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가문의 명예 : 13992(16▲)]
내가 앉은 자리에서 가문의 명예로 꿀을 빨고 있는 동안.
헌터채팅에 뜬금없는 말이 올라왔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여러분 펜팔 해봤어요?]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펜팔이요?]
여기서? 갑자기?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메일로 오는 질문에 답해본 적은 있어요]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그걸 답해줘요?]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
주이안 씨의 업무용 휴대폰이 미친 듯이 울리는 이유가 따로 있었단 말인가?
테이블 위에 넷의 핸드폰을 나란히 올려놓으면, 주이안 씨의 휴대폰만 진동이 미친 듯이 울려서 어디론가 질주한다는 건 이미 넷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근데 그게 사실 수많은 펜팔친구가 있어서?
주이안 씨 그런 인싸였어?
하긴, 메일이 온다고 씹을 사람은 아니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어쩐지 인터넷에 주이안 헌터님 메일주소가 돌아다니더라니]
뭐야, 진짜 해주는 거였어???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헐 뭐야 나도 메일보내면 해줘요?]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신유리 헌터님은 방문만 두드리셔도 됩니다]
“아.”
난 이마를 짚었다.
드디어 이 사람이 원거리 힐링스킬을 익혔단 말인가?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근데 펜팔은 왜요?]
그러게, 왜요? 난 채팅창에 집중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나 펜팔받았어용]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오]
여기서? 갑자기? 친구를?
하지만 소예리 헌터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정확히는 날아가던 전서구를 내가 잡았어~]
그건 그냥 쌔빈 거 아닌가요?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누군가의 꿈과 희망과 우정과 사랑을 잡으면 어떡해요]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동제국 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는데]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그건 잡아야지]
이 시국에 동제국 쪽으로 편지를 보내는 놈이 있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민간인의 편지일 가능성은 없나요?]
천사라 읽고 싶지만 호구가 맞는 것 같은 주이안 씨의 조심스러운 채팅이 올라왔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이 짭중세 배경에 민간인이 적대국가에 있는 사람이랑 편지를 주고받는 건 좀 어렵지 않을까요]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그건 그렇습니다만…….]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그래서 내가 열어봤는데]
남의 편지 막 열어봐도 돼?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일단 특수 잉크로 쓰여서 보통 사람 눈으론 못 읽는 편지더라고요]
수상함이 1 상승했습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그래도 감정 스킬로 보니까 보이길래 봤는데 글쎄~]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글쎄?]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받는 사람이 킨나 발탄이네~]
“뭐야?”
난 눈을 크게 떴다.
―쾅!
책상을 내리치는 바람에 집무실 밖에 있던 기사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주님?”
“아, 별일 아니야.”
사실 별일이다! 난 그들이 들어오는 걸 필사적으로 저지하면서 채팅에 집중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누구임???누가보냄???]
모두가 궁금했는지 내 채팅 뒤로 신재헌도, 주이안 씨도 말이 없었다.
그리고 짧은 침묵 후에 올라온 이름은.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리카스 포를랭?]
채팅창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아니 클래스마크가 구리다 싶었는데 뭔가 했지ㅋㅋㅋㅋㅋ]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그 집은 첩자에 약쟁이에 제대로 된 게 뭐냐]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나?]
내 말에 신재헌이 빠르게 태세를 전환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넌 그 집 애가 아니잖아]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우리 세니아 울어요]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아니 가문 나오셨잖아요]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넌 세대주 분리하면 가족이랑 의절이냐 이런 인정머리없는 새X]
“아.”
반말 해 버렸다.
게다가……, 너무 막말했나? 난 볼을 긁적였다.
아니, 근데 평소에도 이 정도는 하지 않았나? 다른 사람들 있는 데서 너무 욕했나?
원래 평소엔 우리가 어떻게 놀았지?
내가 묘한 이질감을 느낄 틈도 없이, 주이안 씨의 채팅이 올라왔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리카스 포를랭이 동제국의 첩자라는 말인가요?]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내용도 그래 보이고]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뭐라고 써있어요?]
나만 이상하게 느꼈나? 채팅은 평소처럼 잘 굴러가고 있었다.
내가 볼을 긁적일 때였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있어 보이는 말 잔뜩 써놨어 기다려봐]
곧 소예리 헌터의 채팅이 길게 올라왔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동제국의 하늘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본디 다른 자를 모신다 알려져 있는 제가 갑작스레 편지를 드리는 것이 의아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하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난 눈썹을 치켜올렸다.
리카스 포를랭.
저택에 있을 때도 그 B급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제 방에 처박혀서 나오지 않는 놈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동제국 첩자였다고?
“포를랭이 그렇게 잘난 가문이었나?”
리카스가 주워온 아들이란 소린 못 들어봤으니 동제국 측에서 리카스와 언젠가 접선이라도 한 모양인데.
서제국에 있는 가문이 얼마고 사람이 얼만데 굳이 포를랭 같은 작은 자작 가문에 첩자를 심는단 말인가?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하지만 세니아 드 포를랭이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가 된 이후 동제국에선 저와의 연락을 일방적으로 끊었고, 저는 이후 쓸데없는 패였습니다.]
“여기서 내가 왜 나와?”
난 눈을 깜빡였다.
내가 한국에선 일찌감치 이룬 입신양명의 꿈을 다시 이루고 있는 가운데, 소예리 헌터의 채팅이 더 올라왔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세니아 드 포를랭이 황성 기사단장으로서 유력한 인물이었으나 변수가 생겨 그랬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아하]
그니까 내가, 아니 세니아가 원래 독을 먹고 시한부 폐병에 걸리지 않았으면 차기 황성기사단장이 될 인재여서 미리 포를랭에 사람을 심어 놨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세니아의 가능성을 보고 미리 사람을 심어 놓은 거네요]
오……. 지금이야 황태자 파리스가 실종됐지만 리카스를 첩자로 포섭할 당시에는 파리스가 권좌에 오를 가능성이 높았다.
생각보다 머리가 굴……러……가나?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파리스가 심은것같진 않음]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나도]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저도 그렇습니다]
주이안 씨답지 않게 냉정한 평가가 나왔다.
그래, 그놈이 그런 머리가 있을 리 없다니까?
보나마나 지금은 아파서 엎어져 있다는 동제국 황제가 심지 않았을까?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하여 제게 작은 기회를 주시길 청합니다. 포를랭 자작은 마침 에델바이스에 저를 첩자로 보낼 생각을 하고 있으니, 그 아래에 있는 척하면서 더 큰 꿈을 꾸고 싶습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여길 온다고?]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에델바이스 백작가는 서제국에서도 게이트 방어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영지입니다. 게이트 관리법은 물론 에델바이스 백작에게 서제국의 3세력이 모두 관심을 보이는 이유까지 빠짐없이 찾아 보고드리겠습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그건 에델바이스령에 묻혀서 100년쯤 썩어도 모를 텐데]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채팅이라고…… 들어봤니? 은하서버는…… 들어봤고?
그거 모르면 우리가 왜 친한지는 정말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텐데……?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서제국의 중심이란 건 곧 서제국의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모쪼록 저를 쓸 만한 패로 써주신다면 에델바이스에 침투하여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보이겠습니다.]
요컨대 내 영지에 와서 게이트 관리법도 빼가면서, 내가 왜 교황, 황제, 마탑주한테 사랑받고 있는지 알아보겠다는 거지?
알아보고 여차하면 약점도 잡고?
이게 앙큼한 생각을 하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그거 그대로 주시면 반란죄로 잡아넣겠습니다]
신재헌이 바로 말했다.
“아니지, 아니지.”
하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특수 잉크로 쓰인 걸 감정 스킬로 봤으면 딴 사람 눈엔 내용이 안 보이는 거 아니에요?]
감정 스킬은 물건이 아니라 소예리 헌터님 눈에 거는 거니까.
그걸 신재헌이 모를 리가 없었다. 얘가 오늘따라 띨빵하네.
원래 이런 애였나?
다시 이질감을 느끼려는 사이.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저는 일단 그대로 보내주는 게 좋겠어요]
호구 주이안 씨가 어김없이 캐릭터성을 뽐내기 시작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저 빼도박도 못할 증거를??? 여기도 특수 잉크 보이게 하는 방법은 있지 않을까요?]
잉크만 딴 사람이 볼 수 있으면 잡아넣을 수 있는 거 아냐?
하지만 주이안 씨는 여전히 반대인 듯했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그야 그렇습니다만.]
……습니다만? 난 그의 이름을 호구로 바꿀 준비를 하면서 채팅창을 쳐다보았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그것 하나만으로 리카스 포를랭을 잡아넣기에는 증거가 다소 빈약한 것 같습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하긴 증거가 되긴 되는데 여론이 조작이라고 밀어붙이기 시작하면 좀 귀찮아질 것 같네요]
방금까지 잡아넣자던 놈이 뺐던 뇌를 다시 집어넣고 말하고 있었다.
원래 저런 오락가락하는 애였나?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차라리 편지가 몇 번 더 오가게 하죠. 증거나 내통 현장을 확실히 잡을 수 있게]
원래 저렇게 계획적이었나?
계획적……이었던 것도 같고? 난 눈썹을 치켜올렸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아하아하 인내심 있게 기다리자~?]
인내심이라니, 신재헌하고 안 어울리는 단어를 본 것 같다―
‘괜찮아.’
그렇게 생각하던 난 언젠가 들었던 그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신재헌이 인내심이…… 없던가?
‘버틸 수 있어.’
정말 없었던가?
C급이었을 때부터 저를 향한 모욕을 묵묵히 참고 견뎌온 그가, 정말 인내심이 없었을까?
‘와 씨, 이건 못 참지!’
‘부수자! 박살내자!’
같이 화날 땐 또 안 그랬던 것 같은데.
“…….”
난 신재헌이라는 이름을 빤히 바라보았다.
묘한 이질감이 점점 구체화되고 있었다. 그는 평소와 같았지만, 평소 같지 않았다.
아니, 내가…… 내가 이상했다.
그를 평소와 다르게 보고 있는 건 나였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좋아좋아 그럼 일단 가던 길로 보내주고!]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킨나한테서 답장이 오면 또 뺏어 보죠]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그거지!]
쿵짝이 잘 맞는 채팅을 보면서 난 볼을 긁적였다.
소예리 헌터가 깔깔 웃을 정도의 틈을 두고 채팅이 올라왔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내가 사랑의 메신저가 되어줄게~]
배신의 메신저 아닙니까?
황당해서 난 하던 생각도 까먹어 버렸다.
***
그렇게 며칠.
킨나의 답장을 기다리는 사이 신재헌이 리카스 포를랭에게 붙여 놓은 사람이 보고해 왔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뭉그적거리고는 있는데 곧 출발할 것 같다네요 에델바이스로]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손님 어서오고]
나한테 독 대신 엿 먹이러 오는 둘째 한지붕메이트를 반길 준비는 이미 완료되어 있었다.
처음엔 오자마자 쓱싹해줄까 생각도 해 봤지만, 나는 곧 이게 하늘이, 아니 시스템이 준 기회란 걸 깨달았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이놈 반역죄로 잡아넣으면 포를랭 자작가도 도매금 가능?]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에델바이스와 관련이 없다는 걸 확실히 한다면 그렇지 않을까요?]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그거 판단하는 게 접니다]
그러네?
그 말을 듣고 난 계획을 변경했다.
“와라, 리카스 포를랭!”
와서 킨나랑 펜팔친구 해! 반역죄 증거를 산처럼 쌓아줘!
포를랭 자작가 통째로 집어넣게!
쌈박한 반역죄 하나 안 저지르나 고민했던 과거가 무색하게 기회가 내게로 오고 있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어?]
그 사이에 문제만 생기지 않았으면, 잡아넣을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