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공부를 싫어한다는 아이가 내주는 시험은 어떤 것일까?
그건 정말 아이다운 것들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아이의 들뜬 목소리가 울렸다. 우린 이구동성으로 답했다.
“뛰어노는 거.”
“노는 거.”
그러자 바닥이 조금 더 빨리 앞으로 움직였다.
아무래도 정답인 듯했다.
「좋아! 그럼 내가 가장 싫어하는 건?!」
이것도 쉬웠다.
“악기연주?”
“공부.”
“엄마가 시키는 교양 공부.”
답은 동시다발적으로 나왔다.
이대로만 나온다면 통로를 통과하기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잘 아네! 그럼 내가 싫어하는 거 잘하는 사람은 들어오면 안 돼!」
난 그 말에 멈칫했다.
그럼 그림 잘 그리거나 피아노 잘 치는 사람들은 아웃이야?
아니지?
나와 소예리 헌터는 주이안 씨와 신재헌을 걱정스럽게 돌아보았다.
그래도 둘 다 경고가 0회, 1회니까 한 번쯤은 괜찮을 것이다…….
「지금부터 여러 번 걸리는 사람은 못 오는 거야!」
리펜의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다시 통로를 울렸다.
우리더러 다시 만나자며! 그냥 들여보내 줘!
욕을 간신히 집어삼키는 사이 다음 문제가 나왔다.
「혹시 공부 잘하는 사람 있는 건 아니지?」
그 질문에 나와 신재헌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우린 아닌 듯?
그때 소예리 헌터가 멈칫했다.
“‘잘한다’의 기준이 뭔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소예리 헌터와 주이안 헌터는 좀 위험했다.
설마 여기서 수학 문제 내는 거야? 두뇌 풀가동해서 틀린 곳에 들이대면 돼?
하지만 리펜의 ‘검증’은 생각보다 더 비논리적이고 어이없는 것이었다.
「흐음! 딱 보니까!」
딱 보니까? 설마 너 또 관상 보니?
내가 눈썹을 치켜올린 순간.
「형은 너무 공부만 하게 생겼어! 진짜 엄마가 보낸 거 아냐?」
―쾅!
그 말과 동시에 주이안 헌터의 이마 높이까지 철판 하나가 내려왔다.
S급의 반사신경으로도 피할 수 없는 속도였다.
[‘헌터 주이안(S)’이 ‘리펜의 방 통로’의 규칙을 어겨 경고를 받습니다!]
[공부하지 마!]
주이안 헌터가 뭐라고 반론할 틈도 없이 디버프가 박혔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 S급(힐러)
- 버프 : 시너지(A) 메이든 부인의 흡족함(L)
- 디버프 : 저택의 강력한 규율(L) 날카로운 의심(L) 경고1(L)]
주이안 헌터의 HP가 반까지 내려가 있는 게 보였다.
그는 힐하면서도 당황한 표정이었다.
평소 같으면 웃었겠지만 우리도 심각해진 건 마찬가지였다.
관상 보고 마음대로 벌칙 먹일 거면 뭘 조심해도 소용이 없잖아?
「다음은!」
그때 리펜의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위에서 내려오는 철판 피하면 경고도 피할 수 있을까?
안 되겠지?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엄마가 오늘도 키 크라고 우유 먹으라고 했어! 난 우유 싫어!」
“혹시 우유 들고 오신 분?”
내 질문에 신재헌과 소예리 헌터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하긴, 나를 포함해 이 셋은 우유 같은 걸 들고 다닐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주이안 헌터는 좀…… 가능성이…….
“저도 없습니다.”
주이안 씨는 곧바로 양손을 들어 보였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쉰 순간이었다.
「내 하인은 우유 안 먹어도 키 큰다고 했단 말야! 난 키 큰 사람이 싫어!」
변화구가 날아들었다. 뭐뭐뭐라고?
[키 180cm 이상인 헌터에게 경고가 가해집니다.]
시스템창이 떴다. 나와 소예리 헌터는 당연히 통과였다.
문제는 두 남자였다.
나와 소예리 헌터보다 앞서 걸어가고 있던 두 남자가 나란히 시선을 마주쳤다.
주이안 헌터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신재헌은 긴가민가한 얼굴로.
저 표정은 뭐냐?
그렇게 생각했을 때, 신재헌의 입에서 황당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넘으십니까?”
이 새X는 주이안 씨 지식나무 페이지에도 나오는 키를 모른단 말이야?
아니 애초에 몇 년이나 같이 있었는데 키도 모……를 수도 있지만 그게 질문이냐!
딱 봐도 크잖아! 얼마 차이 안 나잖아!
“그…….”
주이안 헌터가 당황한 순간이었다.
―까앙!
두 사람의 이마에 동시에 철판이 내리쳐졌다.
키가 커 서러운 두 남자가 나란히 이마를 짚었다.
[‘헌터 주이안(S)’이 ‘리펜의 방 통로’의 규칙을 어겨 경고를 받습니다!]
[‘헌터 신재헌(S)’이 ‘리펜의 방 통로’의 규칙을 어겨 경고를 받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웃었겠지만 지금은 웃음도 안 나왔다.
이걸로 경고라고?
[경고2(L)]
두 사람의 디버프창에 동시에 경고2가 떴다.
입 안이 바싹 마르는 기분이었다.
이제 나 빼고 셋 다 경고가 2회인 상태였다.
「그럼 마지막 질문!」
그때 쉬지 않고 리펜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건 넘겨야 했다. 안 그러면 그대로 지하행이었다.
뒷목이 싸늘하게 굳은 순간, 마지막 질문이 울렸다.
「내 친구라면 내 생일은 알고 있겠지?」
그걸 어떻게 알아!
순간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나야 몰라도 된다. 하지만 나머지 세 사람은 곤란했다.
혹시 아세요?
빠르게 돌아보니 신재헌도 주이안 헌터도 얼굴이 하얘져 있었다.
멈칫한 건 소예리 헌터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우리 중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설마 진짜로?
3층에서 사라졌던 마법사가 떠올랐다.
‘아, 안 돼!’
비명밖에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마법사.
[사망하였습니다.]
차갑게 떠올랐던 시스템창.
설마 이딴 어이없는 이유로 경고가 쌓여서…….
바닥은 그 사이에도 빠르게 앞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점점 빨간 빛의 장막이 가까워지는 게 보였다. 난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정답을 말하지 못하면 경고를 받을 것이다.
그럼.
“이걸…….”
난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 이렇게? 어이없이?
“…….”
“…….”
다들 할 말을 잃은 듯했다. 그때였다.
“……나 알아요.”
소예리 헌터가 입을 열었다. 우리의 시선이 벼락같이 그녀에게 향했다.
빨간 빛의 구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어떻게……?”
“아까…… 아까 봤어요.”
같이 보자고만 했어도……! 그녀가 발을 동동 굴렀다.
어디서 봤는지는 몰라도 이미 늦은 일이었다.
아…… 설마, 미로에 들어가기 전에 소예리 헌터가 보고 있던 게……?
내가 입술을 깨물었을 때였다.
“리펜의 생일은―”
“잠깐만요.”
그때 주이안 헌터가 소예리 헌터의 입을 막았다.
그는 급할 때가 아니면 사람에게 함부로 손대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만큼 다급했다는 뜻이었다.
“소예리 헌터님이 그걸 말하면 저택의 규율을 어기게 됩니다.”
난 그 말에 눈을 크게 떴다.
맞다. 저택 내에서 얻은 정보는 어떤 것이든 입 밖으로 내지 말라는 규칙이 있었다.
3번이었나?
심지어 소예리 헌터는 그것 때문에 경고를 받은 적도 있었다.
[경고2(L)]
이미 그녀의 경고는 2회였다.
다시 한번 규칙을 어기면 3회다.
“…….”
하지만 소예리 헌터는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입을 다물 생각이 없다는 것처럼.
―우우웅!
새빨간 빛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소예리 헌터의 시선이 우리를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
침묵이 내려앉았다. 긴 시간 많은 말을 나눠 왔지만, 할 말이 없었다.
사고가 정지하는 기분이었다.
흐르는 건 우리의 의사에 반하여 앞으로 향하는 바닥뿐이었다.
우리 등 뒤는 바로 벽이었기 때문에 물러설 수도 없었다.
“예리 언니.”
내 말에 소예리 헌터가 웃었다.
그녀가 손을 살짝 들었다. 마치 인사하는 것처럼.
“리펜의 생일은…….”
주이안 헌터의 손이 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녀는 말하고 있었다.
셋 다 죽을 순 없다는 판단일 것이다.
옳은 판단이기는 했다. 보다 많은 사람이 사는 것이 최선의 결과라면.
그것만이 최선의 결과라면.
막막할 정도로 침묵이 내려앉은 통로에.
“4월 13일.”
그녀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울렸다.
그 순간.
―파앗!
소예리 헌터의 몸을 검붉은 빛이 감쌌다.
[‘헌터 소예리(S)’가 ‘저택의 규율 3번’을 어겨 경고를 받습니다!]
[저택 안에서 얻은 정보를 입 밖으로 내지 마세요!]
“……!”
마지막으로 시선이 마주쳤다.
[‘헌터 소예리(S)’의 경고가 3회 누적되었습니다.]
[‘헌터 소예리(S)’가 저택의 지하에 갇힙니다.]
검붉은 빛과 함께, 소예리 헌터가 자리에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