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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137화 (137/233)

137화. 잃어버린 시간의 퍼즐

“집사장님이 부재중이시라, 메모 남기고 왔어요. 복귀하는 대로 오실 거예요.”

“부재중?”

“네.”

“혹시 바깥에 무슨 다급한 일이 벌어진 건 아니고?”

사사로이 성을 비울 타입으로는 안 보였기에 그런 생각부터 들었다.

“아,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그건 어찌 알아?”

“잠시… 댁에 가셨대요.”

“댁에? 이 시간에?”

“사실… 집사장님께 아픈 가족이 한 분 계시거든요. 근데 그분이 요 며칠 좀 위독하셨나 봐요. 그래서…….”

나디아의 가족? 혹시…….

“각하의 유모님 말이니?”

“어, 각하께서 말씀하셨어요?”

다리엘은 사이나가 유모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에 놀라는 것 같았다.

대체 유모의 존재 유무를 아는 게 왜 놀라야 하는 일인지 알 수 없어 사이나는 다리엘을 바라보았다.

“응. 저번에 소개시켜 주셨는데. 그게 이상한 일이니?”

“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마치, 콘스탄틴이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예상한 것 같은 반응 아닌가.

“유모님이 그, 좀 외진 곳에 사시거든요. 그래서…….”

분명 다리엘은 뭔가를 얼버무리고 있었다.

저번부터 이 유모가… 걸린다. 콘스탄틴과의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다리엘에게 캐물을 수도 없고…….

“많이 안 좋으시대? 의사에게 보이긴 한 거야?”

그보다는 유모님의 건강이 걱정이 되었다. 저번에도 그다지 몸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는데 ‘위독’이라는 단어가 나올 정도면 심각한 거 아닌가?

“크림성의 주치의에게 명해서 내가 진료를 좀 부탁하더라고 전하고, 상태가 어떤지 좀 알아와.”

콘스탄틴도 자리를 비운 때에 혹여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큰일 아닌가.

“아……. 그게.”

근데 어쩐지 다리엘이 굉장히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왜 그래?”

다리엘이 짧게 한숨짓더니 조심스레 덧붙였다.

“…아마 소용없을 거예요.”

“응?”

“일반 의사가 낫게 할 수 있는 병이 아니에요.”

“무슨, 뜻이야?”

“더 깊게 말씀드릴 수는 없어요. 죄송합니다.”

다리엘이 머뭇거리며 사과했다.

공작부인이 물어보는데 더 말할 수 없다고?

‘그렇다는 건…….’

공작부인보다 더 높은 권위에 얽힌 사정이라는 뜻이다.

결국 공작과 관련한 이야기라는 결론밖에 안 나온다.

‘이것도, 수호령과 관련한 비밀인가?’

그의 등에 새겨진 그 문양들로 인한 문제도 수호령이 연관된 것이었다. 그와 관련한 비밀들은 대부분 그러한 것 같았다.

칼리고라는 존재까지는 사이나도 눈치를 챘는데, 아직도 비밀이 남아있다니……. 대체 뭘까.

“…알았다.”

“죄송해요. 제 권한 밖이라……. 그렇다고 마님께 거짓을 고하고 싶지는 않아서요.”

“알았어. 무슨 뜻인지 알겠어. 그보다는.”

“네.”

“그래서 그 유모님은 괜찮으시다니?”

“아, 근래 의식이 없었는데 오늘 마침 깨어나셨나 봐요.”

“뭐……?”

의식을 잃었을 정도였단 말이야? 큰일 날 뻔 했네?

“하아. 다행이구나.”

“네.”

사이나는 잠시 유모와 만났을 때의 안색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고 보니 가끔 들러본다고 해놓고…….’

내일 한번 들러야겠다.

콘스탄틴에 관한 소식을 좋아하는 것 같던데 좀 들려드리고, 차도 좀 끓여 드리고…….

생각난 김에 찾아뵙고 교제도 하고, 건강 상태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게 사이나는 내일의 일정을 조정했다.

* * *

다음 날.

사이나는 전날에 하녀를 시켜 미리 준비시켜 두었던 바구니를 들고 일찍이 밖으로 나섰다.

바구니 안에는 유모님께 선물로 드릴 몇 가지 선물이 들어 있었다. 위에 부담이 없는 종류의 과일과 과일 절임. 그리고 차를 좋아하시는 것 같아 찻잎도 챙겼다. 그 외에도 몇 가지 부드러운 유의 디저트 등도 있었다.

취향을 모르니 잘 드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후원을 가로질렀다.

숲길로 들어선 뒤 지난 기억을 더듬어 길을 찾았다. 붉은 벽돌집으로 가는 길은 묘하게 인적이 드물고 약간 숨겨진 듯한 경로여서 헷갈리는 구획이 몇 개 있었기 때문이다.

두어 번 길을 되돌아 나오는 실수를 저지르고 나서 사이나는 붉은 벽돌집을 찾아냈다.

똑똑.

사이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노크했다.

한참 동안이나 반응이 없다. 혹시 유모가 또 아파서 누워계신 것은 아닐까 싶어 불안하다. 그냥 열고 들어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쯤 문이 열렸다.

“어머나, 마님 아니십니까?”

“안녕하세요?”

“어서, 어서 들어오십시오!”

심각하게 아팠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안색만 보아서는 오히려 저번에 보았을 때보다 나아 보였다.

겉보기만 그런 것은 아닌지, 유모는 극구 자신이 차를 우리겠다고 하여 사이나는 대접을 받아야 했다.

“공작님께서는 토벌을 나가셨어요.”

유모가 준 차를 마시며 사이나는 대화의 포문을 열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할 만한 화제는 아마도 콘스탄틴에 관한 것일 테니 그에 관한 화제로.

“또요? 작년과 올해는 어째 유독 심한 것 같네요. 나가면 더 못 주무실 텐데.”

“작년과 올해요?”

날씨도 그렇고 어쩐지 작년부터 달라진 것이 많은 것 같네.

“예. 나디아가 말해주더군요. 특히 작년엔 크림성에서보다 막사 생활이 더 기셨다고.”

그의 고생을 떠올리며 유모는 어쩐지 글썽한 기색이었다.

“아, 그랬군요. 그러고 보면 황도에서는 다들 공작님을 부러워하는데, 실제로는 뭐랄까. 쉽지 않은 것 같아요.”

“…….”

“차라리 후작이나 백작 정도 작위로 마음 편하게 사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니까요? 유모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름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다.

작위는 좀 낮아도 좀 더 여유 있는 의무를 가지고 약간은 놀고먹기도 하며 살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는.

“…그렇죠. 그렇고말고요. 우리 도련님…….”

“…….”

그런데 그 방향이 아니었나 보다.

“도련님께서 이 공작가를 물려받으시려고 얼마나 고생을 하셨던지…….”

웃음 짓기는커녕 유모가 한층 더 울먹이기 시작했다.

“유, 유모님. 울지 마세요. 기껏 조금 나아졌는데 또 기력을 잃으실 거예요.”

말주변이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워질 지경이다.

“그렇죠. 네. 이리 주책이라니까요.”

그녀의 말이 조금은 효과가 있었는지 유모가 눈물을 훔쳤다.

“지금 도련님께서는 이리 어여쁜 부인도 맞으시고 잘 살고 계시는데 말이죠.”

자꾸만 과거의 어느 시점인가를 회상하며 눈물짓는 유모지만, 콘스탄틴을 향한 애정만큼은 확고하게 보였다.

이런 것을 보면 확실히 애정에 기반을 둔 관계처럼 보이는데…… 이 물리적 거리감은 무엇 때문일까.

떨어져 사는 것도 그렇고, 이 집도 지금 보니 거의 격리처 같은 느낌 아닌가?

유모 쪽의 일방적인 애정인 걸까? 키운 정? 또 그렇다고 하기에는 콘스탄틴도 유모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았고.

‘도무지 뭔지 모르겠단 말이야.’

뭔지는 몰라도 과거에 있었던 어떤 일이 둘 사이의 핵심 원인인 것 같은데, 그것을 알 수도, 알 자격도 없다 보니 이 의문은 해결될 가능성이 보이질 않는다.

“얼마 전 많이 아프셨다고 들었어요.”

“예.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공작님께서 성을 비우신 사이에 또 쓰러지기라도 하시면 굉장히 속상해하실 거예요.”

“…….”

“정말 성내로 들어오지 않으시겠어요?”

“…….”

아무리 봐도 한적하고 외딴 생활을 좋아해서 여기에 사는 것은 아닌 것 같아서 물었다.

하지만 유모는 대답이 없었다.

“그게 정 힘드시면 하녀라도 두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이건 단순한 권면이 아니라 공작부인으로서 드리는 강한 부탁이라고 여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위까지 내세우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이렇게라면 요청을 수락할 것 같아 시도해 보았다.

“이렇게 따로 계시다가 유모님이 혼자 쓰러지기라도 하시면 제가 공작님 뵐 낯이 없어요.”

유모는 그가 친히 사이나에게 소개시켜 준 유일한 인물이며, 전생에 계약 결혼을 했던 목적이 되었을 만큼 콘스탄틴이 깊이 생각하는 존재다.

“…제가 생각이 짧았군요. 예. 그리하겠습니다.”

“정말이시죠? 잘 생각하셨어요!”

사이나는 정말 다행이다 싶어 밝게 웃음 지었다.

“유모님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혼자 이렇게 외롭게 사시는 걸 공작님이 원하실 것 같지 않아요. 건강과 외로움은 별개잖아요.”

“…….”

“하녀의 수발도 받으시고 대화도 나누시고 그러세요. 저도 이따금 찾아올게요. 나중에 마음이 바뀌셔서 성내로 거처를 옮기시면 더 좋고요.”

“마음이 따뜻한 분을 부인으로 맞으셔서 참말로 다행입니다.”

유모는 연하게 웃으며 따뜻한 표정을 지었다.

둘은 이후 화제를 바꾸어 약간의 대화를 더 나누었으나 원체 기력이 떨어진 몸이라 그런지 그것만으로도 유모는 금세 체력이 바닥을 찍었다.

그새 피곤해 보이는 유모의 모습을 사이나가 기민하게 알아챘다.

“유모님. 누우시는 것 보고 전 갈게요.”

“예. 마음 같아서는 더 있다 가시라고 하고 싶으나……. 죄송합니다.”

“그게 죄송할 일인가요. 푹 쉬기나 하세요. 하녀는 가자마자 보내라고 할게요.”

“예. 감사합니다.”

사이나는 유모를 부축해 침대로 이끌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그 강아지랑 같이 안 오셨군요.”

침대에 누우며 유모가 말했다.

“근래에 그 녀석이 혼자 자주 왔었습니다.”

“……네?”

사이나는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저와 같이 자고 가기도 했답니다.”

욜리… 말하는 거, 맞지?

“근래라 하면…… 정확히 언제요?”

“열흘쯤일까요. 그때부터 오더니, 일주일 전에는 이 늙은이가 불쌍했는지 돌아가지 않고 같이 있어 주었답니다. 그러다가 제가 의식을 잃은 것 같은데…….”

사라졌던 욜리의 시간이 여기서 짜 맞춰졌다.

“……아.”

대체 녀석은 왜 여기로 찾아왔던 걸까. 그리고는 왜 여기 머물렀던 걸까.

내가 널 방치해 두었던 동안, 너는… 외로운 사람을 찾아들었던 걸까?

“그때…… 전 사실 곧 죽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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