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룡의 주인-8화 (8/70)

8. 그녀의 의문2016.03.27.

“정말로 백성이 마을을 버리는구나. 너는 이런 것을 자주 보았느냐?”

“흔히 있는 일입니다.”

“방납인 문제로?”

“예. 하나가 도망하면 남은 사람들의 부담이 가중됩니다. 견디지 못하고 연달아 도망하여 마을 전체가 비어 버리는 일도 흔합니다. 낭인무사들에게 달아난 마을 사람들을 잡아 오라는 의뢰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울의 말에 서란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주홍색 눈동자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애초에 공신들에게 방납을 독점 대행할 수 있게 해 준 것이 문제다. 독점을 하니 폭리를 취하는 게 아니냐. 공물 자체도 문제가 많은 제도인데 거기다 방납까지 얽혔으니. 공납 자체를 폐지하고 조세로 포함시켜야 할 것을. 허나 공납이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치 않은데다 공신들의 이권이 달렸으니 쉬운 일이 아니겠지.”

그녀의 중얼거림에 여울이 고개를 들었다. 저리 쉽게 나올 만한 말이 아니었다.

서란은 홀린 듯이 말을 쏟아 내었다.

“공신의 힘을 약화시키는 게 먼저다. 중조 반정 때 지나치게 힘을 실어 주었어. 공신의 후손들이 음직으로 관료가 되는 것을 막고 지금 일부 시행 중인 과거제를 확대하여야 한다. 그전에 언관에게 힘을 실어 주어 대신들을 견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선이겠지만. 그러려면…….”

서란은 이부자리를 펴다 말고 멈춰서 자신을 보고 있는 여울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그녀가 말을 뚝 끊었다.

그녀는 애매하게 시선을 피했다. 그의 눈빛이 끝내 떨어지지 않자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계집이 내뱉기에는 맹랑한 이야기로 들리느냐?”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락의 태조도 여인이었잖습니까.”

그의 말에 서란의 눈매가 휘었다. 그녀가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듯 그에게 한 걸음 다가앉았다.

“여울, 너는 이상하게 생각해 본 적 없느냐?”

“무엇을 말입니까?”

“분명 예락은 태조 유리하께서 용을 거느리고 건국한 나라다. 초기엔 종종 여왕이 나왔느니.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여왕은 보이지 않지. 세자는 적장자여야 한다는 법칙이 세워진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단다. 정확히는 중조 반정 이후부터지.”

서란이 여울을 올려다보았다.

“너는 천년호에 있을 적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었지?”

“그러합니다.”

“천년호에 선왕의 여의주를 던져 넣어 이무기가 태어나도록 만들었다는 기록이 제일 처음 등장하는 게 언제인지 아느냐? 중조 원년이니라. 그럼 그 이전의 이무기들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여의주를 호수에 넣지 않으면 더 이상 이무기가 태어날 수 없는 걸까?”

“……!”

“왜? 왜 갑자기 적장자가 세자가 된다는 법칙이 세워졌을까? 예락에는 이해할 수 없는 전통이 많단다. 아귀가 맞지 않아. 아무도 모르는 걸까? 아니면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걸까? 왜, 중조 이전의 기록들에서는, ‘마니’는 있어도 ‘마니식’은 보이지 않는 건지!”

그녀의 말은 조금씩 빨라졌다. 묘한 열기가 말을 따라 솟구치다 갑자기 씻은 듯이 사라졌다.

서란은 문득 서글픈 얼굴이 되었다. 그녀가 머뭇거리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그냥, 그런 의문들을 품었었다.”

“마니식이 중조 이후에 생겼다는 말씀이십니까?”

넋이 나가 있던 여울은 물러나려는 서란의 팔을 붙잡았다.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그녀가 천천히 그의 손을 떼어 내며 답했다.

“예락의 역사는 중조 이전과 중조 이후로 나뉜단다. 그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지.”

“무슨 뜻이십니까?”

“그 간극을 알아차려도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보주, 설명해 주십시오.”

서란은 한참을 말없이 그의 눈만 응시했다. 그녀가 여울의 옷깃을 잡았다.

“향, 나느냐?”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던 여울은 한 박자 늦게 그녀가 여의주의 향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직은 괜찮습니다.”

“자는 사이 새면 큰일이니, 미리 지워 두고 편히 자자꾸나.”

서란이 그의 뺨을 감싸며 제 쪽으로 가볍게 당겼다. 그녀는 화사하게 웃었다.

“접문해 다오.”

여울은 서란이 더 이상은 말해 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녀를 알 수 없었다. 저 작은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기이할 정도로 평온하고 얕아 보이던 수면 아래로 새카만 심연이 보인다. 신경 쓰지 말자던 결심이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처음으로 11년 전의 결정을 후회했다. 만약, 계속 곁에 있었더라면.

그가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입술이 맞닿고 벌어지며 혀가 섞였다.

서란이 눈을 감았다. 여울은 눈을 감지 않았다. 파르라니 떨리고 있는 그녀의 눈꺼풀을 지켜보았다.

심장이 죄어들었다. 닿은 곳이 뜨거웠다. 여울은 어째서 자신이 이런 감각을 느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의 타액을 받아 삼킨 그녀가 물러났다. 그가 그녀의 입가에 묻은 것을 손가락으로 훔쳐 냈다.

입맞춤은 담백했다. 그저 의무적인 일이라는 듯.

그의 속에서 무언가 요동쳤다. 그것은 아직 싹트지 못했다.

그녀는 웃었고 그는 웃지 않았다.

“고맙다.”

붉은 입술이 움직이며 그리 말하는 것에서 그는 눈을 떼지 못했다.

서란이 이부자리에 누웠다. 여울은 그녀 곁에 눕는 대신 검을 품에 안고 문가에 기대앉았다.

그도 그녀도 눈을 감았으나 잠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

“야!”

야로가 빽 고함을 질렀다. 온은 이마를 짚었지만 소년을 말리지는 않았다.

나무 아래에 다리를 쭉 펴고 기대서 졸고 있던 소녀가 고양이처럼 눈을 치떴다. 희나리였다.

“이제 왔어?”

“왜 여기서 놀고 있어!”

“노는 게 아니라 기다린 거다, 멍청아.”

“핑계 대지 마! 그리고 누가 멍청이야!”

펄펄 뛰는 야로를 더 이상 못 보겠는지 온이 붙잡았다. 그는 버둥거리는 소년의 머리를 꾹꾹 눌러 쓰다듬었다.

희나리가 몸을 일으켰다.

“흔적이 여기서 끊겼어. 더 이상 못 찾겠더라. 향도 없어.”

“자드락 선배는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결국 다른 곳에서 여의주의 향을 지우는 법을 알아낸 모양이군.”

“아무래도 우리들만으로는 안 되겠어. 일이 커지네.”

“왜? 커지면 안 돼?”

야로가 불퉁하게 물었다. 희나리는 한심하단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생각 좀 하고 살아.”

“소서촌 생각해 낸 건 나거든?”

“너 아니었어도 생각났을 거야.”

“아오, 망할 계집애가 진짜. 어쨌든 커지면 왜 안 되는데?”

“백성들은 마니식을 하늘이 점지한 제물이 스스로를 희생하는 숭고한 의식으로 알고 있는데, 마니가 도망쳤다고 동네방네 광고하면 뭐라고 여기겠니?”

단박에 납득한 야로가 할 말을 잃었다. 온이 먼 곳에 시선을 두고 있다가 그들을 돌아보았다.

“우리 중 하나가 궁으로 돌아가서 지원을 요청하자. 나머지는 일단 도하로 가 보고. 예경에서 외부로 나가려면 도하를 거치는 게 일반적이니까. 산맥을 타고 더 아래로 가고 있다면 복잡해지겠지만……. 일단 수배령을 내리는 게 우선이다. 그 후에 산을 뒤져야겠지.”

“내가 궁에 다녀올게. 야로 쟤를 보낼 순 없으니.”

희나리가 나섰다. 온이 끄덕였다. 그녀는 창을 추슬러 메더니 기를 휘감고 흑룡궁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떠나고 나자 온이 야로를 돌아보았다.

“추적할 방법은 없지만 도하까지만 가면 되니 네가 골라 봐라. 그나마 여울과 친한 편이었으니.”

“뭘 골라?”

“가까운 길로 갈 테냐, 계곡을 따라 내려갈 테냐?”

야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이 있는 곳은 산들 사이의 골짜기였다. 발자취는 여기에서 끊겼다.

소년은 고심하더니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냥 도하 쪽으로 방향을 잡고 일직선으로 가자.”

“산을 타 넘자고?”

“어……. 확신은 못하겠지만, 여울의 무공이라면 이런 산중이라도 흔적 안 남기고 달려갈 수 있을걸. 밖에서 떠돌면서 늘면 늘었지, 줄진 않았을 거 아냐. 도하를 거쳐 갈 생각이면 굳이 돌아가느니 산을 타고 넘었을 거 같아.”

“일리 있군.”

온이 수긍했다. 그들은 도하 방향의 산을 타 넘기 시작했다.

식사를 하기 위해 멈출 필요가 없었기에 쉴 새 없이 숲을 가르고 달렸다. 온보다 무공이 서투른 야로의 속도에 맞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속도였다.

그들은 해가 저물고 나서야 수면을 취하기 위해 멈췄다. 야로가 코끝을 찡끗거렸다.

“맛있는 냄새가 나.”

“근처에 민가가 있나 보군.”

“가 보자. 노숙하기는 싫어.”

온은 야로의 칭얼거림을 받아들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 채의 너와집이 텃밭을 끼고 모여 있는 곳에 도착했다.

마루에 앉아 야윈 닭에게 먹이를 주고 있던 아낙이 그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낙이 “여보” 하고 부르는 소리에 남자가 뛰쳐나왔다. 남자는 평복 차림의 그들을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요즘 사미국 출신 낭인무사가 늘었나.”

“사미국이라니, 난…….”

야로가 뻐기며 말을 꺼내려는 것을 온이 가로막았다. 남자의 말에서 걸리는 점이 있었다.

“우리 말고도 사미국 출신 낭인무사가 왔었는가?”

“바로 어젯밤에 왔었지. 댁들도 묵어 갈 거요?”

“이 집에서 묵었다고? 낭인무사는 혼자였나?”

온이 캐묻자 남자가 수상하게 쳐다보았다.

온은 품을 뒤져 10전짜리 은전을 꺼내 보였다. 남자의 눈빛이 대번에 달라졌다. 그가 침을 꿀꺽 삼켰다.

“사실대로 고하면 이것을 주마.”

“……장님 여자랑 사미국 낭인무사 부부였소. 남편은 말이 없는 편이었고, 여자는 눈을 가리고 있어서 잘 모르겠지만 꽤 고와 보였소. 아! 남편 쪽 손등에 큰 흉터가 있었소이다.”

온과 야로가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야로가 작게 물었다.

“맞나 봐. 근데 장님이라니?”

“마니의 눈을 가릴 핑계였겠지.”

“헐.”

온은 남자에게 은전을 던졌다. 남자가 반색하고 돈을 받아 들었다. 온이 덧붙이듯 물었다.

“혹시 어디로 간다고 말하던가?”

“그런 말은 없었소. 다만 출발할 때 저쪽으로 갔소.”

남자가 가리킨 방향은 남동쪽이었다. 그쪽으로 가면 도하에 이른다. 야로가 씩 웃었다.

“찍은 게 정답이었네.”

“가자.”

“뭐? 잠은?”

온은 가차없이 무시하고 몸을 돌렸다. 그가 순식간에 앞서 가자 야로는 투덜투덜 푸념을 늘어놓으며 따라 움직였다.

*

희나리는 하루 밤낮을 쉬지 않고 달렸다. 다음 날 늦은 저녁에서야 흑룡궁에 도착한 그녀는 곧바로 느루에게 방문을 청했다.

그녀는 동궁 내에 있는 느루의 방으로 안내되었다. 느루는 혼자가 아니었다.

주안상을 사이에 두고 세자와 느루가 술을 기울이고 있었다. 느루가 손에 쥔 술잔을 내려놓지도 않은 채 희나리에게 고개를 까닥였다.

“무슨 일이지?”

희나리는 자리에 앉지 않았다. 그녀는 문간에 그대로 서서 싸늘한 눈으로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인간이라면 경을 칠 만한 태도였지만 그녀는 이무기였다.

“여울이 여의주의 향을 지웠다.”

“하?”

느루가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그가 가볍게 술잔을 내려놓았다.

세자는 이 자리에 아무도 없다는 듯이 그들을 무시하고 손수 제 잔에 술을 채웠다. 느루가 희나리 쪽으로 돌아앉았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자드락 선배 짓이냐?”

“그건 아니야. 온과 야로가 가서 직접 물어보았다. 본 적이 없다고 했어.”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이무기의 증언이다. 그들은 자드락의 말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느루는 턱밑을 쓸었다. 그가 비죽이 웃었다.

“그래, 그렇군. 그래서? 왜 돌아온 거지?”

“향이 없는 이상 우리 셋이서 추적하는 건 무리야. 수배령을 내려.”

“무리라는 말을 이해할 수가 없는데?”

느루의 말에는 조롱이 섞여 있었다. 희나리는 손마디가 하얗게 되도록 주먹을 쥐었다.

목 끝까지 차올랐던 분노는 제 보주를 떠올리면서 사그라들었다. 열네 살의 유약한 소년. 그녀에게 의지하는 진녕군.

그녀는 사무적으로 말했다.

“찾아낼 수야 있지. 대신 정해진 때에 마니식을 치르는 건 포기해야겠지만.”

느루가 인상을 쓰며 무어라 말하려는 것을 세자가 손을 들어 막았다. 익선관 아래의 주홍색 눈동자는 그 붉음에도 불구하고 온기라곤 없었다.

“수배령을 내린다.”

“보주, 마니가 도망쳤다는 것을 알릴 생각이십니까?”

세자를 돌아보는 느루는 지극히 공손했다.

세자가 술잔을 내밀었다. 느루가 술을 따랐다.

“그걸 숨기려다 선대는 1년이란 시간을 허비했지. 나는 시간을 끌 생각이 없다.”

“하오면 어찌…….”

“전국에 마니와 그 교룡의 용모파기를 포함한 수배령을 내린다. 생포하면 천 냥, 제보하면 백 냥. 어차피 교룡을 상대로 일반 백성이 생포가 가능할 리 없으니 목적은 제보를 받는 것이다. 죄목은.”

세자는 가만히 술잔을 내려다보았다. 물처럼 맑은 술에 준수한 얼굴이 비쳤다. 그가 설핏 웃었다.

“……그래, 마니 납치범이라고 하지.”

“예?”

느루가 되물었다. 희나리는 멍하니 세자 쪽을 보고 있었다. 세자는 제 교룡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친 이무기가 습격하여 마니를 납치했다. 이에 죄인인 이무기와 납치된 마니를 수배한다.”

세자가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그가 탁 소리가 나도록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 이무기가 마니의 교룡인 것을 아는 자는 궁내의 몇몇과 이무기들뿐이다. 애초에 마니는 교룡이 없는 경우도 잦았으니. 내일 부왕께 고하겠다. 이무기들이야 소룡전에 처박혀 있고, 교룡들은…… 알아서 입조심하겠지.”

“……현명하십니다.”

느루가 고개를 조아렸다.

희나리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녀가 내뱉듯 말했다.

“그럼 그렇게 알고 가겠어.”

“잠깐.”

돌아서는 그녀를 세자가 불렀다.

희나리는 멈춰 섰으나 돌아보지는 않았다. 세자가 느루에게 턱짓하며 말했다.

“네 비늘을 주어라.”

느루는 의문조차 드러내지 않고 바로 비늘을 하나 뽑았다. 그가 일어나 희나리에게 다가가 비늘을 내밀었다.

희나리는 그것을 받지 않고 쳐다보기만 했다. 세자가 말했다.

“만약 화예교룡의 반항이 격하여 마니를 생포하기 어려운 상황이면, 마니를 죽여도 좋다. 교룡이야, 당연히 죽여도 되는 것이고.”

“마니식은 어쩌려고?”

“마니를 죽이게 되면 곧바로 느루의 비늘을 부숴라. 느루, 너는 그것을 느끼자마자 가는 거다. 여의주가 오염되기 전에 꺼내 용이 되어 돌아오너라. 백성들에게는.”

세자가 입꼬리를 올렸다.

“납치된 신세를 비관한 마니가 자해하였다 하면 된다. 백성들에게 보여주는 마니식은 어차피 용이 된 모습만 공개하는 것이니 그대로 진행할 것이다.”

희나리는 고개만 틀어 어깨 너머로 세자를 잠시 돌아보았다.

세자는 느긋하게 안주를 집고 있었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느루의 비늘을 받아 들었다.

“어디까지나 생포가 무리일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되도록 생포하도록.”

세자가 덧붙였다. 희나리는 대답 없이 비늘을 집어넣고 방을 나갔다.

느루가 어깨를 으쓱이고는 주안상으로 돌아왔다. 그가 자리에 앉으며 투덜거렸다.

“마니에게도 이무기를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물론 거부당할 때가 많다지만.”

“오래 묵은 전통이니까.”

세자가 손수 느루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느루는 양손으로 잔을 받들었다.

“그래도 도주하면 귀찮은 일이 되지 않습니까.”

“어쩌다 나오는 탈주쯤이야 헛된 반항일 뿐이다. 예락의 역사에서 마니가 도망치는 데 성공한 사례는 없었다. 뭐, 원래 전통이라는 것이 한번 생기면 바꾸기가 쉽지 않잖나. 어지간히 큰일이 있지 않은 한은.”

“바꾸는 게 더 편할 텐데요. 왜 굳이 그런 전통을 유지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란 정말 복잡하게 사는군요.”

느루가 잔을 들어 머금었다.

세자는 진한 미소를 띠었다. 그는 느루의 의문에 답해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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