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3화 (64/158)

#63.

“궈, 권채우 씨…….”

넋이 나간 목소리엔 힘이 없었다. 연신 흔들리는 어깨뼈에 복부가 눌리자 구역질이 나듯 심장이 오르내렸다. 두 눈으로 직접 현장을 보고 있음에도 믿기지가 않았다.

비탈면 하단에 쌓아 두었던 돌담은 양옆에서 쏟아지는 토사를 막기엔 역부족이었고, 천으로만 덮어두었던 상단은 흘러내려 오는 흙들을 지탱하지 못하고 함께 무너졌다. 실시간으로 부러지는 작은 나무들은 가지째 뒤엉켜 그 모양을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이연 씨, 잘 들어요.”

그때 권채우가 잘게 숨을 토해 내며 말했다. 커다란 배낭 두 개에 이연까지 둘러업고 뛰는 일은 그로서도 제법 힘에 부쳤는지 헐떡이는 음성엔 여유가 없었다.

“여기서부터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조그마한 굴이 나와요.”

권채우는 먹어 치우듯 눈에 담았던 지도를 떠올렸다. 

과거, 일본이 화이도를 전초 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유달리 산이 많은 이곳에 숱한 인공 동굴을 뚫어 놓았다고 했다. 그는 지도 위에 따로 표기가 돼 있었던 동굴 진지의 위치를 머릿속으로 빠르게 뒤지며 방향을 틀었다.

순간, 신발 밑창에 돌멩이가 걸려 크게 휘청거렸으나 금세 중심을 잡았다. 혹여나 떨어뜨릴세라 이연의 둔부를 둘러 안고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폭은 좁아요, 그래도 이연 씨는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듣기 좋았던 중저음이 거친 숨소리에 자꾸만 묻혔다.

“거기 들어가서 배낭으로 막고 버텨요.”

이연은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눈으로 그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왜인지 입이 마르고 심장이 뚝 떨어졌다. 권채우의 말 어딘가가 묘하게 신경을 긁어서. 얼굴을 구기고 그의 옷자락을 와락 움켜쥐었다. 이 와중에도 우지끈 부서지는 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권채우 씨는요?”

“…….”

남자는 차오른 숨을 날카롭게 쏟아 낼 뿐, 대답하지 않았다. 바라지 않던 침묵은 최악의 가설 하나를 끄집어냈고, 이연은 기가 막혀 눈앞이 뿌예졌다. 가슴 속이 출렁거려 입술이 파르르 떨려 왔다.

“혼자서는 안 가요.”

“내 말 들어요.”

“싫어요!”

“소이연!”

할퀴듯 매정한 목소리가 그녀를 후려쳤다. 얼어붙은 제 이름 석 자가 고드름처럼 뾰족했다.

“정신 차려, 여기서 죽고 싶어?”

이를 악물며 짓씹는 말에 노기가 배어 있었다. 평소의 온기는 싹 사라지고 냉정함만이 남은 말투에 이연은 흠칫 굳고 말았다. 머리로는 이 상황을 납득하면서도 가슴은 정반대의 말을 해 댔다. 

‘그래도 싫어, 안 돼, 싫어…….’

그녀는 뼈마디가 하얘질 정도로 남자의 옷자락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힐끗 본 광경은 여전히 달라진 게 없었다. 멀리서 터졌던 토석류는 어느새 가속도를 받아 그들의 뒤까지 성큼 다가와 있었다. 그가 이연을 놓으려는 듯 허리를 붙잡자 그녀가 발작하듯 외쳤다.

“제발 그러지 마요! 나 혼자는 싫어요!”

“까불지 마!”

두 사람의 목소리가 강하게 부딪쳤다. 

“이연 씨가 뭔데, 내가, 내 아내 살리는 걸 방해해요.”

“……!”

그녀를 일별하는 시선이 매섭다. 무겁게 잠긴 목소리에는 협상의 여지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이연은 왈칵 치미는 서러움에 콧날이 다 시큰거렸다. 무너져 내리는 산사태보다도 권채우의 이기적인 애정에 먼저 압사되듯 숨통이 막혔다. 심장이 벼랑 끝에 놓인 것처럼 뛰고 참기 힘든 신음이 새어 나왔다.

“제발요……. 제발요, 권채우 씨. 그러지 마요. 내 말……, 내 말 들어주기로 했잖아요. 내 말만 듣겠다면서. 내가 시키는 것만, 허락한 것만 하겠다면서, 왜 매번! 왜 매번 이래요!”

나는 널 받아들이는 것만 해도 벅찼는데, 너는 뭐가 이렇게 쉬워……!

숲속은 밀려드는 지반으로 넘실댔고, 이연은 그 광경을 망연자실 쳐다보며 애원했다. 권채우의 발이 진흙에 잠겨 든다. 그에게 딱 붙어 있던 몸이 붕 뜨며 두 사람 사이에 틈이 생겼다. 권채우가 조금씩 그녀를 떼어 내고 있었다.

“흐윽, 제발요, 놓지 말아요! 나, 나 이런 거 싫어요……!”

덩달아 아프게 일그러진 권채우의 얼굴이 점점 멀어져 간다. 그 순간 시간이 끝도 없이 늘어졌다. 

밀려닥치는 산사태도, 그의 각오도 전부 잊고, 그저 무작정 매달렸다. 왜 나만 두고 가느냐고, 어린애 같은 원망이 불쑥 솟아서. 깊은 우물 속에 묻혀 있던 묵은 감정이 엉뚱하게도 지금 튀어나왔다.

나만 두고 가지 마요. 차라리 나도 데려가요. 이제 나는 무서운 곳에 더 이상 혼자 남기 싫어요.

그의 팔뚝을 잡았으나 금세 강한 악력에 의해 떨어졌다. 다시금 손을 뻗어 보아도 찰싹, 매정하게 내쳐졌다. 연이어 헛손질을 하며 그의 팔뚝을 부득이하게 할퀴는 순간, 권채우가 앞쪽에 메고 있던 배낭을 그녀와 함께 던졌다.

“으……!”

땅바닥에 추락한 엉덩이보다도 이윽고 쏟아지는 발길질에 눈물이 쏙 났다. 그가 배낭을 푹푹 발로 차며 이연을 개구멍 비슷한 굴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권채우의 냉정한 눈빛에 한 줄기 고통이 스치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이연을 굴리듯 막무가내로 집어넣은 그는 배낭 두 개를 세워 동굴 진지의 입구를 틀어막았다.

“꽉 잡고 버텨요.”

“자, 잠깐만요, 잠깐만, 권채우 씨―!”

“나 아직 원 없이 못 했어요.”

“……!”

“우리 아직, 끝장 못 봤잖아요.”

흔들림 없이 단호하고, 뜨겁게 일렁이는 눈동자가 칼처럼 박혀 든다. 그건 마지막을 고하는 사람의 인사가 아니었다. 그는 급박한 만큼 까칠해진 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러니까 고작 이런 데서 죽으면, 내 손에 다시 죽을 줄 알아요.”

위협적인 눈 맞춤에 줄기줄기 흩어져 있던 신경 다발이 맞물리는 것 같았다. 따로 놀던 두 사람의 파장이 넝쿨처럼 얽혀 들었다. 

하지만 그 억겁 같은 순간은 눈 깜짝할 새였고, 이내 기다렸다는 듯 남자의 옆으로 물결 같은 토사가 밀려들었다.

퍽, 척, 척, 퍽, 쏴아―

잇따른 소리가 모든 것을 뒤덮는다. 거대한 산사태가 순식간에 그를 집어삼켰다. 그러자 연결돼 있었던 그와의 모든 끈이 강제로 뚝 끊기며 뼈가 부러지는 듯한 통증이 덮쳐 왔다.

“권채우―!”

갈라지는 비명이 좁은 동굴 벽을 때리고 메아리쳤다. 

배낭 두 개로는 충분히 가려지지 않는 입구 틈새로 짙은 토석류가 꾸역꾸역 밀려들었다. 까딱했다간 덩달아 휩쓸려 갈 것 같은 배낭을 손톱이 빠지도록 붙잡고 있었다. 끝없이 쏟아지는 토사를 밀어내듯, 방어하듯 그렇게 버티었다. 

쏴아—

쏴아아—

배낭이 흔들릴 때마다 손목이 뻐근하고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뼈마디가 욱신거릴 정도로 악착같이 잡고 버텼지만, 입구 전부를 막는 건 불가능했다. 왈칵왈칵 넘어오는 흙탕물이 안면에 튀기고, 옷은 삽시간에 더러워졌다.

“흐윽……!”

대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그저 모든 게 너무 빨리 흘렀고, 순식간에 지나갔다.

순식간에, 권채우가 사라졌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이윽고 세상을 뒤덮는 듯했던 소리가 어느 순간 뚝 그치고, 꿀렁꿀렁 넘어오던 토석류도 멈추었다.

앉은 자세에서 허리까지 진흙이 차올라 있었다. 젖은 옷에 쓸리는 피부는 아팠고, 몸을 슬금슬금 타고 올라오는 동굴의 한기 때문인지 입술은 새파랬다. 

개구멍 같은 공간에 간신히 제 한 몸 구기고 들어와 휩쓸리는 일은 피했다지만, 여기서 나가는 일이 더 요원해 보였다.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렀다.

“권채우 씨…….”

우툴두툴한 돌벽에 등을 기대자 비로소 울음 섞인 한숨이 새어 나왔다. 

딱딱하게 굳은 손아귀가 간헐적으로 경련을 해 댄다. 이연은 떨리는 손을 꽉 맞잡고 얼굴을 파묻었다.

“거, 거기 밖에 있어요? 채우 씨……. 거기 있어요?”

쉬어 버린 성대에서는 색색, 공기 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굴 밖은 밤처럼 고요했고, 이연은 울컥, 솟구치는 감정을 꾹 내리눌렀다.

“윽…….”

등과 엉덩이를 찌르는 주먹만 한 돌이 아프다. 입구 틈새로 차갑고 축축한 바람이 흘러들어 왔다.

그때, 그녀의 어둑한 시선 끝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진흙 더미가 된 배낭이 들어왔다. 

그리고 앞주머니에 욱여넣어 둔 태블릿 PC를 보는 순간, 허겁지겁 그것을 꺼내 어떻게든 벅벅 문질러 닦으며 전원 버튼을 켰다. 

와이파이 표시는 사라졌지만 대신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건 그동안 그녀가 작업했던 나무의 사진이었다. 

그녀는 아무런 감정이 내비치지 않는 눈으로 그것들을 넘겨보다가 멈칫, 손가락을 허공에 띄웠다.

“……흐으.”

입에서 알 수 없는 신음이 샌다.

어느새 사진은 나무가 아니라 그들을 치료하는 이연의 뒷모습, 얼굴, 미소를 담고 있었다. 

걱정하듯 눈썹을 내리는 표정, 심각하게 미간에 힘을 준 표정, 부드럽게 입매를 올린 표정, 웃음이 와락 터져 치아가 환히 보이는 표정까지. 

흔하게 스쳐 지나갈 법한 그 모든 순간순간들이. 

누군가의 지극한 눈은 낯설기 그지없는 제 생동감 넘치는 얼굴을 흘려보내기엔 아까웠던 듯했다.

“…….”

환기가 되지 않아 답답하고 퀴퀴한 공기가 그녀의 숨을 막는다.

‘여기서 죽으면, 나더러 죽을 줄 알라고?’

이 입질하는 개가 대체 누가 할 소리를 해……!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을 꾹 감았다 떴을 땐, 그녀의 눈에 번들번들한 광채가 돌고 있었다.

찾아야겠다.

난장판이 된 이 숲에서, 당신을 다시 만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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