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3화 (63/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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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통을 사선으로 찢어 갈기는 참격. 다른 놈이 그를 물어뜯기 위해 손톱을 내리그어 보지만 건틀릿을 낀 팔과 어깨로 밀쳐 멀리까지 날려 버렸다. 준비 자세도 없이 상대를 밀쳐 내는 어마어마한 넉백(knock-back) 기술이었다. 

그다음에는 부식된 등을 밟고 일부러 몰려 있는 무리 속으로 떨어지더니 구울이 떼로 몰려오는데도 피하지 않고 파고들어 대각선으로 빠르게 X 자 베기를 연속한다. 칼이 지나간 자리 그대로 구울들의 몸은 네 조각으로 찢겨 나갔다. 군더더기 없이 강약 조절마저 완벽한 칼질이었다.

무거운 검을 쥐고도 지치는 기색 없이 그는 한 곳을 다 처리하고 나면 곧바로 방향을 전환해 또 다른 곳으로 달려갔다.

베는 것이 아니라 써는 수준.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검의 회전 속도가 빠르고 휘두르는 반경도 넓어서 공격 범위 역시 미친 수준이었다.

그 신속한 쇄도 탓에 그를 노렸던 구울들의 이빨과 손톱은 번번이 빗나간다. 공격이 닿았을 때 이미 그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저걸 어떻게 이겨. 저게 인간이야?”

급기야 이런 말까지 나왔을 즈음이었다. 하늘에서 끔찍한 괴성이 울려 퍼지며 본 드레이크가 뼈다귀를 달그락거리며 날아오기 시작했다. 누가 보아도 명백히 목표물은 클로드.

뼈로 된 익룡이라 베거나 찌를 수 없고 약점을 찾아서 노려 보기엔 시간이 너무도 촉박하다. 모두가 그의 다음 행동으로 회피를 점쳤을 때였다. ‘카앙!’ 하는 묵직한 파동이 고막을 진동시켰다.

“카, 칼로 때렸어?”

“저 총독 미친 거 아니야?! 무슨 짓이야, 위험하게!”

그랬다. 클로드는 모두의 예상을 꺾고 제자리를 지킨 뒤, 몸을 낮춰 양손 검처럼 검의 손잡이를 잡아 무지막지한 충돌의 힘으로 드레이크의 두개골을 휘둘러 팼다.

거대 몬스터에게 저런 식의 대응이라니? 구타가, 그러니까 단순 타격이 먹힌다고? 보는 이들의 이성이 마비가 될 정도의 충격이다.

웬만한 장면 앞에서도 초연한 태리조차 그건 좀 많이 놀랐다.

‘어떻게 하면 검으로 머리를 두들겨서 본 드레이크한테 기절을 먹일 수 있지? 그 한 방으로 체력을 반 이상을 깎기라도 한 거야?’

별을 보는 것처럼 휘청거리던 드레이크는 대충 정신이 들자 더 덤벼들지 못하고 하늘로 솟구쳐 줄행랑을 쳤다.

순간적으로 겁을 먹고 튄 모양인데 몬스터를 기세로 제압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강한 놈이 이를 악물고 싸움질을 하니 생각지도 못했던 희귀한 구경을 다 하게 됐다.

“뭐야. 이렇게 다들 손가락만 빨면서 감탄이나 할 거야? 저러다가 기사들이 다 해 먹겠네! 가자, 우리도 가자고!”

얼이 빠진 인간들 사이로 반전을 일으키며 돌진을 시작한 건 브리짓이었다. 등 뒤에 커다란 드럼통 같은 것을 가방처럼 메고 온 그녀는 그 통에 분무기를 연결하더니 독극물을 마구 뿌려 대며 마법사들을 강제로 이끌고 나섰다.

“다들 내 뒤를 따르라! 저 적폐 기사단에게 본때를 보여 주자!”

“잠깐, 기다려, 브리! 마법사는 그런 식의 전투는 못 해! 기사처럼 전방에서 싸울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고. 몸 약하잖아! 체력도 약하잖아!”

태리가 양팔을 벌리고 막아서려 했지만 상성 위에 질투가 있는 법. 사람은 동정심은 쉽게 버려도 시기와 질투는 쉽게 버릴 수 없다.

“그래! 기사 놈들이 다 해 먹게 놔둘 수는 없지! 돌격하자!”

거기에 고양된 마법사들이 그녀의 반대를 무릅쓰고 브리짓의 뒤를 따라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그 호응이 얼마나 열렬했으면 클로드의 압도적인 기세에 주눅이 들었던 이들마저도 황급히 정신을 차리며 본분을 되찾는 데에 성공했다.

그래, 우리가 여기 왜 왔나. 남 잘 싸우는 꼴이나 보려고 온 게 아니었지.

모두가 1등을 꿈꾸고, 모두가 세계를 구하는 용사의 타이틀을 원한다. 경쟁에 눈이 돌아간 사람들이 모조리 무기를 치켜들고 정원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그렇게 전 부대에서 교전이 시작됐다.

“콜록콜록!”

“쯧쯧쯧, 하여간 인간이란 탐욕스럽기로는 제일이지.”

그들이 남긴 뿌연 먼지 속에서 기침을 뱉는 태리의 등을 이즈가 툭툭 쳤다.

* * *

‘클로드 때문에 겁먹어서 저러나?’

가장 늦게 정원에 입장한 태리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그늘 밑에 팔짱을 끼고 숨어서 하늘을 선회하고 있는 드레이크를 관찰했다.

펄럭이는 뼈 날개의 모양을 살피던 이즈가 옆에서 중얼거렸다.

“저거 지금은 내려올 마음이 없는 것 같은데.”

“그래?”

본 드레이크 같은 날짐승을 상대하는 방법은 당연하지만 땅으로 끌어 내리는 것이다. 육지전의 경험이 적은 날짐승에게서 날개의 능력을 봉쇄하면 보통은 바보가 되니까.

“좋아. 그럼 얼마나 강한지부터 확인해 볼까.”

저격수가 타깃 설정 전에 자리를 잡듯, 태리는 나무를 엄폐물로 삼아 한쪽 무릎을 굽히고 자세를 낮췄다. 그런 뒤 도끼를 가로로 눕혀서 나무 허리에 깊게 박아 넣은 다음 일직선으로 뻗어 있는 도끼의 손잡이에 총구를 대고 걸쳐 놓았다.

그것을 지지대 겸 기준대로 삼고 신중하게 영점 조준을 하다가 마침내 방아쇠를 당겼다.

탕!

“빗나갔고.”

탕!

“또 빗나갔고.”

타앙!

“이제야 겨우 하나 맞췄고.”

“난 너 같은 궁수가 아니라 그냥 마법사거든?”

두 번의 빗나감 끝에 세 번째 탄에서 날개와 어깨를 잇는 관절 부분을 적중시켰다. 그러나 잠깐의 울음과 흔들림이 있었을 뿐 드레이크는 금세 평형을 되찾았다.

“센데?”

“타격은 있었어. 근데 복구되는 속도가 그것보다 빨라.”

어찌 되었든 생각보다 몸이 단단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둘이 대강 그런 결론을 내렸을 때였다. 고개를 휙휙 돌리며 자신의 몸에 바람구멍을 낸 인간을 찾던 본 드레이크가 범인 색출을 실패하곤 분노해서 사방으로 거친 포효를 내질렀다.

가장 먼저 기민하게 그 음파를 감지한 이즈가 손바닥으로 태리의 양쪽 귀를 막는다.

하지만 대비를 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은 그대로 공포 효과에 노출되었다. 정신력이 약한 자들이 무기를 떨어트리며 땅에 엎어졌고 상태 이상을 풀기 위한 커다란 소동이 한차례 있었다.

“괜찮냐?”

손바닥을 떼며 들여다보는 이즈의 물음에 태리는 얼떨떨한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지켜 주겠다고 말한 지가 고작 얼마 전인데, 벌써 부상자가 나와 버렸다.

“안 되겠어.”

“뭘.”

“그냥 끌어 내려야겠어. 표적을 나한테 집중시켜서 사람이 없는 쪽으로 유인한 다음에 중력 마법으로―”

“됐으니까 끌어내릴 준비나 해.”

시선을 끌기 위해 다시 하늘로 총구를 들어 올리는 그녀의 팔을 이즈가 가볍게 막곤 대신 나섰다. 활을 뽑아 조준 사격을 준비하는 그의 자세가 가볍고 산뜻했다.

“괜찮겠어?”

“난 너처럼 마법사가 아니라 궁수거든?”

그녀가 했던 말을 거꾸로 돌려주더니 그는 공중에 떠 있는 드레이크의 목을 향해 명중률이 정확한 화살을 쏘았다. 그러곤 ‘어이, 뼈다귀. 여기다, 여기!’ 하면서 비교적 한산한 공터로 유인하기 시작했다.

그가 달아나면서 물의 정령들을 소환하자 그들이 바닥에 붙어서 땅을 얇게 얼린다. 그 빙판길을 스케이팅하듯 쭈욱 미끄러지며 달리자 달아나는 이즈의 속도는 월등히 빨라졌다. 그러면서도 탄도를 정확히 계산해 목표물을 맞히는 모습을 능수능란하게 선보였다.

남이 볼 때는 대충 픽픽 쏘는데 그냥 다 맞추는 광경이었다.

‘말도 안 돼. 난 저런 거 하려면 주문을 한 세 줄은 외워야 되는데!’

억울하면 궁수를 해야 되는 일.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게임 계정을 갈아치우듯 직업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태리는 이즈의 뒤를 숨이 차도록 쫓아가며 세 줄이 아닌 다섯 줄 이상을 넘어가는 중력 마법을 쉼 없이 영창 해 완성시켰다.

‘됐다, 끝! 중력 강화!’

허공에 펜타그램 같은 진이 완성되어 맺힌다. 뼈다귀 날개를 펄럭대던 몬스터는 그 힘에 휘말려 바닥으로 추락했다.

별똥별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거대한 몸뚱이가 지면을 강타하면서 장대한 진동이 광광 퍼져 나갔다. 더불어 반경 안에 속해 있던 것들도 모조리 남김없이 쓸려 나가 넘어진다. 이즈 또한 풍압에 밀려 튕겨져 나갔다가 삐죽하게 튀어나온 나무줄기를 붙잡고 버텼다.

“……뭐야, 이런 힘은. 몰락한 공주라더니.”

끌어 내린다는 말을 고도를 낮춘다는 정도로만 알아들었지 이렇게 진짜로 바닥에 처박는다는 얘기인 줄은 몰랐다. 지팡이도 없이 이만한 위력이 가능한 얘긴가.

그사이에 태리는 땅으로 내려온 드레이크와 홀로 대치하고 있었다. 드레이크가 집채만 한 입을 벌려 그녀를 통째로 삼키려 달려들었지만 그 전에 몸을 굴려 피하면서 어금니가 딱 맞물리는 살벌한 소리가 난다.

그다음에는 앞발을 들어 짓밟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민첩하게 회피해 냄으로써 맨 땅에는 커다란 발자국만이 푹 파여 찍혔다.

두 번이나 공격이 실패하자 화가 난 놈은 날아오를 생각을 버리고 뿌리째 뽑힌 나무나 큰 바위들을 닥치는 대로 입으로 물어서 던지기 시작했다.

태리는 타격점이 아슬아슬하게 빗나가도록 일부러 위태로움을 조장해 가며 가볍게 움직여 드레이크의 신경을 긁었다. 약이 바짝바짝 올라서 자신을 공격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그러면서도 빠르게 두뇌를 회전했다.

몇 번을 내려쳐야 목을 잘라 낼 수 있나? 목을 자르는 게 어렵다면 날개를 뜯을 수는 있나? 뜯는 것이 더 쉬울까 부수는 것이 더 쉬울까?

상체를 노릴 수 있는 틈을 엿보며 도끼로 하반신을 몇 대 찍어 본다. 클로드가 했던 것처럼 한 방에 기절을 먹을 정도의 힘은 없지만 날실과 씨실로 엮이는 직물처럼 크고 작은 심리전을 촘촘하게 걸어서 상대한다.

아프진 않지만 짜증은 나도록, 그래서 자신의 특기인 하늘을 버리고 기어이 그녀에게 집착하다가 섣부른 무리수를 터트리길.

잡힐 듯 말 듯 요령 있게 치고 빠지는 심리전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드레이크는 그녀의 소원대로 커다란 주둥이를 벌렸다. 아룡류 특유의 궁극의 스킬인 브레스를 쏘려는 것이었다.

언데드이니 암흑 계열일 것이고 닿으면 살이 오염되고 부패된다.

태리는 알면서도 물러서지 않았다. 보통 큰 공격 뒤에는 필연적으로 여러 개의 틈이 생기기 마련이라 놈이 브레스를 뿜으려 목을 내릴 때 간발의 차로 날아올라 그 위에 올라탈 작정이었다.

“앗! 공주님이!”

“아앗! 공주님이!”

“아아앗, 안 돼! 공주님을 보호해라!”

그러나 그녀의 위험 신호에 마법사들은 안테나라도 달린 것처럼 사방에서 즉각적으로 발동했다. 모두가 하던 것을 내던지고 그녀를 향해 지원을 쏟아부었다.

“스톤 배리어!”

“강철의 방패 소환!”

“자객의 발걸음!”

“시, 시, 시간 역행!”

“헉! 시간 역행 누구야! 미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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