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99)화 (99/218)

99화

“예하. 피곤하시다면 잠시 쉬었다 갈까요?”

―덜컹.

마차가 흔들렸다. 주이안은 그 덕에 뒤늦게 성기사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정확히는 지금까진 듣고도 저도 모르게 흘린 것에 가까웠다.

생각에 잠겨서.

“……괜찮습니다. 신전으로 어서 돌아가죠.”

S급이 이런 여행으로 지칠 리가 없다.

하지만 그걸 알 리 없는 성기사들은 교황이 걱정되는 듯했다. 그럴 법도 했다.

벌써 몇 시간째 생각에 잠겨 있는 건지.

“후.”

그가 짧게 숨을 내뱉었다. 눈을 감았다 뜬 그는 흐린 시야에 눈을 가늘게 좁혔다.

“근심이 있으십니까?”

결국 마차 옆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온 성기사단장이 물었다. 주이안은 그를 올려다보았다.

근심……은 맞지만 성기사단장은 절대 해결해줄 수 없는 것이었다.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그렇기에 주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창문을 가리는 블라인드를 내려 버렸다.

그러고는 아까부터 보고 있던 것에 집중했다.

시야 한구석에 남아 있는 헌터 채팅창.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헌터님)>>> 와 설렌다;]

한참 전의 채팅인데도 그는 거기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 뒤로 올라온 채팅들이 있는데도 기어이 채팅 기록 올려 다시 그 채팅을 보고 있었다.

“…….”

저 채팅이 올라오는 순간, 그 미묘한 침묵이 생겼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어서.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저 말에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멈칫했으리라고.

……신재헌 헌터도, 멈칫했으리라고.

그 뒤로 주이안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신전의 일로, 텐치아 백작의 일로 북쪽에 왔는데도 그랬다.

이것도 결국 신유리 헌터님이 신경 쓰여서 하는 일이잖아.

그 사실이 너무 확실해져 버려서.

‘이렇게 직접 와주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급히 달려온 듯한 텐치아 백작은 당황한 것 같았다.

‘라엘라는 저도 신경 쓰고 있던 곳이라서요. 좋은 분이 이곳을 관리하시게 되어 기쁩니다.’

그런 그에게 습관적인 미소로 응수했다. 그러면서 문득 제 미소에 이질감을 느꼈다.

팀 앞에서 짓던 자연스러운 미소가 아닌, 억지 미소라는 것이 너무 선명하게 드러나 버려서.

입꼬리가 아픈 것 같았다.

‘하긴, 이곳의 게이트들은 사고가 많았으니까요.’

텐치아 백작은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백작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어요.

주이안은 그렇게 말할 뻔했다.

그에게 늘 달콤한 속삭임을 주는 악마는 그의 안에서 웃고 있었다.

넌 백작이 신유리 헌터님을 신경 쓰실 것 같으니까 이곳에 온 거잖아.

다시는 동쪽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려고.

하지만 주이안은 그 말을 당연히 하지 않았다.

텐치아 백작은 미야에서 축하 연회가 있는데도 교황이 온다는 소식에 급하게 라엘라로 달려왔다고 했다.

제국 세력의 한 축이 직접 움직인다는데, 영주가 없으면 곤란할 테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

그 사실을 새삼 생각한 주이안이 입을 일자로 굳게 다물었다.

원래 그라면 괜찮다며 그를 돌려보냈을 것이다.

신전 건축에 관한 건이야 사람을 보내 허가를 받으면 그만이었으니까.

굳이 연회의 주인공을 빼내 올 만큼 급한 일도 아니었으니, 이런 폐를 끼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

하지만 주이안은 침묵했다.

그래서 텐치아 백작은 달려왔고, 덕분에 미야는 주인공 없는 파티를 했을 것이다.

주이안은 웃기게도 그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유치하게도 좋았다.

신유리 헌터님이 그자에게 한 번이라도 더 눈길을 주지 않게 된다는 것이.

그렇게라도.

“……그렇게라도, 떨어뜨려 두고 싶었다면.”

당신의 시선을 한 번이라도 더 뺏지 않게 하려고 이랬다면.

유치하다고 할 건가요, 신유리 헌터님?

그는 닿을 리 없는 질문을 뇌까렸다.

유치한 걸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고요하게 타올랐던 불꽃이 점점 커져 그를 감싸고 있었다.

마음이 속에서부터 달아오르다 못해 끓어오르고 있는 걸 모르고 있다가, 이제야 알았다.

그는 신유리가 좋았다.

그래서 미칠 것 같았다.

차라리 모를 것을.

그저 달아오르기만 할 것을.

그곳에서 멈출 것을.

유독 뜨거운 마음이 의아해 들춰본 마음 한 겹 아래에는 추악한 본심이 있었다.

나를 봐줘요.

다른 사람보다 한 번 더 나를 봐줘요.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 ……신재헌 헌터님도 함께 계셨습니까?]

특히, 소예리 헌터를 지키는 자리에 신재헌 헌터가 같이 있었다는 걸 알면서부터 더욱 그랬다.

신재헌 헌터는 물론 소예리 헌터를 지키러 갔을 것이다.

주이안 자신도 대기도만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신재헌 헌터가 정말, 오로지 소예리 헌터 때문에 그 자리에 갔다면 헌터 채팅에 말하지 않았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신재헌 헌터는 금방 동쪽 산맥에서 황성으로 귀환해 제대로 쉬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 상태로 달려간 건, 신유리 헌터를 의식해서였을 것이다.

“…….”

그 사실을 생각하니 주이안은 새삼 속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당황스럽게도 그랬다.

한번 눈이 마주친 추악한 속마음은 그를 한시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서브 퀘스트 : 교황의 사색

- 클리어 조건 : ???]

[보상 : 스킬 ‘죽음의 고통(SS)’]

주이안은 시스템창 구석에서 고요하게 반짝이는 서브 퀘스트를 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여전히 클리어 조건이 제대로 뜨지 않는 퀘스트였다.

그 사이 그의 안에 있는 악마가 더욱 달콤하게 속삭여 왔다.

‘그냥 신유리 헌터님께, 마음을 고백해 버리자.’

안 돼.

주이안은 입 안이 바싹 마르는 것 같았다.

그 역시 신유리가 가장 아끼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처럼, 팀의 모두가 변함없이 함께하기를 원했다. 큰 균열 없이.

물론 그녀가 작은 균열 하나 없길 기대하는 이상주의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복잡한 감정 문제가 생기기 전에는 반드시 풀기를 원했다.

‘사람이 다 싸우면서 지내는 거지!’

그녀가 열심히 중재한 덕인지, 그렇게 말하는 게 습관인 그녀의 말이 무색하게도 팀에는 큰 싸움 한번 없었다.

큰 파문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신재헌 헌터 자신이 본격적으로 서로를 보기 시작한다면.

신유리 헌터님을 두고 감정싸움을 시작한다면.

소외된다고 느낄지도 모를 소예리 헌터님은 물론이고 그 가운데에 있는 신유리 헌터님까지 곤란해질 터였다.

그리고 그건 신유리 헌터님이 가장 원치 않는 것.

제 손으로 파문을 만들 순 없었다. 그녀의 행복을 망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알면서도 조바심이 났다.

주이안은 마른 입술을 간신히 열어, 작은 목소리로 한 마디를 뱉어냈다.

“……신재헌.”

느릿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마차 안을 울렸다.

새삼스럽게 뇌까리는 이름이다.

익숙한 이름인데도 이렇게나 낯설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신유리 헌터님과는 소꿉친구 사이.

게이트가 터진 후 신재헌 헌터와 신유리 헌터님은 서로에게 기대어 지내 왔다.

……헌터팀이 생기기 전까지는.

“…….”

주이안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기에 신유리 헌터님은 모르시는 것 같다.

신재헌 헌터는 알아챈 것 같은데, 신유리 헌터님은 모르는 것 같다.

하지만 이쪽은 지켜보고 있으니 너무나도 잘 보였다.

긴 시간 지켜보고만 있었기에 작은 변화도 알 수밖에 없었다.

신유리 헌터님은 아직 신재헌 헌터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그저 친구.”

그가 뇌까렸다. 그래, 그저 친구.

그러니 한 발짝만 더 다가간다면.

‘그보다 빨리 마음을 고백해 버린다면. 어쩌면.’

그 시선을 내게 주시지 않을까?

주이안은 악마의 속삭임에 고개를 저었다.

아닐걸.

고백하는 순간부터 팀에는 파문이 일 텐데, 신유리 헌터님이 그 파문을 파도로 만들려고 하실까?

아닐 것이다.

그가 쓰게 웃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가 새하얀 손끝으로 창문을 톡 건드려 보았다.

차가운 창문을 건드려도 한 가지 생각에 골몰한 머릿속은 다른 것을 생각하려 들지 않았다.

언제부터였을까요, 내가 당신 옆모습만 바라본 게.

옆모습……. 그래요, 옆모습만.

“…….”

그가 입술을 깨물었다.

신유리 자신조차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늘 그에게는 옆모습만을 보여주었다.

아주 가끔, 주이안 자신이 애달아 미칠 것 같으면 그때는 이곳을 바라보고 웃어 주었다.

목말라 죽기 전에 입가에 닿는 감로수 같은 시선이 그를 더욱 미치게 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도 모르고 웃어 주었다.

‘주이안 씨.’

그렇게 말하면서.

“그게 아닌데.”

아니란 걸 안다.

제 뒤틀린 착각이란 걸 알면서도 그렇게 생각이 됐다.

그녀의 옆모습을 볼 땐 세상이 지겹도록 느리게 갔다. 그러다가 그 시선이 제게 닿으면, 그 순간은 너무나도 찰나처럼 지나가 버렸다.

분명 제게도 충분히 같은 시간이 주어졌는데도.

신유리, 그녀가 잔인할 정도로 공평한 사람이란 걸 알면서도 그랬다.

당신은 왜 늘 다른 곳으로 시선을 주고 있죠?

“…….”

그가 눈을 천천히 감았다. 그녀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이럴 때마다 비참하게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그녀의 옆모습이었다.

돌아봐주실 수는 없는 걸까.

이렇게 눈을 감으면 당신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이 떠오를 만큼만.

그 정도만…… 내가 시선에 길들여질 정도로만, 가끔. 아니, 자주. 보다 많이.

“……예하?”

그때 밖에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주이안이 눈을 떴다.

“예하, 괜찮으십니까?”

“무슨 일이죠?”

성기사는 그를 몇 번이고 부른 듯했다.

그의 목소리가 멀쩡하게 들리자 성기사는 한숨을 돌릴 정도의 시간을 두고 답했다.

“그게……, 손님이 왔습니다.”

길 가는 마차에 손님이 온다고?

주이안이 블라인드를 올리고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그리고 의외의 인물과 눈이 마주쳤다.

“마탑주 클로나 에이센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소예리…… 헌터님?

그가 눈을 깜빡이자 소예리 헌터가 부드럽게 웃는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뵐 생각은 없었는데요……, 잠깐 신세질 수 있을까요? 이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그녀는 제가 타고 온 백마를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와는 달리 말은 쌩쌩해 보였다. 하지만 주이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시지요. 마탑으로 향하신다면 방향이 다르지는 않으니.”

“마탑은 아니고 에델바이스 영지 외곽인데, 괜찮을까요? 요즘 연구 중이거든요.”

아시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소예리 헌터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주이안도 채팅을 봤으니 당연히 알았다.

그녀가 에델바이스 영지에서 발견된 마력석 광산을 연구한다는 것을.

그걸 알면서도.

……에델바이스.

그 말에 멈칫하는 자신을 막을 수가 없었다.

덕분에 그는 한 박자 늦게 답했다.

“그쪽도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신성 예하.”

소예리 헌터의 얼굴에 즐거운 미소가 떠올랐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