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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혼, 이번 생엔 제가 할게요-99화 (99/233)

99화. 짐승, 맞습니다

“…….”

말투는 속삭임이었지만 기실 다 들으라고 하는 말이었다.

“…….”

그 불경에도 불구하고 콘스탄틴의 표정은 미동도 없었지만 말이다.

“아니, 우리 집에서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고 그러세요!”

“…다른 집에서는 그럼, 뭐가 있었느냐?”

여전히 폭설 때 있었던 일에 대해 알고자 하는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드보프 백작이 눈매를 좁혔다.

“…아빠! 얼른 나가셔서 일 보세요!”

사이나는 거의 반 강제로 아버지를 비롯해 세이지, 유모까지 모두 내보냈다.

“유모! 얘도 데리구 가!”

“크아앙!”

욜리까지 내보냈다. 반 강제로 유모 품에 안겨 보내버렸다.

쾅!

세게 닫힌 응접실의 문이 외부와 내부를 단절시켰다.

본래 이성의 손님이 왔을 때는 문을 열어두는 것이 예법이었지만, 사이나는 틈도 없이 닫아버렸다.

보나마나 그 틈새로 몰래 엿들을 게 틀림없었다.

“…….”

부끄러움에 식구들을 다 내보내긴 했는데 콘스탄틴과 둘이 남고 나니 새삼 멋쩍음이 올라왔다.

그는 그녀의 행태를 옅은 미소와 함께 모두 다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느끼자 갑자기 천방지축같이 굴었던 모습이 부끄러워져서 쭈뼛하게 맞은편에 앉았다.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었을 텐데요.”

“뭐가 말입니까.”

“공작님께서 막, 그… 제가 너무 좋아서 그러신 것처럼 말씀하셨잖아요.”

나름 가족에게 체면은 섰으니 고마운 일이지만, 너무 과했다.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만.”

“네?”

“제가 먼저 안달복달했고, 싫다는 그대에게 매달려 빌며 제발 결혼해달라고 한 것도 저 아닙니까.”

…아니, 언제요?

“그대는 내가 아니어도 되지만, 나는 그대가 아니면 안 됩니다.”

“…….”

“그러니 다 맞는 말이지요.”

대체 자신의 어떤 면을 보고 저러는 것일까. 그러고 보면 그는 거의 첫 만남부터 꾸준하게 그녀에게 어필해왔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니……. 마치 전심을 다한 일생의 고백 같지 않은가.

하나 말의 내용에 비해 표정은 담담하기 짝이 없어 사람을 헷갈리게 했다.

“그래서 결혼식은, 다음 달이 어떨까 하는데.”

“네? 다음… 달이요?”

대귀족의 결혼식을 이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하겠다고?

결혼하겠다고 겨우 결심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인데, 결심하자마자 이리 바로 결혼이라니.

사이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황자 문제도 있고…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됩니다.”

“그,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한 달은 너무 심하지 않나?

“헤베타 파혼안이 올라왔습니다.”

“……!”

그래서 헤베타 일레인이… 그런 건가?

“다음 헤베타 후보를 두고 황자가 뭔 짓을 할지 모르지 않습니까.”

“…….”

아닐 거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이나도 그리 믿어지지는 않으니 문제였다.

“이리 이르게 발표한 것도 사실, 그것 때문입니다. 감히 제 약혼녀를 어찌 해볼 생각은 쉽게 하지 않겠지요.”

약혼녀…….

생소한 그 표현에 잠시 입이 다물어졌지만 납득할 만한 이유였다.

아무리 황자라도 공작가가 관련되면 제약이 따랐다. 황태자의 자격을 얻지 못한 황자이기에 더 그러했다.

“…알았어요.”

결국 그의 의견에 따르기로 한 사이나의 수긍에 콘스탄틴의 눈동자 안으로 안도의 빛이 짧게 스쳤으나, 그녀는 알아채지 못했다.

“준비는 이쪽에서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다만 의견이나 할 말이 있다면 얼마든지 이쪽으로 전달해 주십시오.”

“네.”

둘은 짧게 결혼식에 대해 이것저것 조율했다. 더 자세한 사항은 가문 차원에서 의견을 나누어야 할 것 같았다.

대화가 끝나고 공작이 일어섰다.

나가는 그를 배웅하려 사이나가 같이 일어섰다.

“그리고.”

응접실 문에 거의 다다른 콘스탄틴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는 몸을 틀어 그녀에게 시선을 내렸다.

“백작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닙니다.”

“……?”

콘스탄틴이 그녀 쪽으로 한 발 내딛으며.

“작위를 떠나….”

그녀의 허리를 감아 가볍게 들더니 한쪽에 내려놓았다. 등에 단단한 벽이 닿는 것이 느껴졌다.

“코, 콘스탄틴?”

“짐승, 맞습니다. 나 역시….”

그가 벽과 자신의 사이에 그녀를 가두듯 팔을 짚고는 고개를 내렸다.

“으…!”

다급하게 맞붙은 입술.

그의 혀가 그녀의 잇새를 가르며 내부를 벌리고는, 안으로 들어와 잠식했다.

입술을 빨며 혀로는 천장을 쓸며 내려와 그녀의 혀를 감아올렸다. 감은 혀를 빨아들이며 타액을 삼켰다.

깊어지는 입맞춤에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있는 그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으… 흣.”

질척한 소리를 내며 그의 혀가 곳곳을 누볐다. 다물리지 못한 입 안으로 타액이 고인다. 콘스탄틴은 빨아들이는 소리를 내며 그것을 삼켰다.

적나라한 키스에 목뒤가 쭈뼛 섰다.

“응…….”

“하아… 신음이 너무 귀여운 거 압니까?”

바르르 떨리는 몸을 감아 자신에게 기대게 하며 그가 속삭였다.

“하지만, 바깥에서 들을 수도 있으니… 조금만 죽이죠.”

“음!”

그는 다시 입술을 베어 물며 호흡을 삼켜왔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려는 그녀를 붙잡으며 그가 다리 사이로 자신의 허벅지를 밀어 넣었다.

돌덩이처럼 단단한 그의 허벅지가 그녀가 주저앉는 것을 방지하는 동시에, 꾸욱. 그녀의 치골을 압박했다.

“흐윽.”

아, 이 느낌은 대체 뭐지.

아랫배에서 느껴지는 생소한 감각에 어쩔 줄을 몰라 그의 옷깃을 꽈악 붙들었다.

그도 모자라 그녀의 장골 쪽에서 더 생소한 느낌이 들었다. 단단하게 곧추선 무언가가 그녀를 찌르는 느낌이.

‘설마…….’

사이나는 성애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무지하지는 않았다.

지금의 몸 자체야 경험이 없지만, 전생에는 결혼 경험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자신을 찌르는 ‘이것’이 무엇인지 정도는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다만, 전 남편의 그것과 느낌이 너무도 달라 당황스러울 뿐.

저도 모르게 아래로 내려간 시선을 그가 눈치챘는지 콘스탄틴이 입술을 뗐다.

얼핏 시야에 들어온 그것은…… 뭔가 심상치 않은 부피감을 보여주고 있었다.

“읏.”

콘스탄틴이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며 강제로 시선을 차단시켰다.

“그런 시선은 좋지 않습니다.”

너무 짐승 보듯 봤나…….

“미, 미안해요.”

“자극이 심합니다.”

네? 자극이요?

“그리 보면, 참기가 어려워요.”

뭔가 맥락이 이상하다. 설마 시선이 자극이 된다는 건가?

‘전 놀라서 바라본 것뿐인데요…….’

뜨악한 표정을 짓는 그녀를 보더니, 콘스탄틴이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그리고는 짧게 그녀의 입술을 빨아들였다가, 쪽 소리가 나게 찍었다 뗐다.

“오늘은 이 정도로 합시다.”

…오늘은? 다음엔 무얼 하시려고요?

자연스럽게 그런 의문이 따랐지만, 그 질문을 입 밖으로 내보내지 않을 만큼의 정신은 남아 있었다.

“가 보겠습니다.”

“네. 조심히… 가세요.”

한껏 부풀어 오른 저 상태로 어찌 가려나 의아했으나 그는 간단하게 해결했다.

망토 한쪽을 어깨 앞으로 돌려 차단한 것이다.

응접실을 나서는 동시에 그의 얼굴 위로는 평소의 그 무감한 표정이 떠올랐다.

누군가 그의 상태를 알아채면 어쩌지, 하는 그녀의 걱정이 무색하게 그는 유려하게 인사를 남기고는 백작저를 떠났다.

떠나는 크레이머가의 마차를 보며 사이나는 문득 깨달았다.

제 앞에서 보여주는 표정과 대외적인 표정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 * *

결혼 발표도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만, 결혼식이 불과 한 달 후라는 것이 알려지자 귀족 사회는 더 깜짝 놀랐다.

“도둑 발표도 모자라서 한 달 후라고!”

사이나의 가족 역시 한 달 후라는 날짜에 경악했다.

정말 폭설 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맞느냐며 매우 의심 어린 시선을 받아야 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니까요! 그게 아니라… 헤베타 때문이에요.”

“헤베타? 크레이머 공작도 그걸 알고 계시냐?”

“헤베타 파혼안이 올라왔다는 걸 알려주신 분이 그분이신걸요.”

“…….”

드보프 백작과 세이지는 불만 어린 표정이기는 했지만, 결국 이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에는 반박하지 못했다.

“내 딸이…… 데뷔하자마자 시집을 가게 되다니…….”

“데뷔탕트 볼이고 뭐고, 그냥 벌금이나 물걸 그랬습니다.”

“그러게 말이다. 그랬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백작과 세이지는 관심 없다는 아이를 구슬려 어떻게든 바깥에 나가게 했던 스스로의 과거를 후회했다.

하지만 후회할 시간도 모자랐다.

평민들조차도 결혼이라는 거사를 치를 땐 준비 기간이 길었다. 덕분에 드보프가는 결혼 준비로 말도 못 하게 바빠졌다.

상대적으로 결혼 당사자인 사이나는 한가한 편이라 아이러니기는 했지만 말이다.

바깥에는 이 기이한 결혼으로 온갖 소문이 무성하게 돌고 있었으나, 언제나 그랬듯 별 관심이 없었던 사이나는 알지 못했다.

“오늘도… 아주 넘치는걸.”

그렇다고 해도 결혼 발표의 여파가 사이나를 피해간 것은 아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서신들이다.

이것들을 분류하고 답장을 하는 작업이 하루 주요 일과로 자리 잡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서신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끝이 없네, 끝이. 앗, 이건…….”

화려한 봉투들 사이에 지나치게 수수해서 오히려 눈에 들어오는 한 봉투. 벨류아 고서적 전문점이다.

[드보프 영애님께.

안녕하십니까.

결혼 소식은 저도 들었습니다. 황도가 떠들썩하더군요. 축하드립니다.]

첫 장을 읽다 말고 사이나는 미간을 긁었다.

황도가 떠들썩할 정도로 동네방네 다 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다행히 서적 복원 작업은 잘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이미 스러진 부분이야 어쩔 수 없지만, 남은 페이지는 책장을 자주 넘기시더라도 부서지지는 않을 겁니다.

시간되실 때 찾으러 오시면 됩니다. 아니면 보내드릴까요? …….]

그렇지 않아도 오늘 웨딩드레스를 맞추러 외출할 예정이니 부티크에 가기 전에 잠깐 들르면 될 것 같다.

“아, 손가락이야.”

오늘치 서신은 대충 수습했다.

아버지는 물론이고 세이지 오라버니도 개인 보좌관을 두고 있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지간한 것들은 집사 휘하 행정 쪽에 다 맡겼음에도 이 정도라니…….

똑똑.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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