루 또한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불선루? 제법이군. 경릉성은 다성(茶聖) 육우(陸羽)의 고향이기도 하지. ‘황금으로 된 술병이 부럽지 않고, 백옥으로 된 술잔이 부럽지 않네. 아침에 문안받는 것이 부럽지 않고, 저녁에 누대에 오르는 것이 부럽지 않네. 천 번, 만 번 부러운 것은 서강의 물이니, 이미 경릉성 아래로 흘러왔구나.’ 그의 시를 인용해 불선루라는 이름을 짓다니, 참으로 영특하지 않은가?”
“그렇사옵니다. 게다가 황상께서 내리신 상을 받고 어찌나 기뻐하던지, 서릉 쪽을 향해 몇 번이고 엎드려 절을 올리더군요. 불선루를 서릉에 하루빨리 열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했습니다.”
“다른 것은 필요 없고 짐의 묵보를 원한다고 했던가? 그 마음 또한 갸륵하구나. 여봐라, 붓과 먹을 준비하거라.”
“예.”
서립은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조용히 닦으며, 아랫것들에게 필묵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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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 ‘하운방’과 ‘불선루’가 적힌 묵보를 든 서립이 소청오를 찾아갔다.
“소 대인, 황상께서 이것을 경릉성의 목 소저에게 보내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지금 당장 황명을 받들겠노라 성상께 말씀 올려 주십시오.”
“후후, 소 대인이 직접 가시려는 겝니까? 그렇다면 목 소저의 찻잎을 성상께 올렸다는 말도 함께 전해 주십시오.”
옅은 미소를 짓는 서립을 보며 소청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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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릉에서 별다른 소식이 들려오지 않자, 목운요는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감추며 새로 준비한 하운 미인책을 들고 금 부인을 찾아갔다.
폭신한 의자에 기댄 채 쉬고 있는 금 부인을 향해 목운요가 인사를 올렸다.
“부인을 뵙습니다.”
고개를 든 목운요는 부쩍 수척해진 금 부인의 모습을 보곤 깜짝 놀랐다.
“부인, 안색이 어찌 이리 안 좋으세요?”
“왔구나.”
금 부인이 몸을 일으키려는 듯 자세를 잡기 시작했다. 힘들어하면서도 배를 쓰다듬는 손길이 한없이 조심스러웠다. 예전보다 살도 많이 빠져 몸에 딱 맞던 옷이 이제는 품이 휘휘 돌 정도였다.
목운요는 자신의 일은 잠시 내려놓은 채, 금 부인에게 다가가 맥을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