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연모와 음모 (3)2021.04.28.
모든 일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아무리 신중하게, 그리고 꼼꼼하게 살폈어도 안 되는 일은 안 된다. 어쩌면 이젠 망조가 들었으니 되려던 일도 죄다 엎어지나 보다.
“……경비를 어떻게 한 거야?”
카메론 셀레스트는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그는 숨이 찬 게 아니라,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르는 상태였다.
“경비를 어떻게 한 게 아니라요…….”
부관은 울고 싶었다. 정말 울고 싶었다. 그는 건장한 성기사였지만, 정말로 울고 싶었다.
“애들도 같이 갔답니다. 그 여자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야반도주를 한 겁니다. 엔버네스에서 연락이 왔어요.”
부관은 마른세수를 했다.
“곧장 고대마법의 계승자를 잡겠다고, 애들이 아주 들떴는데, 심지어 지부장님께서 지시하신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내가 엔버네스로 가라고 했다고? 누가 그래?”
“그 여자가 그랬답니다.”
어이가 없어진 카메론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 말을 믿어?”
“상대가 천 년 묵은 뱀파이어라니까요. 혀 하나로도 얼마든지 빠져나갈 수 있다고, 그렇게 조심하라고 일렀는데…….”
카메론은 이를 갈며 돌아섰다.
“당장 잡아와. 아니, 내가 가지. 전부 다 잡아다가 기초부터 다시 굴려. 연병장부터 바다까지 기어가라고 해.”
에설론 백작이 엔버네스로 갔다. 그게 어떻게 된 건지, 지금부터 부관을 다시 한번 쥐 잡듯 잡아가며 확인할 생각이었다. 물론 잡는 거야 입으로도 가능한 거고, 다리는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에설론 백작이 또 무슨 사고를 치게 둘 수는 없었다.
‘우리 것이 아닌 남을 무기로 쓰려니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애초에 위험도가 높은 무기였다. 카메론 셀레스트는 이를 박박 갈며 움직였다.
* 소렐은 라이킨의 시선 안에 있었다. 정작 당사자는 잘 모르고,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일이었지만 노련한 에벌린 스튜어트 부인은 곧장 알아챘다. 라이킨과 소렐이 첫 부부싸움을 벌이기 전까지는 그래도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소렐이 아예 가출을 해버렸다가 돌아온 이후로 라이킨은 그녀를 반드시 시선 안에 두었다. 당연히 소렐은 모를 정도로 아주 교묘하게 지켜보았다.
“저쪽으로.”
“아, 네, 부인.”
에벌린은 이쪽으로 오려던 하녀를 돌아가게 했다. 소렐은 피아노를 뚱땅뚱땅 치고 있었고, 라이킨은 은행의 자잘한 업무를 검토하고 있었다. 소렐이 홀 근처에 있으면 그는 2층 계단 난간에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거나, 서재 문을 열어놓았다. 그도 언제나 바빴지만 서늘한 푸른 눈은 주기적으로 얌전한 토끼를 살폈다.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에벌린 스튜어트 부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가 아는 현존하는 뱀파이어 중 가장 강력한 뱀파이어는 자그마한 토끼가 제 손을 걷어차고 도망갔을 때 가장 무력해졌다.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공주님.”
뚱땅뚱땅. 피아노를 신나게 엉망으로 치던 소렐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확실히 피아노에는 소질이 없었다. 어차피 손이 작기도 했지만.
“외출하실까요?”
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외출하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 소렐은 <숙녀들에게 인기 많은 엔버네스의 명소 30선>은 이미 다 돌아보았고, 이젠 슬슬 명소도 거의 다 돌아봐서 라이킨의 개인 부동산 쪽으로 구경을 하러 다니고 있었다. 그의 소유인 미술관과 박물관, 그리고 경매장은 구경할 거리가 무척 많았다. 대학에 막 입학할 공주님의 견문이 그만큼 넓어졌다.
“또? 이번엔 어디로 가요?”
“공주님께서 가시고 싶으신 곳이 있으시면 거기로 가지요.”
어디든 함께 가고, 데려다줄 테니 그녀가 혼자 가는 일만은 없어야 했다. 외출하는 것조차 그가 없으면 불편할 정도가 되어서 혼자 외출하는 건 영 내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상은 아니지.’
라이킨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지만, 딱히 그게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딘가 이상하게 도덕 관념이 비틀리고, 일반상식도 상관없는 건 ‘그 여자’의 피를 마시고 뱀파이어가 되어서 그런 건가. 그 여자, 어머니의 강대한 힘은 라이킨의 육체를 새롭게 구성하여 바꿔놓았고, 어쩌면 습성까지 닮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뭐가 좋을까요?”
소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라이킨은 그가 엔버네스로 오면서 곧장 들여놓은 커다랗고 매끈한 그랜드 피아노에 기댔다.
“외식하고 발레 공연을 보러 가는 흔한 일정이 하나 있습니다.”
라이킨은 결코 그녀를 지루하게 만들지 않았다. 그녀는 그냥 가만히 함께 있기만 해도 좋은데, 온갖 귀한 물건들을 집에 들여놓고, 그녀에겐 자주 꽃들을 골라 선물했다.
“아니면 그냥 공원을 산책하는 것도 좋고요. 또는 교외로 나가서,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다 자고 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그런 곳이 있어요?”
“어디나 공주님께서 편히 머무르실 곳은 있습니다.”
“그런데 라이킨은 바쁘지 않아요?”
소렐의 질문에 그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미소 지었다.
“아무리 바쁘다 해도 공주님과 함께 있을 시간 하나 없을까요.”
어쩐지 그가 바쁘다는 핑계로 그녀를 피했던 때를 지적하는 것처럼 들린다. 소렐은 그때 생각은 안 하고, 그저 그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질문한 것이겠지만 죄를 지은 이는 내내 찔리기만 했다. 저런 생각은 다신 하지 않도록 내내 끼고 돌아야 했다. 라이킨은 그대로 소렐을 데려다가 교외로 나갔다. 오늘 공작전하와 공비전하께서는 공작저로 돌아오지 않으실 거다. 에벌린 스튜어트 부인은 짐을 싸야겠다는 말에 점잖게 한소리만 했다.
“나는 교수님의 자제력과 양심을 믿지 않지만 이번에는 믿기로 했어요.”
“알겠습니다, 젠장.”
“나쁜 말은 써선 안 돼요, 교수님.”
‘젠장.’
* 사람이 많은 대도시를 떠나 오랜만에 교외로 나오니 확실히 소렐의 표정이 더 밝아졌다. 칙칙한 글래스턴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소렐은 그래도 익숙한 시골 같은 풍경이 가끔은 좋은 모양이다.
“신기해요.”
항상 그녀에게 머무르는 그의 시선이 무엇이 신기하냐고 물었다.
“사람이 너무 없어요.”
그 말에 라이킨은 웃어버렸다.
“엔버네스에 사람이 좀 많긴 하지요.”
“네. 너무 많아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처음 봤어요. 글래스턴에서도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엔버네스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네요.”
“이러다가 또 사교계 시즌이 끝나면 조용해집니다. 정치인들만 남게 되지요. 사교계 시즌이 끝나면 재미없고 고루한 도시입니다.”
“우리는 시즌이 끝나면 다시 글래스턴으로 돌아가나요?”
소렐은 라이킨의 사냥별장을 한 번 쳐다보다가 물었다.
“그전에 발레시나스에 잠깐 들르실 것 같습니다. 받으신 별장도 구경하시고, 여름도 보내셔야지요.”
“아.”
그녀가 그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같이 갈 곳이 또 있네요.”
라이킨은 가끔, 펠릭스 이드리스가 어떻게 저렇게 예쁜 딸을 키웠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성격 자체가 괴짜인 데다 혼자 움직이길 좋아하는 괴팍한 마법사였다. 그런 마법사가 저렇게 사랑스러운 딸을 키우다니,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
“앞으로도 더 많아질 겁니다.”
칼리에르 공은 스스로도 돌아보았다. 여태까지 많은 미인들을 봐왔지만, 그중에 그의 마음을 건드린 이는 없었다. 욕구를 건드린 이조차 없었다. 그는 자신이 그저 그럴 여유도 없었고, 욕구마저 거세된 채 살아온 줄 알았다. 끝없는 전장에서 조슈아 같은 전우를 하나 만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삭막한 인생이었다.
“세상을 함께 여행할 수도 있고, 대륙 끝까지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를 당황스럽게 한 소렐 이드리스는 순진한 얼굴로 그의 욕구와 마음을 동시에 건드려서 미치게 만들었다. 한참 어려서 양심이 있다면 여자로 보지도 말아야 하는 데다가 귀한 헬레인 공주님만이 그의 뇌 한 구석, 신체 한 구석을 제멋대로 자극하니 그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가장 거추장스러운 양심부터 버렸다.
“오늘은 일단 이 주변을 산책할까요?”
그녀가 유일하다. 건조하기 짝이 없는 그의 생에 색채를 그려낸 이는 그녀가 유일했다. 웃는 걸 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가난한 평민의 아들로 태어나 굶어 죽을까 고생하다, 뱀파이어가 되고 난 후에는 전장을 전전했다. 풍족하게는 살았으나, 어머니란 존재는 그에겐 재앙이었다. 그런 삶을 살다 난생처음으로 단맛을 맛보았다. 빼앗기고 싶을 리가 없었다. 독점욕은 무섭게 자라났고, 소렐이 말갛게 웃을수록 더더욱 새카맣게 짙어졌다.
“날이 더워지고 있으니 가볍게 가시지요.”
그는 표정 관리에 능숙했고, 어린 아내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소렐은 모자를 쓰고 그가 내미는 손을 잡은 뒤, 바깥으로 달려나갔다. 라이킨과 함께 있다면 불필요한 호위가 붙을 필요도 없었다. 가장 강한 뱀파이어인 그 혼자만으로도 공주님의 호위는 충분했다.
“소풍 온 기분이에요.”
“그럼 제대로 해보지요. 내일은 도시락을 써서 말을 타고 나갈까요?”
아, 그럴까? 소렐이 대답을 하려는 순간, 멀리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탕! 탕! 소렐의 눈이 커졌다. 이게 무슨 소리지?
“……어디선가 사냥을 하는 모양입니다. 이리 오십시오, 공주님.”
라이킨은 그녀에게 좀 더 바짝 붙으라고 손짓했다.
“아마 근처 사냥터에서 들리는 소리일 겁니다.”
“사냥철인가요?”
“글쎄요.”
뜻밖에도 그의 팔 아래에서 웃음이 터졌다.
“저 별장은 라이킨 거잖아요.”
“저도 들른 지 오래된 별장입니다.”
“음, 그럼 가본 지 백 년이 넘은 부동산이 몇 개예요?”
제법 구체적인 질문이 나왔다.
“대충 추려보니 백 곳이 넘는 것 같군요. 제가 모르는 부동산도 있을 겁니다.”
소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는 은행장이기도 하잖습니까. 참고로 공주님의 부동산은 약 스무 곳 정도 됩니다. 헬레인 왕조의 재산이 따로 있다고 말씀드렸지요?”
“부동산 백 개에 비하면 참 소박하네요…….”
라이킨은 큰 소리로 웃어버렸다. 그때 소렐은 고개를 들었다. 총소리 말고, 다른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 듯 하다.
“……화살을 쏘는 걸까요?”
“예. 총보다는 활이 편하지요. 총은 아무래도 소리가 시끄러워서 예민한 동물들이 도망가기도 하고, 장전하는 시간도 걸리니까요.”
컹컹, 개가 짖는 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소렐은 움찔거리지 않았다. 라이킨이 그녀를 감싸고 있으니, 위험할 리가 없다는 걸 알았다. 그녀를 몸으로 가릴 만큼 두텁고 단단한 데다, 키까지 한참 큰 그는 아주 평온하게 그녀의 보폭에 맞춰 걷고 있었다. 그가 평온하다면 그녀도 안심해도 괜찮다는 뜻이었다.
“……사냥꾼들이 이리로 오는 모양입니다.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군요. 사냥이 끝났나 봅니다.”
과연, 저쪽 산책로 모퉁이에서 달려 나오는 말 여섯 마리와 사냥개들이 보였다. 사냥꾼 일행은 속도를 높인 채 달리다가 산책을 하고 있는 부부를 보곤 얼른 속도를 낮췄다. 먼저 얼굴을 확인한 라이킨의 눈에 새파란 날이 섰다. 딱히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마주치게 되었다.
“칼리에르 공.”
백마를 타고 온 왕세자는 천천히 말을 몰아 다가온 뒤, 말에서 내렸다.
“공주님까지,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젊은 왕세자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예를 갖춘 라이킨이 대답했다.
“이 근처에 별장이 있어 잠시 나온 참입니다만. 전하께서는 이곳에 어쩐 일이십니까? 요즘 사냥철이던가요?”
“아, 요즘 이곳에 늑대 떼가 출몰해서 피해가 꽤 크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소렐은 왕세자에게서 화약 냄새와 기름 냄새, 그리고 바깥의 찬바람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녀와는 조금 거리가 먼 냄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라이킨에게 더 바싹 붙었고, 그 와중에도 그녀의 작은 움직임을 느낀 라이킨은 슬그머니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작고 따뜻한 존재가 그를 의존하는 것만큼 만족스러운 것도 없었다.
“직접 나서신 겁니까?”
라이킨의 물음에 왕세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가 할 수 있는 건 해야지요. 게다가 저는 사냥을 좋아합니다. 민가에 피해를 끼치는 맹수를 잡을 때 해야 할 말은 아니지만요.”
“중요한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지요.”
왕세자는 그때쯤 소렐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공주님은 이곳이 어떠십니까?”
“날이 화창하니 소풍 나온 것처럼 좋아요.”
라이킨은 순식간에 휘어지는 왕세자의 눈을 바로 알아차렸다. 남자는 저와 똑같은 호감을 똑같은 이에게 품는 것에 아주 예민했다. 저 웃음에는 순전한 호감이 가득했다. 동생 같은 어린 아가씨를 보는 눈과는 분명히 달랐다. 아, 그래. 물론 소렐이 종알거리는 게 아주 귀엽고 예쁘긴 하다. 눈이 있다면야 당연히 그렇게 느끼겠지. 그건 당연한데 말이다.
“저는 늑대들이 다 잡힐 때까지 이곳에 머무를 예정입니다만, 함께 소풍을 잠시 나가는 것도 즐겁겠군요.”
왕세자는 어찌 보면 라이킨과 같은 부류였다. 양심도 없고, 도덕 관념도 없다. 그래서 엄연히 남편이 있는 여자에게 저런 눈길을 보내고 있다. 라이킨은 동족을 특별히 혐오했다.
“늑대 떼 규모가 얼마 안 되나 봅니다.”
소풍 가자는 소리도 다 하는 걸 보니 별거 아닌 모양이지? 라이킨은 필요하다면 작은 일도 크게 규모를 키워서 왕세자가 정신없게 바쁘도록 만들 요량이었다.
“한 열댓 마리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금방 잡지 않을까요?”
“그렇게나 많이요?”
라이킨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늑대들은 영리합니다, 전하. 늑대들이 돌아다니는 철도 아닌 이때에 이곳에 출몰하는 건, 범상치 않은 녀석들이라는 이야기지요.”
“아, 그렇기는 하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전하께서 잘 처리해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하하, 칼리에르 공께서 그런 말을 해주시다니, 이거 어깨가 무겁습니다.”
왕세자의 시선은 그러면서도 슬쩍 아름다운 공비에게로 향했지만, 그녀는 형식적인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올 때마다 소렐이 얼마나 재잘거렸는지 잘 알고 있는 라이킨은 그녀의 무심함을 바로 알아차렸다. 그녀는 말수가 적은 게 아니라, 왕세자에게 딱히 관심이 없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는 거였다.
“그럼 다음에 또 뵙지요.”
라이킨은 그쯤에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소렐이 아, 하고 고개를 들었다.
“늑대사냥 잘하세요, 전하.”
“예, 공주님.”
왕세자의 목소리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 말 한마디 들었다고 또 싱글벙글한다. 저 애송이를 어떻게 할까. 공주가 둘이나 더 있고, 왕자도 하나 더 있으니 확 물어버릴까. 라이킨은 표정 변화 없이 왕세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는 내킨다면 이 왕국의 왕마저 바꿀 수도 있었다. 조금 귀찮겠지만, 솔직히 못 할 것도 없다.
“그럼.”
왕세자는 간단히 인사를 마친 뒤 다시 말에 올라 사람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늑대가 많은 곳인가 봐요.”
소렐은 총을 쏘고, 개까지 풀었지만 늑대를 잡지는 못한 일행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대답이 얼른 들려오지 않았다.
“……라이킨?”
고개를 들어보니 라이킨은 왕세자가 왔던 산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요? 늑대 잡으려고요?”
뱀파이어는 토끼를 내려다보더니 빙긋 웃었다. 너무나 아름다우면서도 수려한 남자가 그렇게 웃으니, 토끼는 잠깐 멍하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