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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의 붉은 달-9화 (9/113)

9화

사영은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녀도 그도 알고 있다. 천년 묵은 구미호를 건드릴 수 있는 신령은 사영의 아버지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그마저도 백호가 허락해야 가능할 테니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는 사영을 보고 묘우가 한 손을 들었다. 그는 항시 웃느라 가늘어져 있던 눈을 똑바로 뜨고 뱀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잠깐, 기다리세요. 여기까지 와서 인내가 모자라 아무것도 얻어가지 않을 셈입니까?”

“……무슨 헛소리냐.”

“말 그대로입니다. 말씀드릴 만한 이야깃거리들이 있긴 하답니다.”

사영은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말 그대로. 당신은 반려님에 대한 내용이 궁금한 게 아닙니까? 하지만 반려님은 최측근들만 얼굴을 보고 모시기 때문에 이 궁궐 안의 시비들조차 제대로 아는 자가 드물답니다.”

“그래서 그걸 왜 내게 말해 주겠다는 거지?”

“글쎄요…….”

여우의 신령은 다시 눈을 가늘게 뜨며 입가를 올렸다. 그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마 저와 사영 님의 의견이 대체적으로 맞는 부분이 있어서일 겁니다. 저는 할 수 없는 걸, 사영 님께서 대신 해주실 수가 있을 듯하거든요.”

***

백호는 곁에 누운 연화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완전히 지쳐서 세상모르고 잠이 들어 있었다. 어린애처럼 아주 순진무구한 얼굴이었다.

작고 흰 얼굴을 내려다보며 백호는 그녀의 뺨을 감싸 쥐었다. 손 안에 감겨 오는 가느다란 뼈대가 여전히 입맛을 돋웠다.

‘……하지만 지금 몸에 무리가 많이 가긴 했을 텐데.’

백호는 아쉽게 입맛을 다셨다. 그는 연화가 깨지 않도록 조심히 몸을 움직여 아래로 향했다.

여인의 다물린 다리를 살짝 벌려 양옆으로 세워놓고 그는 그녀의 은밀한 틈을 살펴보았다. 도톰하게 부어올라 있었고 상처도 보였다. 부분적으로 핏방울이 몇 군데 보이기도 했다.

백호는 혀를 차고 호접을 불러 약을 가지고 오게 했다.

그는 자그마한 약단지의 뚜껑을 열고 손가락 끝으로 퍼 올렸다. 부드러운 흰색의 연고였다. 부어오른 상처 부위의 열을 낮춰주고 통증을 줄여준다.

백호는 연화의 다리 사이에 몸을 수그리고 조심스럽게 살점을 벌렸다. 부풀어 올라 아파 보였지만 동시에 꽃잎처럼 어여쁘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아래에 약을 펴 발랐다.

부드러운 고체 상태였던 약은 체온에 녹아 액체 상태가 되어 그의 손가락 끝에 휘감겨 연화의 벌어진 살점 안쪽으로 사라졌다.

“으…… 응…….”

작게 신음소리가 났다. 연화의 목소리였다. 잠이 든 상태로도 예민한 하지에 약을 바르는 손길이 자극적인 모양이었다. 허벅지가 살짝씩 떨려 왔다.

잠이 깼나 싶어 얼굴을 보았지만 의식이 든 느낌은 없었다. 백호는 입술을 핥으며 그녀의 따스한 내벽 속으로 손가락을 들이밀었다. 액체가 된 약이 손가락 끝에 감겨 내벽에 발라졌다.

“으, 흣…….”

연화의 신음성이 조금 튀었다.

혹 그녀가 깰까 하는 마음에 백호는 손을 거두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또 한 번 그녀를 안고 싶었지만 그럴 수야 없었다. 그는 사방신이었고 연화는 인간의 여인일 뿐이다. 많이 힘들게 되는 것은 백호도 바라지 않았다.

***

‘와. 정말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네.’

다시 일어나서 연화는 멍청한 머리로 생각했다. 그녀의 하루는 늦게 일어난 오전과 백호와의 관계로 보낸 시간과 그 이후 또 다른 낮잠으로 가득 찼다. 일어나 보니 벌써 저녁식사 시간인 것을 깨닫고 그녀는 다소 어이가 없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다리 사이와 아랫배 사이로 찌르르하게 통증이 느껴졌다.

연화는 몰랐지만 그녀가 자는 사이 백호가 조심히 그녀의 다리를 벌리고 신령계의 고약을 펴 발라놓아 상처가 많이 아문 상태였다. 덕택에 그녀가 느끼는 것은 칼로 저미는 듯한 날카로운 상처의 고통이 아닌, 백호로부터 한껏 사랑받은 전신에서 느껴지는 달콤한 동통뿐이었다.

이불 속에서 연화는 몸을 웅크렸다.

‘어젯밤에는 꼼짝없이 죽는다고 생각했는데.’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녀는 일곱 살부터 천민 마을에서 자랐다. 죄를 범해 천민 부락으로 쫓겨 온 어머니는 그녀가 열 살 갓 넘었을 무렵에 돌아가셨고, 양어머니가 대신 그녀를 키웠다.

이제 연화의 나이가 스물 초반이니 일반적인 양갓집 규수라면 결혼을 하고도 아이가 둘쯤 있을 나이였다. 그러나 천민 부락에는 그녀를 책임질 만한 남자도 없었고, 모든 천민들은 관아에서 허락을 받고 결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연화는 혼인을 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다행히도 관아 근처에 사는 데다 양어머니가 최선을 다해 그녀를 보호해서 험한 일을 당하지 않고 이때껏 살아왔다.

게다가 그녀는 친어머니로부터 치유의 능력을 물려받은 자였다. 약사여래의 가피 아래 있는 자만 가질 수 있다는 이능. 연화는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해서 의술사 없는 천민 부락의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치유사 노릇을 했다.

‘제사상에 올라갈 공물로, 어머니의 손수건만 가져가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야…….’

연화는 눈을 가늘게 떴다.

부락의 촌장은 파렴치한 남자였고 제사상에 올릴 공물이 부족하자 마을에서 닥치는 대로 좋은 물건을 끌어모았다. 연화에게 모친의 손수건을 요구했지만 그것만은 줄 수 없었다. 어머니가 남긴 마지막 유품이기에.

하지만 양어머니와 그녀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집에 도둑이 들었고 손수건이 사라졌다. 정신없이 뛰어가서 제사상에 올린 손수건을 품에 넣었지만 아무 소용 없는 짓이었다.

지난밤에 결국 손수건은 잃어버렸다. 그 정신에 그걸 찾을 수 있을 리는 없었다.

‘신께는 죄를 지었지만 자비롭게도 기회를 주셨어.’

연화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벌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그녀 혼자 감당해 낼 것인가. 스스로 감당해 낼 수 있는 기회를 받은 것만으로도 그녀는 기뻤다.

‘게다가…….’

백호는 건장하고 뜨거운 사내였다. 백발을 길게 늘어뜨린 고운 피부의 남자는 세상에서 보지 못할 미남이기도 했다. 상제가 빚어놓은 사방신의 일인이니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난생 처음으로 접한 사내가 그렇게나 뜨겁고 아름다운 남자라는 것이 믿을 수가 없었다.

‘난 정숙치 못한 여자인 걸까…….’

백호에게 안긴 지난밤부터 오늘까지, 아팠지만 좋았다. 처음엔 공포가 동반된 관계였으나 그것이 곧 잊혀질 정도였다. 정말로, 호랑이에게 물려 잡아먹힌다는 공포로 도배되었던 그 밤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백호는 위압감 있는 남자였지만 그의 품은 더할 나위 없이 안온했다. 좋은 것은 단지 육신의 쾌락만은 아니다. 감정적으로도 백호가 선사하는 남성의 뜨거움과 강인함이 지독하게 안락했다.

태산처럼 그녀를 품에 안던 너른 품과 단단한 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혹은 절대적으로 그녀를 보호해 주는 남자의 몸.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새빨개져서 이불 속에 고개를 파묻었다.

“뭘 그리 두더지처럼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게냐?”

부드러운 질책이 연화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배, 백호 님?”

“그래. 내가 와 있는 것도 모르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백호는 입을 삐죽였다. 침대 곁에 앉은 그는 연화를 일으켜 앉혔다.

“자,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한 끼니도 먹지 못했지 않느냐. 좀 먹어야지.”

그는 마치 십 년 전부터 연화와 함께 산 것처럼 그녀를 챙겼다. 만난 지 겨우 이틀째였다. 하지만 백호는 자연스럽게 연화의 허리를 끌어안고 그녀의 목덜미에 코를 묻었다.

“향기가 좋구나. 피부도 곱고.”

발정기에는 백호가 언제나 흥분 상태라는 걸 호접에게서 당부받은 연화는 간신히 당황하지 않고 버텼다. 잠시 연화의 허리를 끌어안고 더듬다가 정신을 차린 그는 곧 고개를 들고 허공에 손짓을 했다.

조용한 발걸음으로 어디선가 나타난 시녀들이 조용히 탁자 위로 식사를 준비했다. 의자에 앉은 백호가 그녀를 자신의 허벅지 위로 올려 앉히고, 젓가락을 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다리 밑으로 느껴지는 백호의 양물에 당황했다. 그는 확실하게 흥분한 상태였다. 반쯤 발기한 양물은 뜨거운 온도로 연화의 허벅지 밑을 툭툭 건드렸다.

“아, 저…….”

수치스럽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수치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연화는 확실하게 자신도 부끄러운 와중 기대가 든다는 사실을 외면하지 못했다. 백호와의 정사는 힘겹고 때로 거칠어 무섭지만 동시에 그 쾌락은 극상의 것이었다.

다리 밑의 양물을 한 번 의식하고 나자 연화는 어쩔 줄을 몰랐다. 자신의 허벅지 사이 안쪽 깊은 곳에서 습기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백호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소를 띄고 있을 뿐이었다. 다리 밑의 상태로 봐서 분명 그도 욕망을 느끼고 있는 상태인데, 안달이 난 것은 자신뿐인 것 같아서 연화는 더더욱 얼굴이 붉어졌다.

조용히 웃은 백호가 그르릉거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일단 식사를 하고 나서 네 몸을 내게 다오. 쉬지 않고 교접하려면 영양이 필요한 법이지.”

마지막 말은 웃음과 함께 사라졌다. 연화는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했고 백호는 태연하게 젓가락을 들었다.

“먹자꾸나. 신령계의 식사라고 해도 인간계와 별다를 바는 없으니 괜찮을 거야.”

금수의 붉은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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