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화 (50/161)

50화

‘저게 뭐지?’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동굴 벽에 이곳저곳 박혀 있는 형광 초록색 이물질들.

이것 중 하나를 떼어 내 앨리샤의 몸에 대고 있는 모양이었다.

“조안! 앨리샤가…… 어머나!”

한 아주머니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우리에게 고개 돌렸다가, 나를 발견하곤 우뚝 굳었다.

“이, 이럴 수가. 성녀님!”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아이린 그레이스라고 해요. 앨리샤는…… 저 아이인가요?”

곧 정신 차린 아주머니가 눈물을 훔치며 누워 있는 여자아이를 돌아보았다.

“네, 네. 맞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성녀님. 델피나라고 해요.”

자신을 소개한 델피나 아주머니가 손수건으로 눈가를 찍었다.

“저희 앨리샤가…… 눈을 못 뜬 지도 일주일이 되어 가요.”

“일주일이나요.”

나는 천천히 앨리샤에게 다가가 아이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앨리샤 위에 형광색 돌멩이를 대고 있던 사람들이 얼른 옆으로 물러났다.

“기적적으로 성석이 가득 찬 동굴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는데…… 어쩐 일인지 성석이 앨리샤에게만은 전혀 효험이 없네요.”

성석이 가득 찬 동굴?

나는 의아한 얼굴로 동굴을 돌아보았다.

설마, 저 형광색 돌멩이를 말하는 건가?

“어머니.”

그때 조안 경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 돌이 성석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대성당에서 검증받지 않은 돌을 성석이라고 섬기는 것은 우상 숭배에 지나지 않습니다.”

“조안, 그게 무슨 말이니. 우상이라니! 이건 틀림없이 엘룬 신께서 우리에게 내려 준 성석이 맞아.”

조안 경의 어머니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설득했다.

옆에서 다른 아저씨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조안. 난데없이 나타난 마수들이 성당에 침입해 성석을 가져갔지. 이런 상황에 다른 성석들처럼 스스로 발광하는 돌멩이로 가득 찬 동굴을 발견했지 않니.”

“이게 엘룬 신께서 내려 주신 구원 줄이 아니면 뭐겠어.”

사람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엘룬 신께 짧은 감사 기도를 올렸다.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건 조안 경뿐이었다.

‘성석이라.’

나는 형광 초록색 돌멩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악마가 뱉었던 성석 라케이아가 떠올랐다.

눈부신 황금빛으로 빛나던 그 보석이.

“어떠신가요, 성녀님?”

누군가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성력이 느껴지시나요?”

“으음…….”

나는 애매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그런 걸 느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진짜 성석을 두 개나 본 전적이 있었다.

대성당의 것과, 리칼리온의 것.

‘그것들은 확실히 보는 순간 눈이 부셨었는데.’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돌멩이는, 자체적으로 발광하고 있긴 했지만 그 성석들처럼 달빛을 품은 듯 빛이 나진 않았다.

“자, 앨리샤 위에 성석을 더 많이 덮어 주자.”

“어머니. 그만하십시오.”

조안 경이 참지 못한 듯 앞으로 나섰다.

“저건 그저 정체 뭔지 모를 돌멩이입니다. 돌멩이에 묻혀 있던 일주일간 앨리샤의 상태가 호전되었습니까?”

“그건…….”

델피나 아주머니가 말을 얼버무렸다.

나는 형광색 돌멩이를 땅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호전되었나요? 어머님.”

“그게…… 걱정되는 부분들이 있어요.”

델피나 아주머니가 머뭇대는 손길로 앨리샤 위에 덮어 놓은 모포를 살짝 걷었다.

다음 순간 나는 작게 숨을 삼켰다.

“이건…….”

앨리샤의 쇄골 부근에 울긋불긋, 마치 멍이 든 것처럼 검붉은 색이 피어 있었다.

“점점 더 심해지고 있어요.”

델피나 아주머니가 울음기를 삼키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상해요. 다른 사람들은 이 동굴에 들어온 이후 호전된 경우도 많은데…… 우리 앨리샤는 왜. 흐윽!”

“어머님.”

나는 앨리샤 위로 다시 모포를 덮어 주며 말했다.

“앨리샤가 혹시 평소에도 면역력이 약한 아이였나요?”

“네, 네. 맞아요. 항상 몸이 약해서 저희 식구들이 걱정을 달고 살았어요.”

“제 소견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나는 천천히 동굴을 돌아보았다.

형광 초록빛이 이곳저곳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동굴은, 얼핏 아름다워 보였다.

하지만 나는 등 위로 얼음이 지나가듯 오싹한 소름이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럼요, 그럼요. 우리 앨리샤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성녀님.”

델피나 아주머니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마치 유일한 구세주를 보듯이.

“제 생각에는, 어머님.”

형광색으로 빛나는 돌멩이, 그리고 앨리샤의 멍.

떠오르는 가설이 있지만 확신할 순 없었다.

하지만 만약 그 가설이 맞다면, 이 동굴 안에 있는 사람들에겐 재앙이 닥칠 것이다.

나는 아주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이 동굴에서 나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네…… 네?”

“지금 당장요.”

델피나 아주머니는 어안이 벙벙해 보였다.

나는 조안 경을 돌아보았다.

“조안 경. 밖에 아직 마수가 득실거리나요?”

“성기사들이 잔당을 상당히 처리한 상태입니다. 적어도 이 주변은 모두 정리되었습니다.”

“좋아요. 그렇다면.”

나는 결심하곤 앨리샤를 내려다보았다.

“당장 여기서 나가죠.”

그렇게 말한 나는 주변에서 적절한 나뭇가지 두 개를 찾아, 젓가락처럼 움직여 형광색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그런 내 손짓을 사람들이 진귀한 것을 보듯 구경했다.

“우와, 성녀님은 손재주도 좋으신가 봐.”

“나뭇가지를 어떻게 저런 식으로, 와아아.”

젓가락질로 칭찬받는 건 유치원 이후로 졸업한 줄 알았는데.

나는 머쓱함을 감추며 사람들을 채근했다.

“움직입시다. 어서요!”

“어머니. 앨리샤는 제가 안겠습니다.”

조안 경이 제일 먼저 움직여 주었다.

갑작스러운 나의 이사 선언에 당혹해하던 사람들이 엉거주춤 움직이기 시작했다.

동굴을 꽤 오래 걸은 뒤에야 우리는 바깥 빛을 볼 수 있었다.

입구를 향해 빠져나가려던 때였다.

“아이린?”

마침 도착한 듯 이안이 말에서 막 내리고 있었다.

그의 뒤로 비치는 역광에 눈이 부셔 나는 가늘게 눈살을 찌푸렸다.

‘역광까지 받는 건 반칙이지.’

조명의 힘까지 받은 그는 정말 성화 속 인간처럼 성스러워 보였다.

“왜 벌써 움직이는 겁니까. 일어나자마자 또 쓰러지고 싶습니까? 조안. 아이린 님을 잘 모시라 하지 않았나.”

저 입에서 나오는 말투라고는 여전히 불량하기 짝이 없었지만.

“죄송합니다, 단장님.”

“조안 경 탓이 아니에요. 제가 저 동굴에서 빨리 나가자고 말했어요.”

“그건 왜…… 그나저나 그건 뭡니까?”

이안이 여전히 젓가락질 중인 내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손 모양은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 겁니까?”

“엇, 가까이 오지 마세요!”

나는 다가오려는 이안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졌다.

“어쩌면 위험할지도 몰라요.”

“……아이린?”

이안이 당혹이 깔린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주머니가 불안스레 물었다.

“성녀님, 성석이 잘못된 건가요?”

나는 한숨을 내쉬곤 털어놓았다.

“이 돌멩이가 성석인지 아닌지는, 솔직히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모두 긴장한 채 내 입술만을 바라보았다.

나는 꺼림칙한 눈으로 형광색 돌멩이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만에 하나 성석이 아니라면, 이 돌은 오히려 재앙을 불러일으킬 거예요.”

“재앙이라니!”

“성녀님, 그 말씀은 이 돌이 마계의 것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사람들이 기겁하며 외쳤다.

“마신이 내린 돌을 성석이라며 섬기고 있었다니!”

“오, 용서하십시오, 엘룬 신이시여!”

“진…… 진정하세요.”

나는 패닉에 빠진 사람들을 간신히 진정시켰다.

일주일 동안 동굴에 갇혀 있었던 탓일까, 다들 정신 상태가 많이 심약해진 듯했다.

“아마 마계의 것은 아닐 겁니다.”

만약 이게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다면, 이 돌은 충분히 좋은 쪽으로도 써먹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제 생각이 맞다면. 이 돌멩이는 아마 마탑 하나를 혼자서 움직일 수도 있고, 나중엔 섬을 띄울 수도 있을 거예요.”

“맙소사!”

“마법의 돌멩이잖아!”

내 말에 사람들이 깜짝 놀라 수군거렸다.

누군가 손을 들고 물었다.

“그렇다면 마력석인가요?”

“마력석…… 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아니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이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

‘어쩔 수 없어. 나도 이 이상 자세히 설명하진 못한단 말이야.’

굳이 말하자면 이 돌멩이는 마력석이 맞긴 했다.

다만 좀…… 기존의 마력석에 비해 정신 나간 수준의 성능을 갖고 있어서 그렇지.

마력석계의 뉴 패러다임이랄까.

신이 내려 준 기적 같은 물건이란 뜻에서, 이 돌멩이엔 후에 성마석이란 이름이 붙는다.

‘원작에서는 외전 시점에서야 발견되는 물건인데.’

발견 시점이 일 년이나 앞당겨지게 되었다.

아무튼, 가장 중요한 건.

이 성마석은 마냥 신의 축복 같은 물건은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성능의 혜택을 보기 위해선, 반드시 최고 수준의 정제를 거쳐야 했다.

‘그러지 않은 성마석은, 그냥 화학 테러 무기에 불과해.’

정제하지 않은 순수 성마석을 함부로 가까이했다간 몸이 망가질 수도 있었다.

돌멩이에 담긴 지나친 마력이 인체를 손상시키는 것이다.

‘외전 내용도, 우연히 성마석을 발견해 숭배하다가 단체로 몸이 망가진 마을을 치료하기 위해 주인공 커플이 파견 나가는 이야기였지.’

『성녀님은 사랑을 몰라』 본편이 워낙 잘 나간 덕에, 외전은 초호화사양으로 제작되었다.

거의 열 페이지당 하나씩은 삽화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성마석의 외양을 알고 있는 것도 그 삽화 덕분이었다.

‘더불어, 피멍이 든 것 같은 앨리샤의 피부.’

그건 마력 과다 증세가 한계까지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 시간이라도 더 저 동굴 안에 있었다면, 앨리샤는 온몸에서 피를 쏟으며 죽었을지도 모른다.

이안이 제 미간을 꾹꾹 문지르며 말했다.

“부인. 지금 좀…… 약장수 같은 말을 하고 계시는 것 압니까.”

나는 윽, 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저도 지금으로선 완전히 확신할 수 없어요. 다만 제 걱정이 사실이라면, 여러분은 이 돌멩이와 가까이 있어선 안 돼요.”

“부인께서는.”

이안이 뚫어질 듯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의문과 호기심이 담긴 푸른빛 시선이 집요히 달라붙어 왔다.

“어떻게 그런 것을 알고 있는 겁니까?”

제가 댁이 나오는 소설을 엄청 좋아해서, 최고 애정하던 댁이 죽고 없는 외전까지도 닳도록 읽었거든요.

그렇게 말할 순 없었기에 나는 살그머니 웃으며 말했다.

“음. 느낌?”

“…….”

이안의 미간이 다소 일그러졌다. 터무니없는 대답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의 표정을 못 본 체하고 물었다.

“근처에 마탑이 있나요?”

“있습니다.”

조안 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 그런가요? 많이 가까운가요?”

“제일 가까운 도시에 위치해 있습니다. 마차를 타면 반나절도 걸리지 않을 겁니다.”

“아, 조안. 트란셀을 말하는 거지?”

델피나 아주머니가 아는 체를 하셨다.

나는 순간 몸을 굳혔다.

‘트란셀.’

그곳은 원작의 남자주인공, 엘리엇 그란시아의 고향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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