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조심스럽게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자마자 현태는 눈을 뜨고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났다. 일하느라 밤을 새웠을 때와는 다른 피곤함에 현태는 뻑뻑한 눈가를 손끝으로 문질렀다.
몇 번이고 저항 없이 열리는 저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 단내를 풍기며 색색 대는 여자를 안고 싶었다. 사실 두 번 문을 열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와인 냄새를 폴폴 풍기며 세상모르고 잠든 여자를 안을 만큼 양심이 없지는 않았다.
들끓는 열기를 긴 한숨으로 뽑아낸 후 현태는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몸을 풀었다.
밤새 용을 써서 그런지 근육이 굳은 것처럼 느껴졌다.
방문을 여니 거실에서 바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부산스레 다니는 가볍고 경쾌한 발소리에 어쩐지 안정감이 느껴져서 현태의 입가에 무른 미소가 걸렸다.
“일어났어요?”
기척을 듣고 다가온 희우가 목을 쭉 빼며 명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속은 괜찮아?”
“아, 그 와인. 생각보다 도수가 좀 있더라고요. 그렇게 취해 버릴지 몰랐어요.”
현태의 질문을 단번에 이해한 희우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대답했다.
“다음엔 같이 마셔.”
현태가 다가가서 말했다. 희우 곁에 가까워지니 아직도 와인 냄새가 살짝 풍겼다. 희우 특유의 체취와 합해져서 더 농밀하고 달콤했다.
현태는 망설임 없이 희우의 허리를 감싸 안아 자신의 품 안으로 당겨 안았다.
아찔한 체향이 더 가까워졌다.
희우의 놀란 눈동자가 바로 코앞에서 커다랗게 보였다.
“내가 원래 와인을 좋아해서.”
현태는 씨익 웃은 후 살짝 벌어진 희우의 입술을 답삭 감싸 물었다. 말랑하고 따뜻한 입술에서 맛있는 향이 났다.
잘근잘근 씹고 싶을 정도로 향긋한 입술이었다.
현태는 놀라 숨을 들이켜는 희우의 허리를 두 팔로 감싸 안아 품으로 더욱 당겨 안았다.
희우가 본능적으로 목을 뒤로 빼자 현태는 한 손으로 가느다란 목을 감싸 쥐었다. 강하지만 부드러운 손길에 희우는 속절없이 현태에게 가까워졌다.
이제 꼼짝없이 품에 갇힌 희우를 현태는 마음껏 음미하기 시작했다.
마치 지난 밤 혼자 와인 한 병을 다 비워 버린 희우를 벌을 주기라도 하려는 듯 집요하고 끈적이는 입맞춤이었다.
작게 벌어진 틈으로 망설임 없이 파고들 어간 현태의 뜨거운 혀가 부드러운 입 안을 샅샅이 훑었다. 고른 치열과 따뜻하고 촉촉한 혀를 남김없이 맛보다 놀라 달아나는 조그마한 살덩이를 잽싸게 당겨와 빨아 당겼다.
축축한 살이 맞닿는 소리가 주방에 한참 동안 이어졌다.
숨을 몰아쉬느라 어깨를 들썩이는 희우에게 살짝 틈을 준 다음 저와 눈이 마주치자 현태는 다시 희우의 붉은 입술을 남김없이 베어 물었다.
말랑한 입술을 살짝 깨물자 놀라는 희우의 어깨를 당겨 안았다.
희우의 입술과 자신의 입술 사이에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최대한 밀착시켜 남김없이 빨아들였다.
입술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가 미치도록 좋았다.
제 품에 안겨 바르작대며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좁은 어깨에 코를 파묻고 하루 종일 있고 싶었다.
누군가를 이렇게 맹렬히 원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현태는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는 감정에 잠식당하는 중이었다.
“하아…….”
겨우 현태에게서 놓여난 희우가 붉게 부푼 입술을 한 손으로 만지며 눈을 부릅떴다.
“무슨 키스를!”
현태가 번들대는 제 입술을 손끝으로 슬쩍 닦으며 씨익 웃었다.
희우의 말을 기다리는 현태의 손가락이 희우의 붉은 입술을 조심스레 쓸었다.
“부었어.”
“그러니까요. 왜 이렇게 키스를 전투적으로 해요?”
희우의 단어 선택이 마음에 들었는지 현태의 입술에 짙은 미소가 번졌다.
“부드러운 키스를 할 줄 몰라서. 독고 선생이 가르쳐 주면 좋겠군.”
현태의 시선이 희우의 입술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그걸 뭘 가르쳐요. 진짜 이상한 사람이야.”
희우가 벌게진 얼굴을 가리지도 못하고 몸을 홱 돌리자 현태가 다시 희우의 팔을 잡아당겨 제품으로 끌어당겼다.
“선생님이 돼서 가르쳐 달라는 학생을 두고 어딜 가십니까.”
“그, 그런 건 안 가르쳐요!”
“안 가르치면 곤란한 건 독고 선생일 텐데요?”
“왜요?”
“매일 이렇게 퉁퉁 부은 입술로 출근해야 할 테니까.”
“흐익!”
희우가 깜짝 놀라며 눈을 부릅뜨자 현태가 그녀의 목덜미를 다시 감싸 안아 당기며 속삭였다.
“그러니까 가르쳐 줘야지. 부드러운 키스를.”
하지만 희우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현태의 입술이 먼저 희우의 입술에 닿았고 아까와는 다른 감미로운 키스가 이어졌다.
현태는 희우의 작고 도톰한 윗입술을 먼저 머금었다가 아랫입술을 뜨거운 혀로 살짝 핥았다. 맛보면 맛볼수록 달아서 입 안에서 녹아 버릴 것 같았다.
다시 아랫입술을 감싸 물은 현태가 느릿느릿 각도를 바꿔가며 조그만 입술을 탐했다.
잇새로 파고 들어간 혀가 희우의 혀를 맛본 후 고른 치열을 훑었다.
촉촉.
두 입술이 붙었다가 떨어지는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고 둘 사이를 오가는 숨소리는 가빠졌다.
희우의 등을 감싸 안았던 현태의 손이 다급하게 얇은 티셔츠 안으로 파고들었다. 군살이라곤 없는 매끈한 등이 실크처럼 부드러웠다.
갑자기 파고든 현태의 손에 희우는 잠시 당황하는 듯 몸을 움찔 떨었다. 현태의 입술은 여전히 희우에게서 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아예 딱 붙어 버린 것 같았다.
툭.
현태의 손끝에서 브래지어 후크가 힘없이 떨어져 나갔다. 작은 천 조각의 압박이 사라지자 희우의 눈이 휘둥그레 커지며 다급하게 현태를 밀어냈다.
쪽.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끝까지 입술을 물고 놓아주지 않던 현태 때문에 두 사람의 입술 사이에서 찰진 소리가 났다.
“지, 지금 뭐하는 거예요?”
희우가 당황해 벌건 얼굴로 물었다.
“네가 상상하는 그것?”
현태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대답이 끝나자마자 다시 다가오는 현태의 입술을 희우가 손바닥으로 탁! 막았다.
이번에는 현태가 정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막힐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지 찰나의 순간에 실망감이 두 눈에 가득했다.
“아, 아직 이럴 정도로 가깝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당황한 희우가 버벅대며 시선을 피했다.
희우에게 입술을 막힌 채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든 현태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현태는 그대로 제 입술에 닿은 희우의 손바닥에 짧게 입 맞춘 후 그녀의 손을 잡아 아래로 내렸다.
“아직은 키스할 만큼만 나를 좋아한다는 건가?”
“그, 그렇죠.”
뭐야, 왜 자꾸 말을 더듬어.
희우는 자꾸만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입술을 말아 물며 살짝 인상을 썼다.
입술이 제 말을 안 듣는 건 기현태가 너무 오랫동안 물고 있어서 그런 거라며 생각했다. 말하면서도 입술과 혀가 얼얼해 자꾸만 입술을 말아 물게 됐다.
“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다음 단계라뇨?”
희우가 약간 얼빠진 얼굴로 물었다.
현태는 세상 똑똑한 척은 다하면서 얼굴을 터질 듯 붉히고 있는 희우를 보며 피식 웃었다. 아직 매끄러운 등에 닿은 손바닥은 치우지 않았다. 물론 치우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었고.
이대로 입고 있는 파자마 안으로, 풀어진 브래지어 안으로 거침없이 헤집고 싶었지만 꾸욱 참았다.
“다른 곳에 키스하는 거?”
“이 사람이!”
희우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현태가 쿡쿡 웃다가 다시 자신이 풀어 놓은 브래지어 후크를 조심스럽게 여며줬다.
다시 느껴지는 압박감에 희우는 안심이 되기도, 묘하게 아쉽기도 했다.
아쉽다니! 독고희우! 정신 차려!
“알겠어. 아직은 여기만 내가 가지는 거로 하지.”
현태가 발갛게 부푼 희우의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주말인데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주말만 되면 늘어지게 늦잠을 자던 희우를 떠올리며 현태가 물었다.
“아참! 나 오늘 창원 가야 해요. 히익! 빨리 챙겨야겠다.”
희우가 시계를 확인한 후 서둘러 현태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어딜 간다고?”
“창원에요. 오늘 우리 동학년 선생님 결혼식이라서요.”
“안 돼.”
“네?”
먼저 씻어야겠다 생각하며 욕실 쪽으로 가려던 희우가 현태의 단호한 대답에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순간 잘못 들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알잖아. 그 새끼, 네 주변에 맴도는 거.”
현태는 조금 전 달콤한 표정으로 키스를 하던 사람과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살벌한 표정이었다.
“나 혼자 가는 것도 아니고, 다른 선생님들하고 같이 갈 거예요. 여섯 명이서 가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희우는 저를 걱정해 주는 현태에 고마움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안 돼.”
하지만 현태는 단호했다.
“기현태 씨. 괜찮다니까요.”
희우가 거듭 말하며 다시 현태 가까이 다가왔다.
현태의 눈매가 못마땅하게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꼭 가야 하는 결혼식이에요.”
“하아…….”
현태가 한숨을 푹 내쉬며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이 와중에 기현태는 또 화보를 찍고 있었다.
“그러면 나도 같이 가지.”
“네에?”
“와인 마셔서 운전도 못 하잖아. 내가 해 준다고 운전사.”
“이미 깼어요.”
“이것까진 양보 못 해.”
현태가 다시 희우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 * *
숙영은 환자복을 입고 수액을 맞고 있는 덕수를 보며 근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아버님, 그래도 희우한테 연락을 하는 게…………”
“무슨 좋은 일이라고 연락을 해. 너도 나 쓰러지자마자 희우한테 연락을 안 한 건 다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냐.”
덕수가 단호하게 말하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그새 얼굴이 반쪽이 된 아버님을 보니 숙영은 마음이 무거웠다. 이 모든 게 제 남편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더 면목이 없었다.
숙영은 차마 다른 말은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며 웅얼거렸다.
“하지만…….”
“크게 다친 것도 아니니까 연락하지 마라. 오늘 퇴원 수속 밟고.”
지금은 희우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다. 덕수가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말을 삼키며 한숨을 내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