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
검술 대회 우승으로 유명해지고, 본가인 포를랭을 버리고 에델바이스 가의 가주가 되어 귀족가의 시선을 한눈에 받았다.
포를랭 가와의 관계는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으나, 교류가 없는 것을 봐서는 포를랭과 에델바이스 가 사이에 뭔가 일이 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리고.
‘검술 대회 때 포를랭 자작의 표정을 보셨소이까?’
‘필시 가문 내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자들은 진실과 가깝게 짐작하고 있었다.
원래 포를랭을 아는 자들이라면 당연히 세니아가 포를랭의 후계자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병에 걸려서 폐인이 되었다가, 최근에 기적적으로 회복된 후 최근에야 다시 일어났다고 했다.
가문의 계승식 직전에 분명 멀쩡했던 그녀가 병에 걸린 것도 이상한데, 갑작스레 가문을 등진다?
이것만큼 드라마틱하게 화제가 될 이야깃거리는 없었다.
“이……!”
―쾅!
포를랭 자작은 그 소문을 들으며 집무용 책상을 내리쳤다.
포를랭엔 아주 불편하기 짝이 없는 소문이었다.
“세니아, 그것이 자꾸 바깥에서 이상한 소문을 흘리는 게 틀림없어!”
그게 아니라면 조용히라도 있든지!
하필 에델바이스 백작가는 이번 게이트 사태 이후로 주목받고 있었다.
영지에 열린 게이트를 가장 잘 방어했다나?
“대체 어디서 그런 기사들이 난 거야?”
분명 포를랭의 기사는커녕 사용인 한 명도 데려가지 않았는데!
어디서 게이트를 그렇게 척척 처리할 기가 막힌 실력의 기사들을 데려왔단 말인가?
설마 황제가 하사한 기사들이 그렇게 실력이 좋았단 말인가? 황성기사단에 필적할 정도로?
그럴 리는 없을 텐데?
물론 포를랭 자작이 그렇게 이를 갈아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주인님! 키칼 도련님께서 출정이 불가능하시답니다!”
기사 한 명이 벼락같이 달려와서 외쳤다.
“불가능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카르만 제국은 검 실력으로 모든 것을 말하는 나라.
당연히 가문의 후계자라고 해서 이런 사태에 후방에 있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최전방에 나서서 실력을 보이며 사기를 높여야 하거늘……!
“심한 감기에 걸리셨다고 합니다!”
“또!?”
키칼 저놈은 왜 저렇게 갑자기 허약해진 거야!? 포를랭 자작이 머리를 싸맸다.
***
게이트 사태가 터진 후.
포를랭 영지의 상태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었다.
포를랭 자작은 기사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지휘관 역할을 해야 했으니 저택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후계자인 키칼 드 포를랭의 검 아래에 기사들이 모여야 했다.
“키칼 님, 명령을!”
하지만 키칼의 성적은 영 시원찮았다.
얼결에 첫 게이트에 들어갔다 나온 키칼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귀환 후 침대에 몸져누워 버렸다.
‘예상치 못한 습격을 당해 많이 놀라신 듯합니다.’
그와 동행했던 기사들은 그렇게 말했지만, 기사들은 그 후로도 키칼을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게이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그런데 신입 기사들과 함께 간 그는 비명만 지르지 않았지, 하얗게 질린 얼굴로 검을 휘둘렀다고 했다.
그 후 기사들 사이로 소문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키칼 님이 왠지 예전 같지가 않으셔.”
“혹시 저번 계승식 때문인지…….”
확실히 후계자 자리를 빼앗겼던 건 충격일 것이다.
하지만 원래 세니아 아가씨의 실력이 더 좋았다는 건 가문의 모두가 알고 있지 않았나?
오히려 기사들은 그 전 계승식에서 키칼이 어떻게 세니아를 이겼는지 의문이었다.
게다가.
“원래 저렇게 검에 힘이 없는 분이 아니셨는데.”
새벽에 몰래 수련을 나온 키칼을 발견한 기사는 놀랐다고 했다.
가문의 후계자께서 신입 기사나 보일 만한 움직임을 보이고 계신 것이 아닌가?
강화제 부작용으로 키칼이 약해졌다는 걸 알 리가 없는 기사들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쿨럭! 콜록!”
결국 그러기를 며칠, 키칼은 아예 앓아누워 버렸다.
그리고 그 증상은 신묘하게도 게이트가 생겨날 때마다 더 심해졌다.
“오늘 몬스터가 쏟아져 나온 게이트만 네 개라고 합니다!”
“새로 생긴 게이트가 일곱이 넘습니다!”
“파견할 기사가 부족합니다! 이대로는 오늘 생긴 모든 게이트에서 몬스터가 쏟아져 나올지도 모릅니다!”
현장에서 기사들을 이끌어야 하는 현장 지휘관이 오히려 사기를 깎아먹자, 포를랭 영지의 상황은 날이 갈수록 나빠졌다.
“에델바이스 영지는 게이트를 잘 막고 있다던데.”
“역시 세니아 아가씨셔.”
“……이제 가문을 나가신 분이지 않나.”
“그래도…….”
기사들은 원래 가문을 등진 세니아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치달을수록 그녀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세니아 아가씨라면 이런 상황에 감기든 뭐든 앞장서서 게이트를 처리하셨을 텐데.
저렇게 힘없이 무너지지 않으셨을 텐데.
“대체 아가씨께서는 왜……?”
포를랭 일가는 세니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엄금했지만 기사들 사이에선 결국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가씨께서는 기사들을 아끼셨다. 그런 분께서 왜 하루아침에 포를랭을 등지고 새로운 가주가 되셨단 말인가?
원래 그들이 가지고 있던 의문은 하루가 다르게 커져 저택 분위기를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뭔가, 우리가 모르는 사정이 있었던 게 아닐까?”
포를랭 가 기사들의 생각이 거기까지 닿았을 즈음이었다.
“세니아, 그것 때문에 기사들 분위기도 뒤숭숭해졌잖아!”
포를랭 자작은 결국 제 방에서 포효했다.
“낳아주고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게다가 그녀가 아플 때에는 온 가족이 얼마나 극진했는가?
―탕!
포를랭 자작이 책상을 내려치며 분노했다.
“후우.”
하지만 그는 곧 진정했다.
긴 귀족가와 사교계에서의 경험이 그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어차피 적의 시체는 강물에 떠내려오게 되어 있는 법.”
분명 가문을 배신한 그녀는 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주인님. 세니아 아가씨, 아니,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 백작이 이번 ‘게이트 전담 기사단’으로 신설된 수호기사단의 단장으로 지목되었다고 합니다!”
“뭐라고?”
―쾅!
최근 너무 내리친 나머지 삐걱거리는 책상을 포를랭 자작이 다시 한번 내리쳤다.
강물에 시체가 떠내려오는 게 아니라 웬 휘황찬란한 배가 들이닥치고 있었다.
***
“수호기사단장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난 당당하게 황궁 입구를 통과했다.
게이트 전담 기사단……이라고 말하면 줄이기 난감하니까 그냥 갖다 붙인 이름이 수호기사단이었다.
제국을 수호한다는 딜러다운 네이밍 센스는 당연히 신재헌의 것이었다.
하지만 뭐든 좋았다.
이 감투는 내가 황성의 회담에 참석할 수 있게 해 주었으니까.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진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딜러가]
난 헌터 채팅에서, 수호기사단장 관련 서류를 빠르게 통과시켜준 상으로 다시 ‘신재헌놈’으로 이름을 바꿔 주었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멀리서 오시느라 피곤하실 텐데, 오시면 힐해드릴게요.]
아직 얼굴도 안 봤는데, 가까워져서 그런지 주이안 씨의 온화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얼른와얼른얼른]
소예리 헌터의 발랄한 목소리도.
곧 볼 수 있다! 넷이 오랜만에 모일 생각을 하니 들떴다.
‘게이트 전담 기사단’, 즉 수호기사단은 순전히 내 아이디어로 개설된 것이었다.
우리 사회에 게이트가 생기고 헌터협회가 생기면서 세상이 급변했듯이, 이 동네도 게이트가 열렸으니 뭔가 생겨야 하지 않겠어?
그런 생각에 만들자고 제안한 것이 바로 수호기사단이었다.
게다가 마침 황가-마탑-교단이 모이는 회담 자리가 있다?
이건 다시 말해 딜러-보조계-힐러가 모이는 회의 자리였다.
그럼 당연히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헌터팀이 저기 있는 건 둘째 치고, 세 사람은 하필 세 집단의 수장이니 직접 게이트에 나서기가 어려웠다.
자칫 개연성 없이 돌아다니면 RP던전 페널티 위기가 올 테니까.
그럼?
직접 대응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에 적합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물론 감투 쓰는 건 질색이었지만, 헌터팀을 자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셈이니 난 기꺼이 일거리를 떠맡기로 했다.
그리고 이내 회담장.
“모두 모여 있었군.”
황제답게 가장 늦게 등장한 신재헌을 포함해 황가와 마탑, 신전 모든 세력이 한자리에 모였다.
“회의는 바로 시작하지.”
신재헌이 손짓했다. 그의 목소리는 무거웠다.
―탁.
그가 자리에 앉았다.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건 서제국 카르만에서 엄연한 국가적 재앙이었으니까.
그리고 각 자리에서 고군분투해본 각 세력의 기사나 마법사, 신전 병력들도 이게 제각기 세력의 힘만으론 처리할 수 없다는 걸 몸소 깨달은 참이었다.
그래서 그나마 이야기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아시다시피 저희 마탑은 연구 성향이 더 짙은 마법사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공격 마법을 연구한 마법사들 역시 수가 많으니,”
먼저 이야기를 꺼낸 건 소예리 헌터…… 아니, 마탑주 클로나 에이센이었다.
그녀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들을 게이트 현장에 파견하겠어요.”
시작이 좋다.
저렇게 내어줄 것들을 적당히 내어주고 시작한다면 다른 세력도 그만큼의 병력이나 자원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게이트라는 존재에 대한 연구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클로나 에이센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그녀의 웃음이 짙어졌다.
“그러니 병력을 지원하는 대신, 저희에게만 게이트 연구 권한을 독점 부여해 주시겠습니까?”
그 말에 클로나 에이센 뒤에 있는 마탑 마법사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크흠.”
“독점 부여?”
“그렇다면 우린 연구가 불가능하단 말인가?”
하지만 황성 마법사들은 좀 불편한 듯했다.
마탑의 말은 마탑 소속의 마법사가 아니면 게이트 연구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였으니까.
“곤란하시다면 협동 연구도 괜찮습니다만, 저희는 보다 제한 없는 연구 환경을 원하고 있답니다.”
소예리 헌터, 클로나 에이센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헌터 채팅은 달랐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안그럼 아무도 게이트에 안 들어가겠대요! 마탑에서 하던 연구나 하겠대! 다 연구에 미쳤어!]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오 저런]
연구가 뭐 그리 좋은지 모르겠지만, 연구 권한 이야기에 황성 마법사와 마탑 마법사들 사이에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그건…….”
와중에 황성마법사장은 신재헌…… 그니까 황제에게 간절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황성마법사장이 텔레파시 보내는 것 같아요 목소리가 들리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뭐라는데요?]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자기도 꼭 연구 해야겠대요]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안 되는데!]
왁자지껄한 헌터 채팅과는 달리 회담장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결국 신재헌이 눈을 가늘게 뜨며 중재했다.
“원래 연구는 마탑의 본분이었지.”
그 말에 마탑 마법사들의 표정이 폈다. 반면 황성마법사장의 눈길은 더 간절해졌다.
“―하지만 황가의 마법사들 역시 더 정진하길 원하고 있으니.”
잠시 그가 침묵했다.
그리고.
그의 이어지는 말에 두 세력 마법사들의 얼굴에 희비가 교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