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룡의 주인-16화 (16/70)

16. 추적2016.04.24.

희나리가 도하에 도착한 것은 늦은 밤이었다. 그녀는 기다리고 있던 병사들에 의해 관아로 안내되었다.

도하 목사가 친히 교룡을 맞이했다. 희나리는 다른 두 교룡이 묵고 있는 객사로 향하며 도하 목사로부터 낮에 흑룡강에서 있었던 전투에 대해 들었다.

목사가 침을 튀겨 가며 그 광경을 묘사할수록 그녀의 눈이 가라앉았다.

객사의 마루에 걸터앉아 약과를 물고 있던 야로가 그녀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희나리는 목사를 보내고 소년에게로 다가갔다.

“팔자가 늘어졌구나.”

“므어라고?”

입 안 가득 약과를 문 채 야로가 눈을 부라렸다. 희나리는 걸머지고 있던 천으로 싼 창을 내팽개치듯 내려놓았다.

그녀는 마루에 올라앉아 무릎에 고개를 파묻었다. 야로가 급하게 약과를 삼켰다.

“아, 목 막혀. 너 왜 그래? 어디 아파?”

“넌 만사가 단순해서 좋겠네.”

“왜 오자마자 대뜸 시비야?”

“마니랑 여울 놓쳤다며?”

“어…… 음.”

야로는 입을 꾹 다물었다.

소년을 가만히 보고 있던 희나리가 품에서 비늘을 꺼내 던지듯 건넸다. 야로는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 들었다.

“그거 느루 비늘이야.”

“뭐? 으웩!”

야로는 더러운 것을 만졌다는 듯이 오만상을 찌푸리더니 비늘을 던져 버렸다. 희나리가 떨어지는 것을 도로 잡아챘다.

“마니건 여울이건, 죽여도 된다는 명이 떨어졌어. 마니가 죽었을 경우엔 비늘로 느루를 부르라더라.”

희나리는 다시 비늘을 건넸다. 야로는 그것을 받지 않고 멍하니 쳐다보았다.

“네가 가지고 있어. 나나 온은 붙어서 싸우다 부러뜨릴 수도 있으니까.”

“어…… 내가?”

“마니가 죽으면 부러뜨려.”

야로는 꿀꺽 침을 삼키더니 비늘을 받았다. 소년은 못마땅하게 비늘을 내려다보았다.

“……다 죽여 버릴 각오로 싸우겠다는 거야?”

“그럼? 어쩌려고? 봐주면서 싸워서 사로잡는 게 가능한 상대야? 아니잖아? 듣자 하니 장난이 아니던데?”

쏘아붙이는 그녀의 말투가 날카로웠다. 야로가 시선을 피하며 우물거렸다.

“그래도, 여울도 우리한테 살수는 안 펼쳤다고. 너까지 왔으니까, 적당히…….”

“착각하지 마, 야로.”

희나리가 벌떡 일어났다. 야로가 화들짝 놀라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희나리는 서늘한 눈으로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문득 입술을 깨물었다.

“넌, 지금 이 일이 장난 같아? 그냥 좀 큰 소동 정도로 느껴져?”

“응?”

“그래, 너야 그럴 수도 있겠지. 네 보주는 화련공주니까! 걔는 세자의 동복누이이고, 왕이 총애하는 딸이니까!”

“어, 어어? 무슨 뜻이야?”

희나리는 비웃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녀가 야로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렸다. 소년의 작은 몸이 달랑거리며 끌어올려졌다.

야로는 당황해서 제 멱살을 잡은 그녀의 손을 움켜쥐었다. 희나리가 그를 노려보았다. 검은 눈이 어둡게 일렁였다.

“네 보주야 어지간하면 마니가 될 일이 없지. 그걸 아니까 네가 이렇게 태평하게 구는 거 아니었어?”

“태평하다니, 난…….”

“나나 온의 보주는 세자에게 없는 게 나은 이복형제들이야. 지금의 마니가 죽는다면 둘 중 하나가 마니가 되겠네. 네 보주는 안전해. 그래서 여울을 동정할 여유가 있는 거구나, 그렇지?”

야로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소년은 거기까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야로가 정신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그런 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희나리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그녀의 눈시울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럼 넌, 왜 필사적이지 않아? 난 불안해서 미칠 것 같아! 죽이든 뭐든 빨리 처리하고 보주 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사정 봐줄 틈 따윈 없어! 이건 그런 일이야! 나는!”

“희나리. 그만해라.”

불쑥 끼어든 손이 야로의 멱살을 틀어 쥔 희나리의 손 위에 올려졌다. 온이었다.

희나리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더니 손에서 힘을 풀었다. 야로가 마루 위에 나동그라졌다.

소년은 희게 질려서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온이 낮게 혀를 찼다. 희나리가 소매로 눈가를 문질렀다.

“나는…….”

그녀의 숨이 거칠었다. 온이 그녀의 어깨를 쥐었다.

“알아. 들어가서 좀 쉬어. 피곤하겠다.”

희나리는 이를 악물더니 몸을 돌렸다. 그녀가 객사의 방으로 향했다. 그녀의 뒷모습이 문 너머로 완전히 사라졌다.

온은 그제야 야로를 돌아보았다. 야로는 히끅 대고 있었다.

“아냐, 그렇게 생각한 건…….”

온은 울먹이는 소년 곁에 앉았다. 그가 소년의 머리를 토닥였다. 야로는 울음을 터트리며 그의 품에 파고들었다.

“난, 몰랐단 말이야…….”

온은 현재의 교룡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았다. 그는 저보다 한참 어린 이무기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가만 기다려 주었다.

야로의 울음이 잦아들자 그가 낮게 말했다.

“야로. 마니까지 죽여도 된다는 명이 떨어졌으니, 나는 그럴 각오로 싸울 거다. 못 견디겠으면 돌아가.”

“도, 돌아가라고?”

“네 보주는 나머지 왕족들이 다 죽기 전에는 마니가 될 일이 없으니까 괜찮아.”

“그런, 건. 비, 비겁…….”

야로가 코를 훌쩍였다. 온이 소년의 이마를 가볍게 때렸다.

“아!”

“각오도 안 선 녀석이랑 같이 싸우는 게 더 방해된다.”

“하지만.”

“죽일 각오로 싸워도 힘들어.”

온이 먼 곳에 시선을 두었다. 그가 속에서부터 치민 한숨을 토해 냈다.

“여울이 생각보다 강해. 마니를 지켜야 한다는 제약이 있는데도 그 정도였잖아.”

“……그건, 그렇긴 해. 예전보다 더 세진 것 같아.”

“밖을 떠돈 게 11년이니, 많은 일이 있었겠지. 어쨌든 마니 위주로 악착같이 노리면 어찌 되긴 할 거다.”

“그럼 더더욱, 나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야……?”

“이제부터 손속에 여유를 둘 수가 없어. 물가에서의 싸움은 되도록 피해야 할 것 같고. 여차하면 병사들도 동원할 거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작정이니까.”

야로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온은 그를 응시하며 덧붙였다.

“네 손으로 여울의 목을 벨 각오가 없으면, 빠져.”

야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온은 소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는 일어났다. 그가 야로를 두고 제 방으로 돌아갔다.

야로는 새벽녘이 되어 하늘 끝자락이 밝아 올 때까지 마루에 앉아 있었다.

자고 일어난 희나리는 문을 열고 나오다가 오도카니 앉아 있는 소년을 보고 흠칫 놀랐다.

그녀는 문틀을 잡은 채 서서 한참을 망설였다. 소매로 눈가를 문지르고 길게 한숨을 쉰 다음 야로에게 다가갔다.

“어제는, 미안.”

야로는 돌아보지 않았다. 희나리는 동그란 뒤통수를 내려다보았다. 잠시 그러고 있던 그녀가 몸을 돌리는 순간 야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쁜 건 여울이지?”

“……그는 나쁘지 않아.”

야로가 휙 고개를 돌렸다. 발갛게 부은 눈두덩이 눈에 띄었다.

“출발하기 전에 희나리 너, 여울한테 화났다고 했었잖아.”

“그래, 화가 나고, 잘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희나리가 야로의 옆에 앉았다. 그녀는 우물처럼 깊은 눈으로 소년을 보았다.

“내가 여울의 입장이라면 나도 그런 짓을 했을지도 몰라. 내 보주가 마니였다면…….”

두려운 가정이었다. 야로가 부르르 떨었다. 희나리는 나직이 속삭였다.

“그러니까 나쁜 건 아니야. 어쩔 수 없을 뿐이야. 우리도, 그도. 서로보다 각자의 보주가 중요하니까.”

야로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거, 짜증 나.”

“그러게.”

희나리가 쓰게 웃었다. 야로가 말간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야로는 밤새도록 쥐고 있던 느루의 비늘을 들어 보였다.

“각오할게.”

소년은 하룻밤 사이에 조금 자란 것처럼 보였다. 희나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희나리는 조그만 이무기의 머리를 당겨 품에 안았다. 야로는 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옷깃을 쥐었다.

*

교룡들이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여울과 마니를 태워 간 배의 정체였다.

항구를 전부 뒤져서 배를 팔았던 자를 찾아냈다. 심부름꾼을 통해 어음도 아니고 은자 무더기로 당일 구입된 배였다.

수소문 끝에 알아낸 심부름꾼을 닦달했으나 그가 구매자를 만났다는 객잔에는 그런 투숙객이 없었다. 일부러 다른 객잔에서 사람을 쓴 게 틀림없었다.

“여기서 막히다니. 어떡하지?”

희나리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가만히 생각하던 온이 고개를 들었다.

“저 정도 급전을 어음도 아니고 현금으로 냈으면, 굉장히 부유한 자겠지.”

“당연하잖아?”

“그럼 고급 객잔에서 머물지 않았을까? 그 정도 손님이면 눈에 띌 것 같은데.”

“일리 있네. 가 보자.”

교룡들은 도하 목사의 도움을 얻어 도하에서 가장 비싼 객잔을 알아냈다. 큰 기대 없이 방문한 첫 번째 객잔에서 의외로 바로 단서가 나왔다.

객잔의 주인은 상대가 교룡들이란 말에 겁에 질려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장기 투숙 예정인 방이 있었습니다. 대금도 한 달 치를 미리 치렀고요. 그런데 급하게 방을 빼야 한다면서 남은 대금은 위약금으로 가지라고 하더군요.”

“무지하게 통 크네. 누군데?”

희나리의 물음에 객잔주가 굽실거렸다.

“소청화라는 여자입니다. 금산 상단 아십니까? 거기 어린 계집애가 비서 노릇 깐깐하게 하는 걸로 유명하거든요. 그 여자였습니다. 그 여자는 금산 상단 대행수의 측근이니 아마도 대행수가 직접 머문 게 아닐까 싶습니다요.”

“금산 상단?”

희나리가 갸웃거리며 온을 돌아보았다. 온도 고개를 저었다. 궐에서만 살아온 그들이 궐 밖의 상단을 제대로 알 턱이 없다.

그들은 금산 상단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어느 상인이 흥미로운 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금산 상단에 대단한 무사가 하나 있습죠. 무공이 엄청나서 혼자서도 도적단 하나쯤은 너끈히 감당할 정도인데,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사미국 출신이라고 하더라굽쇼.”

“사미국이라고? 자세히 말해 봐라.”

온의 눈이 번뜩였다. 상인이 찔끔하더니 급하게 말을 늘어놓았다.

“금산 상단에 정식으로 소속된 건 아니라서 다른 상단에서 고용하려고 많이들 들이댔는데 돈에도, 여자에도 관심이 없었다더라고요. 키가 크고 얼굴까지 반반해서 기생들이 자지러졌다던데.”

“그자 이름이 뭔지 아나?”

“네? 이름말입니까요? 사미국 출신답지 않게 이름이 짧았는데, 어, 그러니까, 울 뭐시기였던 거 같은데…… 잘 생각이…….”

“그만 하면 됐다. 수고했다.”

“어이구, 뭐 이런 걸 다 주시고.”

상인에게 포상을 주고 돌아서며 온이 중얼거렸다.

“찾았군.”

“여울 맞는 거 같지?”

희나리가 그를 뒤따르며 물었다. 온이 가만히 끄덕였다.

야로는 내내 한마디 말도 없이 그들을 따라오고 있었다. 야로를 잠시 돌아본 희나리가 고개를 젓고는 온을 향해 물었다.

“금산 상단 본부가 어디래?”

“용미.”

“그럼 여울이랑 마니는 용미로 갔을까? 가는 도중이거나?”

“일단 이 근처에 있는 금산 상단 소유의 별저나 지부 목록부터 뽑아보지. 금산 상단과 여울의 관계도 좀 더 찾아봐야겠고. 멀쩡한 상단이 수배령이 내려진 자들을 도울 줄이야…….”

“상단주부터 잡아들이는 게 빠르지 않아?”

“좋은 생각이군. 관아에 협조를 구해야겠다.”

그들은 조용한 야로를 내버려 두고 결정을 내렸다. 할 일을 나눠 흩어졌다 다시 모이기로 했다.

희나리가 먼저 떠나고 나자 온이 야로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야로. 괜찮아?”

“응.”

“결정한 내용, 들었나?”

“듣고 있었어. 난 용미 관아랑 궐에 전서구 보내서 금산 상단 관련 정보 달라고 하라며.”

야로의 목소리는 활기 없이 가라앉아 있었다. 온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야로가 추적에서 빠지길 원했던 건 진심에 가까웠다. 고작 두 번의 탈피밖에 하지 않은 어린 이무기였다.

그가 재차 물었다.

“정말 괜찮은 거냐? 각오가 섰어?”

“괜찮다고 했잖아.”

야로는 신경질적으로 답하고 온을 밀어냈다. 온은 불안한 기분으로 돌아서는 소년을 쳐다보았다.

소년은 맡은 일을 하기 위해 이동하며 품안에 넣은 느루의 비늘 위를 만지작거렸다. 밤새도록 생각했던 것을 다시 되새겼다.

죽일 각오는 되었다. 하지만 되도록 죽이고 싶지 않다. 사로잡는 건 무리다.

그렇다면 마니를 노리자.

마니를 죽여 버리면 여울은 더 이상 반항하지 않을 것이다. 지킬 것을 잃으니까.

소년의 눈빛은 서늘하게 정돈되었다.

*

낮이 물러가고 밤이 찾아들었다. 온천 덕에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싱숭생숭했다. 서란은 방에 홀로 앉아 생각에 빠져 있었다.

문의 창호지 너머로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아무 의미 없이 허공을 보고 있던 시선에 그것이 걸렸다.

“여울이냐?”

“예.”

“들어오련.”

검은 이무기는 문 밖의 어둠에서 갈라져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여울은 서란이 앉아 있는 탁자로 다가왔다. 서란이 그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향 때문에 왔겠구나. 상처는 어떠냐, 좀 괜찮으냐?”

“낮에 산과 대화를 나누셨다 들었습니다.”

서란의 미소가 살짝 굳었다. 말할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말했나?

“제게는 그 내용을 알리지 말라 하셨다더군요.”

“음, 그랬느니.”

“왜입니까?”

“너와 관계가 없는 이야기란다.”

여울이 표정 없이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거짓말이시군요.”

그의 어조는 평이했다. 그녀는 당황하여 시선을 피했다.

여울이 의자 등받이에 손을 짚으며 그녀에게로 몸을 숙였다. 그의 그림자가 드리워 그녀를 덮는다. 나직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보주께서는 저를 무어라고 생각하십니까?”

“내 교룡이지, 다른 것이 있겠느냐?”

다른 것.

서란은 여울이 설핏 웃는 것을 본 것도 같았다. 등 뒤에서 어른거리는 호롱불로는 그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보주께 교룡이란 무엇입니까?”

단순한 질문이 아니었다.

서란은 오래전 처음으로 여울과 마주했을 때를 떠올렸다. 공동에 있던 이무기들 중에 그녀의 시선을 외면하지 않았던 유일한 자.

마니전에서 벗어날 수 없던 그녀처럼 소룡전에서 벗어나길 원하던 이무기.

“내 반신(半身)이다.”

그녀가 보지 못해도 그는 볼 수 있다. 그녀가 사라져도 그는 남을 것이다. 그녀에게 없는 미래를 그는 살아갈 것이다.

어쩌면 그는 그녀가 세상에 남길 수 있는 유일한 흔적일지도 모른다. 서란에게 여울은 그런 존재였다.

여울이 바싹 다가왔다. 숨이 뒤섞이고 홍채의 결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그가 물었다.

“그리 여기신다면, 어찌하여 감추려고만 하십니까?”

서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꾹 다물린 그녀의 입술이 붉다. 그는 저 입술을 안다. 몇 번이고 머금었던 입술이다.

여울이 손을 들어 그녀의 턱을 쥐었다. 낮에 치솟았던 열기가 뇌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놀라 벌어지는 입 안으로 그가 파고들었다. 피하려는 움직임은 턱을 잡은 손에 막혔다. 타액을 건네주는 건 뒷전이었다. 탐욕이 이끄는 대로 탐했다.

깊다. 먹인다기보다는 먹고 싶은 듯한 격렬함이 묻어났다. 무언가 변해 버릴 것처럼 두려웠다.

서란은 그를 밀어내려 했다. 건드리기만 해도 물러나던 그가 물러나지 않았다.

손에 닿는 어깨와 팔이 단단하다. 그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몸이었다. 사내였다. 낯설다.

그녀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여울은 그제야 입술을 떼었다. 그러나 여전히 가까웠다.

서란은 평정을 가장하며 웃었다.

“향을 지울 거면, 예고라도 해 다오. 놀랐잖느냐.”

목소리에 숨길 수 없는 떨림이 묻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여울이 느릿하게 그녀의 목덜미로 고개를 틀었다. 맡는다기보다는 들이쉬는 느낌으로 냄새를 삼킨다.

그의 코끝이 스치는 피부를 따라 전율과도 비슷한 것이 피어나 온몸으로 질주했다.

서란은 신음을 흘리며 몸을 움츠리고 그를 밀쳐 냈다. 이번에는 그가 순순히 밀려났다.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은 흔들렸고 그의 눈은 가라앉았다.

여울이 속삭였다.

“답서를 보았습니다.”

그의 말에 그녀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맥박이 빨라진다. 여울은 그녀로부터 떨어져 물러났다.

“보주께서 보내지 않았던 답서들이었습니다.”

서란이 얼어붙었다.

서간집? 언제? 어디서? 생각하자 답은 금방 나왔다. 온천욕을 하고 있을 때 말고는 그가 그것을 볼 틈이 없었다. 몸에서 떼어 놓은 적이 드물었다.

그녀는 제 부주의를 후회했다. 그냥 궐에 두고 나왔어야 했다.

하지만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그녀는 서간집을 다시 챙길 것이다. 그것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 중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었다.

어지러운 이마를 짚었다. 치부를 보인 기분이다. 일기나 다름없는 것들이었는데.

물러난 여울의 얼굴은 밤에 잠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가 재차 물었다.

“왜 답서를 보내지 않으셨습니까?”

서란은 답할 수 없었다. 그녀가 고집스럽게 입술을 깨물었다.

“산과는 무슨 대화를 나누셨습니까?”

여울이 다시 다가왔다. 그는 그녀를 눈으로 덧그리다가, 그녀의 아래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는 그가 무릎을 꿇는 유일한 대상이었다.

“저는 당신의 교룡입니다, 보주.”

그가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와 맹약한, 그의 주인.

“그런데도 저보다 그를 의지하시는 겁니까?”

서란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그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

“이러지 말아라, 여울.”

“제가 5년 전에 왜 서간을 보내지 않았었는지 궁금해하셨지요.”

“여울.”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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