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3)화 (3/218)

3화

“네가, 폐병만 안 걸렸어도…….”

포를랭 자작부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 자작 역시 이마를 짚었다.

“포를랭 가의 운명도, 세니아 네 운명도 달라졌을 텐데.”

그들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자작부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사들이 그리 눈에 띄더냐.”

“네.”

띄긴 띄었죠. 퓨어딜러 40명 대박.

“그럼 오랜만에 검이라도 잡아 보겠느냐?”

검이요? 난 [8/10]이라고 쓰여 있는 가련한 피통을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다시 자작부인을 보았다.

“그건…….”

들다가 팔 부러지면 던전 실패인데요?

말끝을 흐리자 다시 자작부인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아니, 그렇게 실망하진 맙시다! 언젠가 들어줄게!

언제냐면, 음…… 얘 피통이 1000은 넘으면? 폐급 일반인 탈출하면?

아, 폐급이란 표현 다시 생각하니까 빡치네?

S급에 특급이란 소리만 들어 왔던 내 귀와 눈에 나를 가리키는 ‘폐급’이란 단어는 새로운 충격이었다.

극복하고 싶은 충격.

시스템 이 자식들이 사람을 엿 먹여?

“너무 서두르지 마시오, 부인.”

자작이 자작부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키칼 옆에 있던 둘째 오빠, 리카스 드 포를랭도 말을 보탰다.

“맞아요, 어머니. 게다가…… 이미 ‘계승식’은 끝났잖아요. 아무리 세냐가 지금 병이 낫는다고 해도…….”

둘째 오빠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계승식? 그게 뭔데?

의문을 가진 순간 퀘스트창이 불쑥 떴다.

[서브 퀘스트 : 포를랭 가의 계승식]

어이구, 반응도 빠르시지. 난 빠르게 퀘스트창을 훑어보았다.

[포를랭은 유명한 무가로, 태어난 순서에 관계없이 검 능력이 뛰어난 자가 ‘계승식’을 통해 가문을 잇게 됩니다.

세니아 드 포를랭의 폐병 발병 이후, 현재 포를랭 가의 계승자는 ‘키칼 드 포를랭’입니다.

폐병만 아니었다면 그 자리는 세니아 드 포를랭의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계승식을 다시 한번 치러, 후계자가 될 기회를 거머쥐세요.]

[보상 : FULL체력 +100]

와, 지금 풀체력의 10배! 보상 끝내준다!

그나저나 폐병만 아니었으면 세니아가 계승자가 되었을 거라고?

세니아가 검술에 재능이 있었나?

아니 근데, 계승식 이미 끝났다며?

난 눈썹을 치켜 올렸다.

심지어 퀘스트창 맨 아래에는 마치 보험 CF 후 랩하듯 나오는 주의사항처럼 자그마한 글씨로 주의사항이 쓰여 있었다.

[포를랭 가의 계승식은 원칙상 재진행이 불가능합니다.]

지금 나더러 어쩌라고???

신유리 헌터의 얼탱이가 로그아웃했습니다!

이미 끝난 거 어쩌라고?

그 사이 복도 끝의 계단이 눈앞에 펼쳐졌다.

[체력이 부족합니다. (5/10)]

그리고 그새 체력이 떨어져 눈앞이 흐려지고 있었다. 부축받아서 왔는데도 이 모양이었다.

“여기서 잠깐 쉬어요.”

이대로 계단 내려가면 죽음이다!

내가 손을 들어 보이자 하녀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순식간에 의자 하나에 푹신한 방석과 담요까지 준비되었다.

다행히 방석이 푹신한 덕인지 의자가 딱딱하다며 체력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휴식 중…….]

[체력이 10분에 10%씩 회복됩니다.]

와! 고호맙다! 풀피 채우려면 50분!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앗, 나오셨습니까, 아가씨!”

풍채 좋은 요리사 아저씨 하나가 먼 곳에서 뛰어오다시피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뜨끈뜨끈한 수프 한 그릇이 들려 있었다.

하녀들이 재빨리 내 앞에 테이블을 차려 놓았다.

내 앞에 수프가 놓이고, 그 옆에는 푸린 꼬치인지 뭔지 하는 게 놓였다.

음, 원래 라면도 집 베란다에서 먹으면 새로운 기분인데.

창문 열어놓고 계단참에서 먹는 것도 괜찮은 맛이네.

게다가 내 눈앞에는 40명의 퓨어딜러가 정렬해 훈련하는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구경하면서 먹기 꽤 좋은―

[흙먼지가 날립니다.]

[흙먼지를 마셨습니다.]

[–1]

“……창문 좀 닫아 주실래요?”

내 말에 가족들의 표정이 다시 안 좋아졌다.

“그래, 아직 기사들의 모습을 보긴 힘든 게로구나. 그렇겠지.”

그들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거든요? 그런 거 아니거든? 너희들이 풀피 10의 비애를 알아?

“이거라도 어서 먹어 보렴.”

자작부인은 손수 내 손에 스푼을 들려주었다.

눈앞의 수프는 먹기 좋게 식어 있었다.

음, 입천장 덴다고 피통 빠질 일은 없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습관적으로 수프의 정보를 읽어본 난 눈이 튀어나갈 뻔했다.

[황금양송이 수프]

[한 송이에 7만 골드인 황금양송이버섯을 썰어 만든 초호화 수프이다. 던전산 영지버섯을 썰어서 수프를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먹으면 체력이 FULL 상태가 된다.]

맨 밑줄은 읽히지도 않았다.

그 윗줄의 친절한 로컬라이징 설명에 난 입을 떠억 벌렸다.

미쳤냐! 던전산 영지버섯으로 수프를 만들게!

그건 갓 지름이 3cm만 돼도 억 단위 시세를 호가하는, FULL체력 한계를 늘려 주는 흔치 않은 갓템 중의 갓템이었다.

그런데 그건 통째로 먹어야 쓸모 있었다. 한마디로 이렇게 썰어 먹으면 그냥 버섯이 된다는 소리다.

“어서 먹어보렴.”

자작부인은 스푼을 든 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래…… 썰렸으니 어쩌겠어.

난 한입에 아파트 한 채를 집어삼키는 기분으로 황금양송이 수프를 입 안에 떠 넣었다.

“……!”

그리고 머릿속에서 아파트고 뭐고 쓸데없는 자본에 대한 기억을 싹 지워 버렸다.

이 감촉. 이 느낌.

혀를 끌어안아 감싸는 것 같은 이 부드러운 수프의 맛.

오랜만에 느끼는 짭조름한 맛에 난 전율했다. 게다가 말캉하게 씹히는 이 황금양송이버섯의 식감이란…….

“……맛있어.”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간 말이었다.

그렇게 말한 순간 퀘스트 클리어 창이 떴다.

[서브 퀘스트 : 체력 단련하기 클리어!]

[보상으로 FULL체력이 3 증가합니다.]

[현재 체력 7/13]

와! 스펙 올리기 참 쉽다!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헌터채팅이 울렸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방금 회의 끝났습니다]

황족으로 입던한 신재헌이었다. 내가 답하려는 때, 바로 그의 말이 이어 올라왔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그런데 일이 좀 꼬였네요]

[세니아 드 포를랭(신유리)>>> 왜요?]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이거 클리어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은데]

매사 장난기 있는 신재헌이 저리 진지하게 말할 정도면 정말 심각한 거였다.

[세니아 드 포를랭(신유리)>>> 개인 퀘스트가 어려워요?]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네, 좀]

하긴, RP던전의 특성상 황족쯤 되는 좋은 스펙의 인물에 빙의했다면 개인 퀘스트가 어려울 가능성도 컸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일단 제가 황제거든요?]

[세니아 드 포를랭(신유리)>>> 네?]

“?”

난 눈을 끔뻑였다. 그냥 황족도 아니고 황제였어?

황제 빽 생긴 썰 푼다. 그런데 신재헌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근데 황권이 약해서 황권강화 퀘스트 받았어요. 이거 회의 가보니까 헛소리하는 놈들밖에 없어서 보니까 다 간신이더라고]

그의 채팅이 연달아 올라왔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그래서 싹 다 모가지 치려고요. 기념으로 제 가신 하실 분?]

[세니아 드 포를랭(신유리)>>> 저요 나나난나나나나나]

이거 완전 이득인데?

마침 가문 후계자 되라는 서브 퀘스트도 떴으니까.

가신은 모르겠고 귀족들을 다스리는 제국의 황제라면 귀족가의 계승식쯤이야 다시 진행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일이 웬일로 술술 풀린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이야기 중에 죄송합니다만……, 여러분, 문제가 있어요.]

주이안 헌터의 심각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는 목소리가 좋아서 ‘스타성 있는 S급 헌터’ 중에서도 매번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사람이었다.

너튜브에는 ‘주이안 ASMR’이라고, 그가 인터뷰한 목소리만 모아놓은 수면용 채널이 있을 정도였다.

중저음의 미성이 마음을 평온하게 해준다나 뭐라나.

물론 주이안 헌터 본인한테 그 얘기를 하면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 버린다.

‘신유리 헌터님. 그런 낯부끄러운 이야기는 좀…….’

연갈색 머리의 미남이 부끄러워하면서 얼굴을 가리는 모습은 볼 때마다 좀 대박이었다.

게다가 능력치 때문이라지만 늘 끼고 다니는 단안경을 벗고 마른세수를 하는 모습까지 보면 아주 돌아버릴 노릇…….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RP던전 규칙 때문에, 신재헌 헌터님하고 만나기가 힘들 것 같아요.]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헌터끼리 못 만나는 규칙은 없지 않아요?]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그건 그런데, 제가 있는 신시안 교하고 카르만 제국 황실의 사이가 굉장히 안 좋다고 해요.]

이건 또 뭔 소리야? 난 눈을 깜빡였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아 그건 저도 들었어요. 신시안 교도 견제해야 한다고 했음]

이어서 신재헌의 채팅이 올라왔다.

[아이반 엘레티아 폰 카르만(신재헌놈)>>> 특히 교황 목 따면 보너스 보상 들어온대요. 주이안 헌터님 거기 교황 정보좀]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정보야 드릴 수 있습니다만…….]

그가 말꼬리를 흐리면서 곤란해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제가 그 교황인데요.]

“?”

난 가족들이 보거나 말거나 입을 떠억 벌렸다.

황제 빽 생긴 썰 이어서 교황 빽도 생긴 썰 푼다.

근데 둘 중 택일이네? 던전 만든 놈 누구야?

난 스푼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RP던전 깨는 데 빽만큼 편한 게 없는데, 그 빽끼리 싸우게 생겼다.

유일한 희망은 소예리 헌터뿐이었다.

마탑주라며! 어떻게 해 봐요, 좀!

그리고 카르만 제국이 황가-교단-마탑 세 세력이 치열하게 견제하는 동물의 왕국이라는 걸 우리가 알게 된 건 그날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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