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204화 (204/233)

204화. 이대로, 원합니까?

“친우들이 온다지요?”

“…콘스탄틴?”

한참 드레스를 시착 중인데 대뜸 콘스탄틴이 나타났다.

“각하를 뵙습니다!”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 사이나의 단장을 돕던 하녀들이 허둥지둥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리고는 얼굴을 발그랗게 물들이며 서로 눈치를 보더니 후다닥 나가버렸다.

아니, 얘, 얘들아? 어디 가니?

마침 드레스의 등을 여미려던 참에 그가 나타났기에 맨등이 훤히 드러난 채였다.

“흠.”

그가 그런 그녀를 묘한 눈으로 보더니 성큼 다가왔다.

사이나가 미처 대처하기도 전에 하얗게 드러난 목덜미에 대뜸 입술이 닿아왔다.

“앗, 콘스-”

사이나가 깜짝 놀라 몸을 틀려고 하자 그의 팔이 금세 그녀의 복부를 감으며 자세를 고정시켰다.

그리고는 목덜미에서 시작한 입술이 점차 아래로 쪽쪽 소리를 내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읏. 잠깐-?”

날개뼈 쪽으로 파고든 입술이 상의 자락을 파고들더니 결국 어깨를 타고 옷자락이 흘러내렸다.

한쪽 어깨가 드러나자 상의는 더 쉽게 흘러내리기 직전이었다.

빨리 준비를 해야 하는데 이러면…….

사이나는 앞섶을 손으로 눌렀다.

“저, 준비- 준비해야 하는데-”

빈틈을 파고드는 그의 손가락을 얼른 다른 손으로 붙잡으며 그녀가 막아섰다.

“음, 조금만 더요.”

“아, 안 돼요!”

이러다 손님을 초대해놓고 주인이 늦는 불상사가 벌어지게 생겼다.

사이나는 얼른 그를 밀치며 품에서 벗어났다. 다시 드레스 자락을 끌어 올려 여몄다.

“하아….”

콘스탄틴은 나른한 날숨을 내쉬며 투덜거리듯 덧붙였다.

“근래 그대가 날 너무 방치하는 기분인데.”

“…제가 언제요.”

“날 두고 쿨쿨 잠만 잔 게 며칠째인지 몰라서 하는 말입니까?”

“그건…….”

뭔가 억울하다. 근래 그녀보다 더 바쁜 게 그였다.

“당신도 바빠서 늦게 왔잖아요.”

“지금은 안 바쁩니다만.”

콘스탄틴이 씨익 웃으며 다시 한걸음 성큼 다가왔다.

“그대는 바쁘지 않습니까.”

재차 그녀의 허리를 감아 당기며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이래도 방치가 아닙니까?”

아니, 방치라는 단어를 이런 때 쓸 게 아니죠.

하지만 굳이 따지지 않았다. 목덜미를 훑는 자극에 자꾸 정신이 팔려 자꾸 휘말리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으응, 이따, 이따가요.”

“이따가 언제요.”

“이따, 밤에 해요…….”

“밤엔 오롯하게 내게 집중해 줄 겁니까?”

“흣. 네.”

“좋아요, 기대해보도록 하지요.”

그는 그렇게 말을 하고서도 한참을 더 지분거렸다.

그리고 발갛게 홍조가 오른 사이나의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내려 입술도 한껏 탐하고는 떨어졌다.

“그러고 보니 어제…….”

탐스럽게 부풀어 오른 입술을 아쉬운 듯 보다가 그가 물었다.

“잘 다녀왔습니까?”

“네?”

“황녀궁 말입니다.”

“아.”

어제도 묘하게 서로 바빠, 각자 잠이 들었다.

다른 방에서 잤다는 건 아니고 사이나가 먼저 잠에 들어버려서 그가 언제 침실에 들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니 당연히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었다.

“네. 운은 띄웠고 설명도 드렸으니, 두고 볼 일이죠.”

“황녀 전하께서 사랑하는 남자가 있는 건 확실합니까?”

“네. 분명.”

황녀에게 연인이 있다고만 말하고 누구인지는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콘스탄틴도 헤비아탄 경이 황녀의 연인인 것은 몰랐다.

“그대의 이론이 맞고, 황녀 전하께 진짜 마음을 나누는 연인이 있다면, 결과는 생각보다 금방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길 빌어야죠.”

그녀와 그를 위해서도, 황녀를 위해서도, 제국을 위해서도 말이다.

“마님.”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다리엘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설마 벌써 손님들이 도착한 건가? 아직 시간이 좀 남았을 텐데?

“들어오렴.”

깜짝 놀란 사이나가 황급히 그녀를 들였다.

“어- 각하도 계시네요.”

“무슨 일이지?”

“황실에서 서신이 왔습니다.”

“…뭐?”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사이나가 시선을 내렸다.

은쟁반 위에 올려져 대령된 초대장 하나.

아주 오랜만에 사이나는 황금색 봉투를 다시 목도했다.

약간의 기시감을 느낄 정도였다.

“흠.”

그는 한쪽 눈썹을 씰룩이고는 봉투를 집어 들었다.

“발송인이 없군요.”

발송인이 없다니. 일부러 안 적은 건가?

그렇다면 황녀는 아니다. 매디얼은 항상 자신의 이름을 적어 보내고는 했으니.

그럼 황자인가? 근래 황자가 이쪽으로 서신을 보낼 일이 없을 텐데?

“그대가 열어봐요.”

사이나는 그로부터 봉투를 받아들었다. 받자마자 앞면에 박힌 인장이 눈에 들어왔다.

“보편 인장이네요?”

황자궁의 인장이 아니다. 황가의 보편 인장이었다.

황족은 개인별로 각각의 인장이 따로 있었다.

이런 보편 인장은, 황실에서 다량으로 보내는 공식 서한이나, 황실의 뜻이기는 하지만 정확히 누구의 뜻인지 확정지어 알리고 싶지 않을 때 사용한다.

이는 일반 가문도 마찬가지여서, 가문의 보편 인장이 있고 가주의 인장, 후계자의 인장 등이 따로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더더욱 안의 내용물이 예상되지 않았다.

의아함을 느끼며 사이나는 봉투를 열었다.

그리고 내용물을 들여다본 그녀의 눈이 커졌다.

“…하?!”

내용물은 초대장이었다. 초대장을 잡은 사이나의 손가락이 약하게 떨렸다.

[가면무도회로 초대합니다.]

초대장의 문구를 보자마자, 갑자기 과거의 기억이 떼 지어 쏟아졌다.

의지적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막힌 둑이 강제로 열린 것처럼 터져 나오는 지독한 기억들이 순식간에 의식을 잠식했다.

“…사야?”

숨이 막히고 현기증마저 이는 듯하여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사야, 무슨 일입니까!”

“마님. 왜 그러세요? 의원을 부를까요?”

콘스탄틴이 그녀를 붙잡으며 다급하게 외쳤다.

“당장 의원을 불러라!”

그는 초대장을 그녀의 손에서 뺏어 들고 내용을 확인했지만, 말 그대로 초대장인 것을 보고는 매서운 얼굴로 다리엘을 추궁했다.

“식사를 제대로 챙긴 것 맞나? 평소에도 이렇게-”

“정말! 괜찮아요! 그냥….”

이러다 그가 누구 한 명 잡을 것 같아서 사이나는 황급하게 말렸다.

“갑자기… 별로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서 그래요.”

하아. 사이나의 입술 사이로 크게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미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저 묻어둔 것이었나 보다.

계기가 생기니 누군가 일부러 격발을 하기라도 한 것처럼 괴로운 기억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트라우마라는 게 바로 이런 거겠지.’

덤덤한 편의 성격이기도 하고 전엔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했었기에 필사적으로 묻어두었던 것이, 실은 괜찮은 것이 아니었나 보다.

“안색이 너무 안 좋으세요. 의원을 부르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아냐, 정말 괜찮아.”

몸이 아픈 것이 아니다. 정신적인 문제라 의원이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사이나는 그저 눈앞에 있는 콘스탄틴의 허리를 감으며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그런 그녀의 등을 그가 붙잡아 부축하며 다리엘에게 명했다.

“……잠시 나가서 혹시 손님이 도착하였는지 확인 좀 해보고 오너라.”

“예, 각하.”

다리엘은 눈치껏 방을 빠져나갔다.

“날 봐요.”

다리엘이 나가자마자 콘스탄틴이 나직하게 사이나를 얼렀다.

“날 보아요, 응?”

사이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를 응시했다.

파란 눈동자에 불안함이 묻어있었다.

“…키스해 주세요.”

“……예?”

“얼른요.”

그의 목에 팔을 감아 내리며 재촉하자, 그가 못 이긴 듯 내려왔다.

그러나 막상 입술이 닿자, 다급하게 그녀의 입술을 벌리며 파고들어 왔다.

“흣.”

숨결까지 빼앗아가려는 사람처럼 집요하게 그녀의 입술 선과 잇몸, 치열을 훑으며 종래에는 혀를 감아올렸다. 질척한 움직임에 고이는 타액마저 잔뜩 빨아 삼키며 겨우 붙잡고 있던 옷자락을 다시 끌어 내렸다.

뭉근하게 쥐어오는 손길에 사이나가 달뜬 숨을 내쉬자 그는 더 강하게 혀를 빨아들이며 손가락을 놀렸다.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는 작은 신음마저 모조리 삼키며 콘스탄틴은 그녀의 드레스 자락을 걷어 올리기 시작했다.

드러나기 시작한 매끈한 다리 사이로 제 허벅지를 밀어 넣으며 그가 속삭였다.

“이대로, 원합니까?”

“으, 응….”

그의 손이 무릎 뒤를 파고들며 다리 하나를 잡아 올렸다.

“끝까지 원해요?”

낮게 울리는 목소리에 배꼽 아래에서부터 퍼져나가는 열기를 느끼며 그녀가 한숨처럼 긍정했다.

“하아, 네…….”

그녀의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가 짓쳐들어왔다.

“아읏, 읏!”

빠듯하게 들어차는 그의 존재감을 느끼며 사이나는 그의 목을 감은 팔에 더 힘을 주었다.

잠시 그녀를 잠식했던 기분 나쁜 기억은 왔던 시간만큼이나 빠르게 물러가고 있었다.

* * *

결국 드레스는 잔뜩 구겨지고 말았다.

“친우들 잘 만나고…….”

“네.”

그는 부드럽게 그녀의 이마를 쓸며 입술을 내렸다.

“정말 괜찮은 거 맞습니까?”

“네. 괜찮아요.”

“가면무도회는 원치 않으면, 안 가도 됩니다. 황실의 초대장이라도 의무는 아니니.”

“아니에요. 그냥… 나쁜 예감이 좀 들어서.”

아무리 콘스탄틴에게라도 과거에 가면무도회에 참석했다가 벌어졌던 일에 대해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면 더 안 가야지요.”

그러기엔 또 무리가 있었다.

뭔가 죄를 지어야 빌미를 잡을 것 아닌가.

결국 가기는 가야 할 것이다.

“이따 얘기해요.”

“이따가 언제 말입니까. 밤에?”

사이나는 그를 흘깃하고는 작게 대답했다.

“…네.”

콘스탄틴은 피식 웃고는 볼 언저리와 입가, 눈가 근처로 베이비 키스를 잔뜩 남기고 방을 나갔다.

다리엘이 하녀들을 데리고 다시 들어왔다.

“어머, 이 드레스는 못 입겠네요.”

다른 드레스를 고르러 사라지는 다리엘을 보는데 괜히 볼이 달아올랐다.

사이나는 그녀의 재빠른 지시하에 다른 드레스로 갈아입고, 장신구를 새로 고르고, 머리와 화장도 새로이 해야 했다.

금방이라도 손님들이 들이닥칠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