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1화 (52/158)

#51.

“경찰 세 명이 경질됐고, 그 외 여덟 명은 옷 벗었습니다.”

장범희는 귀에 핸즈프리를 끼고 여전히 창문 밖 소이연의 집을 주시하고 있었다. 

바다 한가운데. 고기잡이배를 개조하여 비밀리에 운영했던 사업 중 하나가 적발이 됐다. 

그것도 권 가(家)의 막내 도련님 손에 완전히 개박살이 난 상태로. 

그때의 기분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빼도 박도 못할 증거는 차고도 넘쳤다. 마약선 한 척, 비닐하우스의 사진, 밭을 담당하던 조선족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들은 체포되어 검찰에 넘겨졌지만 꼬리만 잘려 나간 꼴이었다. 어렵사리 나간 기사 한 줄은 조선족을 향한 혐오를 조장하며 본질을 희석하는 데 쓰였다. 

준법정신이 부족한 조선족들이 몰래 마약을 키웠다고, 마약 운반을 시도하려는 정황이 포착됐다고, 사건은 그렇게 평면적으로 축소되었다.

―채우를 어쩌면 좋을까. 

권 이사의 느긋한 한숨에 장범희는 설핏 얼굴을 굳혔다.

최초 출동했던 경찰들의 처리도 전부 끝이 났다. 누군가는 고집스럽게 대항하다 징계를 받았고, 누구는 평생 일해도 만질 수 없는 돈을 받고 기쁘게 옷을 벗었다. 

그러나 여기서 진짜 골치 아픈 사람은 다름 아닌 권채우였다.

―고객들이 언짢아하는 바람에 체면이 상했으니, 형으로서 벌을 줘야겠지.

* * *

권채우는 창가에 서서 점점 멀어져가는 그녀를 지켜보았다.

아무런 표정도 띠지 않은 얼굴은 메마른 화초처럼 퍼석하기만 했다.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유리창 너머를 응시하던 남자는 이연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후로도 좀처럼 창가를 떠나지 못하다가, 괘종시계가 정각을 알리자 묵묵히 등을 돌렸다. 아무리 기다려도 실수처럼 그녀가 되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소파에 앉은 자세는 방만하지 않고 도리어 모범적이었다. 허리는 곧았고, 양손은 반듯하게 무릎 위에 올려두었다. 

그러나 권채우는 전원이 꺼진 사람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미약한 호흡과 함께 간간이 눈꺼풀만 움직였을 뿐, 멈춰버린 시간이 중력처럼 짓눌러오는데도 그저 견디고 있었다.

그녀가 사라진 장소는 제아무리 그들의 살림집이라 하더라도 남의 것인 양 어색해서. 권채우는 무기력하게 앉아 소이연의 얼굴만 되뇌고 또 되뇌었다. 

집뿐만이 아니다. 권채우에게는 모든 물건이, 모든 사람이 그랬다. 

“…….”

나 두고 어디 가요. 친구 누구인데요. 남자예요, 여자예요? 어떻게 알게 된 사람인데요?

주먹을 쥐자 손등의 뼈가 와락 불거졌다.

성가신 물음들은 그가 봐도 미숙해 보였다. 잘 참았다 싶다가도 돌연 짜증이 치밀었다. 

초여름에 잘 어울리는 하늘하늘한 블라우스와 경쾌한 청바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차림으로 사람을 간단히도 홀려놨으면서. 도망치듯 후다닥 현관으로 뛰어갈 때는 저도 모르게 그녀를 확 잡아챌 뻔했다.

“……언제 와요. 몇 시에. 몇 분에.”

그가 무너지듯 고개를 툭 뒤로 젖혔다. 튀어나온 목울대가 신경질적으로 흔들렸다.

권채우는 그녀가 있었기에 이 안개 같은 현실에 가까스로 발을 붙였다. 이연이라는 매개체가 없었다면 진작 이곳과 유리되어 떠돌이 같은 삶을 살았을 거라고. 

기억은 사람을 구성하는 내용물이었고, 그것이 빠진 권채우는 그 어디에서도 제 존재감을 느끼기가 어려워서. 이연을 삼킴으로써 저를 채워나갔다. 이연의 말을 받아 마시기 급급했다. 

소이연의 남편.

현재로선 그것만이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유일한 가치였다. 

이따금씩 의심과 불신, 그런 달갑지 않은 불협화음이 그의 신경을 툭툭 건드리기도 했으나 아내만 있다면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가만히 기다려 주기에 소이연은 여전히, 빌어먹게도 여전히, 곧잘 등을 보였다. 

“…….”

별안간 권채우가 소리 없이 몸을 일으켰다. 

이제는, 혼란한 머릿속을 한번 정리할 시간이었다.

* * *

첫 번째로 만난 남자는 작은 독립서점을 운영한다는 연상의 남자였다.

이연은 단정한 외모에 행동거지까지 차분한 남자를 신기한 듯 훔쳐보았다. 그는 시종일관 웃으며 마치 고객을 응대하듯 완벽한 경청 자세를 보여 주고 있었다. 

지긋하게 눈을 맞춰온다든지, 과하지 않게 끄덕거려준다든지, 적절한 타이밍에 맞장구를 쳐준다든지, 숙련된 경험과 함께 진정성이 느껴졌다. 

일 번 남자는 아주 사려 깊은 사람임이 분명했다.

“이연 씨는 무슨 나무를 제일 좋아하세요?”

……질문 수준 봐. 숨만 쉬어도 EQ가 느껴지는 이 감수성. 

그는 역시 배운 사람이었다. 

저 사람은 이연이 권채우에게 주입하려 했던 남자의 표본이었다. 착하고, 다정하고 점잖은……. 

그런데 권채우는…….

‘아아악!’

돌연 이연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생각하지 마! 

여기까지 와서 권채우를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이연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눈앞의 남자에게 집중했다. 초면인 사람과는 어쩔 수 없이 낯을 가리게 되는데도, 나무 이야기는 언제나 즐거웠다.

“가문비나무를 좋아해요.”

“들어본 적 있어요. 그게 악기 만들 때 쓰는 나무 맞나요?”

“맞아요.”

이연이 기쁘게 웃었다.

“그 나무가 좋은 특별한 이유라도 있어요?”

이연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 찰나가 끝도 없이 길어지려는데 그녀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추억이 변변찮아서, 어떻게든 그럴싸한 이름 하나 지어주고 싶었거든요.”

“네?”

남자는 고개를 갸웃했고, 이연은 찻잔을 매만지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어릴 때 얘긴데요. 제가 자주 찾던 뒷산에 작은 나무가 하나 있었어요.”

그가 흥미 있다는 듯 귀를 기울였다. 그 최소한의 관심이 고마워 그녀는 조금 웃고 말았다.

“몸통은 작은데 잎은 정말 무성해서, 그늘이 아주 컸던 나무였거든요. 그런데 그 밑에 앉으면요, 항상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렸어요. 거짓말 같죠? 그런데 그 나무에 등만 대면 꼭 멜로디가 들렸어요.”

그때를 생각하자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휘어 올라갔다. 

“……꿈꾼 거 아니고요?”

남자는 추자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 당시에도 추자는 코웃음을 치기만 했다. 어느 날은 제 말을 증명하기 위해 추자를 데리고 뒷산에 올랐지만, 황당하게도 숲은 조용하기만 했다. 

“진짜예요.”

이연이 웃음을 삼키며 재차 힘을 주었다. 

하지만 다음 날, 약이 바짝 오른 이연이 다시 뒷산에 올랐을 때. 그 비밀스런 선율은 기다렸다는 듯 그녀에게 닿아왔다. 오로지 그녀가 혼자 있을 때만이.

“그럼 그 나무가 가문비나무였어요?”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이연이 고개를 성급히 가로저었다.

“그게 벌써 십오 년 전이라 저도 기억이 희미해요. 한번은 이제라도 알고 싶어서 찾아갔던 적이 있었는데 재개발이 됐더라고요.”

덤덤한 목소리였으나 눈빛은 알게 모르게 그리움에 잠겨 있었다.

“그래서 아쉬운 마음에 저 혼자 노래하는 나무라고 부르기 시작한 거예요. 몇몇 낭만적인 사람들이 가문비나무를 그렇게 부른다는 걸 알고는 그때부터 저도 바꿔 불렀고요.”

“꼭 동화책 같은 얘기네요.”

남자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이잉, 지이잉.

그때,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상대의 핸드폰이 울렸다. 남자는 액정을 확인하고는 얼굴을 설핏 굳혔다. 단정했던 인상이 순식간에 흐려지는 게, 보통 난감한 게 아닌 듯했다.

“받으셔도 돼요.”

남자는 고맙다는 눈빛을 짤막하게 보내며 핸드폰을 귀에 갖다 대었다.

“……어, 지수야.”

차분했던 남자가 갑자기 허벅지를 문지르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멀찍이 던져두는 시선에 이상한 물기가 고여 든다. 어른스럽게만 보였던 표정이 일순 길을 잃은 소년처럼 초조해 보였다.

“애 약은 먹였고? 내가 죽 사다 놨는데 그거부터 먹이지 그랬어.”

이연은 조각 케이크를 한 입 먹으며 남자를 유심히 살폈다.

“……그럼, 내가 집에 가기 전에 들를게.”

그가 눈썹 뼈를 꾹꾹 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목소리가 희한하게 젖어 있었다.

“그런 말 하지……! 말했잖아.”

그가 언성을 확 높였다가, 감정을 누르듯 이를 악물었다. 

이연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재차 케이크를 한 입 크기로 잘랐다.

“……우리 엄마가 한 말은 신경 쓰지 말고.”

세상에, 뭔가 엄마랑 엮인 문젠 가봐. 덩달아 이연의 포크질이 빨라졌다.

“내가 왜 남이야, 우리가 중학교 때부터 벌써 몇 년 지기 친군데……!”

그는 답답하다는 듯 억눌린 소리를 냈다. 

“내가 너한테 그런 의리도 못 지켜? 네 애면, 내 애도 돼.”

통화는 실랑이를 하듯 이어졌다. 

그의 용건이 길어질수록 엿듣고 있던 이연의 입 속에선 단맛이 휘몰아쳤다. 한 입씩 조각내 먹던 케이크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이연은 포크를 쪽 빨며 시시각각 변하는 남자의 표정을 관찰했다. 케이크를 하나 더 시켜야겠다. 

추자 씨, 이놈은 기적의 논리를 펼치는 데다 터무니없는 야망까지 있어요.

본인은 그걸 아는지 모르겠지만…….

사려가 좀 이상한 데서 깊어요…….

이놈은 텄어요.

* * *

자그마한 면사무소 안.

창구에 앉아 있던 직원이 서류를 집으려다 헛손질을 했다. 좀처럼 이곳에서 보기 힘든, 웬 훤칠한 남자가 저벅저벅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흠잡을 데 없는 이목구비가 모든 시선을 전부 빨아들이며 가까워지고 있었다. 경계하듯 주위를 둘러보던 눈빛이 때마침 직원을 향한다. 

사람을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눈초리였다. 

“……네, 어떻게 오셨어요? 무, 무얼 도와드릴까요?”

직원은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압박감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권채우는 생각에 잠긴 듯 잠시간 말이 없더니 이윽고 눈썹을 까딱 움직였다. 

“가족관계증명서 떼러 왔습니다.”

감정이 한 톨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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