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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서점에서 흑막 바보로 살아남기 (1)화 (1/120)

# 0화

대륙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제국인 온느발레에서 사건이 터졌다.

로헤올령에 다녀오던 뮌제 로헤올 공작과 그녀의 수행원들이 사라진 것이다.

그들은 수도에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수도 로헤올 저택에서 로헤올령에 연락을 해 보았지만, 그녀가 이미 2주 전에 수도를 향해 출발했다며 로헤올령의 가신들이 도리어 황망해했다.

설마 그 뮌제 로헤올에게 무슨 일이 있었겠느냐 하며 상황을 지켜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었다. 수도에 머무르고 있던 뮌제 로헤올의 동생인 윌리엄 로헤올이 황제의 앞으로 나아가서 고했다.

‘뮌제 로헤올이 사라졌습니다.’

그제야 수도의 귀족들은 뮌제 로헤올의 실종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공작의 가문인 로헤올이 기민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수색을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가주가 사라진 로헤올이 잠잠하니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로헤올 공작을 찾는 게 절박한 사람이 황도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수색은 그 공표일 당일에 시작되었다. 상황을 파악한 에흐베 대공국 군주의 지시로 조용하게.

그는 오래도록 뮌제 로헤올의 절친한 친구인 사람이었다.

타국의 기사들이 온느발레를 수색하는 걸 온느발레의 황제가 허가할 리도 없고, 그렇게 했다가는 제약이 많을 것을 알았기에 라파엘 에흐베는 제 기사들을 조용히 움직였다. 그리고 그 역시 직접 움직였다.

그러다 대공보다 앞서 있던 그의 기사들이 먼저 어딘가를 찾아냈다.

뮌제 로헤올 공작이 일행과 함께 지났을 길 중 반드시 지났을 법한 산길이었다.

그간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아 아직 보존되어 있던 현장을 본 기사들은 말을 잃었다.

이것을 저희 주군에게 어찌 보고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심정이었다. 너무 처참해서. 너무 지독해서. 그들은 대공과 공작 사이의 각별함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뻣뻣하게 굳은 손으로 마법이 담긴 아티팩트를 기동했다. ‘마법 혹은 아티팩트에 의한 변고가 있었던 것 같다.’ 보고를 받은 라파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읽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로부터 오 분도 지나지 않은 때.

대공은 그 산길에 서 있었다. 에흐베의 드비에 성에서 이 산길까지는 국경을 넘고서도 말을 달려 이틀 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오 분만에 이곳에 있었다.

“…….”

도착한 자리에서 몇 걸음 나아간 그는 멈춰 섰다.

눈앞을 물들인 현장을 보고, 보고, 보았다. 아주 잠시, 숨을 쉬지 못했다.

그의 오랜 친구가 폭사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현장이었다.

푸른 산길.

이미 산화되어 검게 변해 버린 핏자국.

피 웅덩이. 아직 물들어 있는 길.

갈기갈기 찢긴 육신의 잔해. 피 묻고 그을린 채로 나무 기둥에 꽂혀 있는 검.

라파엘의 연회색 눈동자는 그 모든 것을 넓은 시야로 한 번에 받아들였다. 최소한 한 생명 이상이 반드시 숨졌을 게 분명한 현장이었다. 이곳에서 분명 누군가가 죽었다.

“……전하.”

그의 기사가 조심스럽게 그를 불렀다. 라파엘이 너무 긴 시간 한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공 라파엘은 그 부름을 듣지 않은 것처럼 걸음을 옮겼다.

닦인 길을 벗어나, 비탈길에 서 있는 나무 앞에 그는 섰다. 검 하나가 꽂힌 나무였다.

라파엘의 시선은 기도처럼 검을 훑어갔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검은 장갑을 벗었다. 수분 없이 건조하게 마른 손끝의 살갗이 느리게 검의 손잡이를 스쳤다. 나아간다. 감쌌다. 이것에 남아 있을 수가 없는 체온을 찾고자 절박한 손길이었다.

“…….”

잠시 가만히 있던 대공은 나무에서 검을 빼냈다.

이것은 그가 친구에게 선물하였던 검이다.

검을 잡은 라파엘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검에 묻은 마른 피를 내려다보고 있던 눈을 들었다.

감정이 아예 말살된 듯 무표정한 얼굴이 비탈길의 끝을 향했다. 그렇게 위를 보고 있던 대공은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들었다. 이 숲의 모든 녹색이 우수수 부딪히는 쓸쓸한 소리를.

그림자 진 라파엘의 눈동자는 비로소 흔들렸다.

뮌제 로헤올. 연회색 눈동자. 금색 머리칼. 찬란한 웃음. 느긋한 휴식. 오후. 고즈넉한 평온.

그의 평온.

“…….”

그의 심장.

그의 생명.

그의 숨.

친구의 것과 같은 연회색 눈동자가 아주 잠시 초점을 잃었다. 그는 다시 검을 내려다보았고, 곧 그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가 풀렸다.

가슴이 아프게 뛰었다.

검을 잡은 채로 비탈길을 내려온 대공은 ‘현장’이라 할 산길을 조금 더 보다가 몸을 돌렸다.

* * *

시신 없는 장례식에 그는 참석했다.

누이를 잃은 게 분명해진 즉시 새 로헤올 공작이 된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윌리엄 로헤올. 그 시선을 조용히 마주하던 대공은 이내 고개를 돌렸다.

라파엘은 잘 꾸며진 관을 다시금 보았다. 관을 응시하는 그의 연회색 눈에는 일말의 애정도, 슬픔도 없었다. 그는 관 앞에 헌화하는 내내 약간의 고통도 내보이지 않았으며, 심지어 오래 머물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평소 뮌제 로헤올과 특별히 가깝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가 보이는 그런 모든 모습이 고통을 억누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 느낌이 사실이든 착각이든 간에.

성으로 돌아온 대공은 가장 먼저 겉옷에 단 흰 꽃부터 뜯어냈다.

그가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리자, 그의 보좌 두 사람은 흠칫 몸을 떨었다. 두 노련한 보좌는 눈을 굴려 대공의 안색을 살폈다.

쓰레기 가장 위에 버려진 꽃은 엉망이었다.

에흐베 대공은 존귀한 자를 추모하기 위해 선택된 꽃을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솜브헤를 다섯으로 나눠야겠다.”

냉철하게 서리 언 말이었다.

대공이 가진 정예 기사단을 다섯으로 나누라? 너무도 갑작스러운 명령에 보좌 하나가 눈을 깜박였다.

“예?”

“로헤올 공작을 찾아야 한다.”

“……전.”

전하.

목이 메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침을 튀기듯 발음을 끝낸 입이 절로 닫혔다.

이제 전 공작이 된 고인과 그녀의 수행원들은 처참하게 폭사하였다. 몸 안에서 아티팩트가 기동한 것처럼 육신이 갈기갈기 찢겨서 초목 여기저기에 걸쳐져 있었다고 하였다. 이파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내장마저도 온전치 못하게 조각나 있었다고.

한데, 찾으라니.

그 내장 조각들을 모으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살점들을 모으라는 것도 결코 아닐 것이다.

혹시 절친한 친구의 죽음에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으신 건가 하여 심각하게 걱정이 되었다.

할 말을 찾지 못한 보좌들에게 라파엘은 말했다.

“그 사람은 죽지 않았다.”

두 보좌는 이를 악물었다.

친구의 죽음을 부정하는 왕의 모습에 심장이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공의 정신을 염려하는 말을 감히 꺼낼 수는 없었다. 설령 주군이 실로 미쳤다고 해도 아랫사람들은 그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들은 검은색 일색인 차림으로 꽃만을 바라보는 대공에게 예를 갖추었다.

보좌들이 떠난 집무실에서 라파엘은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러다 그는 문득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고개를 들었다. 창문 밖을 보았다.

넌 죽지 않았어.

청명한 바깥을 눈에 담으며 라파엘은 얼어붙은 이성으로 생각했다.

넌, 죽지 않았어.

네가 죽었을 리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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