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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41)화 (141/218)

141화

“신재헌 헌터님, 감시가……?”

소예리 헌터는 말하다 말고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그때 눈을 가늘게 떴던 신재헌이 바로 옆의 벽을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우리에게 눈짓했다.

뭐? 밀어보겠다고?

자세히 보니 B급의 눈에도 벽에 미세한 틈이 있는 게 보였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 S급(딜러)

- 시너지(A) 메이든 부인의 흡족함(L) 책임감(S)]

신재헌의 스킬창에 책임감이 올라왔다. 딜러인 그가 탱킹을 해야 할 때 올리는 스킬이었다.

그리고 몇 가지 버프가 그에게 덧씌워지는 순간.

―끼이이익.

신재헌이 문을 밀쳤다.

그리고 우린 그 벽이 생각보다…… 거대하다는 걸 발견했다.

“어?”

그 거대한 회전문은 우리를 순식간에 다른 공간으로 집어삼켰다.

“!”

―스릉!

놀란 신재헌이 말레티아의 검을 뽑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곳은 위협적이진 않았다. 아슬아슬한 촛불 하나로 유지되고 있는 작은 공간이었다.

“?”

위협적인 기색은 느껴지지 않는지 곧 신재헌의 스킬창에서 책임감 스킬이 사라졌다.

“비밀 장소 같은데요?”

소예리 헌터가 눈을 깜빡였다.

그것도 대부분의 물건이 아이 손이 닿는 곳에 올려져 있는 공간이었다.

우리 눈높이에 맞는 선반에는 물건 대신 먼지만 쌓여 있었다.

“음…….”

우린 공간을 훑어보았다.

품위 있는 귀족가의 저택치고는 많이 방치되어 있는 게 분명한 공간이었다.

요컨대 사용인들이 정리하는 곳도 아닐뿐더러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공간도 아니라는 것이겠지.

이 세계의 귀족들은 몇백 년간 한 가문이 같은 저택을 쓰면서, 저택에서 잊어버리는 장소가 생기고는 했다.

그런 공간 중 하나인 듯했다.

어쩌면 건물을 지을 때부터 무슨 사정이 있어서 제대로 처리를 안 했을지도 몰랐다.

그 증거로 반쯤만 타일로 덮여 있고, 반은 흙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리펜……의 비밀 장소인 것 같죠?”

소예리 헌터가 눈을 깜빡였다.

그녀도 아이 눈높이의 선반에만 물건이 올려져 있는 걸 알아차린 듯했다.

“아마도요.”

이런 비밀 장소 하나쯤은 있는 법이지, 음음.

나랑 신재헌도 어릴 때 우리 둘만 아는 비밀 장소가 있었더랬다.

아이의 공간이기 때문인지 어른 네 명이 돌아다니기엔 지나치게 협소했지만, 우린 나름 방 안을 꼼꼼하게 살폈다.

그러던 중 소예리 헌터의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되었다.

“뭐 봐요?”

내가 그렇게 물었을 때였다.

신재헌의 목소리가 아래쪽에서 들려 왔다.

“여기 뭐 묻혀 있는데요?”

“응?”

시선을 내려 보니 신재헌은 흙바닥을 살피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바닥에 반쯤 박혀 있는 것처럼 삐죽 드러나 있는 것은 웬 나무 상자였다.

―슥, 슥.

신재헌이 손끝으로 상자 근처의 흙을 걷어내 보았다.

작은 손을 가진 누군가가 최근까지 여닫은 흔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 공간의 주인인 듯했다.

“타임머신 같은 거 아냐? 막 까도 돼?”

난 상자를 열 것 같은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진짜 시간을 되돌리는 기계가 아니라, 타임캡슐처럼 아이들이 나중에 열어보자고 약속하면서 땅에 묻어 놓는 물건들을 말한 것이었다.

나나 신재헌이 그랬던 것처럼.

이런 건 누가 먼저 열어보면 새 된다고!

물론 그러기에는 너무 손때가 묻어있기는 했다.

SS급 던전에서 타임머신은 왜 따지냐 싶겠지만, 이런 특수던전에서 인물의 물건을 잘못 건드리면 스토리가 꼬이는 수가 있다.

“몰래 열어보고 티 안 나게 닫아 두자.”

신재헌도 그걸 알고 있기에 고민하다가 말했다.

“하긴, 이 방에서 볼 거라고는 그 상자밖에 없어요.”

소예리 헌터가 방을 다 둘러본 후에 말했다.

결국 우리의 시선이 상자로 모여들었다.

뭔가 있어 보이는 저 상자를 안 열어보기도 뭐했다.

의견이 모이자 소예리 헌터가 상자에 손을 뻗었다.

“그럼 잠깐만요~”

발랄하게 말한 그녀의 손이 스킬로 번쩍였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 S급(보조)

- 시너지(A) 메이든 부인의 흡족함(L) 감정(B)]

B급이긴 하지만 사용자가 S급인 만큼, SS급에서도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난 상자를 살펴보았다.

땅에 묻어두고 근처를 열심히 다듬은 걸 보니 나름 숨겨둔 건 맞는 듯한데.

이걸 왜 아느냐면 나도 저래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어릴 때 어디에 타임머신 묻어 뒀었죠?”

그때 불쑥 신재헌이 물었다. 나랑 같이 타임머신 묻은 놈이었다.

“아, 그거? 왜요? 지금은 못 파낼 텐데.”

아쉽게도 그렇게 됐다.

내 말에 신재헌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왜요? 사유재산?”

왜, 남의 땅이면 산 다음에 파 보게?

난 황당함을 담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 땅은 다른 사람 땅이지.

우리가 땅 주인 허락도 안 받고 타임머신을 묻어둔 것은 차치하고.

“그 위에 놀이터 들어섰거든요.”

“아.”

어린이들의 놀이터를 부술 순 없었는지 신재헌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때 감정 스킬을 다 썼는지 소예리 헌터가 상자에서 손을 뗐다.

그러면서 말했다.

“그럼 그냥 그대로 둬요. 파 봐야 좋은 꼴 못 봐.”

그녀가 빙그레 웃으며 우리를 돌아보았다.

“왜요? 흑역사라서?”

하긴 거기에다가 ‘미래의 나야, 잘 지내고 있니?’ 같은 별 이상한 오글거리는 편지 넣어둔 것 같…….

“나도 파 봤거든요. 어릴 때 종이 상자에 싸서 넣어놓은 거.”

그녀가 어깨를 으쓱했다.

“벌레 소굴 됐더라고요. 거기 있던 애들 다리 합치면 200개는 됐을 듯?”

“악!”

벌레 던전도 싫고 벌레 이야기도 싫어! 난 손을 내저었다.

추억은 그냥 묻어두자!

“그럼 남의 추억이나 열어 봅시다.”

우리와는 달리 타임머신이 없는지 소리 없이 웃는 주이안 헌터를 두고, 신재헌이 상자로 손을 뻗었다.

“상자엔 이상 없죠?”

“네. 그냥 말 그대로 상자인데?”

그 말에 신재헌은 고개를 끄덕였다.

“열어볼게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책임감 스킬은 켠 채였다.

―달칵.

그리고 그가 열어젖힌 상자 안에는 웬 네모나게 접힌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었다.

“편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주이안 헌터님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하는 사이, 신재헌이 살짝 종이를 펼쳐 보았다.

그 안에는 산과 강, 나무, 해, 집 등이 그려져 있었다. 아이의 솜씨가 분명한 그림이었다.

동글동글한 해 모양이 인상적이라고 생각한 순간.

[미로 ‘어린이의 꿈속’이 개방됩니다.]

“어?”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는데 시간차공격이었냐!

눈앞이 순식간에 새까맣게 물들었다.

아니, 이 던전 정말 제멋대로네!

[디버프 ‘의심(L)’의 효과를 받습니다.]

의심? 누가 의심하는지는 써 주면 안 될까?

그 와중에 디버프로 있던 3중 감시는 아직도 없었다.

아무래도 감시가 메이든 백작부인과 관련된 것임을 생각하면, 이 의심은 아이인 리펜 쪽의 의심이라고 생각하는 게 합당할 듯했다.

[스킬 ‘경계태세(A)’를 사용합니다.]

[스킬 ‘경계태세(A)’를 취소합니다.]

나도 그렇고 다른 헌터들도 스킬을 번쩍거리며 자신의 건재함을 알렸다.

하지만 주변은 웬 주황색의 페인트가 끼얹어진 것 같은 미로 벽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요컨대 우린 또 각자 떨어진 것이다.

아오!

[스킬 ‘경계태세(A)’를 사용합니다.]

그래도 일단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니 경계태세는 쓰고…….

미로라고 했으니까 일단 나가면 되겠지?

난 주변을 보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주황색 돌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처음 있었던 자리에 내려놓았다.

근데 이거 어째 돌치고는 색이 좀 진하다?

―스으으윽.

바닥에 그어 보니 마치 크레파스처럼 바닥에 주황색 선이 그어지는 게 보였다.

“오?”

크레파스였어? 손에 묻는 것까지 똑같았다.

[시작]

그렇게 바닥에 써둔 난 아예 크레파스(?)를 들고 왔던 길을 표시하면서 가기로 결정했다.

이래야 왔던 길 안 헷갈리지.

그러면서 내가 그린 흔적이 사라지거나 기묘하게 변하지 않는지도 관찰하는 걸 잊지 않았다.

던전에 한두 번 당해보냐?

S급이 괜히 S급이 아니다.

“흐음.”

하지만 다행히 내가 남긴 흔적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대신 내가 뱅글뱅글 돌아 원 모양의 주홍빛 미로를 벗어나자, 주변의 색이 확 바뀌었다.

이번엔 군데군데 하얀색이 있는 하늘색의 미로였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색 조합이다?

난 간혹 노란빛이 보였던 주황빛 미로를 돌아보았다가, 눈앞의 하늘색 미로를 바라보았다.

군데군데 하얀 벽이 있는 것하며.

이거 설마…….

“아까 그 그림인가?”

파란 하늘 사이사이로 주황색 해와 뭉게뭉게 구름이 두어 개 칠해져 있던 그림.

아무래도 그 그림을 기반으로 미로가 만들어진 것 같은데.

그럼 이 미로의 주인은 역시.

“리펜?”

그 아이가 이 미로의 주인이라면, 적어도 호감도가 +이니까 우리를 죽이진…… 않을걸?

아마 그럴 것이다. 죽일 생각이었으면 미로에 몬스터를 풀었겠지.

난 일단 미로를 빠져나가는 데에 집중하기로 했다.

“내가 출발한 곳이 하늘이고…….”

분명 아이의 그림에는 집이 그려져 있었다. 빨간 지붕에 굴뚝 하나, 문은 갈색인 집.

출구는 그럼 아마 그 집의 문이 아닐까?

그 그림에서 다른 공간으로 통할 만한 곳은 거기밖에 없었으니까.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 B급(딜러)

- 버프 : 시너지(A) 메이든 부인의 흡족함(L) 경계태세(A)

- 디버프 : 의심(L)]

미로 안에 있는 한 저 디버프는 계속 있는 건가?

의심은 어떻게 풀지?

고민하면서 난 전진했다. 일단 그림 위라고 생각하니 길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찾았다.”

그리고 이내 갈색의 미로에 접어들자, 안쪽에 문이 하나 있는 게 보였다.

저기로 나가면 되는 것 같은데.

난 일직선인 마지막 통로를 달려 문 앞에 다가갔다.

“…….”

문밖에선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몬스터가…… 있을까?

그렇게 경계할 때.

―끼익…….

문이 열렸다. 멈칫하는데, 문틈으로 보이는 건 몬스터 따위가 아니었다.

“……!”

문 안, 새까만 공간에 러그가 깔려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 엎드려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건 리펜 드 메이든이었다.

아이가 내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나보다 랭크도 낮지 않은 주제에, 보란 듯이 머리 위에 랭크가 딱 떴다.

[SS+]

김천재급이다! 난 속으로 소리를 지를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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