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103)화 (103/218)

103화

[목각 인형을 구매하였습니다.]

[잔여 Coin : 45913]

남은 코인도 많겠다, 스킬도 하나 더 구매했다.

[은하 서버 스킬 열쇠를 사용합니다.]

[은하 서버에서 ‘헌터 신유리(S)’의 스킬 목록을 불러옵니다……]

뭐 나올까? 이왕이면 잔상이랑 쓸 만한 걸로―

[스킬 획득 : 순간가속(SS)]

“응?”

수우운간가속? 난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스킬을 꼬나보았다.

나쁜 스킬은 아니었다. SS급인 만큼 확실한 성능을 자랑했다.

[순간가속(SS)

- 몸의 기를 순간적으로 폭발시켜 행동속도를 극대화한다.

- 3초간 움직임 속도 2배, 스킬 사용 후 5초간 움직임 불가능]

문제는 저 뒤에 붙은 ‘5초간 움직임 불가능’이란 부분이었다.

저 2배 효과는 다른 버프 효과에도 적용된다.

다시 말해, 속도 50%짜리 버프를 받은 채로 저걸 쓰면 50%짜리 버프도 100%가 되는 개사기 스킬이라는 소리였다.

……딱 저 뒤의 5초 동안 굳는 것만 없으면.

“나쁘진 않은데.”

어차피 팀하고 같이 있을 땐 5초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자주 쓰던 스킬이긴 했다.

난 몸을 기울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튼 몸 좀 풀고 와야지.”

자고로 딜러란 움직이지 않으면 몸에 사리가 쌓이는 법.

휴가가 주어지면 우리 팀의 반응은 세 가지로 나뉘었다.

집에서 조용히 책 읽는 주이안파.

밖에 나가서 인싸 유행 즐긴다고 달고나커피인지 뭔지 별 이상한 거 다 만들어 보는 소예리파.

그리고.

쉬운 던전에서 스트레스 푸는 신재헌&신유리파.

[목각 인형을 사용합니다(변신 대상 :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

[지속시간 : 12시간]

“오.”

생각보다 지속시간이 길잖아?

목각 인형은 나무라고 주장하는 주제에 집무실에 연결된 내 간이 침실에 비척비척 들어가 퍼질러 자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나였다.

생각보다 성능 좋은데?

“좋아, 그럼.”

근처 숲에 마침 몬스터가 끓는다고 했다.

던전에 들어가는 건 헌터 채팅이 안 될 테니 위험.

이곳은 한국과는 달리 게이트 밖에도 몬스터가 있는 감사한 동네였기 때문에, 몸 풀기에는 문제가 없었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휴가에 하실 일 있으십니까?]

그때 주이안 씨 채팅이 올라왔다. 난 어깨를 으쓱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최고의 휴가는 몸풀기 아니겠습니까]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멀리 가?]

신재헌도 물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멀리 못감 내일부터 또 바빠요]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뭐가 그렇게 바쁜데~?]

뭐가 그렇게 바쁘냐고? 난 책상에 늘어져 있는 업무일정을 보다가 인자하게 웃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2일 기사단 선발식이랑 개편, 3일 미야 관련 회의, 5일에 게이트 관련 변경사항 없는지 6일까지 영지 싹 돌아보고 8일엔 마력석 협정]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그리고 당일 밤에 잠자는 대신 마법사들 영지 배치도 다시 한번 봐야 되고…… 더 해? 나 비참한데?]

내 채팅에 소예리 헌터가 즉답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내가 미안하다아아]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어떻게 된 백작님이 저보다 바쁘십니까]

그건 네가 허구한 날 황제 일 집어던지고 바깥으로 싸돌아다녀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아니 근데, 싸돌아다니면 일거리가 쌓여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저놈은 한가하고 나는?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혹시 아랫사람들 부려먹으세요?]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공무원 좋다는 게 뭐겠습니까]

그럼 그렇지! 저놈을 콱!

난 주먹을 꽉 쥐었다. 어쨌든 난 이 지옥의 일정이 돌아오기 전에 쉬어야 했다.

오늘은 10월 말일. 11월부터 지옥문이 열리니까 사흘 안에 놀 만큼 논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바빠도 몸 먼저 챙겨가면서 하세요.]

그때 주이안 씨의 힐링계 채팅이 올라왔다. 난 주식 하한가 친 소예리 헌터처럼 이마를 짚었다.

보고 싶습니다, 주이안 씨……★

―달칵.

난 창문을 슬쩍 열었다.

높은 건물도 아니고 꼴랑 4층짜리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건 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마침 밤.

[암순응(S) 활성화됩니다.]

[그림자 속의 무법자(S) 활성화됩니다.]

가끔 내가 암살자인지 딜러인지 헷갈릴 때가 있단 말이지.

아무튼 어둠 속이라면 난 얼마든지 기사들의 경계를 뚫고 숲으로 마실 나갈 수 있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여튼 저택 바로 옆 숲에서 잠깐 놀다가 올 거예요]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던전 들어가면 채팅 끊길 거라 심심하고]

그렇게 채팅하며 창문을 뛰어넘던 난 중요한 것을 말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맞다 나 천상의 견갑 먹었어요]

그게 뭔지 팀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이제 날아다니겠네~]

역시 내가 천상의 견갑을 제대로 쓰는 걸 본 사람들이라 반응이 달랐다.

하지만?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순간가속 스킬도 얻었고요]

그 다음 말에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가 주이안 씨가 조심스럽게 채팅을 올렸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스킬 사용에 유의하셔야 해요. 물론 자주 쓰시던 스킬이니 큰 문제는 없으시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니……]

내가 가진 잔상 같은 다른 스킬과는 다르게, 순간가속(SS)은 몸에 직접 영향을 주는 스킬이었다.

요컨대 주이안 헌터는 B급 몸으로 SS급 스킬 쓴다고 설치다가 죽지 말라는 소리를 예쁘게 하는 중이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안 쓰죠 당연히]

내가 B급이든 S급이든 원래 순간가속은 혼자 쓰는 스킬 아니다.

제가 돌았습니까? 전장 한가운데에서 3초 설치고 5초 멍하니 있게?

주이안 씨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정도의 틈을 두고 채팅이 다시 돌아왔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 씨)>>> 그래도 조심하세요. 히든루트가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아직 알지 못하니.]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맞아요 온갖 핑계 다 대서 서제국 조사해 봐도 이상한 게 보이진 않았거든요]

그들이 걱정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무려 L급 던전의 히든 루트라니.

심지어 어떻게 적용되어 뭐가 어려워졌는지도 나오지 않았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몬스터에는 변화 없었죠?]

난 혹시나 해서 물었다. 일단 내가 조사해보기엔 그랬는데.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넵넵 전국적으로 몬스터 난이도에는 문제가 없었어요]

그럼 저택 근처 숲의 E급 몬스터들도 그대로라는 의미였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좋아요 그럼 빠르게 몸만 풀고 올게]

***

숲에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다.

“역시 가볍게 몸 풀어주는 게 필요하다니까.”

사람들이 오해하는 게 있다.

S급은 무조건 강한 몬스터 잡는 것만 좋아한다고.

물론 강한 것에 대한 호승심이 본능적으로 드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도 취향을 탔다.

나도 강한 놈을 공략하면 쾌감(과 보상)이 끝내주니 좋아하지만, 쉬운 애들을 가끔 숭덩숭덩 썰어주는 것도 또 다른 재미였다.

인생 쉽게 풀리는 것 없는데, 던전에서라도 몇 번 좀 쉽게 풀려야 살맛이 나지 않겠는가?

“이런 걸 뭐라고 했더라.”

[매크로 ‘지금몬스터날아오는데그게문제냐(C)’를 사용합니다.]

[잔상(SS+) - 잔상(SS+) 스킬을 사용합니다.]

난 매크로 이름을 애써 무시하며 주이안 씨의 말을 떠올렸다.

‘난제도 좋지만, 쉬고 싶을 땐 가벼운 공부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죠.’

공……부가……좋아……?

난 평생 힐러 뇌는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스릉!

내 앞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몬스터가 옆으로 쓰러졌다.

풀썩 소리와 함께 숲이 고요해졌다.

“흐음.”

난 그 꼴을 보다가 볼을 긁적였다.

“원래 이렇게 적었나?”

아니면 내가 다 쓸어버려서?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여기 오자마자 잡기 시작한 건, 자세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불과 수십 마리에 불과했다.

그리고 여긴 몬스터 ‘지타라’의 군락이라고도 불리는 숲이었다.

번식력이 뛰어난 데다 호전적이라, 주기적으로 쓸어줘야 하는 몬스터.

근데 몇십 마리 잡았다고 없어져?

이렇게 씻은 듯이?

“……?”

난 눈을 가늘게 떴다.

기묘한 느낌이 몸을 자극해 왔다.

지타라 군락인데 지타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몬스터나 동물의 기척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풀벌레 소리 하나 나지 않는 숲 안.

“음.”

기분 탓인가?

……라는 생각이 들면 보통 그냥 넘기기 마련이지만, 여긴 L급 던전이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나 느낌이 묘해요]

오버하는 꼴이 되더라도 상황이 수상하면 바로 채팅에 공유하는 게 낫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아니 여기 숲 안쪽이거든요? 근데 동물도 없고 몬스터들 좋다고 몰려들 땐 언제더니 갑자기 싹 사라졌어요]

누가 봐도 플래그 아니냐?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이거 보통 무]

……슨 일 생기기 직전에 이러지 않아?

그렇게 채팅을 마저 할 틈은 없었다.

―쌔액!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챙!

[지나치게 강한 힘을 받아 잔상(SS+)효과가 해제됩니다.]

[지나치게 강한 힘을 받아 잔상(SS+)효과가 해제됩니다.]

[지나치게 강한 힘을 받아 잔상(SS+)효과가 해제됩니다.]

……

본능적으로 막은 검의 주인은 검은 머리였다.

그놈이었다. 저택에서 스치듯 봤던 놈.

그 증거로 머리 위에는 헌터 등급이 뜨지 않았다.

“!”

놈은 빠른 속도로 내게 쇄도해왔다.

그리고 눈앞에 시스템창이 떴다.

[L급 히든 루트 ‘에페’와 마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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