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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50)화 (150/218)

150화

소예리 헌터의 모습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

뭐라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컨베이어벨트는 계속 우리를 붉은 빛이 나는 곳으로 이끌고 있었다.

리펜의 생일을 말해야 저곳을 통과할 수 있다.

말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진짜?

진짜 없어진 거야? 진짜 지하로 간 거야?

[…….]

시스템창은 말이 없었다. 동제국의 마법사가 사라졌을 때처럼.

차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말해야 했다.

소예리 헌터가 말해준 게 헛수고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붉은 영역에 가까워지자 발아래가 번쩍였다. 답을 해야 하는 구간인 것이다.

[디버프 ‘강력한 저택의 규율(L)’이 사라집니다.]

아주 잠깐 규율이 사라지는 사이 우리 셋이 답했다.

지금까지 다른 질문에 이구동성으로 답했던 것처럼.

“4월 13일.”

그 순간 새빨간 영역은 소리 없이 사라졌다.

통과한 것이다.

하다못해 답할 수 있도록 발판이 빛나는 시간이 조금만 길었으면 소예리 헌터가 경고를 받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끼리릭…… 덜컹!

우리가 마지막 질문에 답하자 컨베이어벨트가 멈추었다.

그리고 우리가 도착한 곳은 웬 나무문 앞이었다.

그 문에 손을 뻗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신재헌은 소예리 헌터가 사라졌던 자리를 돌아보고 있었다.

진짜로?

그도 믿기지 않는 얼굴이었다.

“……사망 시스템창이 뜨진 않았어요.”

그때 주이안 헌터가 침착하게 말했다. 우리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 S급(보조)]

하지만 시스템창의 소예리 헌터는 버프창도 디버프창도 없어진 채 굳어 있었다.

마치 이대로 시스템창에서만 시간이 멈춰 버린 것처럼.

뭔가 잘못된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그렇게 믿어야 했다.

“맞아, 아직 안 떴어요.”

동제국의 마법사가 바로 사망 처리됐던 것과는 달랐다.

난 문손잡이를 잡았다.

“일단 던전부터 빨리 클리어하죠.”

호감도상 메이든 부인은 분명 L급 보스로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주저할 틈은 없었다.

어떻게든 클리어한 후 저택을 날려버려서라도 지하에 있는 소예리 헌터를 찾아야 했다.

지하가 단단한 지반으로 메워져 있다는 사실은 머릿속에서 잠시 지워 버렸다.

―끼익.

문을 열자 리펜이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리며 우리를 반겼다.

“너희라면 올 줄 알았어!”

그러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빨간 머리 누나는?”

너희 어머니가 경고를 세 번 주는 바람에 지하로 갔단다.

아니, 그 전에 왜 생일 같은 문제를 내서!

리펜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없었다.

리펜이 SS급 보스로 변화하기라도 했다간 시간은 더 지체될 것이다.

“설마 엄마한테 혼났어?”

“지하로 갔어.”

신재헌이 답했다. 그 말에 리펜이 눈을 크게 떴다.

“아…….”

“하지만 괜찮을 거야.”

신재헌은 곧바로 말했다.

맞아, 괜찮을 거다. 나와 주이안 헌터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의 말대로 시스템창이 뜨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여전히 소예리 헌터의 상태는 멀쩡한 것처럼 보였다.

남은 체력을 보여주는 게이지바도 꽉 차 있었다. 버프와 디버프 창이 없어져서 이상할 뿐이지.

“그래도 빨리 가봐야 할 것 같아.”

난 신재헌의 말을 받으며 말했다. 리펜이 내게 시선을 주었다.

“도와줘야 할 것 같거든.”

소예리 헌터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맥없이 죽어 버린 동제국의 마법사와 그녀는 달랐으니까.

“그럼 나랑 놀아줄 수 없겠네…….”

리펜은 실망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잘 달래는 주이안 헌터조차도 지금은 조용했다.

그도 머릿속에서 필사적으로 좋은 생각만 하려고 애쓰는 것이 분명했다.

“더 놀고 싶었는데, 아쉽다.”

리펜도 우리 사이의 가라앉은 분위기를 알아챈 듯했다. 그러면서 책장을 돌아보았다.

손을 안 댄 지 오래된 것처럼 먼지가 쌓인 책장이었다.

“저 뒤에 엄마 서재가 있어.”

왜 멀쩡한 통로를 내는 대신 책장 뒤에 숨겨두었는지 따질 시간은 없었다.

우리의 시선이 책장으로 향했을 때였다.

“보내달라면 보내줄게. 대신 전에 줬던 선물은 돌려줄 수 없어.”

리펜은 그것만은 양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이었다.

“……선물이라면.”

주이안 헌터가 뇌까렸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떠오른 건 내 목검과 신재헌의 도금 목걸이였다.

검이야 다른 SS급 검 구하면 된다. 다른 두 사람도 비슷한 생각인 듯했다.

현재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

사라진 물건들은 어떻게 되든 좋으니 소예리 헌터를 최대한 빨리 찾으러 가야 했다.

“좋아.”

“네가 갖고 놀아.”

우리가 이구동성으로 답하자 리펜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러면 우리가 조금 주저할 거라고 생각한 것인지도 몰랐다.

아이는 입을 비죽거리더니 아쉬운 얼굴로 우리 앞에서 비켜났다.

―파앗!

그러자 리펜의 뒤에 있던 책장에서 잠깐 연둣빛이 발했다가 사라졌다.

메이든 부인이 썼던 마법과 같은 빛이었다.

아무래도 통로가 없는 이유는, 메이든 부인의 마법으로 이어진 공간이기 때문인 모양이었다.

그 순간 시스템창이 떴다.

[리펜 드 메이든 : +55]

파란색의 무언가가 뜨길래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소예리 헌터와 관련된 시스템창인 줄 알아서.

하지만 시스템창은 소예리 헌터는 잊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다른 내용만을 내보냈다.

[리펜 드 메이든의 호감도가 +50 이상으로, 보스화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끝이었다. 리펜이 우리에게 말했다.

“다음에도 나한테 와야 돼.”

리펜이 해맑게 웃었다. 우리가 다시 올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우리가 고개를 끄덕여줄 때였다.

[리펜 드 메이든의 진정한 친구로 인정받았습니다!]

[<친구의 증표>를 획득합니다.]

[친구의 증표 : 이 아이템이 인벤토리 밖, 주인의 반경 1m 이내에 있을 경우 ‘친구의 증거(L)’ 버프 효과가 발동한다.]

[친구의 증거(L) : 행동을 강제하는 L급 이하 던전의 디버프를 최대 3회까지 무력화할 수 있다.]

우리의 앞으로 친구의 증표가 툭툭툭 떨어져 내렸다. 딱 세 개만.

마치 소예리 헌터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처럼.

“……가요.”

주이안 헌터가 조용히 말했다. 그가 증표를 손에 꽉 쥐는 것이 보였다.

―쿠르릉!

우리가 앞에 서자, 책장이 움직였다. 그러자 불이 꺼져 있어 새까만 복도가 드러났다.

그곳에 걸음을 내디딘 순간이었다.

리펜의 방과는 완전히 다른 공간인 것처럼 공기가 바뀌었다.

그리고 통로의 끝,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이 분명한 소리가 카랑카랑하게 울렸다.

「이런 품격 없는 것들을 손님이라고 불러들였다니!」

“!”

우린 멈칫했지만 경고가 뜨지 않는 걸 보면 우리를 보고 하는 말은 아닐 터였다.

[파티원 ‘시네아 드라스’의 경고가 3회 누적되었습니다.]

[‘시네아 드라스’가 저택의 지하에 갇힙니다.]

바로 시스템창이 떴다.

“……!”

우리 셋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파티원 ‘시네아 드라스’가 사망하였습니다.]

사망 시스템창이 떴다.

소예리 헌터에게는 뜨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래, 아직은 괜찮을 것이다.

우리 셋은 비슷한 생각을 하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쿠쿠쿠쿵!

문 너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몰라도 심상치 않은 진동이 울렸다.

문 안쪽에서 연두색 빛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전투 중인 것 같습니다.”

주이안 헌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 S급(딜러)

- 버프 : 시너지(A) 메이든 부인의 흡족함(L) 책임감(S)]

스킬을 켠 신재헌이 말레티아의 검을 들고 선두에 섰다.

방 안에 난입할 생각인 것이다.

하긴, 저쪽이 주의를 끌고 있으니 쳐들어가서 뒤를 치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잔상(SS+) 스킬을 국소 범위에 적용합니다.]

[적용 범위 : 헌터 신재헌의 ‘말레티아의 검(SS+)’]

[헌터 신재헌, 잔상(SS+)효과 승인.]

내 잔상 스킬과 함께 주이안 헌터의 버프가 신재헌의 버프창에 떠올랐다.

하지만 소예리 헌터가 걸어주어야 할 극대화나 보호막 스킬은 없었다.

그 당연한 사실에 입술을 깨물었을 때였다.

신재헌이 손가락을 펴 보였다.

셋, 둘, 하나.

손가락을 마저 접은 그가 문을 열었다.

―쿵.

분명 그는 거세게 밀어낸 것 같았는데, 문은 부드럽게 열렸다.

“……?”

신재헌이 멈칫할 때였다. 방 안의 풍경이 보였다.

“어?”

방 안은 방금까지 전투 중이었던 방답지 않게 깔끔했다.

그리고 분명히 메이든 부인과 싸우고 있어야 할 동제국 놈들은 온데간데없었다.

“오셨군요.”

―촤악!

메이든 백작부인이 깃털로 장식된 부채를 펼쳐 입가를 가렸다.

그녀는 조금 전까지 소리 지르던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뭐지?

[메이든 부인 : -30]

그녀의 머리 위로 호감도가 떴다.

이대로면 SS급 보스가 뜨는 호감도다.

하지만.

“흥…….”

메이든 부인이 우리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리는 게 보였다.

그녀는 우리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점수가 오를 기대는 하지도 않았지만.

“옷이 정갈하지 못하군요.”

나와 신재헌을 돌아본 메이든 부인이 혀를 찼다.

[메이든 부인의 호감도가 5 하락했습니다.]

[메이든 부인의 호감도가 5 하락했습니다.]

[메이든 부인의 현재 호감도 : -40]

옷차림부터 시비를 걸 거면 올라오기 전에 말해주실래요?

내가 눈썹을 치켜올렸을 때였다.

메이든 부인이 우리를 살피다가 물었다.

“한 명은 늦고 있나요?”

늦은 게 아니라 잘난 댁 저택의 규율 때문에 쫓겨난 거거든요?

욕이 입 안까지 기어 나왔지만 난 간신히 억눌렀다.

L급 보스로 개화하지 않아야 빠르게 잡을 수 있다.

나와 신재헌이 숨을 가다듬는 사이, 메이든 부인이 혀를 찼다.

“뭐, 아무래도 좋아요. 손님들에게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어요.”

그녀는 표정을 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한쪽에 세워져 있는 신재헌의 그림을 가리켰다.

“선물은 아주 잘 받았어요. 품격 있는 집안의 자제가 분명하군요.”

언제는 생긴 걸로 욕하더니!

[메이든 부인의 호감도가 30 증가했습니다.]

오……? 난 살짝 입을 벌렸다. 호감도가 저렇게 높아진다고?

[메이든 부인 : -10]

그림 세 장 그려왔으면 그냥 통과됐을까? 지금 와서 후회해도 늦은 일이다―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메이든 부인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순간 서늘하게 변했다.

“낮에, 우리 아이랑 몰래 만났다면서요?”

“……!”

감시 스킬도 없었는데 어떻게 안 거야?

우리가 어떻게 반응할 틈도 없었다.

[‘리펜의 공간’에 들른 파티원의 인원수만큼 메이든 부인의 호감도가 하락합니다!]

[메이든 부인의 호감도가 50 하락합니다!]

[메이든 부인의 호감도가 50 하락합니다!]

[메이든 부인의 현재 호감도 : -99(최악)]

[더 이상 호감도가 내려갈 수 없습니다!]

“감히!”

분노한 메이든 부인이 소리를 질렀다.

[메이든 부인이 보스 몬스터 ‘메이든 부인(L)’으로 변화합니다!]

“이런 귀족적이지 못한 자들이 저택을 돌아다니다니!”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970126]

순간 체력이 확 깎였다.

S급인 신재헌과 주이안 헌터의 체력바도 훅 깎이는 게 보였다.

“연이어 공격할 것 같습니다!”

주이안 헌터가 빠르게 힐 스킬을 올리는 게 보였다.

[메이든 부인이 ‘어딜 버릇없이(L)’ 스킬을 가합니다!]

[메이든 부인(L)과 시선을 마주할 수 없습니다!]

[메이든 부인(L)의 반경 2m가 일그러져 보입니다!]

하필이면 근접딜러 둘만 있는 상황에 시야를 일그러뜨리는 디버프부터 날아왔다.

―까앙!

그리고 다음 순간 부채를 막아내는 신재헌 쪽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렸다.

디버프 때문에 그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하나 있었다.

피로 물든 메이든 부인의 부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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