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주이안 씨가 있는 신전.
“무기는 내려두고 들어가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성기사들은 예상대로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원래도 신전에 무기를 들고 들어갈 순 없었지만 좀 더 까다롭게 보는 게 느껴졌다.
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어차피 내가 쓰는 ‘수룡의 가시비늘(B)’은 인벤토리에 잠들어 있고 허리춤에 찬 검은 그냥 장식이었으니 상관없었다.
“그리고 호위 인력은……, 바깥에서 대기해주시겠습니까? 에델바이스 백작님의 안전은 저희 성기사단에서 책임지겠습니다.”
달라진 건 이거였다. 우리 가문의 기사들이 날 돌아보는 게 보였다.
“그렇게 하죠.”
난 그들에게 괜찮다는 뜻으로 손짓한 후 말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성기사는 그제야 조금 표정을 펴고 고개를 숙였다.
“신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렇게 신전 안으로 들어서니 숨통이 좀 트이는 듯했다.
바깥에서는 외부인을 보는 성기사들의 시선이 너무 따가웠던 탓이었다.
“확실히 긴장하고는 있네.”
“진작 긴장했어야지.”
주머니에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려다보니 내 24시간 한정 키링 신재헌이 눈살을 찌푸린 채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주머니 난간(?)에 두 손을 걸친 채 빼꼼 고개를 내민 그의 모습을 보니 황당하게도 웃음이 나왔다.
“야, 사람 와. 들어가.”
난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신재헌이 뭐라고 투덜거리면서 다시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는 사이 대사제가 다가왔다. 지난번에도 본 적 있는 사람이었다.
“예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런 시기에 찾아뵙게 되어 죄송스럽네요.”
내 말에 대사제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모든 것이 신시안 님의 뜻인 것을요.”
그러고는 나를 주이안 씨가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곧 도착]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기다리고 있어요.]
채팅에서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내가 소리 없이 웃는 사이 주이안 씨의 방이 보였다.
그 앞은 성기사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었다.
“오.”
살벌한 분위기에 내가 짧게 감탄하자, 대사제가 미안하다는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신전 사정으로 경계가 강화되었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아, 물론이죠.”
대사제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해주는 내게 감사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아마 이쪽도 좀 곤란했을 터다.
신재헌이 추적 스킬로 범인의 뒤를 추적하려면 당연히 주이안 씨가 독을 먹은 자리에서 스킬을 사용해야 했다.
그런데 신전에서는 교황이 독에 당했던 방을 그대로 사용하겠다고 하니 기겁했을 테고.
그 절충안이 바로 저 삼엄하게 눈을 번뜩이는 성기사들인 듯했다.
“예하, 에델바이스 백작이 도착했습니다.”
“들어오시라 하세요.”
주이안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달칵, 문이 열리자 보이는 건 우리를 맞이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주이안 씨였다.
평소 공식적인 자리에서 입고 있던 화려한 옷이 아니라, 금색 자수가 놓인 가벼운 셔츠 차림에 역시 가벼운 겉옷을 걸친 채였다.
“어서 오세요, 에델바이스 백작.”
“신성 예하를 뵙습니다.”
늘 생각하지만 아는 얼굴 앞에 두고 오글거리는 의례적인 인사를 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신전이 조금 어수선하죠?”
그가 묻는 말에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올라오는 길에 본 성기사들의 기개가 대단하던데요.”
“그랬나요?”
주이안 씨가 온화하게 웃었다.
흘끗 돌아보니 대사제 뒤에 서 있던 성기사들의 고개가 빳빳하게 들린 게 보였다.
아무래도 내 사탕발림을 들은 게 분명했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입에 발린 말을 잘하게 됐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쪽으로…….”
주이안 씨가 내게 손짓하자 대사제와 그 뒤에 있던 성기사들이 줄줄이 따라 들어오는 게 보였다.
“이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에델바이스 백작은 신의 뜻을 아시는 분이시니.”
한마디로 나가란 소리였다.
그 고운 축객령에 대사제는 곤란한 얼굴로 성기사들과 시선을 마주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숙이고는 물러갔다.
“그럼 물러가 보겠습니다.”
―달칵.
문이 닫히고 나서야 난 한숨을 내쉬었다.
그제야 주이안 씨의 표정도 풀렸다.
모든 사람을 친절하게 대한다고 소문나 있는 주이안 씨였지만, 우리를 보고 웃는 미소는 느낌부터 달랐다.
“후우.”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웃는 모습은 이제야 익숙한 그의 웃음이었다.
“새삼 주이안 씨가 교황 쪽이라 다행이에요.”
“네?”
주이안 씨가 고개를 기울였다.
더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듯 시선은 이쪽으로 향한 채였다.
과연 힐링계 얼굴이었다.
얼굴만으로 힐하는 사람이니 시스템도 당연히 대가리가 있다면 그를 교황에 꽂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약에 교황에 신재헌이 꽂혔다고 생각해 보세요.”
신전에서 욕 박는 교황이라니, 눈 떴다 하면 페널티 위기에 난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무슨 뜻이죠, 그거?”
그때 주머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주이안 씨가 작게 웃음을 터뜨리는 사이, 난 주머니에서 신재헌을 꺼냈다.
내 손에 대롱대롱 매달린 신재헌은 테이블 위에 내려놓아지자마자 눈썹을 치켜올렸다.
“내가 교황 됐으면 뭐가 어쨌을 거라고요?”
“우리 RP 망했을 거란 뜻이죠.”
우리가 이글이글 시선을 마주칠 때였다.
주이안 씨가 신재헌의 눈을 가리며 우리 사이의 시선을 차단해 버렸다.
“와줘서 고마워요, 두 분 다.”
그제야 우린 서로에게서 시선을 뗐다.
신재헌도 장난스러운 표정을 감추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주이안 헌터가 독 먹은 데가 여깁니까?”
그 말에 주이안 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여기가 아니고,”
그러면서 주이안 씨는 나처럼 그의 몸을 덥석 집어 올리는 대신, 신재헌 앞에 손을 내밀었다.
신재헌은 그의 손에 아담하게 담기러 가는 주제에 고개를 쳐들고 나를 돌아보았다.
“이게 매너라는 거예요, 신유리 헌터.”
“예이. 이따가는 두 손으로 옮겨드리겠습니다아.”
어림도 없지!
난 대충 답해주면서 신재헌에게 중심 잘 잡으라는 뜻으로 가운뎃손가락을 내밀어 주었다.
―탁.
주이안 씨가 그를 내려놓은 곳은 그의 집무용 책상이었다.
“이곳에서였어요.”
주이안 씨의 말에 신재헌이 턱을 매만졌다.
“흐음.”
그가 짧은 순간 눈을 감았다 떴다.
푸른 눈동자에 푸른 빛이 덧씌워졌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 S급(딜러)
- 버프 : 추적(A)
그의 버프창에 추적 스킬이 떴다.
주로 몬스터를 쫓을 때 쓰는 스킬이라 게이트가 아닌 데에서 쓰는 걸 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푸른빛으로 반짝이는 그의 눈이 책상을 거쳐 문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가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이 자리에 남아 있는 살기가 약한 걸 보면.”
추적 버프를 끈 그가 주이안 씨를 돌아보았다.
“쿠키 가지고 온 아이는 주이안 헌터를 해칠 마음이 없었던 게 확실하네요.”
그 말에 주이안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 어린 사제는 곧 풀어줄 생각이랍니다.”
진짜 범인이 잡히기 전까진 그에게 쿠키를 가져다준 수습사제가 의심받는 건 당연했다.
주이안 씨도 그게 안타까웠는지 그의 얼굴이 살짝 흐려졌다.
“그럼 진짜는 어디로 갔는데요?”
내게 추적 스킬이 있는 건 아니라 잘 알 수는 없었지만, 신재헌이 하는 말에 따르면 적개심이나 살기를 가진 자가 남긴 물건이나 흔적에서도 붉은 자국이 보인다고 했다.
“그건 이제 추적 쓰면서 방 밖으로 나가 봐야 알 것 같아요.”
그가 문 쪽을 가리켰다.
“쿠키에는 그놈이 흘린 적개심만 묻어온 것 같고, 그놈이 쿠키에 독을 뿌렸던 자리에서 아마 흔적이 진해질 것 같거든요. 그럼 그놈이 어디로 들어왔는지도 알 수 있을 거고요.”
“좋아, 그럼 나가 봅시다.”
난 다시 신재헌을 들어올렸다.
나름 어깨 아래를 받쳐 곱게 들어 올려준 건데 신재헌은 눈을 가늘게 떴다.
“좀 전에 주이안 헌터의 매너손은 못 본 거죠?”
“아, 맞다.”
난 하나도 안 미안한 얼굴로 그를 주머니에 집어넣어 주었다.
“이따 꺼낼 때 해볼게요.”
물론 마음에도 없는 말이었다. 씩 웃는 나와 째리는 그의 시선이 마주쳤다.
냉큼 안 들어가? 어?
난 그를 주머니에 다시 잘 밀어 넣었다.
두 손으로 그를 공손하게 모셨다간 한 3년은 술안줏거리로 우려먹을 게 분명했다.
난 주머니에서 다시 고개를 내밀려는 청개구리 신재헌을 다시 밀어 넣었다.
그러면서 주이안 씨에게 물었다.
“추적 쓰면서 돌아다닐 것 같은데, 같이 나갈 수 있어요?”
얼마 전 습격을 당한 그였으니 신전에서 반대할 수도 있었다.
반대를 무릅쓰고 움직이면 RP던전 페널티 위기가 올지도 모르고.
“음, 페널티는 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주이안 씨는 생각이 있는 듯했다.
그럼 문제없지!
―달칵.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내가 문을 열자, 성기사들의 의아한 듯한 시선이 내게 꽂혔다.
그러다가 내 뒤로 주이안 씨가 나오자 그들이 급히 고개를 숙였다.
“말씀은 편히 나누셨습니까?”
빨리 나와서 좀 당황했지만 우리가 이야길 끝내고 나온 줄 아는 모양이었다.
주이안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말씀드렸더니, 게이트 관련해서 논의도 할 겸 백작께서 함께 신전을 돌아봐 주시기로 했답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물론 성기사들을 믿지 않는다는 게 아닙니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신전을 둘러보면, 혹시 모를 침입 경로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가 온화하게 웃었다.
그의 말에 성기사들이 서로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희가 뒤따르겠습니다.”
문제는 이거였다.
성기사들이 따라오면 당연히 주머니 속의 신재헌이 고개를 내밀기 힘들어진다.
하지만 못 따라오게 하면 당연히 수상하다고 RP던전 페널티 위기가 뜰 게 분명했다.
이렇게 주이안 씨를 열심히 지켜주는 건 고마운데 그럼 쿠키 반입이나 금지하지 그랬냐?
새삼 빡쳤지만 표정관리에 성공한 난 기사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뒤가 든든하겠는데요.”
너스레를 떨자 성기사들이 크흠크흠 헛기침을 하는 게 느껴졌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너무 가까이 붙으면 추적쓰기 힘들어요]
“백작께서 부담스럽지 않게, 다소 거리를 두고 따라와 주세요. 하르트 경.”
그의 말에 이름이 불린 성기사가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서브퀘스트가 불쑥 떴다.
[서브퀘스트 : 추적]
[교황이 독에 노출된 후 성기사들의 경계가 심합니다. 의심받지 않고, 무사히 추적을 마치세요.]
[보상 : 민첩 +500]
음, 보상 좋고!
“그럼 어느 쪽부터 둘러보시겠어요?”
주이안 씨의 물음에 잠깐의 사이를 두고 신재헌의 채팅이 올라왔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왼쪽 복도요]
그새 추적 스킬로 흔적을 확인한 모양이었다.
“이쪽 복도는 어떠세요?”
내 물음에 주이안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쪽으로 가죠.”
나와 주이안 씨의 가벼운 걸음이 왼쪽 복도로 향했다.
우리 뒤로 충분히 거리를 둔 성기사들이 졸졸 쫓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