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깊은 산속 마을이라…….”
수국에는 산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다. 산속의 마을은 더군다나 적었다. 왕은 고개를 기울였다.
“혹시 천민들의 부락에서 지낸 것인가?”
“그렇습니다.”
제사장 성현이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백호는 사방신 중 가장 흉폭한 존재, 제를 지내다 인신공양이 필요할 가능성도 있어 일부러 그쪽으로 제의 장소를 정했습니다. 아마도 흰 호랑이가 산에서 내려와 천민 두엇을 잡아갔을지도 모르지요.”
“흠.”
만희는 턱을 긁었다.
과연, 흰 호랑이로 연상되는 백호는 가장 성미가 나쁜 신으로 전해져 온다. 인간들이 산속의 호랑이를 사냥하면 그에 상응하여 마을을 몰살시킨다.
물론 어디까지나 전설이었으나 만희는 사방신 중 백호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 자신이 신이 된다면 그만큼 제멋대로 굴었으리라.
‘나야 신 같은 건 믿지 않는다만.’
그는 킬킬 웃었다.
갑작스럽게 혼자 웃는 왕의 얼굴을 보면서 제사장은 열심히 눈치를 보았다. 백관이 늘어선 자리라면 자신이 그 목표가 될 일은 없겠지만 지금은 둘만 있는 자리다. 왕은 예측할 수 없는 성미를 지닌데다 지독히 잔인한 자였다. 언제든 칼을 빼 들어 거슬리는 자를 내려친다. 그렇게 해서 죽어나간 내관이나 신하가 한둘이 아니었다.
킬킬거리다 머릿속에 편두통이 찾아와 만희는 관자놀이를 짚었다. 일 년 전부터 골의 한쪽이 칼로 저며내는 것처럼 아팠다. 뇌를 한 점 한 점 포를 떠내는 것 같다고 왕은 고통스럽게 생각했다.
“전하……?”
“아니, 잠시…… 머리가 아파서.”
왕은 천천히 이마를 문질렀다. 고통은 쉬이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온갖 약을 써보았고 온갖 명의를 전부 모셔 왔지만 그의 두통은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벌써 그것이 일 년째다.
“또 두통이 심하십니까.”
제사장은 쩔쩔매면서 곁에 선 시녀에게 손짓을 했다. 안절부절못하던 그녀는 얼른 물에 적신 비단수건을 가지고 와서 왕의 머리 위에 얹었다.
시녀의 몸에서는 꽃향기가 났다. 언제 왕이 침대로 끌어와 안을지 모르기 때문에, 침소의 시녀들은 언제나 몸단장을 하고 향수를 뿌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늘, 왕의 코에 향기가 거슬렸다. 그 농축된 꽃향 때문에 두통이 더 심해지는 느낌이었다. 만희는 핏발이 선 눈을 치뜨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아직 십대의 어린 시녀는 험악한 왕의 시선에 위축되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정말 더러운 냄새로군.”
왕은 허리춤에 손을 댔다. 사실에서도 언제나 검을 차고 있는 그는 천천히 무기를 뽑아 들었다. 시녀는 자신의 운명을 알아차리고 덜덜 떨면서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전, 전하……. 살려주시옵소서.”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면서 풍만한 가슴이 왕의 시선 앞에 그대로 드러났다. 만희는 검끝을 그녀의 등쪽 옷 밑으로 밀어 넣었다. 날 선 칼날에 시녀의 저고리가 투둑거리며 끊어져 내렸다.
“손 올리지 마라. 가리지 마.”
시녀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손을 그대로 두었다. 윗옷이 힘없이 그녀의 어깨 아래로 흘러내렸다. 탐스러운 시녀의 가슴이 속옷 한 겹만 남기고 그대로 드러났다. 왕을 모시는 시녀답게 언제든 그가 손을 댈 수 있도록 완벽하게 준비된 유혹적인 자태였다.
“읏……!”
시녀의 입에서 작은 신음성이 흘렀다. 남자는 그녀의 가슴을 손으로 주물렀다. 아무런 배려도 다정함도 없는, 검사를 하는 것 같은 무감정한 손놀림이었다.
속옷 아래로 손을 넣어서 시녀의 둥글고 풍만한 가슴을 큰 손에 꽉 쥐자 야들야들한 피부가 손가락에 착 붙었다. 갑작스러운 자극에 유두가 바짝 서서 손톱으로 긁자 그녀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내관이 준비를 잘 시켰나 보군. 일어서봐. 치마를 걷어 올려라.”
제사장은 아랑곳없이 왕이 명했다. 수치심에 짓눌릴 것 같은 얼굴을 하고도 시녀는 일어서서 치마를 걷어 올렸다. 무릎을 꿇고 있던 탓에 동그랗게 붉은 자국이 남은 무릎 피부와 흰 허벅지가 치마 밑으로 드러났다.
살집이 있어 통통하고 하얀 허벅지 안쪽을 발로 툭툭 쳐서 벌리고, 만희는 그녀의 치마 밑으로 무심하게 손을 쑥 집어넣었다. 침소의 시녀답게 속옷도 아무것도 입지 않아 까슬한 음모가 그대로 손가락 끝에 잡혔다.
잠시 손가락으로 음모를 꼬고 뽑으며 놀리다가 그는 시녀의 음핵을 문질렀다. 내관에게 교육받아 민감한 몸을 지니고 있는 시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자신도 모르게 신음성을 뱉으면서 그녀의 무릎이 휘청거렸다.
질 안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자 시녀의 몸은 매끄럽게 왕을 받아들였다. 내관에게 교육받아 이미 충분히 넓혀지고 예민해진 몸이다.
습기 찬 음부를 손으로 문지르다가 치마 밖으로 꺼내자 그의 손가락은 시녀의 애액으로 번들거렸다. 그 손가락을 들고 왕이 웃었다.
“내관을 칭찬해 줘야겠군. 본분을 잊지 않는 건 좋은 일이지.”
여자의 몸에서 손가락을 빼니 다시 두통이 심해졌다. 만희는 천천히 관자놀이를 눌렀다. 여인은 나름 매력적인 몸이었다. 그녀를 안으면 좀 나아질지도 모른다. 최소한 잠이라도 들 테니.
“……침소로 가서 잠자리를 준비해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목이 달아날 것이다.”
“예, 예. 전하.”
시녀는 덜덜 떨면서 저고리를 주워 들고 비틀거리며 사실을 빠져나갔다.
제사장은 그녀를 아마 다음날이면 못 볼 거라고 생각했다. 하룻밤을 지낸 뒤 어쨌든 왕은 그녀의 목을 벨 것이다. 여태까지 수많은 여자들이 그렇게 왕의 침소에 피를 뿌렸다.
“대체 이놈의 두통이 언제쯤 나을지 정말 모르겠군.”
“제대로 된 치유사를 구해와야 할 텐데요.”
“치유사라. 그런 능력은 요즘 거의 없지 않은가.”
말끝을 끌다가 왕은 문득 한 가지를 떠올렸다. 그의 머릿속에 산속으로 쫓겨 들어갔던 여인과 그 딸이 생각났다. 어린 나이에도 이미 아주 예쁘고 나중이 기대되었던 소녀.
너무 어리지만 않았다면 왕은 그 소녀를 왕궁 안에 깊이 가두었을 것이지만 보살의 가호를 받는다는 어미의 눈이 지나치게 선연했다.
‘그 어미가 약사여래의 가호를 받는다는 헛소리를 했지.’
왕은 눈썹을 찌푸렸다. 그는 사촌이던 선왕을 직접 베고 이 자리에 오른 자였다. 당시 왕을 보호하던 장군이 중상을 입어 목을 벨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것이 바로 그 어미 때문이었다. 노랗게 빛나는 손으로 장군을 치유하여 도망갈 수 있게 길을 열어주었던 여자.
만희는 사실 신을 믿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사촌형을 베고 직접 관을 머리에 얹었다. 수국의 가호자라는 청룡 따위는 그에게 어떤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그저 그의 왕좌를 장식하는 좋은 장식품일 뿐.
오만한 왕은 그래서 약사여래의 가호 밑에 있다는 그 여자의 말도 믿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빼어난 치유의 능력을 보였던 것은 사실이고. 그는 단지 그 능력이 필요할 뿐이었다.
“제사장, 예전에 그 마을로 쫓겨갔던 여자. 기억나는가?”
“여자라 하심은…….”
“약사여래의 가호를 받는다며 헛소리를 했던 여자와 그 딸 말이야.”
“그 죄인 말씀이십니까?”
“그래. 승려들이 달라고 난리를 쳤던 그 여자.”
제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미도 아름다웠고 딸도 예뻤던 모녀였다. 드물디드문 치유의 능력을 지녀 왕에게 보호를 요청했으나 그 어미가 모든 보호를 거부했다. 선왕에게 은혜를 입었던 어미는 자신의 은인을 살해한 왕 만희에게 어떻게든 복수를 하고 싶어 했다.
선왕의 충신이었던 장군을 결국 도망시켰던 여자. 그래서 왕의 노여움을 사 천민의 부락으로 내쳐졌다.
“어미는 죽었다 했고……. 그 딸은 어찌되었나?”
제사장은 눈을 굴렸다. 워낙 특이한 능력이 있던 모녀라서 제사장과 승려들도 그들에게 관심이 있었다. 신의 이능이라는 것이 거의 사라져 버린 시대이다. 직접 보살의 가피를 몸으로 발하는 두 사람을 거의 해부하려 들던 그들을 말린 건, 약사여래를 모시는 사찰의 주지승이었다. 하지만 둘의 위치는 항상 파악하고 있었다.
“여즉 천민 마을에 살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것은 왜…….”
“딸 역시 치유의 능력이 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만.”
만희는 다시 두개골이 쪼개질 것처럼 아픈 머리를 잡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가 또 두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제사장은 슬슬 도망가려고 엉덩이를 뺐다. 최근 들어 왕은 환우에 시달리고 있었고, 두통이 극심해지면 마치 눈이 먼 것처럼 칼을 뽑아 주변에 있는 시종들을 베어 죽이곤 했다.
조용히 일어서려는 제사장을 향해서 수국의 왕이 중얼거렸다.
“그 딸을 데려오시오. 치유의 능력, 그 어미가 약사여래의 가호를 받았다 했으니 나의 편두통도 고칠 수 있을지 모르지.”
“그 딸 말씀이십니까.”
제사장은 곤란한 낯빛을 했다. 왕에게 명을 받는 건 결코 좋은 일만은 아니다. 성공하면 상을 받지만 실패하면 목을 대가로 내놓아야 한다. 성공하더라도 무엇 하나 트집이 잡히면 왕이 그대로 두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래, 써보지 않은 약이 없고 부르지 않은 의사가 없으니……. 지푸라기라도 잡아봐야지. 내게 신이란 별것 아니지만.”
“진짜 약사여래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도 잘 모르지 않사옵니까…….”
말꼬리가 약해지는 제사장의 말에 만희는 자신의 이마 위에 손을 올리며 피식 웃었다.
“만약 거짓이라면 죽이면 그만인 것을, 모를 것은 또 뭐가 있겠나.”
죽음을 넘나들 수 있는 존재 따위는 없고 왕인 그의 손 아래에서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존재 같은 것도 없다. 세상천지 칼과 칼이 맞대어 이기면 그뿐이다.
만희는 뇌를 쪼개는 고통에도 히죽거렸다.
금수의 붉은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