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짜 서점에서 흑막 바보로 살아남기 (2)화 (2/120)

# 1화

왕국 아리오의 수도 얼숍에는 ‘잡동사니의 길’로 불리는 뒷골목이 있다.

잡동사니의 길.

이름마저 흥미로운 그 구역은 사람들의 주된 관심거리가 되지 못하는 것들을 파는 길, 예술가들이 많이 모인 길, 온갖 괴짜들이 모인 길이다.

그리고 그 길의 어느 중간에, 한 화가의 집이자 작업실인 건물이 있었다.

빈말로라도 성공한 화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열정 없고 재능도 없는 화가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이 길의 많은 예술가가 그러하듯 열정 있고 재능 있으나, 무명으로 더 버틸 돈이 없었다. 그것은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 길에 머무는 몇몇 성공한 화가들을 보며 자존심과 자존감이 굽어들고, 그는 점점 꺾였다. 수년의 실패와 캄캄한 앞날로 인하여 완전히 실의에 잡아먹히기 직전이었다. 

그는 그렇게 잡동사니의 길에서 자진으로 삶을 마감한 많은 예술가 중 하나가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느 날, 화가는 얼굴이 확 편 채로 행복해 죽을 것 같다는 듯 웃으며 길을 떠났다.

“여기를 팔았어. 이제는 다른 데에 가서 좀 여유 있게 그려 볼 생각이야. 적어도 지금은 마음이 즐거워.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좋은 걸 그릴 수 있을 것 같아.”

돈이 생겨서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는 뜻과 다름없었다. 작품 활동을 마음 편하게 이어갈 수 있으리라고, 화가는 희망에 찼다.

여유 없이 죽어 가던 사람이 확 피어날 수 있을 정도의 돈은, 도대체 얼마일까.

잡동사니의 길 거주자들은 궁금해하고, 부러워하고, 조금은 안타까워하면서 화가를 전송했다.

다음 날.

한 여자가 불쑥 나타났다.

여자는 화가가 매도한 작은 건물의 문을 활짝 열었다. 아, 그렇군. 아마도 화가에게 새로운 마음을 선사해 준 사람일 것이다. 그쪽을 지켜보던 예술가들은 그렇게 짐작했다.

현관 앞에 서서 안을 조용히 들여다보던 여자는 두 어깨를 올렸다가 푹 내리고는 결연하게 말했다.

“좋아.”

그때까지만 해도 여자, 위즈 스미스는 평범하게 보였다.

……평범했다면 좋았을 것을.

위즈가 나타난 날을 떠올린 사람들은 아련하게 먼 하늘을 보게 되었다. 

새 정착자가 위즈에 대해 물어보면 무언가 먼 옛날의 훈훈한 이야기를 하듯 ‘그땐 그랬지. 그땐 좋았지…….’ 하고 꼭 아련해졌다.

“위즈! 네가 우리 애를 극심한 우울의 늪에 빠뜨린 거냐! 또!”

“손님이 누구신지는 모르겠고 그 옆의 손님도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혹시 지칭하신 ‘우리 애’가 그 옆의 손님이시라면, 그 ‘우리 애’는 적어도 쉰 살은 된 것처럼 보입니다.”

“위즈 이 자식 또 날 잊었어! 그리고 인마, 얘는 이 길에 온 지 이제 한 달인 신인이야! 애라고 해도 상관이 없다! 나는 이 녀석을 잘 보살펴 주기로 마음먹었어!”

“그런 마음 먹기 전에 손님의 머리칼부터 잘 보살펴 주기로 마음먹지 그러셨어요. 탈모가 온 지는 얼마나 되었습니까? 사십 년?”

“……야, 이 개…….”

마흔 살의 공예가는 이렇게 격파당하고.

“아니, 그보다 난 쉰 살이 아니라 스무 살…….”

“아, 죄송합니다. 예순 살이라고 해서.”

“……열 살 늘었어! 죄송하다며!”

스무 살의 화가는 저렇게 격파당하기가 일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뒷목을 잡게 되거나 가슴에 깊은 상처를 안게 되면서도 위즈를 찾아오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위즈가 이 길에 들어온 지 삼 개월 만에 이룬 성과였다. 괄목할 만했다.

그러나 위즈는 그저 순진한 얼굴로 사람을 후벼 파는 능력만 가진 백수는 아니었다.

화가에게서 구매한 건물에 서점을 차리고 운영하는 어엿한 자영업자였다. 웃긴 건, 그 서점에서는 책을 팔지도 빌려주지도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게 과연 서점인가 하는 원론적인 의문은 차치하더라도, 도대체, 어떻게 먹고사는 건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 작은 서점이 잡동사니의 길에 어떠한 괴리감도 없이 섞여들 수 있었던 것은 그런 괴짜감이 충만한 덕분이기도 했으며, 서점이 보유한 서적들이 입 떡 벌어지게 희귀한 덕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괴리감이 없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그 서점의 주인인 위즈였다.

나날이 새롭게 바보라서.

그리고 그 바보에게 당해 매번 눈물 쏙 빼고 정신의 목숨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잡동사니의 길 거주자들은 더 바보였다.

그것이 위즈가 서점을 차린 이래 1년 6개월간 이어져 온 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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