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인의 밤
연서리
프롤로그
“쫓아라!”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 놓치지 말라!”
사방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라슬로는 더욱 속도를 올렸다. 은빛 갈기를 휘날리며 달리는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푹, 섬뜩한 소리와 함께 살이 꿰뚫렸다.
고통을 참지 못한 앞발이 꺾였고, 몸이 미끄러지더니 라슬로는 바닥을 굴렀다. 몸이 바닥에 쓰러지면서 쿵, 제법 육중한 소리가 울렸다.
“잡았습니다!”
동시에 환호가 들려왔다. 바닥에 쓰러진 상태에서 라슬로는 자신을 잡았음을 기뻐하는 놈을 노려보았다. 그의 금색 눈 위로 검은 복면을 쓴 이들이 잔뜩 비쳤다.
“머리만 베어서 챙겨라.”
“몸은 어떡합니까?”
“버려. 머리 외에는 필요하지 않으니까. 참, 왕의 인장도 가져가야 하니 버리기 전에 샅샅이 수색하라.”
“존명.”
대장으로 보이는 자의 명령에 남자들이 라슬로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놈들, 타마스의 부하로군.’
타마스는 그의 이복동생이었다. 어미가 다른.
기실 남자들이 자신을 사냥할 때 ‘오늘이 아니면 안 된다’라고 언급할 때부터 어렴풋이 느끼긴 했지만 ‘왕의 인장’까지 언급하는 걸 보면 타마스가 배후인 게 확실했다.
라슬로는 움직이기 위해 앞발에 힘을 줘 봤다. 근육이 움직임에 따라 화살이 박힌 앞발에 극심한 고통이 전해졌다. 간신히 일어났던 그는 시야가 어지러이 도는 걸 느끼며 다시 쓰러졌다.
‘한계로군.’
라슬로는 냉정하게 자신의 처지를 판단했다. 스르릉, 병사가 칼을 빼 들었다. 아마도 자신의 심장을 찌르기 위함이리라.
그 번뜩이는 칼날을 보며 라슬로는 몸 안에 있는 마나를 끌어모았다.
만월이 떠 몸이 약해져 있는데다 마나 고갈이 심각하게 일어난 지금, 이 이상으로 마나를 쓰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법을 안 쓰려고 했지만 이제는 써야 할 때가 왔다.
이대로 마법을 안 쓰고 죽는다면, 저 칼에 머리가 베여 자신의 이복동생에게는 물론 알지 못하는 곳에서 치욕을 당하게 될지도 몰랐다.
그는 왕이었다. 동시에 후대 중에서 신수, 일카이의 피를 가장 진하게 물려받은 귀하디귀한 몸이기도 했다. 때문에 그 죽음까지도 고귀해야 한다는 게 라슬로의 생각이었다.
‘죽더라도 혼자 죽는다. 타마스, 그놈에게 내 머리를 넘겨주지는 않을 것이다.’
단순히 마나를 운용하는 것만으로도 약해진 몸에는 부담이 갔는지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그는 계속해서 마나를 운용하며 순간 이동 마법의 수식을 그렸다.
마나를 모아 순간 이동 주문을 외움에 따라 그의 몸이 빛나기 시작했다. 이상함을 눈치챈 대장이 외쳤다.
“어서 찔러라! 놈이 마법을 쓴다!”
놀란 병사가 칼날을 높게 쳐들었다. 달빛에 반사된 칼날이 번쩍였고 동시에 그의 몸에서 마나가 팟, 터져 나왔다. 칼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눈부신 빛이었다.
칼을 빼 들었던 병사가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으며 칼을 내리찍었다.
푹―!
칼날 끝에 묵직한 무언가가 박혔다. 그 감촉에 병사가 슬쩍 눈을 떴다. 그러나 그의 칼끝에 박혀 있는 건 은빛 털을 가진 늑대가 아닌 맨바닥이었다.
“멍청한 자식!”
병사는 분개한 대장에 의해 정강이가 걷어차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