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헌터계에는 간혹 ‘만년헌터’라는 말이 돌아다녔다.
어차피 한번 헌터로 각성하면 시스템창을 끌 방법도 없는데 굳이 ‘만년’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신재헌이 C급에서 S급 상위까지 치고 올라간 후.
[헌터 신재헌, ‘C급→S급’……믿을 수 없는 성공신화]
[태생 C급이 S급으로 올라서기까지]
[헌터협회 “랭크 3단계 상승은 전 세계 최초”]
신재헌에 대한 보도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뜨겁게 달궜을 때.
헌터넷에는 제 인생의 허무함을 토로하는 글들이 도배가 되어 올라왔다.
[제목 : 뭘 하면 저렇게 랭크업하는거임?
글쓴이 : 만년씨랭
똑같은 태생 C급인데 난 C고 신재헌은 S급이고 뭐냐? S급 옆에서 기라도 받은 거임?]
└[놀먹 : 잘 때 먹을 때 빼고는 하루 종일 수련했다더라 ㅇㅇ]
└[만년씨랭 : 지X하고있네 신유리 던전 공략에 며칠씩 끌려가 있는데 ㅋㅋ]
└[놀먹 : 그게 수련이었겠지]
└[만년씨랭 : X랄하네진짜 C랭이 A급가서 수련? A급 몬스터가 S급되는게 빠르겠다 X발]
처음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이 만년씨랭이라는 유저의 글은, 얼마 후 재조명되었다.
[게이트학 전문가 “공략 실패한 던전, 수준 높아져”]
[헌터 부족한 농촌지역에서 많은 사례 보고…… “낮은 게이트라도 경각심 가져야”]
[K대 게이트학 교수, “지나친 전력 투입해서라도 게이트를 빨리 처리하는 게 중요”]
던전도 헌터를 잡으면(?) 랭크업을 한다는 것이 실제로 확인되었던 것이다.
[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만년씨랭 나와봐라]
[이쯤에서 재조명되는 짤.mannyuncrank]
[사실 C랭 몬스터였다는 게 학계의 점심]
헌터넷은 당연히 불탔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공략을 다니며 능력치는 오르는데, 랭크업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자조적으로 ‘만년XX’라고 부르게 되었다.
문제는 대부분이 만년헌터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냥 랭크업을 하고 싶은데 못 하면 다 만년헌터가 되는 것이다.
신재헌이 이상한 거라니까, 얘들아?
물론 태생 S급이었던 나는 알 필요도 없는 단어이기도 했다. 나도 심심해서 헌터넷 들어가 봤다가 알았다.
그런데, 그랬던, 내가!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 / 25세, 딜러(B)
체력 : 1206632 (+55000)
근력 : 14024 (+10000)
마력 : 46291 (+40400)
민첩 : 10027 (+31125)
지구력 : 6948 (+10200)
방어력 : 4526 (+10005)
특수 : 도금 목걸이(C, ‘헌터 신재헌(S)’ 애장품 보너스 : 획득 경험치 +50%)
특수 버프 “천상의 힘(S)” : 스킬 발동 속도 10% 증가, 받아들이는 버프 효과 10% 증가]
“이게 만년B랭 아니면 뭐냐.”
내가 이 단어를 쓰게 될 줄은 몰랐다!
난 이마를 짚었다.
일반적인 S급 딜러의 체력이 140만 정도 된다는 건 상식이다.
낮은 랭크에서 그 근처로 체력을 올리기도 힘들뿐더러, 태생 S급 딜러들의 체력이 대부분 저 부근에서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B급이 120만?
어디 가서 ‘제가 B급 딜러인데 사실 체력이 120만입니다.’ 하면 거짓말쟁이로 찍히고 헌터넷에서 만년B랭보다 유명해질 수 있을 것이다.
“등급 상승 히든퀘스트가 안 뜬단 말이야.”
난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빠졌다.
앞에 일거리가 산처럼 쌓여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것보다 난 이쪽이 더 문제였다.
A급 능력치는 아득하게 넘었다.
그런데 왜 아직도 A급 퀘스트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물론 그 답을 새까맣게 모르는 건 아니었다.
신재헌이 언젠가 알려주었었으니까.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반드시 랭크업해야 할 이유가 있어야 돼요, 본인한테]
“반드시 랭크업해야 할 이유…….”
없을 리가 없었다.
에페가 나타난 후로 게이트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은 이 L급 던전에서, 하루빨리 S급을 찍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RP던전에 들어올 때마다 때로는 트롤 하나씩 나오는 법이라지만 그래도 내가 그 트롤이 되긴 싫었다.
나 때문에 공략에 차질이 가는 건 질색이니까.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안 된단 말인가?
내가 그렇게 간절하지 않은가?
사실 난 내심 트롤이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단 말인가?
“…….”
난 고개를 살짝 저었다.
날로 먹는 게 최고라는 생각은 늘 하고 살았지만, 날로 먹기 위해 헌터팀을 위험에 빠뜨려도 된다는 생각은 추호도 한 적이 없었다.
‘간절한 게 있어야 돼요.’
신재헌은 그렇게 말했다.
“간절한 것…….”
난 가만히 그 단어를 뇌까려 보았다.
그가 C급에서 S급이 된 건 정말 이례적인 일이다.
전 세계적으로 케이스를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로.
그리고 그만큼 희귀하게도, 그는 정말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반드시 S급이 되겠다는 간절한 소망.
‘기회가 오면, 너 대신 죽겠다고.’
난 피투성이인 모습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던 신재헌의 목소리를 기억했다.
그보다 더 전에, 그가 C급이었던 시절에 A급 던전을 나와 함께 돌아다니던 신재헌의 눈빛도 기억했다.
[신재헌 – C급(딜러)
- 디버프 : 공포(A)]
그때마다 던전과 랭크 차이가 나니 당연히 공포 디버프도 있었다.
―챙!
게다가 그가 검을 한껏 휘둘러도, A급 게이트 몬스터들의 외피에 흠집을 내는 것이 전부였다.
반면 몬스터들이 가볍게 휘두른 꼬리에 그는 먼 곳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무섭지 않았을 리 없었다.
그런데도 그는 단 한 번도 내 옆에서 두려움에 떤 적이 없었다.
‘…….’
아니, 두려워하기는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두려워하는 건 죽음이 아니었다.
그는 내 동선에 방해가 될까 나보다 앞서 걷지 못하면서도, 새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면서 주변을 보고 있었다.
아직 추적 스킬이 없어 그의 눈이 푸른빛으로 물들지 않았던 시절의 그는, 새까맣게 몰려오는 A급 몬스터들을 눈도 떼지 않고 바라보고 있었다.
‘혼자 있으면 무섭단 말이야.’
그런 되지도 않는 억지를 부리는 내 옆에서 그는, 두 다리를 붙인 채 끝내 돌아서지도 물러나지도 않았다.
그때는 네가 내 억지를 들어주느라 고생한다고 생각했는데.
‘기회가 오면, 너 대신 죽겠다고.’
그런데 넌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내 옆에 있었던 걸까. 그렇게 주먹을 꽉 쥔 채로.
어쩌면 네가 두려워한 건, 죽는 게 아니라―
“…….”
난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 S급(딜러)
- 버프 : 없음
- 디버프 : 없음]
그의 상태창에 있는 S급이라는 글자가 새삼 눈에 띄었다.
C급에서 S급까지 올라온 너. 끝내 내 옆에 선 너.
그런 네게 간절했던 건, 어쩌면…….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리카스 포를랭 아직 안 왔어요?]
‘딱 10초만.’
방금 들은 것처럼 생생한 목소리를 생각할 때였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신유리 헌터님?]
난 멍하니 채팅창을 보다가 정신을 차렸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아직 안 왔어요]
뒤늦게 답하자 신재헌이 다시 채팅하는 게 보였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진짜 무슨 핑계 대고 신유리 헌터님한테 얼굴 들이밀지 궁금하네요]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음, 정치적인 뜻이 맞지 않았다는 핑계를 대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싶습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아니지 이럴 땐 가정불화죠!]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그렇네요 아빠랑 싸웠다고 하고 올듯]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그런 단순한 이유로요?]
가출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이안 씨와 말썽쟁이들의 토론이 벌어지고 있을 때였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자자잠깐만 여러분 비상!]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리카스가 저랑 동갑 아니에요? 여기 세니아 나이가 25살이고 두 살 많으니까]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네, 27살이 맞을 겁니다]
나도 모르는 리카스 나이를 댁들은 왜 아는 건데?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그럼 집나간 걸로 할 듯 확실함 동갑의 촉이 와요]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제가 27살 때는……]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비상! 다물어봐 여러분!]
채팅이 정신없이 올라오다가 끊겼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멸망계시록 올라왔어요!]
요즘 게이트를 많이 박살 내서 그런가, 멸망계시록이 열심히 일하는군.
그렇게 가볍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엄청 센 게이트 떠서 다 쫄딱 망한대!]
멸망계시록은 놀라운 워딩으로 우리를 후려갈겼다.
***
물론 멸망계시록에 정말 ‘다 쫄딱 망한다’고 쓰여 있는 건 아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러했다.
오래전부터 강력한 몬스터가 나와 사실상 불가침영역으로 지정되었던 대륙 중앙 폭포란 데가 있단다.
거기 몬스터들은 지들끼리 지지고 볶는 건지 건드리지만 않으면 안 나와서, 모르는 척하고 살았는데.
거기에 딱 게이트가 떴다네?
[그들이 정세 변화에 휩쓸리는 한편, 양 제국의 눈이 닿지 않는 불가침영역에 강력한 게이트가 발생한다.
양 제국은 게이트를 피해 도망쳐 나오는 불가침영역의 몬스터들을 보고 이상함을 느껴 뒤늦게 조사단을 파견하지만, 조사단은 폭주한 게이트의 첫 희생양이 된다.
그리고 그들을 시작으로 이내 대륙인의 절반 이상이 게이트의 마물에 의해 사망한다.]
소예리 헌터가 전해준 멸망계시록의 내용은 이러했다.
요컨대 빨리 안 막으면 망한다는 소리다. 근데 하필 게이트가 열린 곳이 불가침영역이네?
페널티를 먹지 않기 위해서라도 절차를 밟아 처리해야 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일단 킨나 발탄한테 정식 서한을 보내 볼게요. 불가침영역에서 이상한 몬스터들이 나오는데 댁들도 그러냐고]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그렇다고 하면 바로 조사 시작하는 걸로 하고요]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대륙인의 절반이 죽을 정도라면 보통 기사들도 손쓸 수 없는 등급의 몬스터일 가능성이 큽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그럼 S라 치고, 거기에 히든루트 때문에 랭크가 하나 더 올라가니까, 실질적인 난이도는 최소 SS인 거죠?]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오]
그런데 저게 터……진……다……?
정말 멸망계시록대로 망할 수도 있었다.
최소 SS급 게이트에서 쏟아지는 몬스터 홍수라니 정말 끔찍하게 만나고 싶지 않았다.
킨나 달려! 회신 빨리! 답장 빨리! 망하고 싶지 않으면 빨리!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일단 편지는 보냈는데 답장이 언제 올지는 모르겠네요]
페널티만 아니었어도 쳐들어가서 멱살을 잡아 흔들었을 것이다. 이런 고상한 방식, 딜러와는 맞지 않아요!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지금까지 이 정도로 애타게 편지를 기다려본 적이 없었어]
그렇게 편지를 보내고 며칠.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잘 익은 게이트가 터질 때가 됐는데 ㅎㅎ]
내가 발광하기 직전, 킨나 발탄으로부터 회신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