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3화 (123/192)

123화

앤의 어머니인 론까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진정하세요!”

솔레아는 다급히 두 손을 흔들며 해치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냈지만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어쨌든 죽은 사람이 3층에서 웃으며 인사를 보내왔으니.

“어머니, 진정하세요. 전 앤을 데리러 왔어요.”

“뭐라고요?! 꺄아악!”

괴성을 지르던 론은 빠르게 정신을 차리곤 기절한 앤을 제 쪽으로 끌어와 당겨 안았다.

“저리 가! 내 딸 데려가지 마!”

“아니, 그게 아니고…….”

“아이고, 제발. 공녀님. 부탁합니다. 우리 앤이 얼마나 좋은 마음으로 공녀님을 모셨습니까, 우리 아이 데려가지 말아 주세요.”

론은 벌벌 떨면서도 끌어안은 딸을 품에서 놓지 않았다.

죽은 자가(안 죽었지만) 찾아와 딸을 데려가려 하는 난장판 속에서 용무스까지 끼어들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뜬 론이 다시 창가 아래쪽을 바라보자 무언가 시커먼 것이 눈에 어른거렸다.

뱀처럼 세로로 쭉 찢어진 동공을 가진, 검은색의 그것은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낮은 목소리로 그르렁거리듯 말을 전해 왔다.

“우린 앤과 함께 갈 거야.”

“야, 너까지 끼어들면 어떡해. 더 오해하시겠네!”

솔레아의 목소리는 패닉에 빠진 론에게 들리지 않았다.

“으허어어엉! 안 돼, 절대 안 돼! 우리 딸 못 데려가요!”

론이 울부짖기 시작하자 아래층에 있던 론의 남편과 다른 자식들이 우르르 뛰어 올라왔다.

“여보! 무슨 일이야!”

“엄마! 왜 울어!”

“누나!”

“언니! 괜찮아?”

그들 모두 베르고의 공녀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앤의 편지를 통해 외양을 전해 들어 그녀의 생김새를 알고 있었다.

짙은 붉은 머리카락과 흰 피부, 날렵하게 올라간 눈꼬리와 선명한 보라색 눈동자.

그리고 가족들은 앤이 집으로 돌아온 이유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공녀님은 돌아가셨다고 했는데.

비명이 곱절로 늘어났다.

“꺄아아악!”

“으아아!”

“엄마아아악!”

오들오들 떨다 못해 경기까지 일으키려 하는 막내를 끌어안은 앤의 아버지가 제 나름대로 솔레아와 아무스를 위협한답시고 들고 온 부지깽이를 흔들었다.

목소리는 한없이 떨렸지만.

“고, 고, 고, 공녀님! 우리 앤을, 아끼, 아끼셨다면 혼자…… 혼자 떠나 주십시오! 우리 아이도 많,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솔레아는 난처한 듯 눈을 내리깔며 머리를 긁적였다.

“저, 아버님?”

“으갸갸갸갸각! 안 들린다! 안 들려요! 안 들려요! 우리 애 데려가지 마십쇼! 으다다닥! 안 들린다!”

겁에 많이 질렸는지 앤의 아버지는 제 두 귀를 퍽퍽 때리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솔레아가 아무스의 뿔을 아프지 않게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야. 내가 노크하고 문으로 들어가쟀잖아.”

“짝이 앤 얼른 보고 싶다고 했잖아. 그리고 문으로 들어갔어도 놀랐을걸?”

“3층에서 인사하는 것보단 나았겠지.”

“근데 짝이 앤 보자마자 반갑다고 말 걸었잖아. 그래서 앤 기절한 건데 왜 나한테 그래. ……짝은 맨날 나한테만 화내. 회초리로도 한 번밖에 안 때려 주고.”

“잠깐만. 여기서 회초리 얘기가 왜 나와? 그런 이상한 걸로 섭섭해하지 마.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거 같잖아!”

“짝은 하나도 안 이상해!”

“네가 이상하다고!”

“짝이 나 옷 안 챙겨 왔다고 사람도 하지 말라며!”

“아니, 그럼 뱀으로 변하든가!”

“뱀 하면 자꾸 귀여워하잖아!”

“용보다야 당연히 귀엽지!”

“나는 너한테 멋지고 싶은데!”

“지금 그런 얘기 할 때냐고, 앤이 기절했잖아!”

“짝이 잘못했어! 난 몰라!”

“에라이, 이 고집불통 용 새끼.”

“짝! 말 너무 심해!”

두 사람이 아웅다웅하는 사이, 앤이 정신을 차렸다.

론의 품에서 눈을 뜬 앤은 저를 꽉 잡고 있는 엄마의 팔을 바라보다가 자신이 왜 기절했는지를 기억해 냈다.

“엄, 엄마. 잠깐만.”

“안 돼! 앤! 가지 마!”

“나, 나 인사할래……. 엄마, 나 아가씨한테 인사도 제대로 못 했어. 엄마, 제발…….”

겨우 론의 품에서 빠져나온 앤은 주춤거리며 창가로 걸어갔다.

한 손으론 아무스의 뿔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론 머리를 쥐어박으며 싸우고 있던 솔레아는 앤이 다가오는 줄도 몰랐다.

“……아가씨.”

“악, 깜짝이야. 앤! 오랜만이야. 얼굴이 많이 상했네.”

“아가흐으윽, 씨.”

앤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저요, 저 이제 야한 책 다신 안 읽을게요.”

“어, 좋은 소식이네. 근데 잠깐만. 너랑 가족분들이 오해하고 있는 게 있어서.”

“그리고 언젠가 아가씨가 사용하시게 될 거 같아서 모아 놓은 각종 체벌 도구들도 다 버릴게요.”

“……그딴 걸 모아 뒀었어?”

“근데요, 아가씨.”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앤이 치마 속 주머니를 뒤져 무언가를 꺼냈다.

솔레아가 앤에게 처음으로 심부름을 시켰을 때 건넨 반지였다.

“이거는, ……이거는 제가 갖고 있으면 안 돼요? 아가씨가 저한테 처음으로 주신 거잖아요. 자꾸 아가씨 생각이 나서 저택에 두고 나오려고 했는데, 근데 하녀인 저한테는 아가씨를 추억할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어서……. 흐, 흐윽. 아가씨. 아가씨가 가시고 나니까 저택이 텅 비었어요, 제 마음의 집이 사라진 것 같아요. 아가씨. 너무 보고 싶어요…….”

“……앤. 그건 너한테 준 거니까 당연히 가지고 있어도 되지.”

“감, 감사합니다. 아가씨……. 흑, 마음 편히 가세요. 흐윽.”

솔레아는 안타까운 마음에 손을 뻗어 앤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온 얼굴에 열이 오를 정도로 울고 있어서인지 앤은 솔레아의 체온이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줄줄 눈물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저 영원히 아가씨 잊지 않을게요. 아가씨……. 잘, 흐윽, 이 생에 미련 두지 마시고, 잘 가셔요.”

앤은 제 볼을 감싸고 있던 솔레아의 손을 양손으로 붙잡고 천천히 떼어 냈다.

이별은 너무 힘들었지만 그래도 아가씨가 찾아와 주셔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앤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솔레아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앤의 가족들은 텅 빈 허공을 멍하니 바라봤다.

앤은 대성통곡하며 더 큰 울음을 뱉어 냈다.

론은 창가에 서 있는 앤에게 다가가 여린 딸을 안아 주었다.

그때 방구석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앤.”

“흐꺄아아악!”

“쉿!”

마력으로 가족들의 입을 모두 닫아 버린 솔레아는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마법 써서 미안해요. 근데 내가 변명할 틈을 안 줘서.”

앤은 커다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솔레아와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있는 검은 뱀을 바라봤다.

“입은 막혔어도 다들 숨은 쉴 수 있을 거예요. 비염 환자는 없을 거 아냐. 비염 몰라요, 비염? 콧구멍 막혀서 숨 잘 못 쉬는 거요.”

앤의 아빠가 두 손을 들어 휘휘 저었다.

“아버님 비염이시구나.”

솔레아가 다시 손가락을 딱, 하고 치자 콧구멍이 뚫렸다. 어떤 약으로도 고치지 못하던 비염이 나았다는 사실에 겔로프는 콧구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흐음! 흐으음!”

“예, 아버님. 축하드려요. 아무튼, 앤. 그리고 앤의 가족 여러분. 저 살아 있어요. 아주 위험한 죽을병에 걸렸는데, 하필 전염병이라 남들 모르게 다른 곳으로 옮겨져서 치료를 받았어요. 그러는 동안 거의 죽을 뻔하기도 했고요. 근데 소식이 잘못 전해져서 베르고에선 다들 내가 죽은 줄 알고 있었던 거예요. 지금은 보다시피 이렇게 멀쩡하게 다 나아서 돌아왔어요. 참,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마력이 생겨 마법사가 됐어요.……짜잔.”

“으음! 음!”

앤이 자기 입을 열어 달라며 마구 두드리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앞으로 뛰쳐나왔다.

그러고는 몇 년 내내 직접 손질해 온 솔레아 아가씨의 머리카락을 만져 보고, 부드러운 두 뺨을 쓰다듬고, 어깨, 팔, 고운 두 손까지 미친 듯이 어루만졌다.

앤의 입을 열어 주었지만, 그녀는 열린 입으로 또 울기만 했다.

“흐, 흐으윽, 아가씨. 아가씨. 진짜 살아 계신 거예요? 진짜, 정말이에요?”

“응.”

솔레아가 안심하라는 듯 부드럽게 웃어 보이자 앤은 털썩 주저앉았다.

위로라도 하려는지 아무스가 매끄럽게 바닥을 기어 앤의 어깨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하지만 앤은 파충류를 싫어했다.

“흐엉, 뱀 싫어. 으어엉. 아가씨.”

쉬익! 쉭!

뒤로 밀려난 뱀무스가 조금 분하다는 듯 꼬리로 바닥을 탁탁 쳤지만 솔레아는 가뿐히 무시했다.

울며 뱀무스를 밀어 낸 앤은 솔레아의 다리를 끌어안고 또 한참을 울었다.

“바보야, 왜 이렇게 울어. 나 살아 있다니까. 그리고 밥을 잘 챙겨 먹었어야지. 어머니도 너 때문에 우셨는지 눈이 퉁퉁 부으셨잖아.”

“흐어엉, 우리 엄마 원래 얼굴 커요.”

“……관상이 참 좋으시네. 기개가 남다르시다.”

“흐어엉. 엉. 아가씨. 아가흐어엉씨.”

“그래, 그래.”

앤의 어깨를 다독인 솔레아는 가족들의 입에 건 마법을 풀어 준 뒤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앤을 다시 제 하녀로 고용해도 괜찮을까요? 전 앤이 없으면 안 돼서요.”

가족들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고, 앤은 냉큼 짐을 싸기 시작했다.

“식사라도 하고 가시죠, 공녀님.”

“예, 비록 음식은 변변치 않지만 그래도 먼 길 오시느라 힘드셨을 텐데요…….”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베르고를 오래 비울 수가 없어서요. 얼른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론과 겔로프는 제 딸을 다시 고용하기 위해 직접 먼 길을 찾아와 준 공녀에게 거듭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다.

“공녀님! 마차를 불러 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앤이랑 천천히 걸으며 얘기 좀 나누다가 직접 잡아타고 갈게요.”

“아이고, 공녀님께서 어떻게 부리는 사람도 없이 이 먼 곳까지 오셨는지, 제가 뭐라도 해 드려야 하는데 대접할 만한 것도 없고…….”

“아빠, 그만해. 우리 아가씨 바쁘시단 말이야.”

“아이고, 예. 제가 말이 길었습니다.”

그렇게 혼자서 먼 카스탈리아까지 찾아온 공녀님은 짐 보따리를 든 앤과 함께 다시 공작저로 돌아갔다.

“여보, 근데 공녀님은 왜 어깨에 저 커다란 뱀을 둘러메고 계신 걸까요?”

“……글쎄, 귀족들 사이에 유행하는 반려동물 같은 거 아닐까?”

솔레아는 앤을 데리고 길을 걷다가 방향을 틀어 숲으로 들어갔다.

“……아, 아가씨. 왜 자꾸 숲속으로 가시는 거예요?”

“어차피 저택에서 일하다 보면 알게 될 거야. 몇 시간 일찍 알게 되는 것뿐.”

“뭐, 뭘요?”

두 사람은 점점 더 깊숙한 숲속으로 향했다.

적당한 공터가 나오자 솔레아는 어깨에 있던 뱀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뱀을 풀어 주시게요? 아니, 근데 얘 그레이 도련님이 키우시던 그 뱀 아니에요? 왜 아가씨가 데리고 오셨어요? 아, 참! 아니, 제가 그만뒀다고 아가씨를 수행할 하녀가 단 한 사람도 없는 거예요? 아무리 아가씨가 마법사가 되셨다고 해도 아가씨를 혼자 여행하시게 하다니! 여기서 베르고까지 아무리 빨리 이동해도 일주일이 넘게 걸리는데!”

“아니. 두 시간이면 돼.”

“……예?”

“춥지 않게 마력으로 감싸 줄게.”

“저, 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솔레아는 태연한 얼굴로 잔디를 기고 있는 아무스를 가리켰다.

“얘가 용이야.”

“뭐, 예? 얘가요? 뱀이? 용이요? 무슨 용이요?”

“앤. 인외존재가 나오는 책 읽었다고 했던가?”

“아, 네. 네? 근데 그걸 왜…….”

아직도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지 앤은 멍청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때, 초록색 잔디에서 갑자기 시커먼 연기가 일었다.

“아가씨! 조심하세요!”

깜짝 놀란 앤이 솔레아를 감싸려는 순간 연기 사이에서 노란 섬광 두 개가 번쩍였다.

“꺄악!”

오늘만 해도 몇 번째 지르는지 모를 비명이었다.

동그랗게 웅크리고 있던 새카만 용이 천천히 날개를 펼치며 몸을 곧추세웠다.

“요, 요, 용? 진짜 용?”

얼이 빠진 표정으로 용을 올려다보는 앤을 향해 솔레아가 머쓱한 듯 웃으며 소개했다.

“응. 내 용이니까…… 자가용? 대충 그래.”

“……예?”

갑자기 전설 속의 존재를 데려와선 자가용이라니요. 아가씨 대체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