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217)화 (217/218)

에필로그 2화

모범생 주이안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뤄 버렸다. 어린 소예리 헌터 이야기가 다시 이어졌다.

“맞다, 난 대학 가고 싶었어요.”

여러 주제를 넘나들며 이야기하던 소예리 헌터가 눈을 반짝였다.

우리 중에 유일하게 대학교에 가본 사람은 주이안 헌터뿐이었다.

“공부가 꿈이셨군요.”

주이안 헌터가 말했다. 모범생이 또…….

“아닌데요.”

소예리 헌터는 빠르게 그를 손절했다.

“난 미팅 하고 싶었어요. 엠티! 오티! 그런 거!”

그녀가 불끈 주먹을 쥐었다. 결국 술 먹고 놀고 싶었다는 소리였다.

“미팅은 지금 하면 되죠. 요즘 헌터미팅 있잖아요.”

내 말에 소예리 헌터가 눈을 반짝였다.

“진짜? 같이 가 줄 거예요?”

그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꾸욱 내 발을 밟았다.

슬쩍 옆을 돌아보니 신재헌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기울이고 있었다.

설마 나갈 셈이냐고 묻는 듯했다.

비밀 연애라도 미팅은 안 된다 이거지?

내가 웃음을 터뜨렸을 때였다.

바깥이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불, 불이 켜져 있어!”

차 문 닫히는 소리,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소리.

“설마 벌써?”

난 눈썹을 치켜올렸다.

우리의 시선이 미리 커튼을 내려놓은 창으로 향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더니 어느새 밤이 되어 있었다.

덕분에 빛이 새어나간 모양이었다.

이 상황에서 아마추어라면 창문 커튼을 열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프로였으므로 거실 TV를 켰다.

[뉴스특보 : 신유리 헌터팀, 생존 가능성]

뉴스에는 대문짝만 한 헤드라인과 함께 드론 카메라로 촬영되고 있는 우리 집이 나왔다.

“계십니까!”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함께, TV에는 문을 두드리는 기자의 모습이 보였다.

우린 서로를 마주 보았다.

“뒤풀이 끝이네요.”

신재헌이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그러다가 우린 너 나 할 것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넷 다 안 취한 척하면서 조금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었던 것이다.

SS급도 알코올 내성에 한계는 있는 게 분명했다.

***

[L급 난이도는 어땠습니까?]

[가장 X랄맞았죠.

-L급 게이트 클리어 후 첫 인터뷰에서]

난 인터뷰가 다시 지식나무에 박제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진짜 X랄맞았는데 어떻게 해?

‘소감 한마디만 해 주시죠!’

하지만 그 말에는 할 말이 너무나도 많았다.

욕이 달리기시합을 하며 목 밖으로 뛰쳐나오려는 때였다.

주이안 헌터가 간신히 상황을 무마했다.

‘오늘은 피곤하니 쉬고, 내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기자들은 좀처럼 물러갈 기색이 아니었다.

‘한마디만 부탁드립니다!’

‘언제 클리어하셨습니까!’

좀처럼 물러갈 기색이 없는 그들 앞에 신재헌이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그는 치우다 말고 들고 온 병을 불쑥 문 밖으로 내밀었다.

―파삭!

그리고 한 손으로 병을 으스러뜨려 버렸다.

‘…….’

기자들은 병 꼴이 나긴 싫었는지 곱게 물러갔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바라지 않은 인사도 받았다.

덕분에 우린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쉬고 있었다.

“와.”

진짜 집이네.

난 익숙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한동안 던전 안 가야지.

던전이라면 신물이 났다. 한동안 놀 거다! 미친 듯이 놀 거다!

각자 방에 들어간 세 사람도 같은 생각인지 집은 조용했다.

자고 일어나면 세니아로 눈뜨는 거 아니겠지.

길게 던전 공략을 하고 돌아오면 늘 그랬지만, 눈뜨면 다시 던전일까 봐 겁이 났다.

난 애써 이불을 끌어안았다.

촉감을 느끼면 좀 더 현실감이 날 것 같아서.

그렇게 옆으로 돌아누웠을 때였다.

“!”

난 침대에서 튀어오를 뻔했다.

어느새 내 방에 들어온 건지, 신재헌이 벽에 기대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난 그를 가리켰다.

“―!”

방 헷갈리셨니, 폐하? 아, 이제 폐하 아니지?

뒷말을 잇기도 전에 빠르게 다가온 그가 내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

‘떠들면 들켜.’

뭐야? 들킬 짓을 안 하는 게 상식인의 행동이 아닐까요?

내가 그를 가리키자 신재헌은 뻔뻔한 얼굴로 말했다.

‘비밀로 하기로 했잖아, 우리.’

뭘……이라고 묻기도 전에 얼굴이 먼저 반응했다.

얼굴에 피가 싹 몰리자 남아있던 술기운이 확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내가 멍때리는 사이 그가 나를 침대 위로 툭 밀었다.

풀썩 쓰러지자, 그가 내 이불을 젖히고 들어오는 게 보였다.

뭐임?

뭐임???

내가 침대를 가리켰다가 그를 가리켰다.

‘실례지만 침대가 폭발하셨나요?’

그리고 아주 작게 속삭였다. 그러자 신재헌은 뻔뻔하게 내 옆에 제 팔을 베고 눕더니 말했다.

‘여기서 더 소리 내면 들킨다.’

그러면서 소예리 헌터의 방 쪽을 가리켰다.

난 황당해서 입을 열었다.

‘이―’

―게 비밀연애 하자고 했더니 협박을?

……이라고 따질 틈은 없었다.

난 눈을 크게 떴다.

더 소리를 낼 수 없도록, 그가 내게 파고들었기 때문에.

가장 먼저 숨을 집어삼킨 그가 내 방 안 아주 옅은 불빛마저 가려 버렸다.

커튼을 뚫고 은은하게 흘러 들어오던 달빛이 흐려졌다가, 아예 가려져 버렸다.

***

다음 날.

아예 밤을 새웠는지 몰골이 말이 아닌 기자들은 우리가 집 밖으로 나오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최초의 L급 게이트는 어떠셨습니까!”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일단 난이도는 어제 말했듯이 매우 어려웠고요.”

난 어제보다는 좀 부드럽게 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터뷰가 좋아서 하는 건 아니었다.

할 말이 있어서 하는 거지.

“어떻게 L급 던전에 선뜻 들어갈 각오를 하셨습니까!”

그러는 와중에 내가 기다리던 질문이 나왔다.

난 그 기자를 돌아보았다.

“아주 좋은 질문이에요.”

난 그에게 예쁘게 웃어 주었다. 그리고 대형 뉴스를 터뜨렸다.

“가기 직전까지 우리도 몰랐어요.”

“예?”

기자들이 흥분해서 질문을 쏟아냈다.

“방금 말씀은 무슨 말씀이십니까!”

“L급 던전에 들어가기 싫었다는 말씀이십니까!”

여기서 예스 하면 나 쓰레기 되는 거지?

하지만 팩트는 밝혀야 했다.

“낮잠 자다가 TV로 우리가 L급 던전에 가게 됐다는 소리를 먼저 들은 것만 아니면 고려해봤을지도 모르죠.”

“그건……!”

“자세히 말씀 부탁드립니다!”

“자세한 뜻이 궁금합니다!”

“신유리 헌터님!”

기자들은 당연히 난리가 났다.

지금 이 순간 TV 라이브를 보고 있을 헌터협회장의 안색이 새하얘졌을 거라고 난 확신했다.

“한마디로, 우리가 결정한 게 아니란 겁니다. 그니까 영웅이네 뭐네 기사 쓰지 마요.”

오글거리니까! 내가 카메라를 가리키자 기자들이 흥분해서 떠들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어떤 기자가 말했다.

“신유리 헌터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일각의 시각도 있습니다! L급 던전 내부가 어땠는지 공식적으로 이야기해주실 의사가 있으십니까!”

“오.”

그 기자는 공교롭게도 아까 마음에 드는 질문을 했던 그 기자였다.

우리 넷이 동시에 그 방향을 돌아보자 기자가 멈칫했다.

[예리언님>>> 쟤 맘에 든다]

[신유리>>> 그러게요]

분위기 바뀐 건 어떻게 알았대?

정확히 말하면 분위기는 모르겠고 S랭크가 SS랭크가 된 거지만, 능력치가 워낙 많이 올랐으니 그렇게 보일 만도 했다.

내 채팅에 틈을 두고 신재헌의 채팅이 올라왔다.

[걔>>> 진짜?]

신재헌을 돌아보니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다.

이 X끼 비밀이란 거 까먹은 거 아니야?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뜻밖이었다.

[걔>>> 전에 신유리 헌터님 잔상스킬 빼면 시체라고 기사 쓴 놈인데]

[신유리>>> 뭐라고?]

기자 얼굴도 외우고 다녀?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잠깐, 거기 기자―”

“릴렉스, 릴렉스.”

소예리 헌터가 재빨리 내 손을 잡아 내렸다. 주이안 헌터가 웃음을 터뜨렸다.

“일단 헌터협회로 가서 이야기하죠.”

그가 기자들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신유리>>> 아니 놔 봐 판 접지 말라고]

[걔>>> 나중에 패요 나중에]

[예리언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