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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여기사에게 구원받았다 (78)화 (78/154)

78.

플로라의 눈이 크게 뜨였다.

리비에르의 손바닥 위에 빛으로 만든 나비가 앉아 있었다.

“……너무 예뻐요. 이것도 마법인가요?”

“그래. 마법이지.”

플로라가 웃자, 리비에르도 짧게 웃었다.

“마력이 봉인되었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새어 나오는 마력이 있으니, 분명 마법도 구사할 수 있을 거야.”

“…….”

“경이 두렵다면 누군가를 다치지 않는 선에서 구사하는 빛의 마법부터 시작해보자. 전에 배웠던 것은 잊어.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달래는 듯한 목소리에 마음 한구석이 시큰거렸다.

그는 센칸의 훈련관처럼 해내지 못하는 일에 질책하고 욕하지 않았다.

마음에 응어리졌던 모든 감정들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자신을 무능하다고 질책하는 듯했던, 라비우와 아이든의 실망스러운 표정도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자책하던 모든 것들이 조금씩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 대신 머릿속에는 리비에르가 만들어낸 나비가 팔랑거리며 날아다녔다.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마법을 가르치는 게 주목적은 아니지만, 경이 해내는 모습을 보니 그쪽으로도 욕심은 생기는군. 원래 그래. 가르치면 가르치는 대로 잘 해내는 제자를 만나면, 이쪽에서도 의욕이 생기거든.”

그의 말대로 리비에르의 죽어있는 듯하던 눈동자에는 한결 생기가 돋아 있었다.

“네. 좋아요.”

플로라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칭찬받는다는 건 좋았다.

* * *

마력 훈련에 진전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리비에르가 제 마음을 안정시켜주었듯 빛으로 마법을 구사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드니 해내지 못한다는 죄책감보다 흥미가 더욱 커졌다.

저녁 훈련 시간이 되어서야 플로라는 리비에르와의 훈련을 마칠 수 있었다.

“앞으로 삼일 정도 후에 시간이 될 것 같군. 그때는 나와 가볼 데가 있어. 성 밖에서 만나는 게 어떻겠나?”

“……아, 알겠습니다.”

“에르네 단장에게 내가 따로 전해두지. 정확한 시간과 날짜는 경의 대장에게 전달받아.”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했네.”

리비에르는 무언가 아쉽다는 듯한 얼굴이었지만, 이내 작별 인사 후 방을 떠났다.

플로라도 저녁훈련에 가야 할 시간이라는 걸 깨닫고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플로라 님!”

기사단 본부로 향하던 와중, 뒤에서 들려오는 반가운 목소리에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아, 루가르 님.”

“여명 기사단으로 오신다는 소식은 전해 들었어요! 오실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하필 오전에 근무가 있어서 이리 인사가 늦었네요. 축하드려요!”

“아…… 감사합니다.”

“숙소도 이용하신다고 하셨죠? 저도 내키지는 않지만 야간에 일이 있을 때는 그곳에 머물러요. 근데 플로라 님이 계신다고 하면 저도 완전히 숙소로 짐을 옮겨오고 싶을 정도네요!”

“아, 아니……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플로라 님과 이제 붙어 다닐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보고 싶을 때 보고, 대화 나누고 싶을 때 나누고요.”

루가르의 눈이 반짝거렸다.

플로라의 양손을 붙들며 웃는 모습에 플로라는 역시 이번에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루가르의 모습은 그저 사랑스럽고 해맑아서, 기분이 덩달아 좋아졌다.

“훈련장 길을 찾지 못하실 거라고, 대장이 제게 플로라 님을 데려오라고 했어요.”

“아…… 그렇군요.”

“훈련이 끝나면 기사단 편의 시설에 대해서 안내도 드릴 거예요!”

손을 놓지 않고 여전히 꼭 붙들고 있는 터라, 플로라가 난감하다는 듯 웃었다.

그도 그럴 게 훈련하러 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제가 첫날부터 훈련을 땡땡이치면 정말 곤란하겠죠?”

그녀의 의중을 대충 간과하고 고개를 갸웃하자, 루가르가 입술을 삐죽였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그때 멀리서 누군가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플로라와 루가르,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대장님.”

그 역시 오후 훈련에 참여하는 모양인지 아까보다 좀 더 움직이기 편한 복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루가르 경.>

루가르의 뒤에 선 에르네가 날 선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플로라에게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였지만, 아주 섬뜩한 표정을 짓고 있는 데다가 루가르의 표정을 보아하니 한 소리 들었을 거라고 추측은 되었다.

루가르가 플로라의 손을 놓고 쭈뼛거리듯 뒤를 돌았다.

<훈련 준비하고 얼른 훈련장으로 오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리 수다 떨 시간이 있던가?>

“죄송합니다. 플로라 님이 너무 반가워서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루가르가 입술을 삐죽이며 사과했다.

그 모습이 꽤나 귀여웠다. 꼭 사랑에 빠진 여인처럼. 하지만 이내 능숙하게 표정을 감추고, 에르네를 올려다보았다.

“설마하니 저를 못 믿으셔서 따라오신 것 같은데. 맞아요? 대장님?”

<너만 보면 플로라 경을 데려오는 데 한나절이 걸릴 것 같아서 말이지.>

아니라고 대답해도 될 것을 에르네는 구태여 맞다고 대답했다. 융통성 없는 상사의 대답에 루가르는 다시 입술을 삐죽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플로라는 두 사람이 그저 잘 어울린다는 생각뿐이었다.

곧 에르네의 시선이 플로라에게 닿았다.

<연무복으로 갈아입고 훈련장으로 갈 거다. 지금 숙소에 들렸다 나와도 지각이니, 빠르게 움직여.>

“……알겠습니다.”

플로라는 대장에게 인사한 뒤 루가르를 데리고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우리가 뭐 얼마나 떠들었다고요. 방금 만났는데.”

투덜거리는 루가르의 말을 들으며 숙소에 올라갔다. 두 사람은 연무복으로 갈아입은 뒤에야 다시 만나 훈련장으로 향했다.

“근데요. 두 분 잘 어울리십니다.”

“네?”

“대장과 루가르 님이요.”

“네? 네에? 아니, 플로라 님……! 그게 무슨 소리세요!”

루가르가 폴짝거리며 얼굴을 붉혔다.

그런 반응이 더 수상해 보인다고 말하려다 워낙 부끄러워해서 참았다.

“아니, 뭐…… 그냥 보기에 그렇다고요.”

“저, 정말인가요? 그러니까 대장과 제가…… 잘…….”

“예. 제가 보기엔 잘 어울려요.”

이번에는 귀까지 빨개졌는데도 아무 말이 없었다. 입꼬리만 웃음을 참지 못해 움찔거린다. 에르네야 워낙 표정이 없는 인간이라 마음이 어떻겠거니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전부터 루가르의 마음은 알고 있었다.

에르네가 루가르에게 말하는 것이 타인보다 편하다고 해도, 그걸 애정이라고 할 순 없으니까.

“대장 앞에서는 이런 소리 하시면 아, 안돼요…… 화를 내실 거예요.”

플로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각생들.”

훈련장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이었다. 뒤에서 누군가 루가르와 플로라의 어깨를 탁 붙잡았다. 뒤를 돌아보니 이젤이 그곳에 있었다.

“이젤 경도 지각이면서.”

“난 지금까지 근무하다 온 거거든?”

“나도 근무했는데요?”

“……그래? 그럼 얼른 가자. 지각했는데 걸음이 너무 느긋한 거 아니야?”

플로라는 다시 만날 이젤에게 인사할 기회도 없이 등을 떠밀려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훈련장은 넓었다. 지난번 에르네와 대련했던 연무장에 가본 적 있긴 했지만, 거기보다 좀 더 넓은 공간이라 갑갑하지 않았다.

족히 스무 명은 넘어 보이는 근위대 기사들의 훈련 모습은, 다시 보아도 장관이었다.

처음엔 시몬을 따라 이들이 훈련하는 걸 보러 온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일원으로서 함께하게 된다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훈련을 진행하던 에르네가 루가르, 플로라, 이젤을 발견하고 눈을 흘겼다.

한 소리 듣기 전에 후다닥 제자리를 찾아간 기사들은 보급용 검으로 다른 기사들처럼 훈련하기 시작했다.

플로라는 훈련에 금세 집중했다. 백기사단에 머물 때 배웠던 걸 잊지 않고, 스스로의 것을 만들어냈다. 그걸 간직하기 위해 애쓰며 검을 휘둘렀다.

<전보다 움직임이 많이 깔끔해졌군.>

“…….”

<훈련이 끝나면 나와 대련해보겠나?>

“네. 대장님.”

어느새 다가온 에르네가 플로라의 자세를 바로잡아주며 자신과 대련을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플로라에겐 좋은 기회였다.

다시 진검에 베여 다치게 된다고 하더라도, 강한 사람과의 대련은 그녀를 한층 성장하게 만들어 준다.

<진검으로는 하지 않겠다. 진검을 들면 피를 볼 때까지 해야 하거든.>

“저는 상관 없…….”

<그건 내가 상관있다. 내가 곤란해져.>

“……네?”

<있어. 그런 게.>

에르네는 무어라 더 말하려는 듯 한숨을 내쉬었으나,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른 기사들에게로 향했다.

플로라는 이해할 수 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으나, 그렇다고 붙잡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다시 훈련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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