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60화 (60/442)

60화 한밤중의 화재

“아이?”

“예, 누군지 물어보니 평범한 농가의 아이라고 했습니다. 좀 있다가 아이의 부모가 나타나 잘못했다고 빌자, 부인께서 괜찮다며 돌려보내셨습니다.”

순간 목운요의 미간이 구겨졌다. 아이가 말 앞에 달려든 일은 둘째 치고, 폭죽을 던진 것이 의심스러웠다. 새해도 아닌데 평민 아이가 비싼 폭죽을 가지고 다니다니…….

깊은 생각에 사로잡힌 아이의 모습에 소청은 자신의 실수로 다친 것뿐이라며 달랬다. 발목을 보니 살짝 부었을 뿐 별다른 이상은 없어 보였다.

“어머니, 당분간 외출은 하지 마세요. 아무래도 그냥 단순한 사고 같지 않아요.”

“그래, 알았다.”

그에 목운요는 하운방의 모두에게 각별히 조심하라는 말을 전했다.

* * *

한밤중, 뭔가 타는 냄새에 목운요는 눈을 떴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작은 불길이 보였다.

잠에서 깬 금란 등은 침착하게 대야로 물을 퍼 불길을 잡았다. 다행히 불길이 크지 않아 휘장이 타고 벽이 조금 그을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목운요의 가슴은 미친 듯이 뛰었다. 요 며칠 금란 등에게 불에 잘 타는 물건들은 방에다 두고 단단히 간수하라고 일러둔 차였다. 누군가가 하운방에 불을 지르지 않을까 싶어 내린 조치였는데, 그 걱정이 실제로 일어나다니…….

미간을 찌푸린 목운요의 모습에 금란 등은 숨소리도 내지 못했다. 소란에 잠에서 깬 소청이 절뚝거리며 내려온 뒤에야 목운요는 정신을 차렸다.

“이게 어찌 된 일이니? 설마 그들이 이런 짓을 저지른 것이야?”

타 버린 휘장, 흥건하게 젖은 바닥을 보며 소청이 놀란 가슴을 움켜쥐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이 빚은 제가 일일이 다 갚아 줄 거니까요.”

싸늘하게 굳은 아이의 목소리에 소청은 덜컥 겁이 났다.

“요아야, 그러지 마라. 큰불은 나지 않았으니 괜히 일 키우지 말고…….”

“네, 알겠어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어머니는 걱정하지 마세요.”

* * *

하운방에 불이 났다는 소식에 금 부인이 부리나케 달려왔다.

“운요야, 괜찮은 거냐?”

“부인을 뵙습니다. 거동하기 힘드실 텐데 여기까지 와 주시고 걱정시켜 드려서 면목 없습니다. 제때 발견해서 휘장만 조금 탔을 뿐이에요. 나머지는 다 괜찮습니다.”

목운요는 차분히 대답하며 그녀가 자리에 앉도록 이끌었다. 곧 금란이 과일 차를 내왔다.

“아이를 가지셨으니 과일 차를 드시는 게 좋겠어요.”

“침착한 걸 보니 이제야 안심이 되는구나.”

“며칠만 기다리면 하운방으로 사람을 더 보내 주마. 지금으로서는 경계를 단단히 하는 일 외에 딱히 좋은 방법이 없으니…….”

하지만 금 부인이 보내 줬던 사람들도 수상한 자가 하운방에 접근하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니 사람이 늘어 봤자 증거를 찾는 건 힘들 것이다.

“감사합니다, 부인.”

금 부인이 돌아간 뒤, 목운요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위층으로 올라가 월왕에게 서신을 쓰기 시작했다.

하운방에도 월왕의 지분이 삼 할이나 된다. 하마터면 하운방이 잿더미가 될 뻔했으니 당연히 월왕에게도 알려야 했다.

서신 외에 은자도 보낼 생각이었다. 월왕이 있는 곳은 척박해서 군량미가 부족하다고 들었다. 이걸 보면 월왕이 하운방에 더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지금의 투자는 나중에 천천히 돌려받으면 될 터.

* * *

지친 모습이 역력한 목운요가 금수원에 서신을 가지고 나타났다.

“진 총관님, 사야에게 서신 말고 보내 드릴 물건이 있는데 괜찮을까요?”

“예예, 제게 주시면 됩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사실 어젯밤에 누가 하운방에 불을 지르려 했어요. 제때 발견하는 바람에 큰 피해는 없었지만요.”

“불이요?! 대체 누가 그런 짓을……!”

목운요가 왕야와 추후 어떤 사이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은 왕야를 도와주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소저가 위험에 빠지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목 소저, 제가 사람을 풀어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겠습니다. 정보가 들어오는 대로 소저에게 가장 먼저 전해 줄 테니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감사합니다, 총관님.”

* * *

그렇게 이틀 동안 별다른 사고 없이 평온한 시간이 흘렀다. 크게 놀랐던 소청 역시 조금씩 마음을 가라앉혔다.

삼 일째 되던 날, 금 부인이 아침 일찍 목운요를 불렀다.

“운요야, 성상께서 내리신 상이 오늘 도착한다는구나. 장 순무께서 사람들을 데리고 맞이한다고 하니, 잠시 뒤에 나와 같이 순무부로 가자꾸나. 결례가 되는 일이 없도록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는 것 잊지 말고.”

금 부인의 배려에 목운요는 방 안으로 들어가서 몇 번이고 화장과 옷매무새를 고쳤다.

이날을 위해 오랫동안 노력했다. 원하던 것을 얻었지만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상상했던 것처럼 감정이 북받치진 않았다.

* * *

한편 경릉성 밖.

수레 두 대를 호위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얼추 봐도 그 수가 백 명은 족히 되어 보였다.

경릉성 대문에서 일찍부터 기다리고 있던 장 순무는 재빨리 달려 나왔다.

“소 대인,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장 대인을 뵙습니다. 성상의 상을 직접 호송하라는 성은을 받고 왔습니다.”

젊은 사내가 말에서 내려 장 순무에게 인사했다. 준수한 외모, 날렵한 몸집, 그윽한 깊은 눈매. 뽀얀 먼지를 뒤집어썼지만 고결한 분위기는 감출 수 없었다.

관리들 틈에 서 있던 조운년은 사내의 모습을 조심스레 훑었다.

과연 피는 속일 수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약관에 불과한 이 청년은 황상에 의해 일등시위로 발탁되어, 상을 호송하는 일과 같은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고 들었다.

벼슬길에 뛰어든 지 십여 년이 지난 자신도 이제 겨우 종사품(從四品)에 올랐을 뿐이다. 그런 자신에 비하면 이자는…….

‘역시 소씨 가문 출신답군…….’

장 순무는 청년을 곧장 순무부로 안내했다.

* * *

순무 부인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은 채 금 부인과 목운요를 맞이했다.

“어서 앉게.”

그동안 순무 부인을 만난 건 두 번에 불과했지만, 자신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에서 한결 친근함이 느껴졌다.

“그동안 바빠서 하운방에 가 보지도 못했네. 목 소저는 많이 마른 것 같은데?”

“후후,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새 입맛이 없어서 제대로 챙겨 먹지 않아 그런가 봅니다.”

“아직 어린데 잘 먹어야지. 몸보신이 될 만한 음식을 만들어 보내라고 할 테니 잘 챙겨 먹도록 하려무나.”

“괜찮습니다, 부인.”

“목 소저를 아껴서 하는 말인데 괜찮다니. 부지런히 챙겨 먹으면 금세 괜찮아질 게야.”

그에 목운요가 재빨리 일어나 무릎을 굽히며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부인. 말씀해 주신대로 열심히 챙겨 먹겠습니다.”

두 눈을 반짝이는 아이를 보며 순무 부인은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담소를 나누며 반 시진이 지났을 무렵, 시녀가 허겁지겁 안으로 달려왔다.

“부인, 성상께서 내리신 상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나리께서 부인과 금 부인, 목 소저에게 앞뜰로 나와서 성지(聖旨)를 받으시라고 했습니다.”

“그래, 지금 나가도록 하마.”

자리에서 일어난 순무 부인이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금 부인과 목운요를 재촉했다.

“자, 두 사람 모두 서두르도록 해요. 오늘의 주인공들이니까.”

금 부인과 목운요는 순무 부인을 따라 앞뜰로 발걸음을 옮겼다.

앞뜰에는 향안(香案, 향로를 올려놓는 탁자)이 차려져 있었다.

장 순무를 필두로 수많은 관리들이 각자의 품계에 따라 향안 아래 나란히 섰다. 향안 위에 올려진 성지가 햇빛 아래서 눈부시게 빛났다.

“소 대인, 모두 모였으니 성상의 성지를 대독해 주십시오.”

장 순무의 외침에 목운요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상대의 모습에 벼락이라도 맞은 듯 제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향안 옆에 서 있는 청년은 우뚝 선 소나무를 연상시켰다. 단단한 체구, 붓으로 그린 듯 단정한 이목구비, 뜨거운 눈빛의 사내는 온몸에서 도도함과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다.

그런 사내의 모습에 목운요는 속에서 천불이 나는 것만 같았다. 마음속에서 타오르는 증오의 불꽃이 온몸으로 퍼져 눈동자에 이르렀을 때, 새까만 눈동자는 천 길 낭떠러지보다도 더 깊게 가라앉았다.

소청오. 소청오가 분명하다!

소청오는 소씨 가문의 가장 촉망받는 장손으로, 어린 나이에 일등시위로 파격 발탁된 인재였다.

회귀 전, 목운요는 소씨 가문의 큰 아가씨에게 복수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진왕의 침상을 차치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그리 칭송하던 소청오의 발길질에 시뻘건 피를 토해야만 했다. 더러운 것을 보듯 혐오감과 멸시로 가득한 그의 눈빛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했다.

그와의 악연은 또 있었다.

황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진왕이 불경 백 권을 손수 필사하려고 호국사(護國寺)로 향했던 때, 목운요는 진왕을 도와 그의 필적을 흉내 내 경서를 베껴 썼다.

하지만 소청오한테 들키는 바람에, 황제를 모욕했다는 죄로 매질을 당했다. 당시 회임한 상태였던 터라, 곤장을 맞은 목운요는 배 속의 아이를 잃고 말았다.

계획에 없던 아이였지만 그래도 그녀는 기대가 컸다. 그때 곤장만 맞지 않았더라면 평탄한 여생을 보냈을지도 몰랐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소청오가 그녀에 관한 대목을 읊기 시작했다.

“……목운요, 선행을 베풀었으니 족히 타의 모범이 될 만하다. 그 뜻에서 옥여의(玉如意)와 비단 열 필, 황금 백 냥을 내린다.”

간신히 원래의 침착함을 되찾은 목운요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장 순무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소청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소 대인,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런 뜻에서 조촐하게 술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품계로 따지면 장 순무가 소청오보다 위였지만, 그는 시종일관 겸손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성상의 총애를 받는 인물이라는 사실 말고, 소씨 가문 출신이라는 것만으로도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물며 고작 스무 살의 나이에 지금과 같은 자리에 올랐으니, 앞으로도 승승장구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장 대인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어서 드시지요.”

한데 장 순무의 권유에도 소청오는 제자리에 선 채로 시선을 주위로 돌렸다.

“소인, 개인적으로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경릉성에서 자수법을 전수해 준 목 소저가 여기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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