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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2화 (2/119)

2화

가이드.

그들은 이능력자들만을 위한 인간 진정제이자 정화제이며, 치유제였다.

‘인도하는 자, 라는 뜻으로 그런 명칭이 생겼다고 하던가.’

대충 없으면 안 되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로 생각하면 된다.

그런 가이드가 이능력자들을 진정시키고 치유하며 정화하는 방법은 하나다.

‘가이딩.’

쉽게 말해 접촉.

물론 그게 다는 아니었다. 접촉의 시간과 농도가 길고 짙어질수록, ‘가이딩’의 효과도 높아지니까.

작중 세계관은 디스토피아. 각종 재난과 위험이 닥친다.

위기는 변화를 만든다고, 이 세계의 주민들 또한 세계의 상황에 맞춰 ‘이능’을 각성하게 된다.

그렇게 생겨난 이능력자들은 일반인들이 감히 시도할 수 없는 일을 해내며, 점차 그들보다 강력한 존재로 군림하기 시작한다.

그런 비인간적인 이능력자들이 가이드들을 어떻게 대했을지 감 오지 않는가?

‘가엾은 에이드리안.’

정말이지, 능력 때문만이 아니라도 에이드리안은 박복한 주인공이었다.

‘어릴 적 가족을 불행히 잃고, 죽도록 고생하며 살아왔지. 그걸로 모자라 자신의 숨겨진 힘이 발현한 뒤에는 이능력자들에게 시달리기까지…….’

그 결과, 에이드리안은 이능력자들에게 큰 반감을 품게 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하다는 S급 이능력자, 초월자의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뿌리 내린 이능력자 집단에 대한 증오심은 에이드리안이 그들에게서 도망치고 나서도 전혀 식지 않았다.

이후 에이드리안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게 되는 데 영향을 끼쳤으니까.

그렇다. 에이드리안은 힘숨찐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에이드리안은 끝끝내 피식자와 포식자의 관계성을 역전하지 못하고 도망치는 데 급급하다가 죽게 된다.

‘그리고 회귀하지.’

그렇다. 사실 에이드리안은 회귀 복수 사이다물의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전생의 개고구마 인생은 회귀 후 사이다를 위한 발판인 법.

첫 번째 삶에서 에이드리안은 초월자들을 정신 나간 미친놈들이라 두려워했었다.

그러나 회귀한 에이드리안의 머릿속에는 그들의 모든 비밀과 약점이 남아있었다.

「“다시는 비참히 당하다 죽지 않겠어.”」

회귀한 우리의 주인공, 에이드리안은 더는 전생의 유약하던 사내가 아니었다.

자신의 진정한 능력과 미래 지식을 이용해, 에이드리안은 적들을 하나하나 무너뜨린다.

그리고 전생에 자신을 죽도록 괴롭혔던 초월자들마저 굴복시킨 뒤 대륙의 새로운 최강자로 군림하게 된다……!

‘응, 재미있었어.’

<시한부 천재의 S급 회귀 생활>

서양 판타지 배경에 디스토피아 설정, 던전과 시스템창에 가이드물까지! 그야말로 온갖 유행하는 설정이 버무리된 웹소설.

처음엔 그저 타임 킬링용으로 시작한 거였지만, 몰아치는 사이다 전개와 매력적인 캐릭터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렬한 브로맨스 서사에 어느덧 진심으로 푹 빠져 버렸다.

‘그래, 나 같은 썩은 독자들을 위한 브로맨스가 아주 풍부했단 말이지, 킬킬.’

이 소설에는 매력적인 남자 캐릭터가 많았고, 주인공 에이드리안과의 서사도 죽여줬다.

그중에서도 내 최애는 흑막 공작, ‘해리스 고드윈’이었다.

시작부터 밑바닥 인생이었던 에이드리안과 달리 해리스는 고드윈 공작 가의 유일하고도 적법한 후계자로 태어났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딱히 에이드리안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볼 순 없었다.

해리스의 친어머니는 그를 낳은 뒤 오래 지나지 않아 사망하고, 아버지는 그를 부정했으니까.

아내를 잃은 슬픔과 절망에 매몰된 것일까?

「“네놈만 아니었어도…….”」

아니, 사랑하지 않은 걸 넘어서 학대했다.

불행히도 이런 안타까운 어린 시절은 그저 서막에 불과했다.

진짜 시련은 해리스, 그가 자신의 능력을 깨우치게 된 시점부터 시작되었으니.

1차 각성.

불행히도, 해리스의 어린 육신은 과도한 힘을 담기엔 지나치게 약했다.

검은 마력에 뒤덮인 해리스는 온몸이 터져나갈 것만 같은 통증에 절규했다.

‘아아악-!’

고드윈 공작 가는 제국의 2인자로 취급되는, 부와 권력이 짱짱한 가문이었다.

‘심지어 황실과 혼맥이 있는 로오열 블러드이기까지 했지.’

그런 고드윈 공작 가에서 해리스와 같은 초월자가 태어났으니, 앞으로 백 년은 더 해 먹을 수 있겠다고 좋아할 법도 했지만…….

‘고드윈 공작은 이능력자들을 혐오했어.’

원래 권력자들은 보수 꼰대라 새로운 것에 부정적이지 않은가?

당시 대륙 곳곳에선 해리스와 같은 이능력자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건 앞으로 세계가 맞이할 아포칼립스를 대비하기 위함이었지만, 기존 사회에서 그들에 대한 반발심이 강했다. 자기 힘을 컨트롤하지 못한 이능력자들의 사고로 사람들이 죽는 것도 부지기수였으니.

「“그 짐승만도 못한 것들! 죄다 처형장에 끌고 가서 쏴버려야 해!”」

이능력자들에 대해 늘 그렇게 말해오던 고드윈 공작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자신의 하나뿐인 아들이 그런 이능력자 중 하나로 발현해 버렸다니!

「“너 같은 건 내 아들이 아니다. 괴물이야!”」

가뜩이나 어미 잡아먹고 태어났다며 미워하던 아들이었다.

고드윈 공작은 1차 각성으로 발작하다 쓰러진 해리스를, 마력 억제 도구로 꽁꽁 감아 지하 감옥에 가둬버린다.

「“고, 공작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자칫 잘못되었다간, 공자님께서…….”」

1차 각성이 잘못될 경우, 체내 마력이 완전히 뒤엉켜 버려 사망할 수도 있다.

힘이 강력할수록 그 위험은 더 컸다.

「“아, 아버지, 쿨럭! 제발……!”」

죽도록 고통스러운 것과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어린 해리스는 갑작스럽게 닥친 목숨의 위기에 다 죽어가던 눈을 부릅떴다.

새빨개진 아이의 눈동자가 고드윈 공작에게 닿았다.

사지가 억제 마도구로 결박되고, 온몸이 열로 끓어올랐다. 달달 떨리는 작은 손만이 겨우 아버지의 옷자락을 쥐었지만…….

「“놓아라!”」

고드윈 공작은 혐오스럽다는 듯이 옷자락을 잡고 있는 제 아들의 손을 거칠게 떼어내고 돌아섰다.

어머니의 부재.

아버지의 부정.

모두에게 외면당한 소년의 처절한 비명이 감옥을 울렸지만, 누구도 그의 절규를 들어주지 않았다.

‘불쌍한 해리스…….’

독자인 나조차 안타까움을 느꼈거늘, 정작 해리스의 친아버지에겐 전혀 그러한 동정심이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당장 저 괴물 새끼를 내 눈앞에서 치워, 치우라고!”」

그렇게 학을 떼던 고드윈 공작은, 해리스를 눈앞에서 치우는 걸로 모자라 자신의 저택에 두는 것조차 끔찍하게 여겼다.

그로서 해리스는 수도의 본가가 아닌 머나먼 고드윈 공작령의 낡은 고성에 가둬뒀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그 고성의 지하 감옥에서.

죽일 수 없으니 차라리 가두고 서서히 말려 죽이겠다는 뜻이었다.

물론 1차 각성 이후 강력한 생존력을 지니게 된 해리스는 죽어주지 않았고, 고드윈 공작은 방법을 궁리했다.

‘당시 밝혀진 이능력자들의 진정제, 가이드를 찾으려 했지.’

죽일 수 없다면 통제라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능력자들과 달리 가이드는 능력이 쉽게 드러나지 않았고, 그들을 찾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나 다름없었다.

물론 고드윈 공작 가문은 워낙 대단하신지라 별을 딸 수 있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하지만 모두 해리스에겐 부적합했지.’

그로서 고드윈 공작은 더더욱 해리스를 혐오하게 되었다.

「“저건 괴물이다. 고드윈의 후계자가 될 수 없어!”」

그렇게, 고드윈 공작은 해리스를 본성의 지하 감옥에 가둔 채 지우기 시작했다.

그로써 해리스는 본래 자신이 가져야 했을 영광도, 부와 명예도 받지 못한 채 초라한 죄수처럼 감옥에서 살아가게 된다.

「“무서워할 게 뭐 있어? 어차피 마도구에 갇혀 있잖아.”

“그, 그래. 사정거리 바깥에 있으면 괜찮다고……!”」

성의 사용인들마저 해리스가 자신의 주인이라는 걸 망각한 채 멸시한다.

그리고 감옥의 죄수를 대하듯, 최소한의 식사와 물품만을 건네줄 뿐, 예산은 착복하고 귀중품은 빼돌렸다.

호화로운 고드윈 공작 가문의 진정한 주인은 그토록 비참하게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방만하던 사용인들조차 그가 폭주할 때의 두려움을 알기에, 그 주기에 맞춰 노예들을 사들여 대신 희생하게 했다.

이능력자들에 대해 무지한 그들로서는, 해리스의 폭주를 단순히 살육에 대한 욕구로 이해해 버린 것이다.

<시한부 천재의 S급 회귀 생활>의 주인공, 에이드리안이 등장하는 건 이 시점이다.

자신이 가이드라는 것을 각성하고, 잔혹한 초월자에게 시달리다 간신히 도망치던 시점.

제대로 도망치기도 전에 인신매매단에 잡혀가 노예로 팔려나간 것이다.

‘흑흑, 이 세곈 불쌍하고 안타까운 애들밖에 없나.’

하나는 감옥에 갇힌 괴물로, 다른 하나는 그 괴물에게 바쳐진 노예로.

자신의 힘을 컨트롤하지 못해 폭주하던 해리스가, 에이드리안이라는 진정제를 만나 최초로 가이딩이라는 안식을 맞이하게 된다.

‘정말이지 브 떼고 로맨스만 붙여도 충분한 명장면이었지……. 다시 생각해도 눈물이 나는군.’

나는 해리스의 상징 컬러인 레드와 에이드리안의 상징 컬러인 보라로 형광펜을 수백 개도 넘게 치며 눈으로 핥듯이 읽어댔다.

그래, 그토록 사랑하던 장면이었고, 직접 보고 싶다고도 생각했었다.

분명 그랬지만…….

“괜찮아, 제이드!”

“넌 할 수 있어! 너 자신을 믿어!”

“그래! 네게 내재한 가이드의 힘을 믿-!”

“믿긴 뭘 믿어, 이 미친 것들아!”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직접 그 장면을 재현하고 싶다는 뜻은 아니었거든?!

나는 쇠창살을 붙들고 고함쳤다.

“내가 몇 번을 말해, 난 가이드 아니라고!”

그놈의 기절이 문제다.

당연히 의식을 되찾았을 때는 ‘와 진짜 리얼한 덕질꿈이네, 대박’ 하고 끝날 줄 알았다.

그런데 아까와 똑같은 지하 감옥이 날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옹기종기 모인 노예 동기들은 내가 눈 뜨자마자 ‘깨어났어!’, ‘만세!’하고 눈을 반짝였고, 뭣도 모르던 난 마주 웃으며 ‘만세……?’ 하고 맞장구쳤었다.

‘또 꿈인가 했지.’

그러나,

“자, 제이드! 어서 가이드답게 저 괴물 이능력자 좀 어떻게 해봐!”

-라는 개소리를 들었을 땐 더는 웃을 수 없었다.

‘제이드? 가이드??’

뭔 헛소리야, 하기도 전에 나는 보라색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래, 제이드.”

에이드리안, 작은 원한도 크게 갚아주는 우리 사이다패스 주인공.

그는 입꼬리만 휘어 올린 채 내게 말했다.

“네가 가이드여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뭐? 그건 내가 아니라 너- 켈록!”

당장 반박하기도 전에 에이드리안의 손가락이 내 목덜미 어딘가를 꾹 눌렀다.

무슨 혈이라도 짚은 건지 나는 말 한마디도 제대로 내뱉을 수 없게 되었다.

“읍읍!”

그렇게 내 입을 틀어막은 에이드리안이 다른 노예들과 함께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갔다.

미노타우로스의 미궁처럼 널찍한 지하 감옥의 한 구석, 불길하고 검은 힘이 요동치는 게 보였다.

‘저건…… 해리스?’

가짜 진정제한테 집착하지 마세요, 흑막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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