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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36화 (36/442)

36화 중상모략

의자에 앉은 목운요는 눈을 들어 소녀들을 쭈욱 훑었다. 싸늘한 것도 모자라 위압감마저 느끼지는 그 눈빛에 소녀들은 꽤나 놀란 눈치였다.

“전 장사꾼인 데다 빈천한 출신이라서, 여러분 중에서 절 마뜩잖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두 달 동안 여러분에게 수놓는 기술을 정성껏 가르쳐 드렸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고 생각하는데, 여전히 불만인 사람들이 있나 봅니다.”

그 말에 금추와 금국의 낯빛이 눈에 띄게 변하더니, 급기야 고개까지 푹 숙였다.

한편 다른 소녀들은 난데없는 이야기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 쳐다만 볼 뿐이었다.

사실 목운요를 도와주라며 이곳으로 보내졌을 때만 해도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한테서 자수법을 배우게 된 뒤로, 앞으로 밥 굶을 일을 없을 거라며 다들 크게 기뻐했었다.

그런데 얼음장처럼 싸늘하게 식은 목운요의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일이 나도 단단히 난 게 틀림없었다. 저러다가 자신들도 하운방에서 쫓겨나는 것은 아닌지 내심 겁이 나기도 했다.

“소저께서 자수법을 전수해 주신 건 항시 감사하다고 여기고 있어요.”

“예, 소저가 저희에게 얼마나 잘해 주셨는데요? 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답니다.”

그 말에 가볍게 웃음을 터뜨린 목운요의 시선이 금추와 금국에게 떨어졌다.

“두 사람도 같은 심정인가요?”

금국은 잔뜩 겁을 먹곤 목운요를 차마 쳐다보지도 못했다.

한데 그때였다.

“목 소저, 지금 저희를 중상모략하는 건가요?”

금추가 가시 돋친 대답을 토해 냈다.

그녀가 이렇게 대담하게 나설 수 있는 것은, 그녀의 어머니가 금 부인의 오래된 몸종이기 때문이었다. 설사 목운요와 사이가 틀어진다고 해도 여차하면 조부로 돌아가면 그뿐이다. 여기에 자신이 조금 ‘양념’을 치면 손해를 볼 사람이 누군지는 불 보듯 뻔했다!

앙칼진 금추의 작태에 육냥의 미간에 한 줄기 살기가 드리워졌다

손을 들어 이를 막은 목운요가 나지막한 웃음을 터뜨렸다.

“중상모략? 그럼 지난 며칠 동안 채월각에 간 적 없다는 건가요? 아니면 내가 가르쳐 준 자수법을 다른 사람한테 팔아넘긴 적 없다는 건가요?”

“그런 적 없어!”

금추가 뻣뻣하게 굳은 얼굴로 강하게 부인했다.

“내가 여러분에게 가르쳐 준 건 그냥 바느질이 아니라, 우리 가문에서만 내려오는 비기예요. 경릉성은 물론, 강남땅 어디에서도 이런 자수법은 찾을 수 없죠. 그런데 어젯밤에 채월각에서 선보인 소녀들이 내가 가르쳐 준 자수법으로 지은 옷을 걸치고 있더군요.”

“흥,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관련됐다는 증거가 없잖아! 당장 이 자리에도 사람이 이리 많은데, 누가 실수로 흘렸을지도 모르고.”

“그럼 손을 내밀어 봐요.”

그 말에 금추는 깜짝 놀라더니, 손을 허겁지겁 소매 안으로 감췄다.

“뭘 하려는 거야?!”

“복잡한 문양을 수놓을 때면 아직 서툴러서 그런지 항상 바늘에 손을 다치더군요. 최근 두 사람에게 옷을 지어 달라고 하지 않았으니, 손에 상처 하나 없어야 할 거예요. 무고하다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손을 꺼내 봐요!”

그러자 금추가 낭패한 표정으로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이는 잠시에 불과했다. 곧 그녀가 독기 서린 눈을 빛냈다.

“자수법을 가르쳐 줬다고 해서 이렇게 사람 무시해도 되는 거야? 날 마뜩잖게 여기고 있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 그렇다면 우리도 더 이상 여기에 머물지 않겠어. 여기가 아니면 어디 갈 데가 없을 줄 알고?!”

금추는 씩씩거리며 뒤돌아서서 문으로 향했다. 그러나 문에 도착하기도 전에 눈앞에 서늘한 빛이 번쩍 스치는가 싶더니, 날카로운 검날이 목덜미에 드리워졌다.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함부로 검을 들이대는 거냐? 난 금 부인의 사람이야. 날 건드린다면 금 부인께서 널 가만히 둘 것 같아?!”

이에 금란이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금추를 다그쳤다.

“금추, 소저께서 자수법도 가르쳐 주시고 우리에게 잘 대해 주셨는데, 이게 무슨 배은망덕한 짓이야? 설사 금 부인께서 이 일을 알게 되셔도 네 편을 들지 않으실 거라고!”

“어디서 감히 날 가르치려 들어?! 우리 어머니는 금 부인을 어릴 때부터 모셨단 말이야! 하긴, 거간꾼에서 사 온 근본도 알 수 없는 네년이 그런 걸 알 리가 없지.”

그 말을 듣고 있던 목운요가 냉기가 뚝뚝 묻어나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금란, 뺨을 때려.”

“내 몸에 손가락 하나 대기만 해 봐!”

금추가 분을 삭이지 못한 듯 씩씩거렸다.

반면 금란은 심장이 벌렁거리고 손바닥은 식은땀으로 축축이 젖어 갔다. 여태껏 누구한테도 손찌검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가씨의 분부를 따르지 않는다면 앞으로 아가씨를 옆에서 모시지 못할 것이 자명했다.

이내 결심한 금란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짜악!

경쾌한 소리가 숨 막힐 듯한 정적을 갈랐다.

목운요는 의자에 기댄 채 싸늘한 표정으로 고갯짓을 했다.

“계속해.”

얼떨결에 한 대 얻어맞은 금추가 그제야 정신이 든 듯 목운요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감히 날 때려? 두고 봐, 지금 이 빚을 백배로 갚아 줄 테니!”

마구 날뛰는 금추를 향해 금란은 아까보다 더 세게 뺨을 갈겼다. 뺨 때리는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옆에 있는 금국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할 정도였다.

얼마 안 가 금추의 양 볼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마음속 분노는 육냥에 대한 두려움을 눌렀다. 금추가 금란을 힘껏 밀어내더니, 목운요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에 육냥은 잽싸게 금추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홱 하고 나가떨어진 금추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피를 토하며 문가에 추욱 하고 늘어졌다.

목운요는 여전히 서늘한 눈빛을 한 채 금란에게 지시를 내렸다.

“가서 손에 바늘에 찔린 상처가 있는지 확인해 봐요.”

금란은 떨리는 가슴을 부여안고 금추에게 다가갔다.

“소저의 말씀이 맞네요. 손에 바느질하다 생긴 자국이 여러 개 있어요.”

“내가 엉뚱한 사람을 잡진 않은 모양이네요?”

목운요가 금국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내게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요, 금국.”

“소저, 잘못했습니다! 돈에 눈이 멀어 소저께서 알려 주신 자수법을 채월각에 팔아넘겼어요. 부디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그러지 않을 테니 제발 용서해 주세요!”

금국은 무릎을 꿇더니 목운요를 향해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빌었다. 방금 전 금추의 모습에 겁을 집어먹은 듯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선 두 사람 다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지만, 어머니께서 놀라지 않도록 금국만은 살려 주죠. 육냥, 두 사람을 금 부인께 데리고 가. 매매 계약서도 꼭 챙겨 가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자신이 아는 현명한 금 부인이라면, 두 사람을 돌려보낸 걸 보고 내 생각을 파악했을 것이다.

목운요가 매매 계약서를 건네는 모습에 소녀들의 낯빛이 새파랗게 질렸다. 사실 금추를 대하는 목운요의 태도에 소녀들은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은 어쨌든 금 부인을 모시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운요가 자신들의 매매 계약서를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매매 계약서를 쥐고 있다는 건, 자신들의 목숨까지도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것과 진배없었다. 지금 당장 목운요가 자신들을 때려죽인다고 해도 그녀를 탓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목운요의 시선이 소녀들을 스치자, 모두들 일제히 제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소저, 저희는 아가씨에게 면목 없을 짓은 결코 하지 않았어요. 부디 굽어살펴 주세요!”

일벌백계하려던 목적도 달성했으니, 계속해서 소녀들을 겁줄 필요도 없어졌다.

“이걸 보면 알겠지만, 금 부인께서 여러분의 매매 계약서를 제게 주셨어요. 제가 여러분의 주인이라는 뜻이죠. 하지만 예전에 여러분에게 약조한 대로, 옷 한 벌을 지을 때마다 열 냥을 주겠다는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하답니다.”

“감사합니다, 소저!”

“괜히 겁먹을 것 없어요. 전 상벌이 분명한 사람이에요. 무슨 일이든 저랑 먼저 상의하고, 혹여 날 배신할 생각이라면 금추와 금국의 말로를 떠올리도록 해요. 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요. 오랫동안 가게 문을 닫았으니 이젠 열어야죠. 육냥은 두 사람을 데리고 나가.”

“예, 주인님.”

* * *

해야 할 일을 모두 지시한 후, 목운요는 금란과 함께 준비된 옷을 보러 이 층으로 향했다. 더 꾸물거리다가는 아까부터 기다리던 부인들한테 큰 결례를 범하는 셈이 된다.

같은 생각으로 바삐 발걸음을 옮기던 금란이 이 층 방문을 열어젖혔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녀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멍하니 제자리에 멈춰 섰다.

“소, 소저…….”

금란의 놀란 목소리에 목운요는 심상치 않은 일이 터졌다는 걸 직감했다. 급하게 안으로 들어가니 양탄자 위에 어지럽게 찍혀 있는 발자국이 보였다. 신발 크기로 봐선 사내의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한 명도 아닌 두 명이었다.

불안한 표정의 금란이 목운요 옆으로 허겁지겁 달려왔다.

“소저, 관아에 고발해야 할까요?”

만들어 놓은 옷을 자세히 살피니 다행히 옷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처음에는 채월각 담 씨가 옷을 훔쳐 오라고 사람을 보낸 줄 알았다. 하지만 옷이 멀쩡한 걸 보면 그건 아닌 듯했다.

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목운요는 방 안을 다시 둘러보았다. 창가 주변에 발자국이 점점이 남아 있는 걸 보면 창문을 통해 들어온 것 같았다.

“가게에서 없어진 게 있는지 샅샅이 살펴보도록 해요.”

“예, 소저!”

* * *

가게를 전부 살핀 금란이 빠르게 다가왔다.

“소저, 없어진 건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칠월 칠석 때 소저께서 벽에다 걸어 두셨던 시구가 보이지 않아요.”

시구를 적은 종이 한 장만 없어지다니? 돈도, 옷도 그대로 두고 시구만 훔치는 도둑이라……. 그런 이야기는 난생처음 들어 봤다.

그사이 아래층에 손님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자, 목운요는 잠시 그 일을 잊어 두기로 했다.

“손님들이 오셨네요. 잠시 뒤에 부인들께서 여기로 오셔서 옷을 입어 보실 테니 이곳부터 정리해 두세요. 어쩌면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더럽혀진 양탄자는 버리지 말고요.”

“예, 소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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