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던전 클리어 보상 정산 완료.]
[전체 능력치 +25%]
와우. 난 눈을 크게 떴다.
다른 세 헌터의 표정을 보니 같은 것이 뜬 게 분명했다.
S급쯤 되면 기본 능력치가 수십에서 수백만 단위인 만큼 25%의 능력치 보상은 엄청났다.
아마 저대로 나가면 전 세계 랭커 순위 변동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B급인데요?
[던전 등급 차이 보너스 ‘B→SS(3단계 차이)’ 보상 정산 중…….]
오? 따로 챙겨주는 거야?
[정산 완료.]
[추가 능력치 보너스 +50%가 주어집니다.]
[랭크가 ‘A’급으로 상승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A급의 보너스를 받아 재조정됩니다.]
“오.”
난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A? A!!!
원래 상위 랭크로 갈수록 랭크 간의 격차는 급격해지지만, B급과 A급은 아예 상황이 달라진다.
A급부터는 B급과는 달리 몸이 아예 마력이나 힘을 운용하기 쉬운 상태로 바뀌는 데다 능력치 자체가 폭증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변화 적응 기간’이라는 버프가 붙을 정도였다.
저도 모르게 일상적인 힘보다 강한 힘이 가해지면 시스템 알림이 뜨는 버프였는데, 사실 쓸모는 없었다.
보통 뭐든 박살 내고 나서 시스템창을 보게 되거든.
하지만 난 그런 적응 기간 따위는 필요 없었다.
오히려 이 상황이 더 익숙했다.
난 태생 S급이었으니까.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 / 25세, 딜러(A)
체력 : 1750000 (+10000)
근력 : 60000 (+40000)
마력 : 250000 (+10000)
민첩 : 50000 (+31120)
지구력 : 20000 (+10000)
방어력 : 20000 (+10000)
특수 버프 “천상의 힘(S)” : 스킬 발동 속도 10% 증가, 받아들이는 버프 효과 10% 증가]
캬, 마력 수치 빛나는 거 봐라!
0 하나가 더 붙었다! 이제야 좀 볼만한 것 같았다.
은하 서버에 저장되어 있을 내 능력치와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메이든 부인의 흡족함(L)’ 버프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감동받기도 전에 연달아서 시스템창이 떴다.
아까 분명 버프창에서 사라진 것 같았는데?
설마 마지막에 보상 넣어준 거야? 메이든 부인 그렇게 안 봤는데 이렇게 갚아주는 거예요?
감동받는 사이 인벤토리에 번쩍 빛이 감돌았다.
[‘체육선생님의 목검(SS)’에 ‘애장품 보너스’가 부여됩니다.]
[개인 애장품 횟수에서는 차감되지 않습니다(현재 잔여 횟수 : 3회).]
“어?”
“?”
반응을 보니 각자 선물로 빼앗겼던(?) 물건에 애장품 보너스가 주어지는 모양이었다.
다들 인벤토리를 보고 당황하고 있었다.
잠깐, 그런데 신재헌은 이미 도금 목걸이가 애장품 아니었나?
[애장품 보너스 설정 중…….]
[애장품 보너스 설정 완료.]
[체육선생님의 목검(SS) - ‘헌터 신유리(S)’ 애장품 보너스 : 사용 시 전체 능력치 +30%, 소지한 ‘공격’ ‘보조’ 계열 스킬 랭크 1단계 증가(랭크상한 없음)]
전체능력치 30%?
공격계열 스킬 랭크 1단계 증가???
그럼 내 잔상 SS+에서 L+ 되는 거야?
사기도 이런 사기템이 없었다.
애장품을 고랭크 물건에 걸면 좋은 보너스가 붙는다는 건 정설이었지만, 인생에 3번밖에 없는 애장품 보너스가 랜덤으로 설정된다는 걸 알기에 함부로 애장품을 거는 사람은 없었다.
……신재헌 빼고.
아무튼 함부로 걸 수 없는 애장품 보너스를 횟수 차감도 없이 아끼는 물건에 걸어준 건 정말 끝내주는 보너스였다.
“애장품 보너스 대박이다, 진짜.”
개고생한 보람이 있네!
갑자기 이런 보상이면 품격 테스트 한 번 더 받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소예리 헌터도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신재헌에게 물건을 건네주었다.
“이거 받아요.”
그건 신재헌의 도금 목걸이였다.
“……아.”
신재헌은 짧게 감탄했다. 자기 도금 목걸이까지 소예리 헌터가 챙겨왔을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는 도금 목걸이를 받고 다시 한번 멈칫했다.
저쪽도 뭔진 몰라도 만만찮게 사기적인 애장품 보너스가 붙은 것이 분명했다.
[던전 ‘저택의 손님(SS)’에서 퇴장할 수 있습니다.]
보상을 쏟아주고서야 나가는 게이트가 열렸다.
“오……!”
소예리 헌터는 특히 보상이 마음에 드는지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대체 뭐길래?
[던전 ‘저택의 손님(SS)’에서 퇴장됩니다.]
그런데 그걸 물어볼 틈은 없었다.
던전이 다짜고짜 우릴 뱉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메이든 부인! 나갈 땐 걸어서 나가게 해 달라고요!
하지만 돌아보니 왜 우리가 쫓겨났는지는 알 것 같았다.
―쿠르릉…….
저택이 한쪽부터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어두침침했던 하늘에서 햇빛이 새어 들어오나 싶더니, 나무와 풀만 있어 오히려 삭막해 보였던 정원에는 쉼터가 생겼다.
그 쉼터에는 말을 탄 기사 모양의 동상이 세워졌다.
그 앞에는 아이가 뛰어놀기 편하도록 공터가 만들어졌다.
“아…….”
난 살짝 입을 벌렸다.
활짝 열린 대문 안쪽, 저택의 로비에는 그림이 걸렸다.
그건 리펜이 그린 게 분명한 그림이었다.
배경도 엉성하게 비어 있고 인물을 그린 선도 삐뚤빼뚤했지만, 그림 속 리펜과 메이든 부인은 웃고 있었다.
「고마워요.」
그런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던전 밖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새파란 시스템창이 떴다.
[개인 퀘스트(MAIN) : 수호]
어? 개인 메인 퀘스트가 드디어 뜬 것이었다.
[진정 강해져야 하는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모두를 수호할 힘을 얻으세요.]
[클리어 조건 : 은하 서버 ‘헌터 신유리(S)’의 능력치보다 50% 이상 높은 능력치로 ‘연약한 시한부 영애에 빙의해버렸다(L)’ 던전 클리어]
뭐뭐뭐라고?
***
한편 서제국의 네 명과 동제국의 네 명이 들어간 던전 밖.
“흐음.”
“크흠.”
바깥에서는 동제국과 서제국의 불편한 동거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비슷했다.
이 사람들 안 나오면 어떡하지?
그 생각은 게이트가 완전히 새까만 색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그랬다.
검은 게이트에선 엄청나게 강한 몬스터가 나온다고 했다.
그런데 이건 그냥 검은색이 아니다. 바라보기만 해도 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 빠진 기분이 들었다.
“설마 이거, 앞서 들어간 사람들이 처리를 못 하면…….”
서제국의 마법사 중 하나가 중얼거렸다.
네 헌터가 보았다면 A급이라고 평가했을 마법사는 불안한 얼굴이었다.
이 자리에 남은 동제국과 서제국의 인력은 모두 소수정예.
먼저 게이트에 들어간 자들이 게이트 처리에 실패한다면 곧바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설마 그러겠어?”
서제국 사람들이 불안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건 동제국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큼!”
“흠!”
하지만 같은 생각이면서도 시선이 마주할 때마다 그들은 아닌 척 태연함을 가장했다.
그러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만일 들어간 자들이 이 새까만 게이트를 처리하는 데 성공한다면, 명실상부 최고의 엘리트가 되는 셈이다.
그런 자들이 각 제국으로 돌아가면 자국의 사기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 영웅들이 게이트 안에서 지친 몸으로 나온 틈을 타 상대가 공격이라도 하면 어쩐단 말인가?
그렇기에 그들은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나 기다렸을까.
―우우웅!
게이트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어어어어?”
처음 그걸 발견한 건 동제국의 기사였다.
그가 소리를 질러대자 경계하던 서제국 사람들도 눈을 크게 떴다.
“어어어어!”
그들도 비명과 감탄 비슷한 소리를 내지르며 게이트 근처로 모여들었다.
그러자 동제국 사람들까지 모여들면서 게이트 앞에서 두 병력의 대치 상태가 벌어졌다.
과연 인간이 나올 것인가, 아니면…….
―꿀꺽.
동제국의 마법사 중 하나가 마른침을 삼켰다.
던전 클리어에 실패했다면 몬스터가 얼굴을 내밀 수도 있었다.
제발! 사람이어야 해!
안 그럼 우리가 들어가야 한다고!
모두가 속으로 비명을 지르는 순간, 누군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새까만 장갑과 갑옷. 당당한 걸음과 함께 나오는 건.
“?”
동제국 사람들이 입을 떠억 벌렸다. 그건 서제국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먼저 나온 건 서제국 황제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이었다.
“폐, 폐하?”
폐하가 왜 여기서 나오십니까?
그들이 놀랄 틈도 없이 뒤따라 마탑주 클로나 에이센이 걸어 나왔다.
“마탑주?”
서제국 마법사들이 눈을 크게 떴다. 그 뒤로 바로 나온 건 신시안 교황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였다.
“???”
갑작스러운 기적을 목도한 서제국 사제들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그 뒤로는 서제국의 수호기사단장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가 나왔다.
“오, 와……?”
서제국 사람들은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자국 사람은 분명 넷이었는데, 어떻게……?
“다들 애타게 기다렸나 보군요.”
사근사근한 클로나 에이센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그 의문은 사라져 버렸다.
처음부터 저 네 사람이 들어간 것이다.
마탑주께서 교황 예하와 황제 폐하의 모습까지 바꾸어 들어가신 것이다!
이 게이트가 새까만 색인 것을 미리 간파하시고 마법을 써서 모습을 미리 바꾸신 거야!
교황과 황제와 마탑주가 한 번에 움직인다고 하면 저 동제국 놈들이 가만있지 않았을 테니, 계책을 쓰신 것이다!
그 결론에 닿자 서제국 마법사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와아아아아!”
그러자 현실을 파악한 서제국의 기사들과 사제들까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어떻게 되신 겁니까!”
“무사하십니까!”
그들은 검이 어떻네, 마법이 어떻네 내외할 때는 언제고 서로를 얼싸안고 있다가 그들에게 달려갔다.
***
“우리 거리를 좀 두는 게 좋겠는데.”
신재헌이 떫은 표정으로 그들을 밀어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무슨 한일전 이긴 축구팀 환영하는 공항 인파처럼 굴지 말아줄래?]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생각해봐요 비슷한 상황이야]
서제국과 동제국의 국가 간 감정을 생각하면 비슷한 상황이긴 했다.
신재헌은 일단 감동의 도가니에 빠진 그들을 슬그머니 밀어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사인은 나중에 받으러 오란 말이야~]
그러게요.
일단 부스러질 것 같은 몸 상태로 날뛰는 놈들을 보자니 골이 울리는 기분이었다.
한편 동제국 사람들은 게이트만 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오길 기대하는 듯했다.
그러게, 두 놈은 살아있었는데 어디 갔냐?
클리어 보상 뜰 때 살아있으면 분명 같이 있어야 했는데, 왜 없었지?
소예리 헌터 살아 돌아온 것에 감동 받느라 그놈들은 신경 쓰지도 못하고 있었다.
[…….]
난 뒤를 돌아보았다. 게이트는 우리 넷을 뱉어낸 뒤로 조용했다.
그러다가.
―우우웅…….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와아아아아!”
“게이트를 없애셨다!”
“서제국 만세!”
우릴 감싼 서제국 사람들이 축제 분위기에 물드는 동안 동제국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싸해졌다.
“바, 발탄의 사람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결국 동제국 사람이 우리에게 물었다.
신재헌은 그들에게 간단하게 답했다.
“죽었어.”
죽었어??? 그 말엔 우리 셋 다 놀랐다.
오랜만에 트인 채팅이 시끄러워졌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걔들이 L급 보스한테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그렇긴 한데]
그럼 그림 속에서 움직이던 건 뭐였지? 내가 잘못 봤나? 아무리 B급 눈이었기로서니 그걸 잘못 본다고?
무엇보다 우리보다 먼저 서재에 들어가서 싸우고 있던 놈들 아니었나?
그새 쓱싹됐단 말인가?
하지만 난 길게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살아있어 봐야 별로 기쁘진 않을 듯?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이제 때가 됐어요 여러분]
그때 갑자기 소예리 헌터가 근엄하게 채팅을 올렸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예?]
주이안 헌터가 긴장하는 사이 사근사근 웃는 표정의 소예리 헌터가 채팅을 올렸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뒤 풀 이 타 임]
무슨 히든루트 개방처럼 근엄하게 나온 채팅에 채팅창이 뒤집어졌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갑시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이번 건 반드시 뒤풀이 해야됨 ㅇㅇ 안그럼 부정탐]
무려 사람이 죽다 살아났는데 뒤풀이도 안 할 순 없지!
우리가 우르르 채팅을 올리는 사이 주이안 헌터가 침착하게 끼어들었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일단 휴식을 취한 후에…….]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휴식은 술과 함께]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치료부터 하시고요]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좋아좋아]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특제 수프도 드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나와 신재헌의 얼굴이 순간 새하얘졌다.
사람들 있는데 무서운 소리 하지 마!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그 특단의조치 대체 얼마나 싸갖고 들어온 거예요]
저거 떨어질 때 안 됐어?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아직 많이 남아 있습니다. 정 곤란하시면 안주로 드실 수 있는 방향으로]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안돼]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신성모독하지 마세요]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선넘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교황은 저인데 신성모독이 왜……]
교황한테 신성모독을 운운한 우리가 특단의 조치 안주를 반대하면서 채팅은 시장바닥이 되어버렸다.
채팅창은 그야말로 폭주하고 있었다.
역시 채팅 있는 게 좋다니까.
“아.”
그러고 보니, 채팅 제한이 있어도 앞으론 문제없을 듯했다.
[친구의 증표]
리펜이 우릴…… 좀…… 많이…… 개고생시키긴 했지만, 기가 막힌 보상을 주었으니까.
[친구의 증표 : 이 아이템이 인벤토리 밖, 주인의 반경 1m 이내에 있을 경우 ‘친구의 증거(L)’ 버프 효과가 발동한다.]
[친구의 증거(L) : 행동을 강제하는 L급 이하 던전의 디버프를 최대 3회까지 무력화할 수 있다.]
이거면 앞으론 채팅제한도 막을 수 있다!
음음, 아주 좋아!
“말도 안 돼!”
물론 아주 좋을 리가 없는 동제국 사람들이 머리를 싸매는 동안, 우리는 서제국으로 귀환했다.
우리의 귀환으로 동제국의 사기가 바닥 치는 건 물론이었다.
그리고 우리 앞엔 화려한 뒤풀이만이 남게 되었다.
몇 시간 후, 우리는 서제국 황가 소유의 저택으로 움직였다.
그 황가 소유의 저택이 왜 또 내 영지 주변에 붙어있는지는 나도 모르고 주이안 헌터도 모르고 소예리 헌터도 모르고 신재헌만 알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