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선택받은 사람들
* * *
바쁜 하루를 보내고 목운요는 의자에 기대 천천히 차를 음미했다.
그때 진 총관이 위일과 운춘 등을 데리고 나타났다.
“소저, 내일부터 다관 영업을 시작할 생각입니다.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십니까?”
목운요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당부라고 할 건 딱히 없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히 명심해 줬으면 해요. 앞으로 여러분은 손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해요. 돈이나 명예는 모두 소용없다는 뜻이죠.”
월왕이 이들을 선발한 이유를 목운요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런 뜻에서 눈앞의 성과를 세우는 데 급급하지 말라는 점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었다. 정보나 소식을 서둘러 캐다간 오히려 이쪽의 의도를 상대에게 들킬 수도 있다.
목운요의 말에 진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예, 소저.”
모두가 한목소리로 대답하자, 목운요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지었다.
“소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틈틈이 아이들을 가르치겠습니다.”
“너무 긴장하실 것 없어요. 만일에 대비하려는 것뿐이니.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마음속에 새겨 둔다면 큰 문제는 없을 거예요. 만일 문제가 생긴다면 저와 진 총관에게 즉시 알려 주세요. 저는 경릉성 한곳에만 머물 생각이 없어요. 전 여러분이 다른 곳에서 제이, 제삼의 불선루를 세워 주길 바라요.”
“소저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진 총관님, 정원을 마지막으로 살펴봐 주시면 좋겠어요. 내일부터 가게 문을 열 테니.”
“예.”
* * *
하운방이 불탔다는 소식에 가슴 아파하던 경릉성 백성들은 목운요가 다관을 연다는 소식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정식으로 가게 문을 열면 반드시 가 볼 거라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났다.
이튿날, 금수원의 문이 열리자마자 인파가 우르르 몰려들었지만 어쩐 일인지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출입을 막고 있었다.
“오늘 개장한다고 들었는데 왜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거요?”
서생 차림의 사내가 따지듯 묻자, 진 총관이 재빨리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들어오면 제대로 된 대접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불선루의 초대장을 지닌 분들만 받고 있습니다.”
때마침 초대장을 받은 사람이 나서자, 위일이 그를 이끌고 공손히 안으로 안내했다.
금수원으로 발을 들이민 순간, 문 양쪽에 나란히 서 있는 흰 옷차림의 사람들이 일제히 인사를 올렸다. 그에 손님은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듯 저절로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진 총관은 옆에서 조용히 설명을 시작했다.
“저들은 불선루의 차 전문가랍니다. 손님들에게 최고의 차를 대접해 드리죠. 다만 그 수가 오십 명에 불과해 쉰 개의 상만 대접할 수 있습니다. 최고의 차를 대접하기 위함이니 부디 양해해 주십시오.”
그 이야기에 밖에 몰려든 사람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경릉성에도 다관은 여러 곳 있었다. 하지만 불선루처럼 한 명의 전문가가 하나의 상만 담당하는 경우는 여태껏 듣고 보도 못한 것이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하길래 저렇게 유난을 떠느냐며 비아냥대는 사람도 있었다. 하나 그보다는 그 대단한 대접을 꼭 한 번 받아 보고 싶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웅성거리는 인파 사이로 초청장을 지닌 이들이 지나가자, 사람들은 저마다 아는 척을 했다.
“어이쿠, 마(馬) 형! 혼자서 차를 마시면 적적할 테니 나도 데려가 주시구려! 지난번에 우리 집에 걸려 있는 그림이 마음에 든다고 했었는데, 이따 보내 드리리다.”
“왕 씨 어르신, 간만에 함께 차 좀 마시면서 사업 이야기나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순식간에 금수원 앞이 소란스럽게 변했다. 초청장을 가진 사람은 본인 외에 최대 다섯 명을 더 데리고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인맥을 동원해 금수원에 발을 디딘 사람들은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목운요가 세운 다관은 여타 다관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이처럼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 곳은 처음이었다.
차를 끓여 내는 전문가들의 솜씨는 더욱 놀라웠다. 찻잎의 용량이나 끓는 물의 온도까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정성껏 끓여 낸 차를 한 모금 머금으니 심신이 절로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금수원 밖으로는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섰다.
“이보시오! 안의 경치가 어떻소? 차는 마실 만하더이까?”
대문 밖으로 나선 한 사내에게 누군가가 질문을 던지자, 그는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둘 다 별로라는 거요?”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너무 좋은데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굳이 말하자면 ‘절묘’하다고나 할까…….”
“그리 좋단 말이오?”
사내에게선 남다른 자부심이 느껴졌다.
“직접 마셔 보지 않았으니 내 말을 이해할 턱이 있나! 그나저나 저런 곳을 세운 목 소저도 참 대단해. 소저가 손수 끓여 주는 차를 맛볼 기회가 없는 게 원통할 지경이야.”
한편 다른 쪽에서는 불선루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다관의 이름이 불선루? 대체 무슨 뜻인 거요?”
“불선루. ‘황금으로 된 술병이 부럽지 않고, 백옥으로 된 술잔이 부럽지 않네. 아침에 문안받는 것이 부럽지 않고, 저녁에 누대에 오르는 것이 부럽지 않네. 천 번, 만 번 부러운 것은 서강의 물이니, 이미 경릉성 아래로 흘러왔구나.’ 아무리 지위가 높고 돈이 많아도, 진정으로 차를 즐길 줄 아는 자만 불선루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지.”
“황금으로 된 술병이 부럽지 않고, 백옥으로 된 술잔…… 무슨 말인지 당최 알아들을 수가 있나. 이보시오, 다시 말해 보시구려!”
“쯧쯧, 시도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내가 무슨 헛짓을 하는 건지……. 지나갈 테니 좀 비키시오, 커험!”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구경꾼들의 입을 타고 경릉성에는 한 가지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불선루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불선루에서는 매일 오십 장의 초대장만 선별해서 보내고 있었다. 그 외의 경우는 순전히 운에 맡겨야 했다.
그 때문에 경릉성에서는 불선루의 차를 맛보는 것이 자신의 지위와 권세를 과시하는 일종의 ‘척도’로 자리 잡고 있었다.
* * *
십여 일 만에 인기가 치솟은 불선루 앞은 날마다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초대장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빈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며 줄을 서기도 했다.
접대를 담당하는 위일과 운춘 등도 덩달아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심지어 누구의 솜씨가 더 좋은지 손님들끼리 입씨름을 벌이는 일도 있었다.
진 총관은 장부를 펼칠 때마다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써야만 했다. 차를 팔아서 이렇게 많은 돈을 벌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게 문을 연 지 십여 일 만에 수만 냥에 달하는 돈을 벌어들였다. 손님 수를 제한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돈을 벌었을 거다.
목운요에게 진심으로 탄복한 진 총관은 그녀를 칭찬하는 서신을 수차례나 보냈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했는지 ‘복덩이’를 냉큼 손에 넣도록 왕야를 다그쳐야 한다며 성 공공을 계속해서 쪼았다.
때마침 목운요가 방문하자, 진 총관은 장부를 들고 일어섰다.
“소저, 개장한 후 지난 십여 일 동안의 장부입니다.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장부는 월말에 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월왕과 수익을 나누기로 약조한 터라 월말에 수익을 정산해야 했다. 그런데 진 총관이 난데없이 장부를 들이밀자, 내심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가게 문을 연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벌써 이만 냥을 벌었답니다!”
장부를 넘겨보는 목운요의 표정이 이내 차분히 가라앉았다.
차를 즐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돈깨나 있는 가문 출신인 터라, 찻값이 여간 비싼 게 아니었다. 그래서 한 달에 대략 얼마 정도 수익을 올리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목운요의 모습에 정작 놀란 것은 진 총관이었다. 장부를 보고 크게 놀랄 것이라는 자신의 예상과 달리, 차분하기만 한 목운요의 태도에 자신이 이 나이 되도록 세상 물정에 어두웠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실 소저와 상의할 게 있어서 보여 드렸습니다. 앞으로 보름마다 정산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사야께서 계신 곳이 여기서 멀어 은자를 한꺼번에 많이 보내는 것이 쉽지 않아…….”
“네, 상관없어요. 장부의 기록만 정확하다면 언제 정산해도 괜찮아요.”
대수롭지 않게 말한 것과는 다르게 목운요의 머릿속으로는 온갖 가능성이 떠올랐다.
진 총관이 아무 이유 없이 저렇게 말할 리 없었다. 은자를 한꺼번에 많이 보내는 게 쉽지 않다고 했지만, 은자를 은표로 보내면 될 일이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월왕의 수중에 돈이 없다는 것인데…….
“아, 마침 저도 진 총관님과 상의할 일이 하나 있어요.”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날마다 차를 덖고 만들면서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찻잎을 고르고 있는데, 그런 것들은 손님한테 내놓을 수도 없고, 팔자니 큰돈도 안 될 것 같아서요. 그래서 나루터에 찻집을 차려서 싼 가격에 팔아 보고 싶어요. 좋은 차를 맛볼 수 있는 기회도 주고, 불선루의 이름도 알릴 수 있을 거예요.”
“좋은 생각 같군요.”
“하지만 나루터에는 이미 차를 파는 곳이 여러 곳 있을 테니, 다른 사람들이 장사하는 데 지장을 줘선 안 될 거예요. 돈을 벌려는 게 아니라 좋은 일을 하려는 거니까요.”
“예, 그 점을 꼭 명심하겠습니다.”
여러 사람을 위한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니, 누구의 원망도 듣지 않게 꼼꼼히 일을 처리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