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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98)화 (98/218)

98화

그 시각.

신유리가 찾는(?) 텐치아 백작은 뜻밖의 인물을 배웅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배웅한 지 꽤 됐다. 그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얼마 전엔 폐하께서 불러 치하하시더니…….”

꿈인가? 아니면 어떻게 이런 일이 연달아 생길 수 있지?

그는 조금 전까지 옆에 있던 교황의 온화한 미소를 잊을 수가 없었다.

‘이제 북쪽에 텐치아 백작이 오셨으니, 고통받는 사람들이 줄어들겠군요.’

그렇게 말한 교황은 무려 직접 와서 명령했다.

‘이 평원이 좋겠어요. 새로운 신전을 짓는 데에는…….’

그 말의 파급력은 대단했다.

‘준비할까요?’

‘영주님께서 넓은 자비로 허락해주신다면요.’

그렇게 고위사제와 교황이 함께 바라보는데 거기서 거절할 수 있는 영주가 얼마나 될까?

아니, 애초에 영지에 신전을 세워준다는데 거절하는 멍청이가 어디 있겠는가?

‘물, 물론입니다!’

그리고 신전의 일 처리는 얼마나 빠른지, 벌써 신전 도안을 작성하느라 신전 측 사람들과 그 부하들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이미 교황의 축복이 내려진 땅 위에.

‘신성 예하?’

처음 그가 라엘라 평원에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거짓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신시안 중앙 신전에서 마차가 출발했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그의 마음은 급해졌다.

‘미야에는 이야기를 잘 전해 드려! 교황님을 잠시 뵙고 와야겠다고!’

무려 신이 돌보는 귀한 손님이다.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자였다.

그랬기에 그는 텐치아의 번영을 빌어주는 미야의 연회도 마다하고 이곳으로 따라왔다.

‘뭐? 라엘라에 새로운 신전이?’

‘거기 이미 신전 있잖아?’

‘무려 교황께서 직접 걸음하시어 축복까지 내려주셨다고 하더군.’

당연히 주변 귀족들의 시선은 텐치아 백작에게 쫙 쏠렸다.

그 덕에 그의 영지는 에델바이스 영지 다음으로 붐비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드디어 업무 끝인가!”

엄청난 집중력으로 책상에 쌓인 업무를 끝내 버린 텐치아 백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순간이었다.

―달칵.

조심스럽게 열린 문틈으로 산더미 같은 서류를 가지고 온 집사가 보였다.

“…….”

“…….”

텐치아 백작은 울고 싶은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집사는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새로운 영지를 관리하게 되신 만큼 보실 것이 많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어쩔 수 없지. 라엘라 영지는 그만큼 광활하고 관리할 것이 많은 곳이었다.

“그래도 경하드립니다!”

집사는 힘들지만 뿌듯하다는 표정이었다.

그야 당연했다.

제가 모시는 주인이 황제에게 치하를 받아, 당대 제국의 실세가 갖는다는 라엘라 평원을 쥐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교황까지 그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가문의 세가 펼 일만 남은 것이다.

“고맙다.”

텐치아 백작은 결국 자리에 앉아 서류를 받아들며 중얼거렸다.

반쯤 혼이 나간 목소리였다.

[이전 주 게이트 방어율 : 39%

금주 게이트 방어율 : 78%]

물론 그가 혼이 나가게 일한 결과는 확실했다.

‘과연 황제 폐하의 눈은 틀리지 않으셨소!’

북쪽 사교계도 뒤집어졌다고 하지만 텐치아 백작은 제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었다.

‘과연 텐치아 백작!’

‘젊은 신예!’

‘북쪽 사교계의 희망!’

사람들이 제 이름을 부르며 건배하는 사이에도 텐치아 백작은 그 사교계 자리에 낄 수가 없었다.

왜?

“이것까지만 오늘 처리하시면 급한 일은 다 끝납니다.”

―퉁.

묵직한 서류 뭉치가 그의 시야를 가렸다.

왜긴, 엄청나게 바쁘니까!

텐치아 백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러자 서류를 내려놓은 집사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쌓인 서류 뭉치를 보면서 텐치아 백작이 뇌까렸다.

“……이게 급한 일이란 말이지?”

그럼 안 급한 일은 또 잔뜩 있다는 소리네?

“허허헛.”

그는 저도 모르게 바이야 백작처럼 웃어 버렸다.

“허허허헛!”

그는 울고 싶었다.

에델바이스 경……!

그의 아련한 시선이 남서쪽으로 향했다.

지금쯤 에델바이스 백작은 제국 동쪽에서 반짝이는 눈으로 영지를 살피고 계실 것이다.

“주인님. 이 안건만큼은 빨리 처리해 주셔야 기사단이 움직일 수 있습니다만…….”

집사는 그런 그에게 자유를 주지 않았다.

“그래……. 해야지…….”

텐치아 백작은 촉촉한 눈으로 서류에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그 뒤로도 업무는, 에델바이스 경이고 뭐고 생각할 틈도 없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

미야의 파티 아닌 파티는 거의 끝나 갔다.

“예상보다 늦으시는군요.”

그리고 그 파티가 끝날 때까지 텐치아 백작은 오지 않았다.

“라엘라의 상태가 심각하긴 했으니까요.”

내 말을 받은 건 다른 귀족이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급히 가셨다면서요?”

라엘라에 무슨 일 터졌나?

그래도 텐치아 백작의 능력이라면 능히 막을 수 있을 터였다.

“텐치아 백작을 축하하러 온 건데 주인공을 못 보고 갈 줄은…….”

정말 주인공 없는 파티를 하게 될 줄이야.

갑자기 신재헌 생일 생각나네.

[11/19일입니다. (한국 시간 기준)]

그의 생일날.

그의 생일로 날짜가 바뀌자마자 벼락같이 축하했었다.

[신유리>>> 생일축하한다 신재헌]

[예리언님>>> 신재헌터님 생일축하해요! 오늘 내가 맛있는 거 쏜다!]

[신유리>>> 맛있는 거 맨날 먹고 다니는데 뭘 쏴요]

[예리언님>>> 그래서 신재헌 헌터님이 좋아하는 프랑스산 와인 미리 주문해놨는데~]

[신유리>>> 헐 대박 구하기도 힘든 거잖아]

[주이안 씨>>> 늘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재헌 헌터님. 생일 축하드려요]

[신유리>>> 태어나줘서 고맙고 같이 있어 줘서 진짜 고맙다]

[…….]

그런데 우리가 한참 축하할 동안 정작 주인공은 말이 없었다.

뭐지? 자나?

자정에 자는 놈이 아닌데? 수상하게 생각했던 난 뒤늦게 문제점을 알아차렸다.

[은하 서버 채팅방 ‘우리팀(방장:신유리)

- 참가 인원 : 나(방장), 헌터 주이안(주이안씨), 헌터 소예리(예리언님)]

어젯밤에 장난친다고 퇴장시켜놓고 초대하는 거 까먹었잖아!

[헌터 신유리(방장)가 신재헌놈을 초대하였습니다.]

[신유리>>> 님들아신재헌없었음]

[신재헌놈>>> ?]

우린 그날 일은 신재헌에게 영원히 비밀로 묻기로 암묵적인 약속을 맺었다.

그리고 다시 생일축하를 해 주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신재헌놈>>> 이 사람들 수상한데]

눈치는 빨라가지고!

아무튼 그날이 떠올랐다.

신재헌 없는 신재헌 생일축하……. 텐치아 백작 없는 텐치아 백작 축하…….

“어쩔 수 없죠. 파티야 뭐, 언제든 또 할 수 있으니까.”

난 아쉬워하는 미야 사람들에게 시원하게 웃어 주었다.

반년 내로만 부르렴^^!

그럼 갈 수 있다!

“내 꼭 다음엔 더 성대한 연회를 열겠소이다!”

바이야 백작은 아쉬운 듯이 외쳤다.

왜 나랑 텐치아 백작이 못 만난 걸 나보다 더 아쉬워하는 것 같지?

그의 아쉬워 죽어가는 표정을 보면 이 연회에 텐치아 백작과 나를 엮으려는 계략(?)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차라리 그가 안 온 게 다행일지도 몰랐다.

“그럼 마탑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소이다.”

바이야 백작이 소예리 헌터에게 짧게 묵례해 보였다.

그러자 소예리 헌터가 예쁘게 웃었다.

“물론이죠. 한때 사이가 안 좋았다고 해도 제국의 안전을 위한다는 목적은 같으니까요.”

그녀의 가벼운 답에 귀족들의 표정은 조금 더 풀린 눈치였다.

그들은 특히 내게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숙여 보였다.

“에델바이스 백작께서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탑주님과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도 에델바이스 백작께서 중재해주신 덕이 아닙니까.”

“마탑주님께서 흔쾌히 와주신 덕이기도 하죠.”

‘네가 잘했어요-아니에요, 네가 더 잘했어요.’가 탁구공처럼 오가는 사이 소예리 헌터는 따라온 마법사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미야와 협의한 대로 마탑의 인력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공격마법사들이 많이 온다니 게이트 내부의 일도 수월해지겠습니다.”

미야의 귀족 중 하나가 말했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하는 기색인 걸 보니 감동스러웠다.

그래, 파티플이 이런 거란다!

시작이 좋았다.

난 그들이 훈훈하게 서로의 공을 치하하는 사이 시스템창을 살폈다.

[현재 공략 중인 게이트 : 2개]

[공략 완료 게이트 : 41개

현재 오픈된 게이트 관리도 : 98%]

[***게이트 관리도를 95% 이상으로 유지 시 보상(처리한 게이트당 500C)이 지급됩니다.]

기사단을 보내면서 떴던 영지 관리 서브 퀘스트였다.

게이트가 43개였는데 개당 500코인이라니, 그럼 벌써 21500코인이다.

[Coin : 46824]

여기에 21500코인 합치면 근 7만 코인이다.

[은하 서버 스킬 열쇠 – 30000C]

곧 쇼핑을 해야 할 듯했다. 또 암순응이나 그림자 속의 무법자 같은 거 뜨는 거 아니겠지?

아니, 이번엔 인벤토리를 가져와 볼까? B급 상위 상태라 어지간한 아이템은 될 것 같은데.

난 살짝 고개를 기울인 채 채팅을 올렸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제 영지 게이트는 거의 다 처리돼가요]

그 사이 사람들은 슬슬 자리를 파하는 분위기였다.

“그럼 다음에 또 봅시다.”

“내가 다음엔 더욱! 더! 성대한 연회를 열 테니 꼭 와주시게!”

“그땐 대련도!”

“좋소!”

“옳소!”

아무래도 바이야 백작의 열정바이러스가 미야에 번지는 듯했다.

내게도 번지기 전에 재빨리 마차에 올라탔다.

“그럼 다음에 또 뵙죠!”

“살펴 가십시오!”

미야의 귀족들이 나를 배웅해주었다. 그리고 배웅해주는 사람 사이에는 소예리 헌터도 있었다.

“저는 연구지로 가야 해서. 곧 뵈어요, 백작님.”

클로나 에이센 버전으로 부드럽게 말한 그녀가 웃어 보였다.

그녀의 연구지인 마력석 광산이 같은 에델바이스 영지라고 해도 우린 같이 갈 수 없었다.

광산이 영지 구석이라 오히려 길을 빙 돌아가는 꼴이기 때문이었다.

“네!”

내가 힘차게 손을 흔들며 마차 문을 닫았다. 그러면서 헌터 채팅을 마저 올렸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이제 우리가 넘긴 게이트 저쪽에서 처리하는 거 기다렸다가, 이쪽으로 다시 넘어오면]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홀드해뒀다가 한 번에 싹 넘기면 될 듯!]

아이, 깔끔하다! 난 시원하게 웃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마탑에서 다시 한번 연락 보내두라고 할게요~]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신재헌 헌터님, 목록에 변경 없죠~?]

마탑에서 불새로 연락을 보내야 하는 주요 영지 목록은 당연히 신재헌이 넘겨 두었다.

마탑이나 신전이 아무리 기세가 좋아도 황가보다 각 영지를 잘 파악하고 있진 않을 테니까.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네 없습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쪼아쪼아 그럼 유리헌터 또 봬요!]

“휴.”

난 움직이기 시작하는 마차 안에서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김치! 김치를 달라! 두유노김치 미스터바이야?]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실 줄이야. 정말 거듭 감동했답니다.’

정말 살벌할 정도로 겉과 속이 다른 토크였다.

지켜보는 내가 페널티 먹는 줄 알았다. 어휴.

***

신유리가 그렇게 마차를 타고 가는 사이.

소예리는 바이야 백작이 내어준 말을 타고 따로 광산으로 향했다.

“모처럼 하는 승마도 기분 좋단 말이야.”

RP던전 배경이 이런 덕에 취미인 승마를 즐길 수 있는 건 정말 좋았다.

채팅밖에 안 된다는 게 좀 불편하긴 하지만.

“좀만 달리다 날아서 가야지.”

이랴! 그녀가 시원하게 말을 타고 바람을 가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어?”

그녀는 의외의 일행과 조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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