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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37화 (37/442)

37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 * *

오늘 선보일 옷은 총 두 벌로, 비 온 후 땅에 떨어진 꽃잎을 묻는 여인과, 말에 올라타 등불을 올려다보는 여인의 옷이었다.

전혀 다른 분위기의 옷을 걸칠 주인공들은 문관과 무관인 사내와 각각 혼례를 올린 쌍둥이 자매였다.

경릉 동지(同知)의 부인인 정열심(丁悦心)은 언니 쪽으로, 온화한 성품과 고운 자태로 유명했다.

반면 동생 쪽인 선무사(宣撫使)의 부인 정열람(丁悅嵐)은 다른 쪽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성격이 거칠 뿐만 아니라, 남장을 즐기는 괴팍한 성품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혼례를 올린 이후에도 그녀는 비단 치마나 고운 화장을 일절 거절했는데, 하운방에서 정열람에게 치마를 입히지 못한다면 큰 망신을 당할 게 뻔했다.

미인들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인파들 사이에서 채월각 담 씨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두 자매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며, 그의 입가엔 차가운 냉소가 피어올랐다.

“천둥벌거숭이 같은 년, 오늘에야말로 네 높은 콧대가 꺾이겠구나!”

정열람은 쉬운 상대가 결코 아니었다. 시비라도 붙으면 그 자리에서 채찍을 휘두르기 일쑤였다. 어쩌면 목운요가 오늘 채찍 맛을 제대로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목운요가 일 층으로 내려오자, 정열람의 손을 잡고 당부하는 정열심의 모습이 보였다.

“오늘은 좀 참아 보렴. 하운방의 주인은 겨우 열세 살이라고 하니 괜히 겁주지 말고…….”

하지만 정열람은 귀찮다는 듯, 손에 쥔 채찍으로 책상을 툭툭 칠 뿐이었다. 꽤나 거친 행동에 차를 대령하던 소녀들이 괜히 채찍에 맞을까 싶어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목운요는 호기심을 누르며 미소를 지은 채 두 사람에게 인사를 올렸다.

“부인들을 뵙습니다.”

정열심이 자리에서 일어나 목운요를 일으켜 세웠다.

“너무 예의 차릴 것 없어요.”

칠월 칠석 연회에서 목운요를 대하는 금 부인의 태도를 직접 보았다. 상대가 아직 어린 소저라고는 하지만 서로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는가?

반면 정열람은 아무 말 없이 목운요를 쓰윽 살폈다. 어떤 사람인지 슬쩍 볼 생각이었는데, 목운요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그녀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목운요의 눈빛은 산골짜기에 흐르는 시냇물처럼 투명했다. 다른 의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고요함과 평온함이었다.

그 눈빛을 마주하자, 짜증스럽던 기분이 저절로 가라앉는 듯했다. 계속 보고 싶었으나, 목운요는 자신을 향한 시선을 거둔 채 정열심에게 사근사근한 말투로 옷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비 온 후 땅에 떨어진 꽃잎을 묻는 여인의 옷은, 달처럼 연한 흰색 바탕에 겹겹의 분홍 꽃잎이 흩어져 있는 형태를 하고 있었다. 치맛단으로 내려갈수록 꽃잎의 색이 점점 진해져서 선홍빛을 띠었다.

색상이 화려하다는 것 빼곤 딱히 눈에 띄는 장식 하나 달려 있지 않았지만, 정열심이 걸치자 독특한 여운이 느껴졌다. 물 위에 비친 한 송이 꽃 같다가도, 바람에 흩날리는 능수버들처럼 한없이 가녀려 보였다.

정열람은 묵묵히 목운요를 관찰했다. 부드러우면서도 예의 바른 말투와 행동,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표정 모두 절로 어여쁘다, 귀엽다 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부인의 옷도 준비해 두었으니 절 따라오십시오.”

“목 소저, 잘 모르나 본데 전 화장을 좋아하지 않아요. 여인네들이 입는 비단 치마 같은 것도요. 내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그렸다는 도안은 무척 마음에 들지만, 거기 있는 옷을 입어야 한다면 거절하고 싶네요.”

“그 도안이 마음에 드셨다고 하셨으니, 제가 지은 옷도 분명 마음에 드실 겁니다. 본다고 해서 뭐가 닳는 것도 아니니, 한번 구경이라고 해 보세요. 그리고 누가 압니까, 남장보다는 여인의 옷을 입는 게 더 어울릴지 말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정열람의 미간이 구겨졌지만, 웃음기 가득한 목운요의 눈빛과 마주치자 여기서 화를 내 봤자 괜한 소란만 피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요, 그럼 구경하죠. 대신 딱 한 번만 볼 거예요. 마음에 안 들면 절대 입지 않겠어요.”

“예, 부인. 절 따라오세요.”

목운요가 정열람을 이 층으로 안내하려는데, 그 전에 정열심이 정열람의 손을 잡으며 연신 타일렀다.

“자꾸 화내지 마. 목 소저는 아직 어리니…….”

정열심이 목운요를 향해 민망한 듯 슬쩍 웃어 보였다.

“목 소저, 동생 성격이 좀 그래요. 소저한테만 그런 것이 아니니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그에 목운요가 정열심을 향해 예의 바르게 입을 열었다.

“저는 직설적인 성격을 좋아하는 편이니 그리 걱정 마세요. 부인, 절 따라 올라가시죠. 금란, 금교. 경릉 동지 부인을 잘 뫼시고 있으렴.”

정열람은 단호한 얼굴을 한 채 묵묵히 목운요의 뒤를 따랐다.

* * *

“옷의 형태가 흔히 보는 것과는 많이 다를 겁니다. 보시고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 있다면 바로 고쳐 드리겠습니다.”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대충하면 어찌 돈을 벌 수 있겠습니까? 사는 게 어디 쉽던가요? 때로는 보기엔 좋아도 실제론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지요. 이를테면 하운방도 지금 이름이 널리 퍼져 있지만, 제대로 된 옷을 짓지 못하면 몇 달 가지도 못해 경릉성에서 사라지고 말 겁니다.”

보기 좋은 게 반드시 좋은 게 아닐 수도 있다? 이 아이, 뭘 알고 있는 건가?

정열람은 홱 하고 고개를 돌렸지만, 목운요는 이미 옷걸이로 가서 옷을 꺼내고 있었다. 뼈가 있는 말은 아니었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자조 섞인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 일을 직접 겪지 않았다면 누가 그걸 사실이라고 생각하겠는가.

“부인, 옷은 어떠신가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정열람은 퍼뜩 정신을 차리곤, 목운요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봤다. 새빨간 색의 옷은 치마저고리도 아니고, 말을 탈 때 입는 기마복도 아닌, 두 가지 옷을 절묘하게 섞은 형태였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을 연상시키는 강렬한 색상에 눈이 절로 시릴 정도였다. 옷섶의 깃과 소매의 테두리에는 금사로 수놓은 목면화(木棉花)가 있어 전체적으로 화려하다는 인상을 풍겼다.

정열람은 그 옷에 마음이 뺏겨 자신도 모르게 걸어가 손을 뻗었다. 목면화를 만지작거리던 정열람이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이건 붉은색이 아니네?”

“대개 목면화는 붉은색을 즐겨 쓰지만, 금사를 쓰면 더 강렬하고 화려한 인상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하지만 황금 목면화를 사람들이 안 좋아하면 어떻게 하죠?”

그녀의 말은 뭔가를 넌지시 암시하는 듯했다.

“후후, 진정으로 꽃을 아껴 줄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한 거겠죠.”

그 말에 정열람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멋진 옷이네요. 마음에 들어요. 입는 걸 도와줄래요?”

“예, 부인.”

옷을 갈아입는 정열람을 지켜보며 목운요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천성적으로 이렇게 화려한 색상의 옷이 잘 어울리는 여인들이 있었다.

“이 옷은 부인만 소화하실 수 있을 것 같네요!”

붉은색은 무척 까다로운 색이다. 잘 입으면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황홀한 아름다움을 선사하지만, 잘못 입으면 강렬한 색채에 시선을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거침없으면서도 고고한 정열람이 붉은 옷을 걸치자, 마치 어둠을 뚫고 떠오르는 붉은 해처럼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거울로 옷매무새를 살피던 정열람의 눈썹을 손보자 평소보다 인상이 부드러워 보였다. 입술에는 장미꽃잎을 으깨서 만든 붉은 연지를 발랐다.

붉은 옷에 맞춰 단장한 자신의 모습을 정열람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찬찬히 뜯어봤다.

“이 옷, 볼수록 아름답네요!”

“부인께서 마음에 드신다면 앞으로 저희 가게에 자주 찾아와 주세요. 경릉 동지 부인께서 기다리시느라 애가 닳으셨을 테니 얼른 내려가시지요.”

“……좋아요.”

정열심은 아래층에서 금란과 이야기 중이었다. 그녀의 손짓, 몸짓, 그리고 눈짓 하나하나에 애틋함이 묻어났다.

“언니, 이제 가자.”

정열람이 상대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가게 문을 나섰다.

정열심은 동생의 낯선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 소저, 옷이 무척 마음에 들어요. 이건 옷값이에요. 동생은 옷값을 내지 않았죠? 제가 같이 낼게요. 어릴 때부터 워낙 덜렁거려서 부모님께서 하루도 걱정하지 않는 날이 없으셨답니다…….”

“내실 필요 없습니다. 선무사 부인께선 이미 돈을 치르셨습니다.”

“어머, 그래요? 이번에는 그래도 동생이 신경 썼나 보네요. 나중에 또 옷을 보러 올게요, 그럼 이만…….”

“안녕히 가십시오, 부인.”

손님들을 배웅한 후, 목운요가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그녀의 눈빛이 슬쩍 흔들리는가 싶더니 한 줄기 냉소가 비쳤다.

그때 금란이 차를 가져와 건넸다.

“이번에는 유독 신경 써서 옷을 지으신 것 같네요.”

“티가 나던가요?”

“금 부인과 조 부인들께서 입으신 옷도 물론 정성 들여 만든 것이지만, 선무사 부인의 옷은 무척 신경을 써서 지으셨다는 걸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어요. 다른 옷은 저희들이 도와드리기도 하지만, 그 옷은 소저께서 손수 한 땀, 한 땀 지으셨잖아요. 그걸 보면 소저께서도 그 옷을 무척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고요.”

“그 옷이 마음에 든 게 아니라, 그 옷을 걸친 사람이 마음에 드네요.”

목운요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선무사 부인이요? 경릉성에서 그분만큼 특이한 성격을 가진 여인이 없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남편이신 주(周) 대인께서 무척 난처해하셨다고…….”

목운요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싶어 금란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람들은 선무사 부인의 겉모습만 보고 입방아를 찧을 뿐, 왜 그렇게 되었는진 알지 못하죠.”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건가요?”

“부인께서는 날 때부터 남장을 즐기셨던 게 아니에요. 혼례를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갑자기 저리되신 거죠.”

한 사람의 성격을 백팔십도 바꿀 정도의 일이라면, 어디 가서 함부로 말 못 할 사연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이 남편이신 주 대인을 동정하는 이야기를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미인을 얻을 줄 알았는데 혼례를 올리고 보니 사내 같은 여인을 얻었다고……. 선무사 부인께서 엄격한 가정 교육 때문에 출가하시기 전에는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지 못했다가, 출가한 후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남장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며…….”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눈을 믿죠. 하지만 눈이 사람을 속일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해요.”

이 이야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은 듯, 목운요는 이내 표정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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