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던전의 S급 시한부 영애 (2)화 (2/218)

2화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일단 저도 주변 상황 파악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신유리 헌터님도 문제 생기시면 바로 연락 주세요.]

[세니아 드 포를랭(신유리)>>> 넵 ㅠㅠ]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너무 미안해하지 말고요. 신유리 헌터님이 평소에 이끌어주신 거, 이번에 제가 갚는다고 생각하죠.]

내가 이끌기는 무슨. 힐러 없었으면 우리 파티는 있을 수도 없었다.

신재헌 헌터나 나나 힐러 믿고 나대는 딜러였으니까.

우리 파티에 탱커가 없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신재헌과 내가 전방에서 어지간히 설치면서 몬스터의 공격을 다 받아내거나 쳐내 버리기 때문이었다.

딜탱이 모두 되는 딜러가 두 명이니 탱커가 필요 없었던 것이다.

어? 그런데 딜러 하나가 사라졌네? 아…….

[세니아 드 포를랭(신유리)>>> 이끈 건 아니었던 것 같고……. 아무튼 이번 던전에서는 신의 상점이란 게 열리는 것 같거든요? 뭐 이상한 물건 같은 거 살 수 있는 것 같은데 이거 연구해 볼게요.]

[아리엔사 시안 데마르(주이안씨)>>> 다행이네요. 저는 포를랭 가에 대해 알아볼 테니, 신유리 헌터님은 일단 생존에 집중해 주세요!]

생존? 내가 무슨 F급 헌터도 아니고 던전에서 생존을 걱정하다니!

나는 잠시 좀 더 낯익어진 천장을 올려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렇게 구린 능력치를 주고 시작된 RP던전이라면 당연히 보상도 대단하지 않겠는가?

드디어 우리나라에 없는 L급 무기를 내가 먹는 건가?

갑자기 조금 심장이 뛰었다.

[세니아 드 포를랭(신유리)>>> 알겠습니다 뭔 일 생기면 얘기해요~]

그렇게 헌터 채팅은 일단 시스템창 저편으로 밀어 두었다.

가장 중요한 건 주이안 헌터 말대로 일단 체력 단련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서브 퀘스트 : 체력 단련하기]

“오.”

역시 RP던전이라 플레이어 요구에 즉각 반응한단 말이야.

제자리에서 팔굽혀펴기라도 하라고 하려나?

난 S급이 막 되자마자 시스템으로부터 받았던 무지막지한 운동 퀘스트들을 떠올리며 창을 열었다.

그리고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맛있는 거 먹기

보상 : FULL체력 +3]

“이게 끝?”

완전 개꿀 아니냐?

마침 헌터 인벤토리에 기가 막히게 맛있는 던전용 간식을 넣어놓은 참이었……는데 RP던전에선 인벤 못 불러오지, 참.

그래도 시한부 보너스, 뭐 이런 걸로 열리게 해 주진 않을까?

“인벤.”

[RP던전 제한 : 은하 서버에 저장된 ‘헌터 신유리(S)’의 인벤토리를 불러올 수 없습니다.]

기대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근데 그 직후 시스템창 하나가 더 떠올랐다.

[폐급 일반인 ‘세니아 드 포를랭’의 인벤토리를 소환합니다.]

이보쇼, 폐급은 말이 심하잖아!

하지만 템창을 보니 정말 폐급이었다.

“인벤이 한 칸이야?”

대박이다, 진짜.

그 한 칸짜리 인벤에는 당연히 내 번쩍번쩍한 템들도, 내가 방금 먹으려던 던전용 간식도 없었다.

텅 빈 한 칸.

캬! 끝내준다! 끝내주게 맥주 말린다!

시스템이 헌터 랭크를 매기지도 않은 갓 각성한 일반인도, 인벤이 최소 다섯 칸은 있다던데. 난 이마를 짚었다.

[스탯과 비례하여 인벤토리가 증가합니다.]

[스탯과 비례하여 신의 상점에서 오픈되는 ‘은하 열쇠’로 ‘신유리 헌터’의 인벤토리 아이템을 무작위로 가져올 수 있습니다.]

“오.”

일반적으로 RP던전에서 은하 서버에 저장된 본인 인벤토리를 불러올 수 있는 경우는 없었다.

좀 특이한 던전인 모양이다.

“그래서 스탯은 어떻게 올리는데?”

그리고 난 무심코 스탯업 조건을 보고 눈을 비볐다.

보통 S급 헌터의 스탯업 조건은 1만 명 구하기, 몬스터 5만 마리 처치 같은 괴악한 것들이었지만 폐급 일반인은 달라도 뭔가 달랐다.

[스탯은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발생하는 퀘스트로 올릴 수 있습니다.]

그냥 건강부터 챙기면 되나 보다. 내가 몸을 벌떡 일으킨 때였다.

“세상에, 아가씨?”

문이 달칵 열리고, 방으로 들어온 하녀가 눈을 크게 떴다.

복슬복슬한 금발머리를 뽐내는 귀여운 하녀는 호들갑을 떨며 내게 달려들었다.

“몸을 일으키신 건가요? 직접?”

“그럼 침대 시트가 알아서 일으켜 줬겠니?”

“네?”

저도 모르게 대답한 난 입을 때릴 뻔했다.

[RP던전의 규칙]

[1. 빙의한 인물의 사회적 위치를 반드시 지킬 것.

2. RP던전 세계관의 규칙에 따를 것.]

헌터임을 밝히거나 은하 서버를 통해 이곳으로 들어온 헌터란 것을, 다시 말해 외계인(?)이란 걸 밝히면 RP던전은 곧바로 실패한다.

던전 실패는 작게는 레벨 하락이나 랭크 하락부터, 크게는 사망까지 페널티를 받을 수 있었다.

“그, 그냥 일어났어.”

난 대충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딱 보니 귀족 영애인데, 귀족 영애가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내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세상에…… 세상에!”

하지만 하녀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난 것만으로도 감격해 어쩔 줄 몰랐다.

얘 왜 이래?

“주인님! 도련님!”

호들갑을 떨던 하녀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더니 갑자기 밖으로 달려 나갔다.

뭐야?

“잠, 잠깐!”

지금 네가 주인님이고 도련님이고 찾을 때가 아니거든?

달려 나가려던 하녀가 우뚝 멈췄다.

“넵, 아가씨! 뭐든 말씀하세요!”

그녀의 얼굴은 기쁨에 가득 차 있었다.

얘 반응을 보니 세니아 드 포를랭은 아무래도 오랫동안 누워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 뭔가 먹고 싶어.”

이왕이면 맛있는 걸로.

토치로 구운 연어초밥이면 더 좋고.

……라는 말은 삼켰다.

RP던전 규칙 위반으로 모가지 뎅겅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 말에 하녀의 눈이 함지박만 하게 커졌다.

“정말요?!”

보통 밥 먹는다고 하면 이렇게 좋아해?

“제가 바로 요리사에게 말할게요! 특급, 특특급 요리만 가져오라고 말하겠습니다!”

그녀가 재빨리 방을 나섰다.

―쾅!

흥분한 그녀가 문을 쾅 닫자 몸이 떨리는 듯했다.

[-1]

[지나치게 강한 음파로 데미지를 입습니다.]

“?”

[체력 9/10]

지금 문 세게 닫았다고 데미지 1 받은 거야?

쟤가 문 열 번만 저렇게 닫으면 세상 하직하겠는데? 난 어이가 없어 입을 벌렸다.

***

하녀가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던 이유는 곧 달려온 가족들 덕에 금세 밝혀졌다.

“세니아, 뭐가 먹고 싶으냐?”

“극지에서 나는 바람버섯이라도 내 구해줄 것이다.”

그게 뭔데? 극지에서 버섯도 나? 버섯이 불쌍한 거 아냐?

내가 속으로 의문을 가지든 말든 가족이란 사람들은 내게 뭘 해주지 못해서 안달이었다.

“이게 대체 얼마 만이야, 세냐.”

“드디어 일어나기로 한 거야?”

오라비란 자 둘은 눈을 빛내며 물어 온다.

“언제까지나…… 누워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안 일어나면 대륙 멸망을 막을 수가 없거든요.

그 말은 물론 삼켰다. 내 말에 가족들의 표정이 변했다.

“드디어……! 삶을, 새 삶을 살기로 결심한 게냐.”

아무래도 아버지인 듯한 남성은 감동의 도가니탕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그래, 병이 있더라도 삶은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것 아니겠어. 잘 생각했다, 세냐.”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성도 마찬가지였다.

아.

그 말에 난 머릿속에 전구가 번쩍하는 듯했다.

아무래도 지병 때문에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침대에서 우울하게 접으려 했던, 뭐 그런 설정인 모양이었다.

던전 이름부터 시한부 영애 어쩌고 했으니 이런 우울한 설정 하나쯤은 있을 법했다.

물론 그렇게 처박혀 있다가 던전 실패로 인생 하직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대로…… 살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이쪽 사정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대충 아련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러자 가족이란 자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좋아. 좋다, 좋아! 어서 뭐라도 가져오거라!”

“뭐가 먹고 싶다고, 세냐?”

재차 물어오는 자의 머리 위에는 이름과 랭크가 쓰여 있었다.

폐급 일반인(…) 상태에서도 랭크가 보이는 걸 보면, 이미 ‘세니아 드 포를랭’이라는 인물이 잘 아는 사람이라는 증거였다.

[키칼 드 포를랭(A)]

정보창을 슬쩍 보니 세니아의 첫째 오빠인 모양이었다. 이름 옆에는 검 표시도 있었다.

딜러인가?

그런데 그냥 그렇게 보기에는 검이 그려진 마크 뒤가 어딘지 수상쩍었다. 웬 연기 같은 게 보였으니까.

신재헌은 저런 표시 없었는데?

신재헌의 상태창에 그려진 검 표시는 깨끗하고 선명한 검 한 자루뿐이었다.

그런데 저놈은 뒤에 뭐가 붙어 있는 거야?

자세히 보려고 해도 흐려서 잘 보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키칼 옆에 붙어 있는 둘째 오빠란 놈도 마찬가지였다.

[리카스 드 포를랭(B)]

검 표시 주변으로 괴상한 연기가 떠다니는 것이.

“그냥…… 맛있는 게 먹고 싶어요.”

그렇다고 키칼과 리카스의 머리 위를 뚫어져라 보기만 할 수는 없어서, 대충 답했다.

이 동네 맛집이 어딘질 알아야 데려가 달라고 하지.

“그래, 일단 가벼운 수프부터 들여라!”

“알겠습니다!”

[진 드 포를랭(A)]

감동하고 있던 중년 남성의 머리 위도 뒤늦게 확인하니, 아버지라고 쓰여 있었다.

그 옆에는 ‘카르만 제국의 포를랭 자작’이라는 작위 역시 쓰여 있었다.

음, 세니아 아버지. 오케이. 여긴 자작가였군. 그럼 난 자작가 영애쯤 되는 모양이다.

신재헌이 황족으로 있는 제국의 자작이라는 게 뭔가 좀 묘하긴 했지만 어쨌든 귀족이면 됐다.

이 스펙에 귀족도 아니면 답 없다!

“일단 먼저 배를 달래고, 좀 더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는 건 어떻겠느냐?”

아버지, 포를랭 자작이 날 달래듯 말했다.

그 옆에 있던 어머니, ‘아스테 드 포를랭’은 그런 그를 찰싹 때렸다.

“안 그래도 방에서 안 나가려는 아이를! 그래, 세냐가 전에 좋아했던 푸린 꼬치라도 가져오렴!”

그러고는 내 앞에 앉아 눈높이를 맞추었다.

“세냐, 서늘한 바람 맞으면서 푸린 꼬치 먹는 걸 즐기지 않았니. 엄마랑 한번 오랜만에 나가 보련?”

어떻게든 방 밖으로 한 걸음이라도 내딛게 하려는 의지가 보였다.

난 더는 우울한 세니아 포로리 어쩌고를 할 생각이 없었기에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나가겠어요.”

“……!!!!”

가족들은 어쩔 줄 몰라 입을 틀어막았다.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모양이다.

“아.”

그런데 그들에게 무슨 사연이 있든 내 사연이 더 중요했다.

난 흘끔 그들을 보았다.

“그런데 좀 힘들어서…….”

니들이 문만 열 번 쾅 닫아도 죽을 몸이라…….

그 말은 잇지 않았지만 가족들은 곧바로 내 말을 알아들었다.

“뭐 하는 게야, 어서 부축하지 않고!”

어머니, 포를랭 자작부인이 손짓했다.

기사 한 명이 달려와 내 몸을 조심스럽게 부축해 주었다.

확실히 오랫동안 누워 있던 몸인지, 바닥을 딛는 발바닥이 뻐근하게 아파 왔다.

[-1]

[바닥이 너무 딱딱합니다.]

이거 완전 개복치 아냐?

난 벌써 [8/10]이라 쓰인 피통을 허망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여덟 걸음 걸으면 픽 엎어져 죽는 거 아니지?

걷는 데에 이렇게 긴장한 건 처음이었다.

[…….]

다행히도 시스템창은 조용했다. 휴.

***

부축을 받아 문 밖으로 나서자, 가장 먼저 보인 건 넓은 복도였다.

“하압! 흐아압!”

그리고 창밖에서는 우렁찬 기합 소리가 들렸다.

바깥을 보니 기사들이 빼곡하게 서서 훈련을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오…….”

난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머리 위에 검 두 자루가 선명하게 떠올라 있는 자들.

보조스킬 하나 없이 순수 딜만 넣을 수 있다는 퓨어딜러 몇십 명이 도열하여 동시에 검을 휘두르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주이안 씨가 보면 이마 짚겠는데?

‘한 명의 힐러에게 세 명 이상의 딜러가 붙으면 케어하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렇게 곤란하다는 얼굴을 하면서 또 힐은 기가 막히게 잘하겠지.

그 모습을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세니아…….”

아, 너무 오래 본 모양이다.

내가 복도로 재빨리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난 나를 아련한 시선으로 쳐다보는 포를랭 자작 부부와 오빠 둘과 시선이 마주쳤다.

이 사람들이 단체로 왜 이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