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6화 (176/186)


 

176

첫 번째 시도에선 표면의 피막조차 썰지 못해서 밀려 나갔고, 두 번째에선 확실히 긁어 놓긴 했으나 그 너머의 질긴 근육과 힘줄을 찢지 못하고 날이 먼저 부러졌다. 

제길, 한 번만 더……!

아래에서 상황을 알아챈 태리가 재빨리 자신의 옆구리에서 도끼를 뽑아 그에게로 던진다. 날아오른 도끼를 정확하게 잡아챈 클로드가 같은 부위에 조준해서 도끼날을 내리찍었다.

퍽!

이번에는 박혔다. 살점과 살점 사이로 파고들어 간 또렷한 감각이 느껴진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어깨에 온 힘을 싣자, 피가 튀면서 등과 날개가 이어지는 비좁은 부위에 한 뼘 정도의 상처가 파였다.

처음으로 성공시킨 공격이었다. 살이 찢어지면서 괴성에 가까운 드래곤의 울음이 성 전체를 진동시켰다.

그리고 동시에 동굴 같은 목구멍이 천장으로 치솟고 송곳니가 번뜩이더니 드래곤의 입에서부터 새카만 브레스가 터져 나왔다.

태리가 발동시킨 모든 마법식이 녹아내리고 결계에 쩍 하고 금이 간다.

검은 수증기 같은 브레스가 마법을 뚫고 올라가 탑의 천장에 닿자 표면이 새카맣게 변하며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얼음처럼 차가운데 색이 검었다.

브레스가 퍼트린 냉기에 떠밀려 클로드가 아래로 추락하는 사이 드래곤은 찢어진 날개 그대로 얼어붙은 천장을 향해 맹렬히 자신의 몸을 던져 부딪쳐 박았다. 얼음이 되어 꽝꽝 얼어 버린 탑의 지붕은 거대한 몸뚱어리와의 충돌을 버티지 못하고 폭발이 일어나는 화산 뚜껑처럼 위로 터져 나갔다.

“……!”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들의 공격은 성공했던 게 아니란 걸. 그저 빠져나가기 위해서 드래곤이 제 어깨에 약간의 자국을 허용한 것뿐.

꼭대기에서부터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강한 바람이 거칠게 몰아닥쳤다. 한 번의 충돌로 건물의 뚜껑을 날려 버린 존재는 창공으로 올라가 마침내 웅크리고 있었던 거대한 날개를 펼쳤다.

그것이 강철 같은 다리로 성벽을 디디자 견고한 구조물이 종잇장처럼 허물어졌다. 그 벽을 짓밟고 날아오르며 두 날개를 있는 힘껏 펄럭이자 밑에 깔린 나무들이 우지끈 소리를 내며 꺾였다.

태리는 재빨리 총을 발사했지만 드래곤은 하늘을 자유로이 유영하며 회피해 냈다. 그러곤 방향을 틀어 머릿속에 박혀 있는 단 하나의 공간을 향해 곧장 사나운 비행을 시작했다.

물리적인 법칙을 초월하여 날아가는 속도를 두 사람은 감히 눈으로 좇을 수조차 없었다.

대신 한 박자씩 늦게 도달하는 소리들이 시야를 벗어난 광경을 전하고 있었다.

마을의 상공을 휩쓰는 날갯짓 소리, 그 아래로 비명을 지르며 혼비백산하는 사람들의 울음, 지붕이 뜯기고 나무가 뽑혀 올랐다가 떨어질 때의 파괴음. 쿵쿵 무언가가 계속해서 부서져 나가고 있었다.

어린아이 돌보듯 태리가 하나하나 어루만지며 가꿔 온 길거리와 애써 복구해 왔던 그 집들이…….

“공주님.”

“알아요. 가죠.”

깨질 듯한 이성과 거친 분노가 머릿속에서 튀어 오른다.

말했을 텐데, 여기는 내 땅이라고. 네 마음대로 망가트릴 수 없다고. 그녀는 그 사태를 용납하지도 방관하지도 않았다. 즉시 스크롤을 찢었다.

* * *

“으깨지고 뒤틀리고 뭉개지리라.”

마법사들이 단체로 같은 주문을 반복해서 영창한다.

그럴 때마다 도서관 밑바닥에서 퍼 올려지는 충격이 파도처럼 널뛰었다.

이어서 기사들이 발사점을 조준하고 있는 투석기에서 돌들이 날아가 건물의 외벽을 때렸다.

도시의 랜드마크처럼 구시가지와 신시가지 어느 곳에서도 보일 정도로 높고 거대했던 건물이기에 도서관을 부수는 일은 생각보다도 더 복잡한 난관을 겪어야만 했다.

자물쇠를 푸는 것처럼 마법사들이 건물에 걸려 있는 강화를 해제하거나 반대로 약화 주문을 걸어 줘야만, 이후에 기사들이 물리적인 타격을 가해 조금씩 깨 나가는 식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꾸준히, 착실하게 피해를 쌓아서 겉 부분부터 제법 많이 망가트려 놓았다.

속살이 드러나듯 노출된 지지벽에 튼튼한 밧줄을 걸어 힘 좋은 기사들이 사방에서 잡아당긴다.

모래성이 허물어지는 것처럼 기둥이 조금씩 흔들릴 때마다 건물에서 먼지구름이 자욱하게 흩어지며 시야를 더럽혔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도서관의 2층 유리창이 파삭 터지며 날렵한 움직임을 가진 형체가 그 안에서 튀어나왔다.

겁도 없이 붕괴되고 있는 건물 내부로 들어가서 마치 힘줄을 끊어 놓듯 계단과 기둥, 내림막 따위를 잔뜩 망가뜨리고 나온 이즈였다.

“뭐야. 아직도 멀쩡하냐, 이거? 뭔 철로 두들겨 만들었나!”

“위험하니까 이제 그만 나와! 어디서부터 무너질지 몰라! 곧 붕괴할 거야!”

아래에서 마법사들을 진두지휘하며 상황을 이끌던 브리짓의 고함이 크게 울려 퍼졌다.

곧장 알겠다는 신호를 보낸 이즈는 마지막으로 등에 짊어지고 온 거대한 망치를 강하게 내리쳐 외벽의 난간을 무자비하게 깨트린 뒤 밑으로 훅 뛰어내렸다.

그가 착지하고 바로 이어서 일부가 덩어리째로 떨어져 나가듯이 건물의 측면이 우르릉 무너지며 깎여 나갔다. 골을 덜컹거리게 할 만한 세기의 진동이 몰아닥쳤다.

“이제 전부 바깥으로 물러서! 불태워야 돼!”

책을 태워야 한다는 태리의 말을 기억하고 있던 브리짓은 마법사들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마법으로 이루어진 강력한 화염을 일으켰다.

그런 뒤 거기에 정점을 찍듯이 자신이 만든 독약을 수류탄처럼 던져 가세했다.

독을 삼킨 불은 순식간에 커다랗게 확장되며 치명적인 산성도를 발휘한다. 지붕을 도금하고 있던 청동이 녹아내려 쇳물이 아래로 주르륵 흘러내렸다.

열기는 다시 내부를 이루고 있는 목재 시설물로 옮겨 붙으면서 곧 도서관 전체가 커다란 가마에 들어간 것처럼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불길이 삼킬 수 있는 건물의 살점을 모조리 잡아먹고 뼈대가 남을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쉼 없이 움직여 온 몸을 잠시 멈추고 모두가 짧은 휴식 아래에 고된 숨을 쉬었다.

그런데 갑자기 주변이 확 어두워졌다.

숲 건너, 구시가지를 통해 비명과 함께 천둥이 터지는 듯한 굉음이 전달되어 오더니 하늘에서부터 때 아닌 회오리바람이 쏟아졌다.

바람은 차가운 냉기를 머금고 하강하더니 도서관을 덥히던 화마를 모조리 꺼트려 버렸다.

“저게 뭐야……?”

어둡게 흐려진 하늘 위에 커다란 그림자가 펼쳐져 있다.

갑자기 사위가 어두워졌던 건 그 그림자가 인간들의 머리 위를 덮으며 날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둑한 실루엣을 통해 꼬리가 드러났고 펄럭이는 날개가 보였다. 공중에서 원을 그리며 유연한 몸집을 뒤틀 때면 구름이 찢겨 나가며 그것이 가진 힘을 만방에 떨쳤다.

움츠러들었던 사람들의 눈동자는 모두 하늘로 향한다. 그런 이들의 머리 위로 풍압을 퍼트리며 그림자가 활강하듯 아래로 꺾여 내려왔다. 광범위한 날갯짓이 공기를 청소하듯이 밀어내자 주변을 부유하던 먼지들이 모조리 걷히며 마침내 새카만 비늘을 가진 드래곤이 지상으로 쿵 내려섰다.

“이 어리석은 피조물들이!”

장엄하고도 광대한 울부짖음에 머릿속에 파열이 일어나며 대다수가 신음하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처럼 가슴을 쥐어 잡거나 더러는 기절을 해 버린 자도 있었다.

“완전히 묶어 놓는 것에는 실패한 것인가.”

드래곤의 접근을 다른 이들보다 일찍이 눈치챘던 미리엘은 그나마 제법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하긴 했으나, 그런 그도 내면의 공포에 시달리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의 생존 본능이 당장 이곳에서 달아나라고 충고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 두 사람이 부디 무사하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성에서 방어선을 지켰던 클로드와 태리는 최선을 다해서 제 몫을 해냈다. 이제 고지는 코앞에 있고, 남은 것은 이쪽의 몫이다. 붉은 안광 앞에 저도 모르게 머리를 조아리고 항복을 고하고 싶었지만 자신마저 무너지면 안 된다는 필사의 의지와 책임감으로 미리엘은 내면을 잠식하던 공포를 떨쳐 냈다.

울렁거리는 마음을 다스린 그가 영혼을 일으키는 신성어를 또렷한 발음으로 외쳤다.

거룩한 가호가 투명한 파동을 그리며 뻗어 나가자, 공간을 억압하고 있던 긴장감이 느슨해지고 사방에서 사람들의 기침 소리가 콜록콜록 울렸다.

이로써 공포 효과는 사라졌다. 그러나―

‘……역시 신이었군.’

위압감을 자아내던 그 존재는 사라지지 않았다.

미리엘은 일찍부터 도서관의 붕괴로 인해 일반인들이 휘말리지 않도록 이 주변 일대를 성역으로 휘감아 놓은 상태였다. 신의 영역으로 선포했기에 어둠의 존재는 안으로 침범할 수 없다. 그런데 저 드래곤은 어떠한 저항도 없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오지 않았던가.

그것은 곧 그가 사악한 존재가 아니라는 증명이나 다름없었다.

드래곤은 자신이 가한 정신적인 지배를 풀고 이 힘을 펼친 자가 누구인지를 정확하게 잡아내곤 노려본다. 미리 각오하지 않았더라면 다리에 힘이 탁 풀려 기절했을 만큼 전율적인 눈빛이었다.

“부질없는 짓이다. 너는 네가 가진 그 무엇으로도 나의 의지에 대항할 수 없으며 어떠한 희생을 쏟아붓는다 해도 결코 나의 이상을 방해할 수 없다.”

그것은 대서고에서의 것보다도 한층 더 우월한 자아를 지닌 신의 목소리였다.

“뒤로 돌아서라.”

드래곤이 절대자만이 가진 권능을 쓰기 시작했다.

“……어엇! 모, 몸이!”

행동의 자유를 앗겨 조종당하는 무력한 인형들처럼 수십 명의 기사들이 당기고 있던 밧줄을 놓고 뒤로 돌아섰다.

“모든 마법을 거두어라!”

그다음으로 마법사들이 시전하려던 마법을 도중에 중지하고 지팡이를 내렸다.

붕괴에 힘을 보태던 세력들이 모두 떨어져 나가자 기울어진 채로 흔들리던 도서관은 다시 서서히 중심을 향해 바로 선다.

금화로 뒤덮인 산을 기어가는 사악한 몬스터처럼 드래곤은 자신의 긴 꼬리와 네 개의 발, 그리고 날개를 이용해 그 길고 거대한 건물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뒤 제 몸으로 벽 전체를 칭칭 감아 덮듯이 보호했다.

그가 집중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 순간 노려야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단적으로 증명하는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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