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와 B급 딜러 넷이 B급 게이트를 깼다는데요?]
딜러 넷이 들어가서 반죽음이 되어 나온 팀은 양반이었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탱커와 힐러 조합으로만 들어간 자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사흘째 던전에서 안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몬스터와 공생하는 놈들도 있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우린 보조계 네 명만 들어가서 몬스터 다 얼리고 나무막대기로 때렸대~ 못 살아~]
돌려깎기야? 숟가락살인마야?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이야 말세다]
기상천외한 파티 플레이가 펼쳐지는 가운데, 이 세계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에 그 게이트가 어떤 환경인지 살펴볼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당연히 연구 전문, 마탑에서 맡게 되었다.
물론 반대는 있었다.
“마탑에 자리를 주는 건…….”
친황가파 귀족들은 마탑 사람들을 이번 사태에 기용하는 것을 끝까지 반대했다고 했다.
“지금껏 카르만은 검을 숭상해왔습니다.”
그런 개소리를 지껄이면서.
그 말에 신재헌은 한마디로 논란을 종결했다고 했다.
“그럼 검으로 게이트를 찔러 보면 뭘 알 수 있나? 난 내 기사들을 아무 정보도 없는 곳에 던져 넣을 생각은 없다.”
요컨대 실리 있게 처리하겠다는 뜻이었다.
“그건……!”
“크흠.”
다른 것보다도 기사들의 생명이 중요하다는 황제의 말을 거스를 카르만의 귀족은 없었다.
그래서 곧 황가에서 마탑으로 공식 문서가 날아갔다.
[게이트 사태에 대하여, 마탑의 의견을 듣고자 한다.]
물론 그것보다 빠르게 헌터 채팅으로 소식이 오간 건 당연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소예리 헌터님, 거기 마법사들이 게이트도 연구할 수 있을까요?]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물론이죠 여기 사람들 연구에 환장해]
그렇게 마탑과 황가의 공조 역시 시작되었다.
***
이 나라의 ‘검 우선주의’가 박살 나는 데에는 시간이 좀 필요했다.
몬스터 잡는 데에 일찍부터 협력하기로 했던 신전과 황가 사이도 마찬가지였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딜러…… 성기사의 수가 너무 부족해서 딜링이 안 됩니다. 황가와 신전의 회의 자리도 빨리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와 딜러보다 힐러가 많다고요?]
저런 파라다이스가 있단 말인가?
원래 힐러 클래스가 딜러보다 압도적으로 적다는 건 상식이었다.
덕분에 랭크가 조금만 높은 힐러계 헌터가 각성하면 길드들이 난리가 났다.
그 힐러를 어떻게든 모셔 가려고.
당연히 게이트 일선에서는 힐러가 부족할 수밖에 없었고, 힐러 한 명이 네 명, 다섯 명까지 힐하는 상황이 생기는 건 흔한 일이었다.
‘아무리 능력 좋은 힐러라도 세 명 이상을 케어하기 시작하면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공식 1위 힐러 주이안 씨마저 이렇게 말했지만 그 힐러 부족 현상은 해소되지 않았다.
그래서 적절한 때 힐을 받지 못해 죽어나가는 딜러들도 있었다.
그런데 여긴 뭐? 힐러가 딜러보다 많아?
힐딜역전세계인가? 혹시 이곳이 천국?
하지만 뭐든 필요 이상으로 많아서 좋은 건 없는 듯했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성기사 하나에 사제가 넷 이상 붙고 있습니다.]
헐.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이야 즉사만 안 하면 되겠네]
같은 딜러인 신재헌도 똑같은 생각인지 거의 동시에 말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호강하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파티랑 몹이랑 상생하겠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신시안 님은 몹도 사랑하시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신재헌 헌터님…….]
주이안 씨가 연갈색 머리를 헤치며 이마를 짚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거의 울 것 같았다.
일선의 상황은 마탑과 황가가 회담 일정을 잡고 있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우린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내가 딜러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어차피 곧 정신 차릴 거야~ 걱정 말아요]
내 생각도 그랬다.
생각하기 싫어하는 딜러진인 나와 신재헌뿐만 아니라, 주이안 씨의 생각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왜냐고?
그 답은 곧 내게로 달려왔다.
“주주주주주인님!”
기겁한 얼굴의 집사 헬렌이 내게 달려왔기 때문이었다.
“새빨간 게이트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영지에 나타난 것들과는 마력의 수준이 다릅니다!”
적어도 B급 이상의 게이트라는 소리였다.
이럴 줄 알았다.
“오.”
난 최대한 영혼을 담아 놀라 주면서 채팅을 때렸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님들 튜토 끝남 ㅋㅋㅋㅋㅋㅋ]
정신 차릴 때 됐지, 암.
그리고 얼마 후 예상대로 각지에선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들은 단어만 다르지 똑같은 생각으로 서로를 원하고 있었다.
“사제가 필요합니다!”
“기사가 필요합니다!”
“마법사가 필요합니다!”
어휴, 이 띨빡들!
[게이트 사태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게이트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마탑과의 회담에, 신전에서도 참여하여 제국민들을 구할 방안을 모색해주길 바란다.]
결국 황가에서 신전으로 공문이 날아갔다.
세 세력이 모이게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그래, 거기까진 좋았다.
“황제 폐하께서 마탑과 신전에?”
“힘을 합치는 건 좋지만…….”
“원래 다들 쉬쉬하지만 알지 않았나. 마탑도 신전도 기사들을 싫어한다던데…….”
“그뿐인가? 검을 든 자들은 모두 마탑과 신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카르만 제국민들은 불안과 기대를 동시에 드러냈다.
그리고 귀족들의 시선도 회의에 쏠렸다.
게이트 대응 연합 ‘미야’의 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폐하께서 두 세력을 기용하실 생각이신가?”
“검의 나라 카르만에서 이게 무슨……!”
“그래도 주도권은 우리 검사들이 잡게 되지 않겠소?”
“그거야 당연한 일이오!”
귀족들은 그렇게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그러면서 내게 물었다.
“에델바이스 백작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나?
그 말에 난 울컥했다.
“이건……!”
내 울컥한 표정에 귀족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역시 에델바이스 백작께서도 검의 길을 걸으시는 분!”
“연구쟁이와 사제 따위는 전선에서 방해만 될 뿐이오!”
그게 아니고!
울컥한 난 헌터 채팅으로만 내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그래서 여러분 셋만 만나서 즐거운 시간 보내시겠다?]
그럼 나는? 나는???
신분이 안 되는 나는 저 회의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미안해요, 신유리 헌터님.]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일 얼른 끝내고 유리헌터님 뒷담까야징]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저 그거 잘해요]
아오, 저놈을 콱! 난 주먹을 꽉 쥐고 헌터 채팅 설정을 건드렸다.
[‘헌터 신재헌(S)’의 이름을 ‘신재헌놈’에서 ‘염병할놈’으로 변경합니다.]
***
며칠 후.
정말 회담 일정이 잡혔다. 회담 일정을 조율하는 중에 일이 무산되진 않을까 생각했던 사람들은 놀라움을 표했다.
정말 그 세 세력이 힘을 합친다고?
원래 세계관 사람들이었다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겠지만, 세 세력의 수장이 우리 헌터팀이니 안 될 이유가 없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염병할놈)>>> 이야 드디어 회담을 하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우리 거기서 친한 척하면 안 되는 거 알죵]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알고는 있습니다만…….]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염병할놈)>>> 그렇다고 또 이단자 보듯이 할 겁니까?]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아니…….]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고 떠드는 헌터 채팅을 보니 슬슬 열이 받았다.
좋아? 행복해? 나 빼고 노니까 좋아?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와 좋겠다! 셋이 술도 마시고 전도 먹고 안주도 먹고 끝내주게 놀겠네!!!!]
X나 좋겠다!
갑자기 랭크업이 시급해졌다. 빨리 이 X같은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가서 이 한을 풀고 말리라!
왜 나만 이상한 가문 영애로 태어나서! 아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염병할놈)>>> 신유리 헌터도 와요]
염장 지르는 게 아주 수준급이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어떻게 가요? 황궁 시녀로 취직해서?]
황제 동창 특별전형으로 넣어 주냐? 집무실 구석에서 난 자비로운 미소를 지었다.
세 귀하신 분이 계시는 데를 내가 어떻게 가야 할……까……?
“……오.”
잠깐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겠는데?
원래 딜러는 머리 쓰는 직업이 아니지만 이럴 땐 또 기가 막히게 머리가 돌아갔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저 방법 생각났어요]
게이트 대응 연합 ‘미야’의 연합장. 마침 바이야 백작이 내게 씌운 감투가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제가 제안서 하나 보낼 테니까 신재헌 헌터님은 오케이만 해라]
거절은 거절한다. No.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염병할놈)>>> 뭔데요]
[세니아 드 에델바이스(신유리)>>> 난 지금 이 순간 답정너야 내가 원하는 답만 해 알았어?]
내가 빠르게 휘갈겨 쓴 서신은 최대한 빠른 파발로 황가에 당도했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서신을 받은 신재헌은 헌터 채팅창이 떠나가라 웃어댔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염병할놈)>>> 이야 이게 딜러진에 있을 두뇌가 아닌데]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염병할놈)>>> 하산하십쇼 딜러 수준의 두뇌가 아닙니다]
[클로나 에이센(예리언님)>>> 뭔데뭔데]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
모두가 궁금해하는 가운데 난 당당하게 게이트 대응방법을 논의하는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음, 역시 빽이 좋긴 좋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